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 페터 한트케 / 안장혁 옮김(8)
나는 44번 가를 따라 내려갔다. "거리 위쪽으로!" 나는 방향을 틀어 반대편 방향으로 걸어갔다. 브로드웨이 쪽으로 가야 했다. 하지만 아메리카 애비뉴 5번 애비뉴에 들어섰을 때에야 비로서 내가 실제로는 방향을 틀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저 상상 속에서만 방향을 바꾸었음이 틀림없었다. 그래도 방향 전환을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현기증이 났다. 다시 매디슨 애비뉴를 따라 42번 가까지 걸었다. 그랬다가 또다시 그곳에서 방향을 바꿔 천천히 걸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타임스 스퀘어가 있는 브로드웨이에 다다랐다.
나는 필라델피아 판 <세터데이 이브닝 포스트>를 한 부 사서는 곧장 신문 구독실로 가서 내용들을 샅샅이 훑었다. 유디트에 대한 기사는 없었다. 더 찾아 읽고 싶은 기사가 없어서 신문을 내려놓고는 독일 신문 몇 부를 더 사서 드러그스토어의 바(Bar)로 갔다. 그리고 미국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신문을 읽었다. 그 순간 내가 이미 그 신문을 보스턴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음을 깨달았다. 지금도 기사 내용의 세세한 항목들이 기억나는 걸 봐서는 꼼꼼하게 정독하지는 않았더라도 대충 아무렇게나 읽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조금 전에 걸어왔던 애비뉴들을 다시 지나서 파크 애비뉴로 꺾어 들어갔다. 예전에 누군가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편지로 써 보낼 때면 어떤 강박감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세한 것까지 하나하나 빠뜨리지 않았다. 그래서 받는 이가 전체적인 흐름을 가늠할 수 있게끔 했는데 지금도 바로 그때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를테면 집으로 갈 때도 단순히 "나는 집으로 갔다"라고 말하는 대신 "먼저 신발 밑바닥을 잘 문질러 닦았다. 문손잡이를 아래로 눌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다음 문을 다시 닫았다"라고 하는 식이다. 그리고 또다른 사람에게 편지를 보낼 때는 항상 ("나는 편지를 한 통 썼다"라는 표현 대신에) "순백의 편지지를 책받침 위에 올려놓고 만년필의 뚜껑을 열었다. 여백을 글로 채운 다음 접어서 편지 봉투 안으로 밀어넣었다. 겉봉투에 주소와 이름을 쓰고 그 위에 우표를 붙이고는 편지를 보냈다."라고 썼다. 더욱이 그 당시에 나는 이곳에서 겪었던 온갖 자질구레한 일들까지도 마치 위대한 경험담이라도 되는 듯 구구절절 열거해야 마땅하다고 믿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도 아메리카 애비뉴와 5번 애비뉴 그리고 매디슨 애비뉴를 가로질러 파크 애비뉴를 따라 걷고 있다. 그러다가 59번 가에 다다르자 차양 아래로 들어가 회전문 앞에 섰다. 문이 열리자 나는 텔모니코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호텔 종업원이 사진기를 준비해두었다. 그는 나의 여권도 확인하지 않은 채 사진기를 건네주었다. 일전에 내가 공항에서 산 덩치 큰 플라로이드 카메라였다. 다른 곳에서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샀다. 하얀 종이 띠의 가장자리에 쓰여 있는 숫자를 보니 유디트가 그새 사진을 여러 장 찍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마음에 드는 무언가를 보았을 것이고 그것을 사진으로 간직하길 원했을 것이다. 그것이 내게는 좋은 징조로 다가왔기에 호텔을 빠져나올 때는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졌다.
밝은 날이었다. 바람이 불어 한결 더 화창하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어른댔다. 나는 한참을 거리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하철역 입구 쪽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는 젊은 여자 둘이 벽에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 한 명은 전화기에 대고 뭔가를 이야기했고 다른 한 명은 가끔 몸을 굽히며 귀 뒤로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 두 여자를 보는 순간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는데, 이내 그들의 모습이 내게 활기와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그 때문에 나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매우 흥미롭게 주시했다. 좁은 전화 부스 안에서 문은 발로 밀어 열어둔 상태로 깔깔거리며 웃어대는가 하면 전화기를 움켜쥐고는 수다를 떨어대는 모습이라니. 틈틈이 동전을 하나씩 더 집어넣어가며 재차 전화기 쪽으로 몸을 구부리는 그들 옆으로 지하철역에서 나오는 수증기가 맨홀을 통해 자욱하게 뿜어져나와 아스팔트를 넘어 주변의 골목길로까지 짙게 깔렸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가라앉고 편안해졌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져서 마치 파라다이스같은 상태가 되어 나는 주위를 바라보았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고 또 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인식으로 연결되는 그런 상태 말이다. 나는 4번 애비뉴라고도 불리는 파크 애비뉴로 되돌아와서는 계속 18번 가까지 걸어갔다.
엘진 영화관에서 조니 와이스뮬러 주연의 타잔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야릇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말하자면 머릿속으로 미리 상상은 해보았지만 실생활에서는 금기시되는 무언가를 몰래 훔쳐볼 때의 기분 같은 것이었다. 영화의 영상들은 잊힌 꿈을 되불러왔다. 작은 여객기가 정글 위를 낮게 날았다. 비행기 내부 장면이 이어졌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젖먹이를 데리고 비행기 안에 앉아 있었다. 비행기가 흔들리더니 덜거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요동치지 시작했다. 실제 비행기라면 그렇게 심하게 요동칠 리가 없을 테지만 말이다. 요동치는 상황을 보니 어릴 적 영화를 볼 때 겉터앉았던 극장용 긴 의자가 생각났다. "그들은 나이로비로 여행을 가는 중이었어"하고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도시는 언급되지 않았다. "이제 곧 그들이 추락하는 장면이 나올 거야!" 부모들은 서로를 부등켜안았다. 화면은 다시 비행기의 외부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행기가 회전하며 떨어지다가 원시림으로 추락하는 장면이었다.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아올랐다. 아니다. 연기는 나지 않았고 대신 어두컴컴한 곳에서 기포 같은 것이 뿜어져나왓다. 나중에 그 장소가 나오는 화면을 유심히 보고서야 비로소 그곳이 연못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수면 아래로 칼을 입에 문 타잔의 모습이 보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난 젖먹이 미아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었다. 이 들은 시간적으로 긴 간격을 두고 코로 숨을 내보내면서 꿈꾸는 듯 유유한 동작으로 이리저리 헤엄을 치고 다녔다.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자니 한 올 한 올 가닥을 잡아가는 기억의 흐름 같은 것이 느껴졌다. 어떤 신비스러운 선(先)경험을 통해 예견되었듯이. 그 흐름은 기억의 확고한 심상으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에서 비행기가 산산조각이 나자마자 곧바로 동일한 리듬으로 동요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수영하는 두 사람이 숨을 쉬며 내뱉는 공기 방울도 바로 그 리듬에 맞춰 물속 깊은 곳에서 뿜여져 올라올 것이었다.
그 외의 장면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자리를 뜨지는 않았다. 만화책을 봐도 딱히재미있을 것 같지 않았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여기 오고 나서부터 계속 느끼고 있던 바였다. 한때 만화책을 많이 읽었지만 여러 권 짜리는 읽을 만한 것이 못 되었다. 늘 같은 패턴의 모험적 사건으로 시작해서 잠시 중단했다가 다시 다음 상황으로 이어지는 형식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스누피 만화를 엮어놓은 몇 권의 모음집을 읽고 난 후 밤에 잠을 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꿈들이 죄다 네 개 단위의 영상으로 끊어지고는 다시 네 개 단위의 영상으로 된 새로운 꿈이 이어지는 것이었다. 매 네번째 영상에서는 나의 두 다리가 잘려나간 채 배로 땅 위를 버둥거리며 기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도 이야기는 또다시 시작되었다! 코미디 무성영화도 마찬가지로 더이상 보고 싶지 않다고 나는 생각했다. 서투르고 우수꽝스러운 행동을 찬양하는 것으로는 나를 더이상 만족시킬 수 없었다. 모자가 바람에 도로 공사용 압착롤러 앞까지 날아가버리는 상황이 아니면 거리로 내려가지 않으며, 커피를 치마에 쏟지 않은 한 결코 여자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는 주인공들을 보면 유치하게 떼를 써대면서 인간의 품위라고는 전혀 갖추지 못한 군상들을 대하는 듯했다. 바짝 긴장한 채 안절부절못하며, 보기 민망한 꼴로 자신의 주변 환경까지도 흉하게 만들어버리는가 하면, 사물이든 사람이든 단지 쳐다보기만을 즐겨 하는 작자들 말이다. 이를테면 남의 불행은 고소해하고 조롱하면서도 자신의 일이라면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돌보듯 챙기는 채플린이 그렇고, 몸을 둘둘 말거나 늘 어딘가에 매달리는 버릇이 있던 해리 랭던이 그랬다. 그나마 버스터 키턴만은 특유의 진지하면서도 긴장된 표정으로 향방을 알 수 없는 사건이나 상황 속에서도 나름대로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의 그런 표정을 보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매를린 먼로가 이마를 찌푸린 채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고, 그 옆의 스탠 로럴이 독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영화도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