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에 대한 단상
아광(阿光) 고광록
우리 집은 감나무가 많아서
곶감을 참 많이 했습니다.
곶감은 막대기에 꿰어서 말리는 것과
새끼줄에 메달아서 말리는 두 종류가 있지요.
새끼줄에 말리자면 감을 딸 때
가지가 있는 채로 따야하고,
새끼줄에 일일이
한 개씩 메달아야 하기 때문에
노력이 두 배나 들지만 대신 가격이 2배 이상이지요.
따라서 감을 딸 때 힘닿는데 까지
가지 채로 따다가,
나중에는 밑에 짚을 깔고 그냥 나무
채 흔들어서 털지요.
깎을 때에도 가지가 붙어 있는 것이 깎기가 힘들고,
접을 때도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답니다.
꼬챙이에 꿰지 않고 납작하게 눌러 말린 감을 준시(蹲柹),
껍질을 벗기고 나무 꼬챙이에 꿰어서 말린 감을 백시(白柹)라고 했지요.
감을 깎을 때는 온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며칠동안 밤새도록 깎는데
(후에는 감 깍는 기계도 나왔지만...
그래도 손으로 깎는 것보다 못하지요)
특별한 품삯은 없고...
밤새도록 깎은 감 껍질이 품삯입니다.
그래서 껍질을 두껍게 깎으면 아무래도 감 껍질이 맛있으니까
어떤 분들은 유난히 껍질을 두껍게 깎아서 눈총을 받던 기억도 있지요.
감을 깎으면 다음으로 10개씩 나무에 꿰어서
덕장 같은 것을 설치하여 긴 새끼줄에 막대기를 꿰서 말리고...
위에서 본 백시(白柹) 같은 경우는
새끼줄에 한 개씩 꿰어서 처마 밑에 건답니다
그렇게 해서 적당히 마른 상태가 되면
말랑말랑한 게 정말 맛있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그 상태의 곶감을 빼먹지 못하도록
백시(白柹) 같은 경우 20개씩 정확히 세어서 말리고,
가끔 점검을 하였지요.
그러면 우리들은 일일히 세어서 그 중에 20개를 초과한 것이 있으면
(틀림없이 있었습니다~)
빼내 먹는 재미가 쏠쏠했지요.
그리고 다 말리면 딱딱한 상태가 되는데...
곶감을 접기 위하여는 주물러서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곶감 접는게 끝나면 리어카에 싣고,
강릉 시내 성남동 곶감전에 가서 팔았는데...
리어카 끌고 시장에 가면서,
아는 사람 만날까 봐 고개를 푸욱 숙이고 가던 기억도 납니다. ㅎㅎ
강릉의 한 선비가 과거 길에 오르면서 곶감 한 접(100개)을 지고 대관령을 올랐는데,
굽이 하나를 돌 때마다 곶감 하나씩 빼 먹으며 고갯길을 올랐답니다.
그가 정상에 도달하고 보니 곶감이 달랑 한 개만 남게 되어
대관령이 아흔아홉 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지요.
대관령 고갯길이 굽이가 하도 많아 생긴 전설로 생각되는데...
실제로도 대관령을 넘어가는 영동고속도로(1975년 개통/지금은 국도)는
대관령 정상에서 강릉시 성산면 성산초등학교 입구 삼거리 까지 정확히 아흔아홉굽이 입니다.
색색으로 곱게 물들 올 가을 대관령 구 도로의 정취를 한 번 느껴보세요~!
첫댓글 배울게 많습니다 ㅎ
"고손자 한테서도 배운다"니
평생교육인가 봅니다~~ㅎ
나보다 한 두어살 더 많은 분인데
강릉에 감나무를 하나 사서 털다가 떨어저 허리를 다쳤는데
한번도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하늘 나라로 갔지요
동내 사람들은
그사람 제사에는 감을 올려 놓이 않을 거란 우스게 소리도 했답니다.
저도 사천으로 시집간 동창 친구가 있어서 예전에 감나무를 사서 많이 털어 왔네요
"감나무 살 데 없냐"기에
감나무 파가는 줄 알았지요~~ㅎㅎ
하나씩 빼먹다가ㅎㅎㅎ
저희집도 감나무가 아주 많았는데요.
추워지면 안방에서 하나하나 곶감을 접던 할매 생각이 나네요.
옛생각도 나고 좋으네요^^
떨어져서 깨진 거
감말랭이 만들 때
제일 신났지요~~ㅎㅎㅎ
감이 없는 홍천이 고향이라 감에 대한 추억이 없네요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곶감 접는다"는 말도
생소하실 듯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