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엔지니어링
인류 문명 지탱하는 팔방미인
길고 긴 기간 동안 꾸준히 문명을 발달시켜 오던 인류가 급격하게 발전을 이루기 시작한 것은 철을 만들고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인류는 100개 이상의 원소를 발견해 주기율표를 채워 왔지만, 그 수많은 재료 중에서 철 이외에 농기구나 칼로 사용될 수 있는 재료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철이 도구로 사용되기에 그만큼 우수한 성질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무기나 간단한 모양의 도구에 사용되기 시작한 철은 철을 다루는 기술을 갖고 있는 집단에게 강력한 경제력과 힘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철 가공 기술의 발달에 따라서 점차로 철이 사용되는 분야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인류의 문명 발달사는 철이 사용되는 분야가 넓어지는 과정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무한한 최적의 자원, 철_ 현대에 우리가 사용하거나 이용하는 물건을 들여다보면, 아무리 복잡한 물건이라 해도 대부분 철로 만들어져 있거나 철이 들어 있다. 이렇게 철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이유는 철이 우수한 성질을 가졌을 뿐 아니라 가공도 쉽기 때문이다.
철이 도구로 사용되기에 적당하다는 것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류에게는 큰 행운이다. 그 이유는 철이 지구상에서 충분하게 얻을 수 있는 자원이기 때문이다. 인구의 급격한 팽창과 개인 소비의 증가에 따라 인류는 모든 종류의 자원 고갈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인류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재료인 철의 자원(철광석)은 현재까지 파악된 매장량만으로도 앞으로 수백 년 동안 고갈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브라질의 현재 매장량만으로도 인류가 100년은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이다. 또한 한 번 사용되었던 철을 회수하여 다시 가공할 수 있기 때문에 철은 거의 무한한 자원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지구는 훨씬 더 많은 철을 갖고 있다. 아니, 약간만 과장하자면 지구 자체가 철로 이루어져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내핵이나 외핵의 구성 성분이 대부분 철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은 지구의 핵을 구성하는 재료를 이용하는 기술이 없기 때문에 이것을 실제적인 자원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인류가 자원으로 사용하는 철은 지구가 생성되던 시기에 지구의 주요한 구성 성분인 철과 산소의 화학반응으로 만들어진 산화철이다. 지구의 주성분이 철이기 때문에 산화철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이치다.
전지 사용 시간 늘인 숨은 공신_ 사실, 지표의 양이 막대하기 때문에 ‘지표의 1%’라 해도 대단히 많은 양이다. 따라서 철이 아닌 다른 재료들도 매장량으로 보면 모두 산업의 기본 재료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 하나 더 고려해야 할 변수는 광석이 대부분 산화금속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실제 인류가 사용하기 위해서는 산화금속에서 산소를 떼어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철 이외에 지각에 많은 다른 원소들의 산화물은 산소와의 결합력이 너무 세기 때문에 산소를 제거하기 위해서 철에 비해 매우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물론 철을 얻기 위해서도 적지 않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철이 성질이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철기 문화보다 청동기 문화가 먼저 출현했던 것은 철을 얻기 위한 온도(최소한 1300℃)가 청동기를 구성하는 재료들을 얻을 수 있는 온도(600~900℃)보다 훨씬 높아, 고온을 다루는 기술이 미약하던 시기에는 인공적으로 철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청동기를 구성하는 재료들 같이 철보다 낮은 온도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자연계에서 철보다 적은 에너지로 얻을 수 있는 금속들은 대부분 매장량도 적고 강도가 약하기 때문에 산업의 기본 재료로 사용될 수 없다.
소규모 대장간에서 생산된 철을 기반으로 발전해 오던 인류는 18세기 후반부에 철의 대량 생산에 성공하면서 산업 혁명을 맞이한다. 대량 생산된 철은 각종 기계, 운송 수단, 그리고 건축물 등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각 분야에서 철의 우수한 특성을 활용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급속하게 산업의 발전이 이루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돌이나 나무가 주재료였던 건축물은 철을 사용함으로써 높이나 크기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 교량을 예로 들어보자. 1779년 철을 사용한 최초의 다리인 아이언 브리지가 세워지기 전까지는 교각의 수도 제한적이었고, 다리가 세워질 수 있는 폭도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철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교량의 건설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1920년대에 세워진 샌프란시스코의 골든게이트 브리지(금문교)는 주기둥 사이의 간격이 1300m에 달하는 현수교로, 강철 기술 발전의 상징이 되었다. 그 후 철의 강도가 향상됨에 따라서 교각 간격이 긴 다리들이 계속 건설되고 있다.
철로 된 기념비적인 건축물로는 1889년에 세워진 유명한 파리의 에펠탑이 있다. 이 탑은 강철 이전의 재료인 연철로 만들어진 것으로, 건축물의 주재료가 철로 변화했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고강도의 강철을 사용한 초고층 건축물들이 계속 세워지고 있다. 이렇게 다리의 장대화나 건축물의 고층화 등은 건축 기술의 발달보다도 건축 재료인 철강의 성질 향상에 더 크게 의존한다.
수송 수단인 자동차나 선박의 발전도 모두 철 재료의 적용과 성질 개선에 크게 힘입은 것이 사실이다. 대량 생산이 가능한 철 재료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현재와 같은 자동차의 대량 생산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자동차의 안전성 향상, 성능 향상 등의 상당 부분도 철 재료의 성능 개선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범선에서 시작해서 현재와 같은 대규모 운송선, 유조선, 대형 관광선이나 항공 모함, 그리고 잠수함 등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철의 성능 향상에 따른 것이다.
각종 기계나 전기 제품의 주요 내부 부분도 대부분 철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른 재료가 사용되었던 부분들도 점차 철로 대치되고 있다. 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이 대부분이었던 음료수 등의 용기가 최근에는 철제(스틸캔)로 대체되고 있고, 대부분의 주방용품의 주재료가 녹슬지 않는 스테인리스강으로 대체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철은 기계공업뿐만 아니라 전자공업의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미니 카세트나 MP3 플레이어를 생각해 보자. 시간이 갈수록 전지를 사용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이것은 전지의 용량 증가에도 일정 정도의 영향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카세트의 핵심 역할을 하는 모터의 철심에 사용되는 전기 강판의 성능이 향상되어 모터의 효율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철은 디스플레이의 향상에도 한몫 하고 있다. TV 브라운관 크기가 계속 커지면서도 선명한 화면을 보여주는 까닭은 인바(invar)라고 하는 열에 의한 변형이 거의 없는 고성능 합금 덕분이다. 브라운관에는 전자총에서 나온 빛이 서로 간섭 없이 형광판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섀도 마스크(shadow mask)가 있다. 이 섀도 마스크는 열을 많이 받으면 변형되므로 색상이나 선명도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인바 합금을 사용한 마스크는 온도가 올라가도 원래 모양을 유지하기 때문에 선명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의 원천_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산업 발달의 기초가 되는 철강 산업은 크게 철 제조 산업, 철 가공 산업 그리고 철 제품 산업으로 나눌 수 있다.
철 제조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하나는 철광석에서 산소를 제거해 철을 만드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철과 석탄을 같이 가열함으로써 탄소를 사용해서 산화철을 철로 환원시킨다. 초기에는 이렇게 만들어진 철이 바로 사용되었지만, 최근에는 환원된 철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정련 공정을 거침으로써 더 우수한 성질의 철강을 생산하고 있다.
다른 방법은 고철을 녹여서 재사용하는 방법이다. 즉 전기 에너지를 사용해서 고철을 전기로에서 융해하고, 융해된 철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거나 성분을 조절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철강을 생산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철광석을 사용해서 제조하는 철이 전체 철 생산량의 반이 넘는 수준이지만, 점차 고철을 융해해서 제조하는 철의 양이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제조된 철은 철 가공 산업에서 압연 공정을 거쳐서 판재나 선재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중간재로 만들어진다. 가공 산업에서는 각종 표면 처리를 통해 철의 내식성을 향상시켜 극한 조건에서 철이 견디도록 만들기도 하며, 표면에 각종 무늬를 만들어서 건축 내장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가공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1인당 철 소비량이 세계 최대에 이를 정도로 철 제조 산업이나 가공 산업이 발달해 있고 국제 경쟁력을 갖고 있다. 또한 철 제조 산업과 철 가공 산업은 우리나라 산업의 중심 부분인 여러 철 제품 산업의 경쟁력의 원천이 되어 왔다. 세계 제일의 생산 능력을 보이는 조선 산업이나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자동차 산업은 모두 국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철 산업의 뒷받침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무궁무진한 개선 가능해_ 앞으로의 철의 위상에 대해서도 철의 시대가 계속 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앞에서 든 여러 가지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대체 재료를 찾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류 역사와 더불어 발달해 온 철강을 다루는 고도의 기술 수준이 있기 때문에 철이 다른 어느 재료보다도 인류에게는 다루기 쉬운 재료라는 것도 큰 장점이다. 철의 시대가 계속 된다는 것은 앞으로도 철강 재료의 성능 개선이 각 산업 분야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철강 기술의 발전 방향을 살펴보자. 우선은 철강의 고순도화가 계속 진행될 것이다. 현재 철강 내의 불순물들의 농도는 수십ppm(1ppm은 1kg에 1mg의 불순물이 들어 있는 농도) 정도다. 반도체에 사용되는 고순도 실리콘 내에 산소 불순물이 10~20ppm 함유되어 있는 것과 비교하면 거의 반도체 수준에 육박하는 고순도 제품이 얻어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철강 재료의 고순도화는 불순물의 농도가 반도체 수준 또는 그보다 낮은 수준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런 고순도화 기술이 확보되면 철의 가공성이나 성능이 더욱 향상해 새로운 산업 분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철의 시대가 강화된다는 것이 모든 재료가 철로 대체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구상의 각 원소들은 각각의 특징과 장점을 갖고 있으며, 각 재료의 장점과 철의 보편적인 장점이 결합해서 새로운 기능을 갖는 재료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는 합금이다. 철에 니켈과 크롬이 첨가되어 만들어진 녹슬지 않는 철, 바로 스테인리스강은 개발 초기에는 소수만이 사용할 수 있는 아주 값비싼 재료였다. 하지만 이제는 주방용품이나 건축 외장재 등 우리 눈에 가장 잘 띄는 재료가 되었다.
이 외에도 약간의 열만 가해 주면 쉽게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되는 형상 기억합금이나 철선 한 가닥으로 자동차를 들 수 있는 고강도의 비정질 금속 등은 몇 가지 원소들의 합금으로 만들어져서 재료 자체가 특수한 기능을 갖게 된 것들이다. 합금의 세계는 가능한 조합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새로운 기능을 갖는 재료가 나타날지 알 수 없는 미개척지라고 하겠다.
합금이 서로 다른 원소들이 만나서 단일한 상태로 되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미 서로 다른 재료의 모습이 된 상태에서 서로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조합의 형태를 복합 재료라 한다. 건축물에 많이 사용되는 철근 콘크리트와 같은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복합 재료를 구성하는 각 성분의 장점을 살려 줌으로써 한 개의 재료가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구리는 전기 전도도는 좋지만 가격이 비싸고 강도가 약한 특성이 있는 반면에, 철은 전기 전도도가 낮지만 강도가 강한 특성이 있다. 그런데 전류는 대부분 도체의 표면을 따라서 흐르기 때문에, 전선의 내부는 철로 만들고 외부에 구리를 입힌다면 두 개의 장점을 살리는 전선이 된다. 이런 복합 재료는 비단 금속과 금속뿐만 아니라 금속과 세라믹, 고분자와 같이 서로 다른 종류의 재료들 사이에서도 가능하며, 현재 활발한 연구와 새로운 복합 재료의 개발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재활용으로 환경 오염도 적어_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철은 모든 금속 중 거의 유일하게 인체에 해가 없는 재료다. 인류가 가장 많이 접해 온 금속인 철은 지금까지 특별한 유해성이 발견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별다른 유해성이 발견될 확률이 거의 없다.
사실 철은 인체의 중요한 구성 성분의 하나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해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철이 부족하면 인체에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철로 만든 제품들을 사용해서는 인체에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갈수록 환경과 인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의 변화는 철에게 더 많은 가능성을 주고 있다.
환경과 관련하여 철이 가지는 또 다른 장점은 재활용이 쉽다는 것이다. 사실 철 산업이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최초에 산화철을 환원시키는 과정에서 온실 가스로 알려진 이산화탄소(CO2)가 발생하고 이 과정에서 일부 환경 오염 물질(SOx, NOx 등)이 배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에 생산되었던 철을 사용 후 재활용할 수 있다면 이런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철은 재활용이 아주 쉽고, 또 현재에도 잘 되고 있는 재료이다. 특히 철은 자석에 붙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철의 회수나 재처리 과정은 다른 금속에 비해서 매우 간단하다. 또한 회수 과정에서 화학적 처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오염 물질을 배출할 일이 거의 없다. 철은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가장 경쟁력을 갖고 있는 재료이다.
철은 인류 사회의 기본 재료가 될 수 있는 수많은 장점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인류의 문명은 철을 기반으로 발전할 것이다. 우리가 어떠한 미래 사회를 꿈꾸더라도 철 제조와 가공 기술이 뒷받침 되어야만 그러한 꿈이 실현될 수 있다. 철강 산업과 철강 엔지니어들은 꿈의 실현을 선도하는 존재인 셈이다.
철강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서는 금속공학과 또는 재료공학과에서 철강 재료의 제조나 가공을 공부해야 한다. 특히 최근 학부제로 변하면서 재료 관련 학과들이 통합되는 경향이 있으니, 이럴 경우 학부 이름에 ‘재료’ 또는 ‘소재’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학부로 진학해야 한다. 이들 학부에는 철강 엔지니어의 꿈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교과목들이 개설되어 있다.
철강 엔지니어는 다른 공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관련 분야의 산업체, 연구소 그리고 학계로 진출할 수 있다. 철강 엔지니어를 우선적으로 필요로 하는 산업체는 철강의 제조나 가공을 담당하는 전문 철강 업체다. 또 철을 가공해 최종 제품을 만드는 조선, 자동차, 중공업, 가전 등 대부분의 기업체에서도 많은 철강 엔지니어를 필요로 하고 있다.
_ 이경우·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P r o f I l e _
이경우 교수는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전기 기초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현재 서울대 재료공학부 부교수로 있다. 녹아 있는 금속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에 관심이 있으며, 특히 철강의 2차 정련 과정에서 철의 고순도 정제에 대한 연구와 쵸크랄스키(Czochralski) 시스템에서 규소(Si) 단결정 성장 과정의 결정 결함 제어와 산소량 변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