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 우리를 막진 못합니다.
경북대학교 박물관
느낌 좋다. 옷주름 사실적. 오른팔과 몸 사이 뚫기 어려움. 머리가 떨어진 것은 조선시대 불교 탄압 때문. 오구라 컬렉션인 듯하고, 경주에서 가져오지 않았을까
야외 불상들의 자세한 사진은 라호르님의 글을 둘러 보십시오.
경북대학교박물관 옥외전시 석불군 - 2024. 1. 20.
보물. 광배 화려, 옷주름 조각 도식적. 밖에 있는 불상보다 사실성이 떨어져 시대 하강. 대좌 크기와 불상이 맞지 않다. 별개 추정. 대개 좌상은 무릎 폭이 대좌와 거의 같음. 여기는 좁음. 석굴암 대좌와 불상 높이 비율 1:2. 9세기 중반되면 1:1.
광배. 8세기 단순, 화려하면 9세기. 9세기는 변화의 시기.
미륵불일 확률 높음. 대좌 있는 마애불이라 의미 심장.
2007년 전후 문화재 명칭이 부도에서 승탑으로 이름 바뀜. 지난번 본 여주 고달사지 승탑과 유사. 중대석에 용, 구름과 가운데 귀부가 있음. 이 부도와 더불어 셋뿐. 하대석 사각형. 여주 보물 승탑도.
총독부 기록에 거돈사지에서 왔다는 기록이 있기도. 그쪽에서 가져온 것으로.
중앙 용 머리가 퇴화된 모습. 국보탑은 앞을 보고 이 탑도. 보물탑은 옆을 봄.
탑 들었으니 북방 다문천. 지신의 손바닥 위에 서 있음. 밑 애들이 위를 보고 있으며 사천왕은 삼산관 쓰고 있어 도발비사문천(兜跋毘沙門天). 보덕사 석등에. 네즈미술관 마당 승탑에도. 중일에 단독 신앙도 있음.
일본 나라박물관 중요문화재 도발비사문천 입상
하단 사자, 그 위에 운룡. 바뀌는 경우도. 구름 안에 용 숨어 있음. 중대석 주악천인. 문비 용인지 사자인지. 용이라 하고. 뒤 새 같다. 봉황.
굉장히 중요. 비슷한 구성의 불상이 불국사박물관에도 있음. 가운데 비로자나불로 보임. 좌협시 문수 우협시 보현. 보현보살상이 코끼리 앞에 있음. 불에 타고 식으면서 터짐. 중대석 구름 속에 사자 얼굴이 삐죽 나와 있었을 것. 동화사 비로암, 괴산 각연사, 성주 금봉리, 영주 비로사 앞 중대석에서도 보임. 이 구성이 한송사지에도. 춘천박물관, 오죽헌박물관으로 갈려 이별 중.
경주박물관에도 석조. 그것보다 후대. 78호가 83호보다 고식. 사실적이라.
왼쪽 다리의 족좌는 상과 붙어 있는 게 보통. 오른발 내려올 때 쓸 족좌를 두기도 한다. 이천 장암리 마애불에. 이천박물관 탁본에 나옴. 이 족좌도 그러지 않을까.
상체가 남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신라 탑. 상층기단 면석에 안상 크게. 칠곡 기성동. 범어사에도. 835년. 경주 승소곡 탑은 탑신에도. 무장사지. 이 변화는 9세기. 창녕 술정리 서탑도
안상 중 확인 가능 가장 오래된 것은 성덕왕릉 상석, 730년 전후. 가운데 뾰족. 그것과 유사하다고 무장사지 탑을 그 시기까지 올린 논문이 있기도.
노반에 안상이 새겨짐. 노반을 상륜부의 기반으로 보고 상다리를 새긴 것. 예천 개심사지, 영주동 석불 앞 탑에 둘.
연화문 받침은 고려 이후 나타남. 구례 논곡리 탑과 영천 정각리 탑 등에.
송림사로 갔습니다. 참배부터 하란 말씀을 참배하고 나온다는 말로 듣고 대웅전 옆을 바라보고 비를 들으며 앉아 있던 이들이 꽤 있었습니다. 김환대님이 일어나 들어가고도 시간이 좀 지나고. 흠, 저는 추리님 옆에서 끝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별이 잠드는 바다님 말씀을 거의 못 들었습니다. 화자 혹은 청자 누구라도 댓글로 말씀 남겨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주 큰, 목조 석가여래삼존상이 있다. 조각승은 도우(道祐). 그는 17세기에 가장 크게 활동한 유파인 무염파(無染派)의 계승자. 그런데, 그가 남긴 이 불상은 희장파(熙藏派)의 작풍이 현저하게 드러남. 도우와 함께 작업에 참여한 조각승들은 희장파에 속하였거나 희장파와 연관이 있는 조각승들이 많았고, 무염파 출신의 조각승들은 거의 참여하지 않았음. 협업의 증거, 혹은 특이한 도우.
이 집은 크다. 기둥이 일반 건물의 기둥보다 두 자 이상 높다. 불단이 앞쪽에 와 있다. 임란 이전 조선전기 양식. 공포에 교두와 쇠서 없고, 무자방 밑에 신방목 있다. 마루가 높아 신방목이 붕 떠 있다. 팔작지붕을 맞배지붕으로 고치면서 기둥 올린 것.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전탑 가운데 원형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다. 찰주도 고스란히 남음. 본래 나무였는데, 최근에 철로 감싼 것.
승호스님 작품. 우협시가 지장보살. 경주불석치고 크다. 석조니 부챗살 옷주름이 많이 나오지 못한다. 목조와 달리 배가 부르게 조성될 수밖에 없다. 본존은 소매를 걷은 모습으로 조성.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가? 시대가 문제. 대구시의 결론은 가치가 없다. 총 39구 새겨짐. 선각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 많다. 문화재 조사 나왔을 때, 주민이 자기 웃대에 배 타고 넘어가서 조각 새기는 것을 봤다고 증언. 그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여 근현대작으로 결정된 듯. 구미에도 그런 예가 있다고 함.
위덕대 연구진은 7세기까지 올려본다고. 반가사유상 3분 있음.
중앙 본존은 두꺼운 옷주름과 시무외 여원인의 수인 등 삼국시대의 모습이 충분함.
9층탑도 의미심장.
복장이 나옴. 1655년 조성, 1762 중수. 도우 작품. 전국에 용연사가 많으나, 용연사 하면 이 절. 용연사 하면 금강계단. 서산대사가 가져온 진진사리 모심.
후불단 등 건물의 벽화가 19세기 것. 《석씨원류응화사적》 (釋氏源流應化事蹟)에 들어 있는 내용.
보일러님의 옛글에 상세합니다. 스크랩 대구 달성 비슬산 용연사 벽화
통도사 부도원에 있는 <逍遙門人友雲堂眞熙大師碑>에 10개의 분사리탑이 기록돼 있음. 통도사, 용천사, 표충사, 범어사에 현존. 경주 원원사지, 울산 청송사지와 운흥사지와 이 부도는 추정.
대숙? 큰삼촌? 희한한 이름이구나, 재밌네 하다가 '숙'자 옆 물 수 변 발견. 아 크게 맑은 분이었나 보다.
역대급 졸전의 국대 축구 경기를 보며, 각 방에서 첫 날은 잠들었습니다.
첫댓글 야외 석조물 들이 비에 젖으니 더 또렷합니다.
좋은 사진 잘 보았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역시 또르님은 기록의 달인입니다..
기억이 어려우니 기록이라도^^
용대가리는 용머리로 순화
넵
사진과 함께 메모를 열심히 하시더니... 덕분에 이렇게 기억을 되살려봅니다. 넘넘 감사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또르님!! 반가웠어요.^^
답사에서 만나니 엄청 반가웠습니다. 자주 뵈어요.
혹 동화사 마애불 탁본 정면사진 있으신가요?
@수도(구 재무수선공) 이게 최선입니다..ㅠㅠ
@아란두 감사합니다
이미 또르님 글에 있는걸 못보았습니다
@수도(구 재무수선공) 우와! 신기합니다..또르님이 글을 바로바로 수정해주시네요. ㅎㅎㅎ 또르님 최고!!!
다양한 재능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우리 카페인 데..
또르님은 또 다른 색다른 재능을 가진 듯..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식견이 없으니 열심히 받아 적어야지요. 별잠바님 말씀도 열심히 주입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들어도 까먹어 버리는 걸 잘 기록해서 보여 주시는 님께 감사요 그곳에 없어도 느껴집니다
제 첫 정기 답사지가 영양이었지요. 특별히 생생합니다. 꼭 뵙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첫날사진이 다 삭제되어
답답햇는데,설명까지 상세히
올려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2탄,3탄,,,도 기대합니다
열심히 마무리하겠습니다. 완주에서 뵈어요~
상세한 기록, 감사합니다.
모두 잊었는데
기록의 달인이십니다.
상세한 사진, 정말 감사합니다. 자주 올려 주십시오.
네, 접수합니다. 수치에 약한지라 머리에 들어갈지는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또르님 기록 결과물의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
별말씀을요, 완주에서 뵈어요~
대단하십니다
궂은 일에 피곤하셨을털데 당일에 정리하는 열의를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기차에서 하고는 집에 오니 이것저것에 치여 잇지를 못하고 있어 부끄럽습니다.
도동서원의 해설사가 이렇게 돌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처음본다고
놀라워 하던데 돌을 드는것도(?) 잘하는줄은 몰랐을 겁니다 *~*
복습 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윤스리스리님이 장사로 등극했습니다.
저도 쓰면서 복습이 됩니다. 뭐 금방 까먹겠지만요^^
용연사 극락전 벽화
- 손오공변화령헌관음도 孫悟空變化鈴獻觀音圖(서유기 68~71회)
오호 서유기 그림도 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