오는 4월7일은 제63회 신문의 날입니다. 오늘은 2019년 4월4일 밤 10시입니다. 63회 신문의 날 기념 축하연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할 내용이 미리 공개가 되었습니다. (注: ‘신문의 날’ 당일이 일요일인 관계로 4월4일에 축하연이 미리 진행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 자리에 참석해 읽은 축사가 청와대 홈페이지에 게재됐다)
저도 신문기자 출신입니다. 1971년에 신문기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신문기자, 잡지기자, 요사이는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으니까 다양한 언론체험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또 오늘 문재인 대통령이 읽은 인사말의 주제가 ‘언론의 자유’입니다. 현장에서 49년째 뛰고 있는 기자로서 저도 ‘언론의 자유’에 대해 할 말이 있습니다.
저는 1976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처음으로 해직이 되었습니다. ‘포항에서 석유가 나왔다고 하는데 경제성이 없다’는 글을 썼다가 해직이 되었습니다, 정보부에 의해서. 1980년에 또 해직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병가를 내고 광주사태를 취재하러 갔다가 돌아와서 회사에 항명을 했다고 해직이 되었는데, 해직된 줄 모르고 신군부에서 저를 해직 기자 명단에 넣어서 확인 사살을 당했습니다.
1986년에서 해직이 또 되었습니다. 그때는 조선일보 월간조선에 있을 때인데, 제가 쓴 ‘한국 내 美 CIA’라는 기사가 문제가 되어 세 번 해직이 되었습니다. 세 번 해직되었지만 다 언론사로 복귀한 행운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언론 자유에 관한 한 저도 문재인 대통령만큼 할 이야기가 있고,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있는 경험과 권리, 또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이런 말로 시작했습니다.
<저는 ‘신문’을 생각하면 ‘처음’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이른 아침, 아직 잉크 냄새가 나는 신문을 집어 드는 것은 그날그날의 세상 소식을 ‘처음’ 만나는 일입니다.
신문은 또한 민주주의의 ‘처음’입니다.
영국 명예혁명에서 인류는 처음으로 언론의 자유를 쟁취했습니다.
언론의 자유를 통해 민주주의, 인권, 정의, 평화가 커갈 수 있었습니다.>
죽 오다가 제가 본격적으로 따져보려고 하는 문장이 나옵니다.
<이제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권력은 없습니다.
정권을 두려워하는 언론도 없습니다.
많은 해직 기자들이 일터로 돌아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다시 높아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이것은 따져봐야 합니다.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권력은 없습니다> 이게 사실입니까? 그러면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MBC·KBS 경영진을 바꾸기 위해서 조직적으로 거의 공작적으로 권력을 앞세우고 때로는 국세청이라든지 감사원이라든지 검찰까지 동원해서 이인호, 고영주 두 이사장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정치권력은 중립을 지켰습니까? 이인호 KBS 이사장, 고영주 (MBC의 실질적인 주인인) 문화진흥재단 이사장한테 한번 물어보시든지 KBS 이사로 있다가 온갖 핍박을 당한 강규형 명지대 교수한테 물어보는 게 맞겠네요.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권력은 없습니다.> 단언코 이야기하는데 역대 정권 중에서 자유를 가장 폭넓게 보장한 정권은 노태우 정권과 이명박 정권입니다. 그때 비해서 지금은 많이 후퇴했습니다.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다시 높아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라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 문재인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는 KBS·MBC·SBS·JTBC를 필두로 하는 친문(親文) 선동언론 때문입니다. 조선일보 때문이 아닙니다. 사돈 남 말 하듯이 하고 있습니다.
언론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첫째, 언론 자유에 대한 도전입니다. … 정치권력 외에도 언론자본과 광고자본, 사회적 편견, 국민을 나누는 진영논리, 속보 경쟁 등 기자의 양심과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는 요인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여기 꼭 들어가야 할 게 안 들어갔네요. 정부 편에 선 이른바 NGO들의 활동, 친문 직계세력의 활동, 그리고 이번에 드루킹 사건에서 나타났듯이 문재인 친위세력의 여론조작. 이게 다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겁니다. 드루킹에 의한 희대의 선거여론 조작이 있었잖아요. 언론 자유라는 것은 사실의 유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불량품을 유통하면 안 됩니다. 거짓말을 유통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한 1억 건의 기사에 대한 댓글 조작을 해서 선거 여론을 오도(誤導)한 것이 누굽니까? 문재인 대통령 직속 부하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언론 자유에 대해서 이렇게 논할 수가 있습니까? 반성 없이.
<국민을 나누는 진영논리>가 언론 자유에 대한 도전이라고 했는데, 옳지 않습니다. ‘국민을 분열시키는 문재인 대통령’이죠. 문재인 대통령은 계급적인 이념적 확신을 가지고 우리 편이냐 상대편이냐로 나누고, ‘사람이 먼저다’라고 하지만 그 말은 ‘우리 사람 먼저다’ 이거 아닙니까?
<국민을 나누는 진영논리>라고 하면 좌우를 같이 욕하는데 보수 자유진영 사람들은 언론 자유를 해친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 진영논리의 화신(化身)이 문재인 대통령 아닙니까? 취임한 이후에 지금까지 보수적 시각을 가진 사람 단 한 사람이라도 만난 적이 있습니까? 청와대에 초청해서. 진영논리의 화신이 ‘진영논리가 언론 자유를 위협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장의 사진, 한 줄의 기사에 담긴 신문인의 양심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 촛불혁명 역시 우리 신문들의 보도를 통해 가장 평화롭고 민주적인 혁명으로 전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거짓말입니다. 촛불‘혁명’이 어디 있습니까? 법치 국가에서 혁명이라뇨? 촛불‘시위’가 있었지 어떻게 촛불혁명이 있었습니까? 혁명은 정권을 바꾸는 게 아니라 체제를 바꾸는 겁니다. 촛불혁명으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인민민주주의로 바뀌었습니까? 촛불혁명이라고 하는 거 보니까 앞으로 그렇게 할 작정인 모양인데, 그것은 성공한 다음에 그렇게 하세요. 지금은 촛불혁명 아닙니다. 촛불시위로 탄핵이 되고 그 다음에 합헌적 절차에 의해서, 선거를 통해서 집권한 사람이 자꾸 촛불혁명으로 집권했다고 하는데 이게 바로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겁니다.
‘앞으로 혁명적으로 나라를 끌고 갈 것 같으니까 우리 언론도 알아서 사실이 아니더라도 또는 사실이더라도 촛불혁명 정신에 맞게 보도를 하라’ 이것은 완전히 계급주의적 언론관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념은 계급투쟁론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는데, 계급투쟁론을 가지면 사실도 법도 과학도 오로지 혁명을 위해서 봉사하는 도구로 전락시켜 버립니다.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혁명 성공에 기여한다면 사실보다는 거짓말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보도를 통해 가장 평화롭고 민주적인 혁명으로 전세계에 알려졌습니다> 그렇게 알려졌습니까? 저는 금시초문(今始初聞)인데요? 캔들 레볼루션(Candle Revolution)이라고 하면 외국 사람들이 코웃음 치지…. 전세계에 알려졌다니요? 뉴욕타임스에 그렇게 나왔습니까?
<나날이 발전하는 정보통신 환경은 정보의 유통속도를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여주었지만, 동시에 허위정보와 가짜뉴스를 빠르게 확산시키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가짜뉴스를 그동안 가장 많이 만든 세력이 문재인 정권과 문재인 지지세력이죠. ‘김정은이 핵폐기의 전략적 결단을 했다’ 거짓말 아닙니까? “김정은이 핵폐기를 결심했다”고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그 순간에도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계속 돌렸다고 우리 국정원이 보고했지 않습니까? 국민을 속인 것 아닙니까? ‘비핵화 사기극’ 이게 가짜뉴스 아닙니까?
가짜뉴스의 가장 많은 생산지는 청와대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었어요. 작년 10월에 ‘교황이 금명 간에 방북(北)할 것’이라는 가짜뉴스를 만들어낸 원산지가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와 선동방송 아닙니까? ‘촛불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계엄령을 기무사가 준비했다’고 한 것, 거짓말로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이런 이야기가 어디서 나왔습니까? 청와대에서 나온 것 아닙니까? 문재인 대통령에게서 나온 것 아닙니까?
‘기무사의 세월호 유족 사찰은 있을 수 없는 구시대적인 불법 일탈행위’라고 했는데 사찰이 아니었잖아요. 그냥 정보수집이었잖아요. 문재인 대통령의 직속 송영무 국방장관 시절에 국방부에서 만든 보고서 ‘광주사태 때 헬기사격이 있었다’ 거짓말이잖아요? 페이크뉴스의 원산지는 문재인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짜뉴스를 통탄하고 있습니다.
<셋째, 공정에 대한 도전입니다.>
문재인 정권은 공정성하고는 담을 쌓은 사람들입니다. 원래 계급투쟁론이라는 것은 공정성하고는 아무 관계 없습니다. 계급투쟁론은 ‘세상을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눠 가지고 법도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에 대해서 각각 다르게 적용해야 된다’하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언론도 혁명의 수단이다. 사실 보도가 중요하지 않다’ 공정성 날아가고 없습니다. 지금 KBS가 공정합니까? 국영방송 KBS, 정부 입김이 세게 먹히는 MBC가 공정한 방송입니까? 공정성을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양심의 자유는 언론 자유의 토대입니다. 신문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언론인으로서 양심의 자유를 누릴 때, 신문도 본연의 사명을 다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도 공허하게 들리는데 최근에 더불어민주당의 대변인이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라고 제목을 단 기자를 향해서 ‘외신의 외피를 쓰고 자국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매국 행위’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국제언론기관까지 들고 일어나서 사과하라고 하고 대통령에게도 주의를 주라고 논평을 했습니다. 이것은 언론의 자유 이전에 한 인간의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 위반입니다. 한국인은 외국 통신사에 근무하면 안 되고, 외국 통신사에 근무할 때는 아무리 대통령이 나쁜 짓을 해도 비판하면 안 된다?
<언론인으로서 양심의 자유를 누릴 때>라고 했으니까 성의를 표하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그런 논평을 낸, 더군다나 ‘검은 머리의 외신 기자’라는 아주 인종적 표현을 한 민주당 대변인을 질책해야 합니다.
언론 자유. 이 지구상에서 정부라는 명칭을 가진 국가치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말을 안 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심지어 북한도, 과거 소련도 언론의 자유를 이야기합니다.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해놓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이 유명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소련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한다. 프리덤 오브 스피치(Freedom of speech). 그러나 미국은 프리덤 애프터 스피치(Freedom after speech)를 보장한다. 즉 무슨 말을 한 뒤라도 자유롭다. 광장에 서서 ‘레이건 대통령 타도하자’고 해도 집으로 돌아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그러나 크렘린 광장 앞에서, 아니면 평양 광장 앞에서 ‘독재자 타도하자’고 한 뒤에 자유가 있느냐? 프리덤 오브 스피치가 중요한 게 아니라 프리덤 애프터 스피치가 중요하다.”
지금 외국에서는 한국은 OECD 국가 중 처음으로 기사를 빌미로 해서 변희재 기자를 구속시킨, 그런 나라로 꼽히고 있습니다.
언론 자유는 모든 자유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이 언론 자유와 연동되어있는 게 법치(法治)입니다. 삼권분립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감히 ‘나는 사법부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하는 대통령’이라고는 말 못 하겠지요. 사법부의 독립이 아니라 사법부를 대통령의 부하기관, 대법원장을 대통령의 수행원 정도로 취급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당 정치인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고 해서 여당이 들고 일어나고, 여당과 합세한 집단 행동가들이 ‘성창호 판사를 구속하라’는 시위를 하고 겁박을 해도 문재인 대통령은 한 마디도 안 했잖아요? 그러면 ‘삼권분립을 존중할 생각이 없다. 법치까지도 사법부까지도 촛불혁명의 도구로 만들겠다’는 게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언론의 자유는 유지될 수 없어요. 삼권분립이 있어야 그 안에서 언론 자유가 허용되는 겁니다. 법치 파괴하면서 어떻게 언론 자유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유감천만입니다.
정리/ 李知映(조갑제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