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산스님과의 편지
선사님께
여기에 의문나는 것 몇 가지를 적습니다.
법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십니까? 만일 제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신다면 이렇게 다시 묻겠습니다. 선이 무엇인가에 대해 가르친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선사님께서 캘리포니아의 밝은 태양을 마음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프로비던스에는 차가운 비만 내리고
있어요. 그래도 돈이 있어 새집을 장만했으니 다행입니다.
곧 뵙게 되길 ….
루시 올림
루시 양에게
안녕하세요? 멋진 그림엽서는 고맙게 받아 보았습니다.
알반, 로저, 보비, 스티븐, 조지, 수지와 닉 모두들 잘 있는지요?
당신의 편지에는 아주 많은 질문이 있더군요. 의심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의심의 대상이 됩니다. 왜 사나요? 왜 죽는가요?
어떻게 보고 , 냄새 맡고, 맛을 봅니까? 왜 해는 동쪽에서 뜨나요? 달은 왜 밤에만 빛나지요? 왜 지구가 태양을 돕니까? 그리고….
그러나 만 가지 질문은 모두 하나로 시작됩니다.
그것은 바로 '이 뭣고?' 입니다. 당신이 보낸 사진에는 어떤 사람이 칼을 쥐고 있는 그림이 있는데, 이것은 왕의 다이아몬드 검입니다. 만일 그 칼로 당신이 모든 생각을 끊어 내면, 만 가지 질문은 다
사라집니다. 그리고 나서 내게 말하세요. 이 다이아몬드 검이 무엇인지 만일 답을 찾게 되면 당신의 삶은 아주 자유롭고, 행동엔 아무런 제약이 없게 됩니다. 만일 그 답을 알아 내지 못하면, 의심의
악마가 당신을 죽여서 지옥으로 떨어뜨릴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놓아 버리세요! 봄이 다 지나가도록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세요.
여기 공안이 있습니다.
"종이 울리면 가사를 입어라."
이게 무슨 뜻입니까? 당신의 눈, 귀, 코, 혀, 몸, 마음은 모두 당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당신의 본래 자성은 이 여섯가지의 감각에는
없습니다. 대신 이 여섯 가지 감각은 당신을 도구로 삼아 씁니다. 그래서 만 가지 질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그러면 깨닫게 됩니다.
여기 시를 하나 적습니다.
무엇이 부처냐?
마삼근이니라.
마른 똥막대기이니라.
난 이런 말들을 알지 못한다.
애기가 발가락을 빨고 있다.
곧 만나길 바라며….
선사님께
뉴헤븐 선원에서 어떤 사람이 제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만일 선사님께서 기적을 행할 수 있다면 왜 그것을 실제 행하지
않나요? 그분이 대보살이라고들 하던데, 이것은 육체적, 심리적인 병을 다 함께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왜 선사님께서는 장님을 눈뜨게 한다거나 미친 이를 만져서 온전한 사람으로 고치는 일 같은, 예수가 했던 일을 하지 않으시나요? 단지 물위로 걷는
기적만이라도 보여 준다면 많은 사람들이 선을 믿을 것이고,
그로 인해 참선도 하고 결국 깨달음까지 얻게 될 텐데요, 그런데도 선사님은 왜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적을 행하지 않으십니까?"
이와 같은 질문에는 어떤 답을 해야 할까요?
무각스님에게
편지 잘 받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기적을 바랍니다.
또 만일 기적을 보면 거기에 너무 집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기적이란 단지 기술일 뿐입니다. 참다운 방법이 못 됩니다. 만일 선사가 기적을 자주 사용한다면 이것을 본 사람들은 그의
어떤 기교에 너무 집착하게 되어 참다운 도리를 배우려 들지 않게 됩니다.
만일 의사가 병자에게 그의 병을 고쳐 주면서 다른 병을 얻게 해
준다면, 그 의사를 훌륭한 의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선사가 물 위를 걷는다면, 사람들이 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그런 이유로 찾아왔다면, 실제로 참선을 한다는 게 너무나 힘이 들고, 지루하고, 너무 평이하기 때문에 싫증을 느끼고 곧 전부 떠나고 말겠지요.
당신은 황벽 선사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겁니다. 그 선사는 다른 승려와 함께 여행을 하다가 강에 다다랐습니다. 그 승려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물위를 걸어 강을 건넌 뒤에 황벽선사에게도 똑 같이 하라고 시켰습니다. 황벽선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내가 저놈이 나한인 줄 알았다면, 강에 닿기 전에 다리를
분질러 놓았을 거다."
눈 밝은 선사는 사람들의 업을 알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가 스스로 지은 업은 네 스스로 원할 때만 소멸시킬 수 있다.
아무도 네가 네 업을 없애도록 만들 수는 없다."
또 부처님께선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내게 좋은 약이 많다. 그러나 너 대신 내가 먹을 수는 없다."
부처님께선 눈이 먼 사람들이나 신체가 불구인 사람들을 위하여
이미 가르침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쉬운 해결책을 원하기 때문에 자기들을 위해 일해 줄 또 다른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아기를 길들이는 방법을 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어머니가 아기를 위해 모든 것을 다한다면 그 아이는 자라서 엄마에게 의지합니다. 훌륭한 어머니는 아이 스스로 자기 일을
하게끔 시킵니다. 그러면 그 아이는 자라서 강하고 자립적인 사람이 됩니다.
한국에는 자기 스스로를 예수라고 칭하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믿지요. 그가 세수하면 사람들은 그 물을 가져가서 약처럼 마십니다. 또 사실 그렇게 하면 그들의 병이 신기하게도 고쳐진답니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마음이 몸의 병을 고친 것입니다. 그들은 이 사람이 기적을 행한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이 그를 믿지 않는다면 그는 전혀 기적을 행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에 빠진 총각, 처녀는 첫번째 입맞춤을 할 때 그들의 입술에서 신기한 느낌을 생기는 것을 경험합니다.
총각의 손이 애인의 몸에 닿게 되면 손가락 끝에 전기가 일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인도에는 이러한 종교지도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는 좋은 가르침이 못 됩니다. 제자들로 하여금 지도자에게 매달리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제자들로서는 어떻게 해야 자기 스스로도 기적을 행하게 되는지를 결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위해 행동하기가 어렵습니다. 기적만으로는 악업을 소멸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기교일 뿐입니다. 예수가 라자로를 무덤에서 일으킨 것으로 무슨 문제가 해결된 바가 있습니까? 라자로는 예전과 똑같이 업을 지닌 채 결국 죽어야 했습니다.
부처님의 십대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목련존자는 큰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목련존자가 명상하는 도중에 카필라
왕국이 곧 전쟁으로 인해 멸망하리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오늘부터 1주일 뒤 오전 11시에
온 나라가 잿더미로 되고 말 것이다."
그는 부처님께로 나아가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다음 주에 나라 안의 많은 백성이 죽음을 당할 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러하다"
"그럼 왜 그들을 구해 주시지 않습니까?"
"나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세존께선 전능한 힘이 있어 기적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그들을 구해 주시지 않는 것입니까?"
그 때 부처님께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받아야 할 업은 없앨 수가 없다."
그러나 목련 존자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반면 그는 부처님께서 자비심이 없다고 생각하니 매우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온 나라를 조그맣게 만들어 바리떼에 집어넣고, 그 바리떼를 평화롭고 고요한 도솔천에다 일 주일 동안 두었습니다. 예정된 시간이 지난 뒤 목련존자는 깊은 안도의 숨을 쉬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아, 이제는 됐구나."
목련존자는 그 바리떼를 다시 땅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니, 조그만 나라는 이미 전쟁을 일으켜 망한 뒤였습니다. 마술이란 단지 기교일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카드로 어떻게 재주를 부리는지 알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슨 마술 같지만 알고 보면 단지 눈속임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 뿐입니다. 우리가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같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의식을 뺏어가서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할 때도 있습니다.
옛날 중국에 도술을 아주 잘 부리는 장수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전쟁 때면 그는 엄청난 수의 천군을 만들어서 하늘로 날아가게
했습니다. 반대편 군대는 겁에 질려서 적군에게 항상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하게 반대편 군대에 현명한 장수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 장수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수는 자기편 병사를 불러모으고 그 앞에 커다란
수정공을 높이 올려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병사들은 이 수정을 뚫어지게 쳐다봐서 잡념이 없도록 마음을
맑게 해야 한다. 그러면 안전하리라. 그러나 만일 주위를 살펴본다거나 잡념을 갖기 시작하면 천군에 의해 반드시 목숨을 잃으리라."
그래서 모든 병사들은 마음을 맑게 해서 마술에 걸려들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곧 천군들이 나타났습니다. 잠시 동안은 허공에 떠 있을 수 있었지만 곧 전부 가랑잎으로 변해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만일 그 누구라도 기적을 행하고자 하면 그 방법을 배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올바른 길이 아닙니다.
눈 밝은 선사는 사람들이 바른 길을 찾는 데에 기적이나 마술이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를 행하지 않습니다. 자기 업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의식을 공(空)하게 만드는 길 밖에 없습니다. 거기에는 기적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대신 거기에는 올바른 견해와 수행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참다운 기적인 것입니다.
선사님께
그간 편지를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러나 저는 쓸 말이 없습니다. 선사님께서 숙제로 내 주신 공안을 알아 낼 만큼 열심히 좌선을 하지 못했습니다. 장난이 아닙니다. 저는 기분이 몹시 상해 있습니다. 제 인생이 무가치하게 느껴집니다. 나름대로 꽤 열심히 수행하려고 노력했지만 너무 나약해서 아무 발전이 없습니다.
전 제 불성에 대해 신념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전 이런 식의편지를 써선 안 되죠. 왜냐 하면 선사님들이 병든 멍텅구리를 치료하는 분은 아닐 테니까요. 헤른 법사님은 자기가 나가 있는 동안 선사님과 서신 왕래를 해 보라고 제게 시켰습니다. 선사님께서는 아주 훌륭한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훌륭한 사람도 참다운 수행자도 못되어서 죄송합니다만, 그래도 선사님께서 제게 도움을 줄 말씀을 있으시다면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헤른 법사님이 떠나신 이후나 또는 스님께 편지를 쓴 이후, 전 아무와도 만나지 않습니다. 제겐 아무 시(詩)도 남아 있지 않고 다만 의심과 분노만 남았습니다. 합장 배례합니다.
스티브 올림.
스티브씨에게
편지는 고맙게 받아 보았습니다. 당신은 올해 내게 무척 많은 편지를 보냈었는데, 그 편지들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방금 내가 받아 본 편지는 아주 놀랄 만큼 멋진 것이더군요. 이것이 참다운 선(禪)편지 입니다. 생각이란 오직 생각일 뿐입니다. 고통 역시 고통일 따름입니다.
만일 당신이 '마음이 깨끗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건 아주 나쁜 생각입니다. 당신이 괴로워할 때는 오직 괴로워할 뿐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당신 편지의 참다운 뜻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편지가 내게 그 진실을 말해 주었습니다. 당신은 견성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생각이 없으면 견성은 불가능합니다.
어느 조사께서 말씀하시길 '마음은 끊임없이 변한다. 변하는 마음 그 자체가 그대로 진리이다. 만일 네가 너의 변하는 마음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 때 너는 너의 참다운 자성을 얻는다.
그 때 너는 선도 악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당신은 무척 기분이 상해 있다고 했죠. 당신이 나쁘게 만들면 나쁜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나쁘게 만들지 않는다면 나쁘지 않습니다. 선도 악도 만들지 말아요. 그러면 모든 것이 좋을 것입니다.
당신은 또 '저는 좋은 사람도, 좋은 참선 수행자도 아닙니다.' 했는데, 당신이 일단 선과악을 이해하면 이미 선과 악이 사라져 버린 뒤입니다. <반야심경>을 한번 더 봉독해 보세요. 그러면 마음이 맑아질 것입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입니까? 당신은 훌륭한
참선 수행자이길 바라고 또 훌륭한 사람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은 생각입니다. 그냥 놓아 버리세요! 내려놓아요! 만일 당신의 마음이 깨끗하지 않다면, 당신은 나무나 하늘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해야만 됩니다. 그러면 나무와 하늘이 당신에게 좋은 답을 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마음을 항상 점검한다면, 그것은 아주 나쁜 것입니다. 마음을 점검하지 말아요. 당신은 자신의 불성에 신념을 갖지 못한다고 하는데 나 역시 나의 불성에 아무런 신념을 갖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는 부처님이나 하느님, 아니 그 어느 것에도 신념을 갖지 않습니다. 만일 당신이 신념이 없다면 철저하게 신념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전혀 그 어느 것도 믿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당신의 마음이 참으로 공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참다운 공은 단지 이름인 것입니다. 이 참다운 공은 생각 이전의 것입니다. 생각 이전이란 여여하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자신의 불성에 신념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아주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이 빨간 색을 보면 빨갛게, 하얀 색을 보면 하얗게 되는 것뿐입니다. 신념이나 신념이 없음도 모두 떠나 보내야 합니다. 사물은 있는 그대로일 뿐입니다.
내 생각에는 당신은 다른 선사를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만일 당신이 이미 스승을 누구로 정할 지에 대해 확고한 결정을
내렸다면, 당신은 만 명을 넘는 선사를 만나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끔씩은 다른 명상 센터를 찾아보는 것도 역시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하는 수행에 마음을 두진 말아야
합니다. 당신에게 시간이 있으면, 필요할 때는 어디든지 가서 참선을 해도 됩니다. 당신은 항상 큰마음을 지녀야만 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뉴 헤이븐에 있는 한 제자에게 내가 쓴 편지의 사본을 몇 통 보내겠습니다. 이 편지들이 당신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자기 수행에 진전이 있나 없나에 대해서나, 자기가
화가 나 있나 아닌가에 대해 걱정을 하면 안 됩니다. 이런 일들은 모두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모두 밝은 달 앞에 잠시 가려진 구름과 같은 것입니다. 당신은 자기 마음에 나타나는 그 어느 것에도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그럴 때 당신은 자유로운 생각을 얻게 됩니다. 집착하지 않는 생각이란 바로 여여함입니다. 나는 당신이 곧 견성을 해서 고통받는 모든 중생을 구제해 주기를 바랍니다.
선사님께
지난번 선사님께서 주신 편지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가족들과 친구들, 특히 부모님께 참선과 저의 수행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하곤 합니다. "삶이란 무엇인가? 또 죽음이란 무엇인가? 삶에 있어서 올바른 일이란 무엇인가?" 그들은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곤 하지만 결코 답을 알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들 말합니다. " 하느님만 아시지."
많은 사람들은 저에게 일체 중생을 고통에서 제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삶은 고통이고,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변화시킬 수는 없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좌선을 하거나 염불을 하거나 절을 하는 일이 다른 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른 이들과는 동떨어진 채 선원에서
항상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그들에게는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일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느끼기에는 인간이란 마땅히 '세상 속으로 나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과 함께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질문에 대한 좋은 답을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선사님의 가르침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스티브에게
멋진 편지를 보내주어 감사합니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십니까?
어떻게 일체 중생을 고통에서 제도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지를 물었더군요. 아주 쉬운 질문입니다.
당신의 친구들과 가족은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들이 바로 그 생각에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합니다. 본래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만든다면, 여러분은 그 무엇인가를 가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 것도
만들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그대로 이미 완전한 것입니다.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삶이란 무엇입니까? 우리의 몸뚱이에는
삶과 죽음이 있지만, 참된 나는 삶과 죽음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참된 나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삶과 죽음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느님만 아시지."
그러나 무엇이 하느님입니까? 그들이 하느님을 압니까?
그런 이들이 어떻게 하느님만이 안다고 합니까? 하느님을 알고
싶다면, 먼저 자기의 참된 나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첫번 째 관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참된 나를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럼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당신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압니까? 만약 모른다면, 모른 채 곧바로 나아갈 뿐입니다. 이 모르는 마음은 모든 생각을 끊어 버리게 하고 나만의 상황, 나만의 조건 나만의
견해를 소멸시키게 합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올바른 상황,
올바른 조건, 올바른 견해가 나타납니다. 얼마나 간단합니까?
어느 조사께서는 "물이 뜨거운지, 차가운지 스스로가 알 수 있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참 나를 아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다음 관문을 일러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생각을 하게 되면, 당신의 마음과 나의 마음은 달라집니다. 당신이 모든 생각을 끊어 버리면, 당신의 마음과 나의 마음 그리고 일체 중생의 마음이 같아집니다. 어느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가 일체이고, 여럿이 하나이다(일즉이체 다즉일)."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이 모든 생각을 끊어
버리면 '나-나의-나를'이라는 것도 없게 됩니다. 그러면 당신은
매 순간 순간 마다 당신의 올바른 상황과 올바른 조건 그리고 올바른 견해를 지닐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이미 세상은 평화롭고, 일체 중생을 제도한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어떻게 하면 모든 생각을 끊어낼 수 있겠습니까?
벌써 내가 당신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입니까?"
만약 모른다면, 모른 채 곧바로 나아갈 뿐입니다.
다음, 어떻게 하면 매 순간 순간마다 모를 뿐인 마음을 지닐 수
있겠습니까?
정진하고, 정진하고, 또 정진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선원에서 매일 함께 절하고, 염불하고, 좌선하고, 일합니다.
때로는 용맹정진도 하고, 기도도 합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가 매
순간 순간마다 하는 수행에 도움이 됩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만일 당신의 마음이 맑지 않다면, 당신의 생각들을 버리세요. 오직 모를 뿐이지요. 점차로 당신의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사로잡힌 생각들이 사라지고, 당신의 모를 뿐인 마음은 더욱 강해지고 맑아지게 될 것입니다.
좌선을 할 때에는 좌선만 하십시오. 염불을 할 때에는 염불만 하십시오. 절을 할 때에는 절만 하십시오. 이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렇게 수행해 나가면, 다른 이들을 가르칠 때 그저 가르치게만
됩니다. 가르칠 뿐인 것입니다. 도울 뿐입니다. 그들이 이해하든
그렇지 않든 걱정하지 말고, 오직 전력을 다할 뿐입니다. 그들이
이해하든 그렇지 않든 걱정하지 말고, 오직 전력을 다할 뿐입니다.
당신이 100퍼센트 전력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면 당신의 가르침은 완벽한 것이고, 당신의 마음의 빛을 그들에게 비칠 것입니다.
언젠가는 그들이 이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노력을 계속하세요. 노력은 선사보다 훌륭한 것이며, 부처님보다도 신보다도 낫습니다. 그것은 이미 대자대비이며 보살도입니다.
당신의 감정을 단속하려고 하지 말고, 마음을 되돌아보려고 하지 마세요. 그러면 안도 없고 밖도 없고, 나도 없고 너도 없고 그들도 없게 됩니다. 당신은 당신의 주위상황과 일체가 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오직 모르는 마음으로 앞으로 곧장 나아가기만 해서 허공처럼 맑은 마음으로 깨달음을 얻어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를 빕니다.
존경하는 숭산선사님.
선사님께서는 아마 저를 모르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사님을
몇 번 뵙지 못했거든요. 지난 여름에 선사님의 기도법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누군지 모르시더라도 저에게 무언가 조언을 주셨으면 하고 바랍니다.
지난달 제 여동생 팸이 너무나도 괴이하고 외롭게 죽었습니다.
제 가족들은 업이 어렵게 얽혀 있고, 우리들에게는 혼란과 고통만 있을 뿐입니다. 팸은 일년 반 동안 하반신 마비였습니다. 발코니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기도하다가 결국 세 군데가 부러졌기 때문입니다. 편지를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눈물이 그치질 않습니다.
예전에도 동생과 가까웠지만, 그 일이 일어난 후에는 더욱 가까워져서 텍사스로 동생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편지도 많이 썼었지요. 저는 팸을 끔찍이 사랑했어요. 그 아이는 아주 아름다운 마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사랑스럽고, 무언가를 추구하는 마음을 지녔었죠. 그러다가 지난달 갑자기 차를 몰고 떠나버렸습니다.
동생은 자기 스스로 운전할 수 있도록 특별히 제작된 차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팸은 북부 텍사스까지 차를 몰고 가서, 어머니께 두 번 전화를 한 뒤 여러 날 동안 연락이 없었습니다. 동생은 결국 숲 속에서 경찰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그 애는 차 밖으로 나와 휠체어를 타려다가 땅에 넘어져 숲 속에 고립되었고, 불도 피웠던 것 같지만 그곳에서 숨지고 말았습니다. 아마 피할 곳이 없는 데다가,
먹을 것도 없어 굶어 죽은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지난 수년간의 세월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두 번이나 정신병원 입원했었고, 최근 3년간은 정상적인 마음을
되찾기 위한 힘든 과정을 겪었습니다. 이제야 겨우 팸을 위하여
진정으로 힘이 되어줄 수 있고 참으로 많은 일을 도와줄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아이가 세상을 떠나버리다니 이 슬픔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그 아이도 떠날 때 가슴에 많은 한과 고통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그 아이의 유골은 저의 집에 있는 불단에 안치되었고, 저는
그곳에서 강한 에너지를 느낍니다. 선사님께 두 가지를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첫째, 죽은 팸을 위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좌선을 할 때면 그 아이를 찾아 헤매곤 합니다. 항상 그 아이의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고, 가끔은 제가 그 아이의 고통을 느끼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매일 밤 염불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듯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 아이가 너무나도 보고 싶고, 그 아이가 어디에 있든지 도와주고, 그 아이가 고통받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 싶습니다.
둘째, 어떻게 하면 수많은 어려움에 봉착한 제 자신과 제 가족들을 정화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제 막 정신적인 길을 걷기 시작한 초보자입니다. 제가 올바른 정신을 가질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제 자신이 아주 올바르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만, 고통과 불행을 겪게 하는 업에 대하여 조금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선사님께서 어떤 말씀이든지 해주신다면 그 보다 더 큰 은혜가 없을 것입니다. 비탄과 함께 커다란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 내면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눈물로 이 편지를 씁니다.
쉴러에게
보내주신 편지 감사히 받아보았습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보내주신 편지를 읽고 나 역시 몹시 슬펐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동생에 대한 당신의 생각과 진한 사랑도 이해합니다. 당신과 당신의 동생은 매우 강한 업, 같은 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생이 죽자, 당신의 마음도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느낌일 뿐입니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느낌에만 빠져 있으면, 당신은 동생을 도와 줄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은 물론이고 당신의 가족도 도와 줄 수 없게 됩니다.
느낌은 느낌 그대로 두십시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올바른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당신의 마음의 빛이 동생과 가족에게 비추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다음 생에서는 이런 슬픈 일들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당신이 이 슬픈 느낌에만 걸려 있으면, 다음 생에서도 이 같은 슬픈 일들이 다시 생겨나게 됩니다.
모든 일들은 어떤 원인에서부터 나오고 결과로 이끌어 집니다.
당신이 과거의 생에서 한 어떤 행위가 이번 생에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만일 이번 생에서 이 느낌들을 사라지게 하지 않으면, 이것이 원인이 되어 다음 생에 똑 같은 결과를 다시 불러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많은 이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게 때문에, 결과에만 집착합니다. 이 이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슬퍼하고, 울부짖고, 괴로워합니다.
당신이 업을 이해한다면, 당신은 더 이상 결과에 매달리지 않게 될 것이고, 그러면 마음이 답답해지거나 괴롭지 않을 것입니다.
울 때는, 울기만 하십시오. 울음이 그치면, 끝난 것입니다.
맑은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맑고, 올바른 업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느낌에 걸려들지 말고, 아무 것도 만들지 말고,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마세요. 모두 내려놓으세요! 그렇게 하면,
당신의 마음은 맑아지고, 당신 마음의 빛이 온 누리를 비출 것입니다. 이것을 법력이라고 합니다. 마음의 빛이 동생과 가족들 모두에게 비출 것입니다. 그러면 원인은 사라져 버리고 고통과 슬픔은
다시 생겨나지 않을 것입니다.
정신병원에 있었다고 하였으니. 매우 힘들었겠군요. 혼자 수행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기는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당신의 입장에서는 선원에 가는 것이 최상의 선택일 것입니다. 다른 이들과 더불어
수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다른 이들과 함께 절하고, 함께
좌선하고 함께 공양하고 함께 염불하고 함께 일하면 모든 이들이 당신의 나쁜 업을 다스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면 당신의
견해 당신의 조건 당신의 상황을 완전히 내려놓기가 수월해 집니다.
선(善)과 악(惡)은 당신의 진정한 스승입니다. 하지만 혼자 산다면 당신은 선과 악을 알지 못합니다. 자신의 나쁜 업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의 나쁜 업이 당신을 지배하게 되고, 당신의
문제 또한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나쁜 업을 없애고 싶다면 아무쪼록 선원에 가십시오
동생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에 대하여는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습니다. 그렇지만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하고 싶다면 불교에는 사자를 위한 지장보살 진언이 있으니 이것을 실천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지장보살을 하루에 3천 번씩 49일 동안 염송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동생은 건강한 몸으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오직 모를 뿐인 마음으로 곧바로 나아가, 당신의 느낌이나 당신의 마음 혹은 당신의 알음알이를 점검하려 하지 말고, 참된 길을 찾아, 당신의 동생과 가족 그리고 일체 중생을 고통에서 제도해 주시길 빌어마지 않습니다.
선사님께
지금은 금요일 오후이고 방금 자신들이 완전히 '막혀 버렸다'고
느끼는 세 명의 정신요법 환자를 연속으로 보았습니다. 세 명 모두 스스로 만든 삶을 힘들어하면서도 빠져 나올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합니다! 저는 불교를 공부했기
때문에, 고통의 원인이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고통에 대하여 이해하고 그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도록 돕는 일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베개를 치며 "감정에서 벗어나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더 많은 관세음보살의 가피가 있기를!
에즈라와 저는 항상 선사님을 생각합니다.
다이애나에게,
보내주신 편지 감사히 받았습니다.
몇 분의 환자가 찾아왔는데 너무나 고통스러워한다고 하셨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은 불타는 집과도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이 고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한번 살펴보기로 합시다.
많은 이들이 어떤 것은 얻는가 하면, 어떤 것은 얻지 못합니다.
하지만 얻는다는 것과 얻지 못한다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만약 어떤 것을 얻지 못하면 고통을 받습니다. 또한 어떤 것을 얻어도 결국에는 사라지는 것이므로 고통을 받게 됩니다.
이를테면 당신이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어찌나 그 꿈에 신경이
쓰이는지 온종일 그 꿈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합시다. 꿈을 꿀 때에는 그 꿈이 좋은지 아니면 나쁜지 생각하지 않고 그냥 꿈만 꿀 따름입니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난 후 그 꿈이 길몽이면 하루종일 함께 가져가고 싶어할 것이고, 흉몽이면 잊고 싶어할 것입니다.
하지만 꿈은 한낱 꿈일 뿐입니다. 그 꿈을 가지고 다니고 싶든지, 버리고 싶든지 간에 당신에게는 문제가 됩니다.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는 이것 또한 꿈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잠을 자면서 꾸는 꿈이나 일상적인 생각이 모두 다 꿈입니다.
실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비실재라는 말을 이해하면 가지고
싶다는 것도 필요 없고, 버리고 싶다는 것도 필요없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모두 다 내려놓으세요!
고통에 대한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사탕이 가득 들어있는 작은 항아리가 있다고 합시다. 항아리 속에 손을 집어넣어
한줌 가득 사탕을 집으면, 손을 빼낼 수가 없습니다.
"아아, 손을 빼낼수가 없어!" 하며 큰 고통을 느낄 것입니다.
만일 사탕을 원하는 마음을 내려놔 버리면, 손을 빼낼 수 있게 되고 고통도 없게 됩니다. 손을 빼낼 수 없다고요? 왜 그렇지요?
이 고통을 만든 이가 누구입니까? 당신의 욕망과 생각을 내려놓으면, 손은 쉽게 미끄러져 나옵니다.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습니다.
"베개를 치며 '감정에서 벗어나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 행위는 감정만을 바꿔줄 뿐입니다. 그것은 업이나 원인과 결과를 알게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더 많은 관세음보살의 가피가 있기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관세음보살께서는 나쁜 업을 소멸시켜
줍니다.
당신이 모두 내려놔 버리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평화롭고 행복한 마음을 지니기를 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너희가 순간 순간 보리심을 지니면, 어디에서나
행복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위대한 보살행은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행위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중생이 고통스러우면 당신도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들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요? 고통받는 많은 이들이 당신을 찾아올 때 그들과 한마음이 되어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것, 이것이 바로 위대한 보살행이고,
이것이 바로 관세음보살입니다.
항상 관세음보살께 곧바로 나아가, 관세음보살이 되어, 삶과 죽음의 일대사 인연을 마치고, 일체 중생을 고통에서 제도해 주시길
빌어마지 않습니다.
선사님께,
전에 선사님을 뵙고 말씀을 나눈 적도 있고 오계를 받은 바도 있습니다만, 이렇게 편지를 써서 저를 다시 소개하고 선사님의 제자가 되기를 정중히 여쭙니다. 저는 10개월 동안 케임브리지 선원의
법회와 용맹정진에 참석하였습니다. 저는 집에서 매일 아침 한
시간씩 좌선을 하고 있고, 대로는 저녁에도 한 시간씩 좌선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선사님의 가르침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말씀 드리고 나서 질문을 드릴까 합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적 어느 날의 이야기입니다. 몇몇 친구들과 저는 집 근처에 있는 커다란 헛간의 지붕 위로 올라가기로 하였습니다. 그 지붕은 경사가 아주 가파르고 높아 우리는 헛간 안으로 들어가 2층 창문을 통해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2층 창문을 빠져 나와 지붕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오히려 쉽고 재미있기까지 했습니다.
지붕을 반쯤 올라갔을 때 우연히 아래를 내려다 보았는데, 어찌나 높이 올라와 있는지 깨닫는 순간 저는 겁에 잔뜩 질려 버렸습니다.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저 지붕에 기대어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쓸 뿐이었습니다. 더 올라갈 수도 그렇다고,
다시 내려올 수도 없었습니다. 꽤 오랫동안 거기에 그렇게 머물러 있었죠. 마침내 아래에 계신 아버지께서 용기를 북돋워 주셔서
조심스럽게 지붕을 다시 내려와 창문을 통해 안전하게 되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청소년기 때의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아이였습니다. 학교에서는 공부도 매우 열심히 해 성적도 좋았고 항상 재미있는 행동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냥 남들이 저에게 바라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하였을 뿐이었죠. 제가 열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저의 세계는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제가 무엇을 해왔는지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학업에는 더 이상 열중하지 않게 되었고 소극적인 아이가 되어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제 자신을 포함하여, 사람들은 모두 이기적인 것 같습니다. 다들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 같이 여겨졌습니다. 무엇을 위해 노력해 왔는지 의아했습니다. 성공하고 남을 이기고 승리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배웠던 것이 어쩐지 옳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과연 삶의 목적이 무엇이며 추구해야 할 삶의 올바른 목표가 무엇인지 잘 몰랐었습니다. 제가 혼란스러우면 혼란스러울수록 덜 노력하게 되었고 결과 또한 더 나빠졌습니다.
남들이 저를 인정해 주지 않고, 제가 마땅히 해야할 것이라고 여겼던 일들을 하지 않아 생긴 결과를 남들이 험담을 하거나, 남들이
저를 이상한 사람이나 정신 질환자로 여길 때, 그 기분이 어떤지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혼란스러울수록 다른 사람들은 저에 대해서 더욱 미심쩍어 하고 의문을 제기하곤 하였습니다. 그러한 반응들이 저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 방식을 더욱 두려워하게 하였습니다. 마치 서로 물고 도는 원과 같은 관계였지요.
그럼에도 저는 점차적으로 나아졌습니다. 그토록 심하게 회의하던 일도 그만두고 만사가 흐르는 대로 단순히 따라가며 지내게 된 것입니다. 대학에 가서는 의사가 되기로 하고 의과대학의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게가 심사숙고하여 선택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칭송 받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의과대학에서 지냈던 어느 해에는, 제가 과연 높은 학점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지독하게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덕에 높은 학점을 받긴 하였지만, 그런 성취가 아주 공허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대학을 나온 후에 저는 '낙오'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믿지 않았고, 과연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수도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몇 해를 망망대해에서 뗏목을 타고 표류하듯이 통제력을 상실한 채 생활하였고, 연속적으로 밀려오는 거센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그저 그 자리만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어떻게 해볼 수도 없이, 그냥 망망대해를 표류해 왔던 것입니다. 직업, 결혼 그리고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 등 삶의 어느 상황에도 제 자신을 맡길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제
아내와 가족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제 자신을 맡길 수 없었습니다. 다시 그 헛간의 지붕을 반쯤 올라간 기분입니다. 움직일 수도 없고, 그저 매달려 있으려고만 애쓸 뿐입니다. 이제 제가 할 올바른 일이 무엇이고, 다른 이들을 위하여 무엇을 도울 수 있는지 너무나도 알고 싶습니다.
대중가요나 다른 종류의 곡을 써보고 싶지만, 제가 그렇게 하고자 하는 의도가 이기적인 것 같아 두렵습니다. 작곡을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올바른 길일까요? 아니면 오직 참선만을 해야 할까요? 지금이야말로 지붕 한가운데에서 내려와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스티브에게,
편지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십니까?
이제 당신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도 어렸을 때에 당신의 어릴 적 경험과 유사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풀을 베어서 퇴비를 만듭니다. 낫으로 풀을 베는 일은 어린이들 몫이었죠. 여덟 살 때였는데 나는 풀 베는 일이 좋았습니다.
하루는 친구들과 함께 풀을 베러 가서, 잔뜩 벤 풀을 자루에 담고 학교로 갔습니다.
학교로 가는 길에 한 친구가 나에게 "너 다리를 베었구나!"하길래 다리를 보았더니 피가 보였습니다. 아주 심하게 피를 흘려서 걸을 때마다 고무신에서 '뽁뽁' 소리가 났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순간, 엄청난 아픔을 느끼며 땅에 쓰러졌고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들 중 일부는 어머니를 부르러 가고, 나머지 얘들은 나를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사실 나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 채 이미 반 마일이나 걸어왔던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그런데 내 다리를 보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문제가 생긴 것인데, 그것은 상처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내가 상처를 점검하고 그 상처로 인해 아프다는 느낌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점검하기 전의 마음을 곧은 마음이라고 하는데 이런 마음을 지니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일단 점검하고 나면,
느낌이 나타나고 '나-나의-나를'이라는 마음과 갖가지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피가 나고 있는 다리를 보고 엄청난 아픔을 느꼈지만 보기 전까지는 전혀 못 느꼈지요! 그래서 땅에 쓰러져 움직이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지붕에 올라갈 때에는 곧은 마음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것을 점검하자, 움직이지도 못하고
"어떻게 내려가지?"하며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이 삶이란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두 똑같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삶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모든 것은 다 위험한 것입니다. 삶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란 환상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것을 안다면, 당신의 마음은 조금도 동요되지 않을 것입니다.
만물은 이름과 모양을 가지고 있는데, 이름과 모양이란 텅 빈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이 도리를 알게 된다면, 그때에는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게 됩니다.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다는 이 도리를 알고
나면, 이름은 이름일 뿐이며 모양은 모양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다는 도리를 안다는 것은, 당신의 마음이 거울과도 같이 맑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런 걸림 없이 여러 가지 색이 오고 갈 수 있게 됩니다. 당신이 무언가에 걸려 있으면 무언가를 만들게 되고, 당신이 무언가에 집착하면 당신의 마음의 거울은 더러워져서 있는 그대로를 맑게 비추지 못하게 됩니다. 당신의 마음이 맑으면,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비춰집니다. 빨간빛이면 빨갛게, 하얀빛이면 하얗게, 누군가가 슬프면 나도 슬프고,
누군가가 즐거우면 나도 즐겁습니다.
이 마음이 완전히 자유로운 마음이고, 장애가 없는 마음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나-나의-나를'이라는 마음을 내려놓아야만 하고, 아무 것도 만들지 말고, 아무 것에도 걸리지 말고,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마십시오. 오직 모를 뿐인 마음으로 곧바로 나아가십시오. 이 모를 뿐인 마음이 당신이 앓는 어떤 병이라도 다 고쳐줄 것입니다.
일체 중생을 고통에서 제도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가능한 일입니다. 오직 모를 뿐인 마음이 대자대비한 마음이고, 위대한 보살의
마음입니다. 이미 당신은 이 길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을 돕고자 한다면 먼저 당신의 업을 다스릴 수 있어야만 합니다.
당신 혼자서 하는 수행은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습니다만 때때로 당신의 업이 나타나면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을 제어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럴 경우 자신의 올바른 길을 지킬 수도 없고, 순간 순간의 참선 수행도 불가능해집니다. 당신의 업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 일이 매우 긴요합니다. 선원에서는 사람들이 함께 살면서 절도하고 염불도 하고 좌선도 함께 수행합니다. 이렇게 수행한다면 당신 자신의 생각과 상황 그리고 조건에 매달리게 되지 않게 되고, 당신의 '나-나의-나를'이라는 업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니 오직 모를 뿐인 마음으로 선원에 와서 사십시오. OK?
그러면 당신의 업은 깨끗해질 것입니다. 깨끗한 업이란 올바른
견해, 올바른 조건, 올바른 상황, 그리고 순간 순간 지속되는 보살심을 말합니다. 당신이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올바를 업이라면
음악을 하도록 하십시오. 당신의 음악이 일체 중생을 제도할 것입니다.
오직 모를 뿐인 마음으로 곧바로 나아가 깨끗한 업을 만들고 깨달음을 얻어 일체 중생을 고통에서 제도해 주시길 빌어마지 않습니다.
선사님께,
안녕하세요? 바쁘게 지내시는 와중에서도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곳 케임브리지 선원에 있는 모든 이들이 선사님과 서부 해안에 계시는 법우들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선사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번 여름에, 저는 불교를 100퍼센트 믿게 되었고, 그래서 아주 행복합니다. 그 전에는 제 마음속에서 수행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이 아주 심했습니다. 하지만 올 여름에는, 모든 악업이 사라졌나 봅니다. 갈등이 모두 사라졌으니 이제는 수행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영원히 불가능할 줄 알았던 담배끊는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선사님께서는 2년 전 제 마음속에 많은 나쁜 업이 나타나서 선원을 떠나 수행을 중단했던 일을 기억하시죠? 그러자 선사님께서는
제게 '아제 아제 바라아세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라는 진언을
주셨습니다 그리곤 3개월만에 다시 선원으로 돌아와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선사님께서는 "OK. 네 마음이 더 강해졌으니, 이제는 숨을 들이쉬면서 '맑은 마음', 내쉬면서 '모를 뿐'이라고 하거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것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이 수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름이 시작될 무렵, "나는 참선이 싫어. 나는 수행하고
싶지 않아."라는 나쁜 업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진언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다시 나쁜 업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아직
진언을 잘 모릅니다. 제가 아는 것이라고는 제가 방향을 잃기 시작하면, 이 진언이 저를 다시 똑바로 해준다는 것뿐입니다. 제 마음이 강해졌다 할지라도 계속해서 진언 수행을 하여도 괜찮을까요?
어떤 이들은 진언을 하는 것은 아주 낮은 수준의 수행이라고 합니다. 참말일까요? 부디 진언에 대하여 가르침을 주세요.
선사님께서 제게 불교를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이앤에게,
편지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십니까? 서부 해안의 가족 모두가 당신과 케임브리지 선원의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합니다.
불교를 100퍼센트 믿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무척 기쁩니다! 수행이 매우 강해졌다니 또한 축하합니다.
그리고 담배를 끊었다니 훌륭합니다.
편지에서 진언과 오직 모를 뿐인 마음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진언 수행은 낮은 수준의 수행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틀린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낮은 수준인 것입니다. <선의 나침반>에는, "생각을 놓으면, 간경, 진언, 염불
수행과 참선 수행은 모두 같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생각에 집착하고 말에 집착하면, 이 모든 수행은 다 다른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식사를 할 때 어떤 이는 젓가락를 쓰고, 어떤 이는 포크를 쓰고, 또 어떤 이는 숟가락을 쓰고, 손가락으로 식사하는 이도 있습니다.
무엇을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배만 부르면 되는 것입니다. 진언을 하느냐, 간화(공안을 참구하는 수행)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순간순간 바로 지금의 마음을 어떻게 지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 점을 이해한다면 항상 여유있는 마음을 지닐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이미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라는 진언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의 생뿐만 아니라 다가올 무수한 생에서 일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위대한 서원입니다.
당신은 이 진언과 매우 좋은 업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 좋은 업을 일체 중생을 돕는 일에 쓰십시오. 당신의 마음을 점검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느낌도 점검하지 마십시오. 다른 이들의 마음도 점검하지 마십시오. 다른 이들의 마음도 점검하지 마십시오. 오직 모를 뿐인 당신의 진언을 지니고 곧바로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산의 정상에 오르고자 합니다. 한 사람은 산의 남쪽에서 오르기 시작하고, 다른 이는 북쪽에서 시작하고, 또 다른 이는 서쪽에서, 또 어떤 이는 동쪽에서 시작합니다. 그들은 모두 곧바로 나아가 정상에 도달합니다. 그런데 남쪽에서 올라온 이는 북쪽에서 오른이의 방향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서로가 다른 이의 방향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른 이의 방향을 점검하지 마십시오. 좋은 일이 아닙니다. 모두 다 정상이라는 한 점에 도달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진언 수행에 있어서 당신이 알아야 할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진언을 하여 하나된 마음, 사마디(samadhi. 삼매)에 이르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하지만 진언에 집착하면, 당신의 참된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진언 그 자체에는 방향이 없습니다. 하지만 항상 자신에게 "지금 진언을 하고 있는 놈은 누구인가? 라고 물으면, 방향을 갖게 됩니다. 방향을 갖는다는 말은, 의심(의심 덩어리)을 지녀, 당신의 인식을 맑게 함으로써 당신이 처한 상황을 올바르게 지각할 수 있게 한다는 뜻입니다.
진언만 하는 것은 하나된 마음이고, 대의심을 가지고 진언을 하는 것, 이것이 맑은 마음입니다. 곧바로 나아가는 오직 모를 뿐인 마음은 허공처럼 맑습니다. 여기에는 주관도 객관도 없고, 안도 바깥도 없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할 때에는 오직 그 것만 해야 합니다.
당신이 생각을 내지 않으면, 그것이 바른 진언이고, 바른 오직 모를 뿐인 마음입니다. 고양이가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개는 뭐라고 합니까? 당신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진언과 함께, 오직 모를 뿐인 마음으로 곧바로 나아가, 곧 위대한 보살이 되어, 삶과 죽음의 일대사 인연을 마치고, 깨달음을 얻어, 일체 중생을 고통에서 제도해 주시길 빌어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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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全) 대통령께 올리는 글
전두환 대통령 귀하
귀의삼보하옵고
무상광음은 화살같이 흘러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벌써 1년이 된 듯하나이다. 그간 얼마나 나라와 민족을 위하기에 수고하시나이까.
항간에는 시비가 많습니다. 잘한다 못한다 그것은 인간 세상에서는 그칠 날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이 무엇이며 악이 무엇이며 인생이 무엇이며 우주가 무엇이며 시간 공간이 존재하느냐 않느냐를 깊이 깊이 파고들면 그러한 시비는 모두 흘러가고 참다운 진리의 세계가 출현합니다.
옛사람이 말씀하시기를, 선악지무성(善惡之無性)이요,
성범시허명(聖凡是虛名)이로다. 문전적생토(門前寂生土)하니, 춘래초자생(春來草自生)이라 하시었습니다.
선악이 원래 성품이 없는 것이옵니다. 사람들이 생각으로 선악을 만들고 있으니 생각이 끊어지면 어디 생사 선악 상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생각이전 본래 인간성으로 돌아간다면 이 세계는 평화와 자유와 평등의 아름다운 세계로 변화할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나는 대통령께서 잘한다 못한다 그것은 논하고 싶지 아니합니다. 다만 나는 내가 사랑하는 내 나라, 내 민족이 왜 남북이 가로막혀 이 고난을 겪느냐 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 이 글을 올려 나의 의견을 말씀 드릴 뿐이옵니다.
나도 왜정 시대 중학교 시절 사상 운동하다 감옥에 들어가 4개월이나 살았으며, 해방 후 이북 평양에서 김일성 동무를 반대하여 학생 운동하다가 이남으로 넘어왔습니다. 대학교 시절 삼일 운동 기념 행사에서, 남산에서는 빨갱이들이 하고 서울 운동장에서는 우익
진영에서 하고, 각각의 행사를 마친 사람들의 시가 행진시 서울 역전에서 좌우가 충돌, 서로 총질하는 것을 보고 아하! 우리 한국은 망했구나 왜 거룩한 삼일 운동 기념 행사에 해방이 된 오늘날 민족끼리 총으로 쏘고 죽이고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가슴 아프고 쓰라린 현상이 아니오이까.
나는 참을 수 없어 산중으로 들어가 머리 깎고 중이 된 지 40년이 가까워 옵니다. 해방 때 우리 귀에 들리는 동요가 있었습니다.
‘소련 놈한테 속지 말고 미국 놈 믿지 말라 일본 놈 일어난다.’ 그 말이 지금 꼭 들어맞았습니다.
우리 민족은 선지(先知)가 있는 민족이요, 동방예의지국이요, 예술이 있고, 문학이 있고, 멋있는 민족이옵니다. 나는 지금 미국에 와서 외국인들에게 자성을 계발하는 참선을 가르치고 있지만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우리 민족을 자랑하고 우리 국가는 태극기부터가 철학적이요, 대우주인 국가라고 설명합니다.
긴말은 할 수 없으나 오늘 대통령께 부탁이 있어 펜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는 남북이 없으며 생사가 없으며 시간 공간이 없으며 완전무결한 것이옵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생각이 일어나 나의 견해와 아집이 생기어 이 세상이 좌우로 갈라져 죽이고 살리고 시비선악, 생사이멸이 생기어 복잡다단하게 된 것이옵니다. 종교인은 종교인대로,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학자들은 학자대로 내가 옳다고 주장하고 서로 지지고 볶고 있으니 어느 겨를에 세계 평화가 오겠습니까?
더구나 우리의 남북통일은 세계 평화 없이 가져오지 못하는 것이옵니다. 따라서 요사이 나는 인간성 회복 운동을 하고 있는데, 힘은 적지만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종교인 이전, 정치인 이전, 학자 이전 모두 인간성으로 돌아가 올바른 견해로 각성한 다음 종교, 정치, 학자로서 활동한다면 하루아침에 이 세상은 평화를 되찾아질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대통령께서도, 통찰하시어 과거는 어찌되었든 간에 우리나라의 현직 대통령이므로 우리 민족에게 인간성 회복 운동을 전개하여 우리 각자가 본마음을 찾아 시비를 없애고 선악을 초월하여 절대적인 세계가 이루어진다면 우리 대통령께서도 무거운 짐이 벗어질 것이옵니다. 천사불여일행(千思不如一行)이라 생각으로 천만번 해보았자 소용없습니다. 고요히 앉아 단 10분이라도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공부를 시켜야 우리 민족이 살아납니다.
금년 내년 84년도 갑자년 벚꽃 필 때까지는 허다한 난관과 고난이 개인적으로, 민족적으로, 국제적으로 많이 닥쳐올 것이옵니다. 우리가 인간성을 찾지 아니하면 대통령께서부터도 그러합니다. 그리하니 내가 글을 아니 올릴 수가 없어 한 자 올리오니 잘 살펴주시옵소서.
고인이 말씀하시되, 제행무상(諸行無常)하야, 시생멸법(是生滅法)이라, 생멸멸이(生滅滅已)하면, 적멸위락(寂滅爲樂)이니라 하시었습니다.
이 세상은 변화하지 아니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생멸법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생멸하니 그 생멸심을 없애 버리고 나의 견해와 아집이 사라지면 무아 속에서 묘유(妙有)가 탄생되며 진리의 눈, 코, 귀 등이 생기어 보는 대로, 듣는 대로
모두가 대진리가 아닌 것이 없게 되옵니다.
하늘은 푸르고, 물은 흘러가고, 개는 멍멍하고, 새는 찍찍짹짹하고, 설탕은 달고, 소금은 짠 그대로 모두 대우주의 절대적인 진리인 것이옵니다. 우리가 진현(眞現) 속에서 살며 진리를 모르는 것은
우리 인간이 인간성을 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잘잘못을 논하고 싶지 아니합니다. 잘하나 못하나 우리나라 현 대통령입니다. 과거를 막론하고 현 시점에서 어떻게 하여야
우리 민족이 잘 살아 나가겠는가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항간에 한국에서 종교인들끼리 시비가 벌어져 싸우고 있다 하니
어찌 그 종교인들이 올바르다고 하겠습니까. 종교인은 온 백성이 잘하나 못하나, 나의 종교를 지지하나 아니하나 사랑과 자비로써 진리와 낙원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참으로 종교인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느 종교나 목적은 같습니다. 다만 방법이 다를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대통령께서 우선 각 종교인의 올바른 길 그것은 종교인 이전의 인간성으로 돌아가 나의 마음을 깨달아 대우주의 절대적인 진리를 발견하게 할 것 같으면 대통령으로서의 할 일이 참으로 수월할 것이옵니다.
고인이 말씀하시되, 천지지천 천지전(天地地天 天地轉)이요,
수산산수 산수공(水山山水 山水空)이라, 천천지지 하증전(天天地地 何曾轉)이고, 산산수수 각완연(山山水水 各宛然)이로다
이 얼마나 우리 인간과 대우주의 본체를 드러낸 글이 아니오이까. 우리 인간은 자신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모두 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돌대가리들입니다.
대통령께서도 마음을 속히 깨달아 마음속에 남북이 없어지면 조금이라도 남북통일이 빨리 될 것이옵니다. 우리 온 국민이 그와 같이 마음공부를 하여 각기 인간성을 회복한다면 어찌 남북통일이 어렵겠습니까. 입으로만의 남북 교섭은 성취되기 어려울 것이옵니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요 설두무골(舌頭無骨)이라, 도처춘색(到處春色)하니 유록화홍(柳綠花紅)이라, 대통령, 이 얼마나 시원하고 훌륭하고 명백하고 대진리의 길이 아니오이까.
큰 길이란 문이 없고, 혓바닥에는 뼈가 없네. 이르는 곳마다 봄 빛깔이니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도다.
우리 백의민족은 정결하고 고상하고 철학적이요, 정서적인 민족이옵니다. 다만 정치가가 좌우하여 우리 민족혼이 모두 말살되어
동물과 같이 되었으니 어찌 한탄 아니 하오리까.
생각하여 봅시다. 2천 년이나 3천 년 전에는 우리 인구가 5억, 7억, 10억도 못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구가 적어 요순시대라 서로
사랑하고 도와주고 다 같이 행복하게 살아왔지만 지금은 그 인구가 부쩍 늘어나 40억을 돌파, 50억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혼이 모두 어디서 생산되어 사람이 되었겠습니까?
하느님, 부처님이 생산하였을까요? 천만에요. 이 세상은 인과가
분명합니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연이란 사실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필연적으로 되게끔 되어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대통령이 되신 것도 대통령님의 운이요, 우리 한국 운이올시다. 엿장수 마음대로 되는 법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옛부터 인간들이 동물을 죽여 그 송장을 맛있다고 먹으니 그 결과가 자기 살을 자기가 도려내어 먹는 결과가 된 것이 아니오이까.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절대 권한을 주어 동물을 마음대로 잡아먹어도 괜찮다 하므로 서양 문명이 기계 물질 문명으로 발전하여, 공산주의와 같은 먹는 싸움이 벌어져 인간성을 다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러한 사회,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구 각 국가는 그것을 대비하다 보니 핵 무기국을 만들어 지금도 정치하고 있으니 언제 그놈이 터져 인류가 모두 한시에 자멸 아니한다고 누가 보증하겠소이까.
그 반면 그 동물들의 혼이 사람으로 환생하여 원수를 갚기 위하여 김 서방, 이 서방, 양코쟁이, 깜둥이 아들 딸로 태어나 부모의 말을 안 듣고 부모를 도끼로, 칼로 죽이는 놈이 생기지 않나, 순경 하나가 총질하여 수십 명을 단숨에 죽이지 않나, 비행기 사고, 자동차, 기차 등 여러 사고로 죽지 않나 또는 영국과 아르헨티나와 같은 쓸데없는 전쟁을 하여 사람들이 서로 죽이지 않나. 우리나라도 공연히 소련 놈에 속고 미국 놈에 속아서 해방 후 37년이 되어도 어데 자주독립국가라고 얼굴을 내밀게 되었습니까?
사람이 고기 먹기를 좋아하니 그놈의 동물의 혼이 사람이 되어 서로 놈을 잡아먹는 것이옵니다. 그것이 인과법입니다. 그래서 요새 말로 서로 욕하되 이 개새끼야, 이 말새끼야, 이 구렁이 같은 놈아, 이 곰 같은 놈아, 호랑이 같이 무서운 사람이야 등등, 이 말이 우연한 사실은 아니옵니다. 그 식(識 : 영혼)이 개나 돼지나 범, 말 등등에서 왔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을 하니 그러한 용어로 자연 발음 되는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살생을 하지 말아라 하시고 가르쳐 주신 것이옵니다. 일체생명권을 주장하시었습니다.
요사이 ‘개판이야’라는 말을 잘 쓰지요. 대통령께서 대통령이 되시기 즉전(卽前) 일을 생각하여 보세요. 박 대통령께서 저격을 당한 그것도 개판이거니와 그 후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세 김씨가 고기 한 덩어리를 놓고 서로 으르렁거리다 서로 못 먹고 있던 차, 대통령께서 전 씨이니 ‘온전 전(全)’자라, 완전히 그 고기덩어리를 세 김씨가 개판을 벌이고 있는 틈을 타 먹어 버린 것이 아니오이까.
세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인간성을 가지고 있다면 또 달라졌을지도 모르옵니다. 개는 양보성이 없습니다. 인간성은 사랑과 양보와 봉사 정신이 충만한 것이오니 인간성을 가지고 정치를 해야지, 그러한 개 정신을 가지고 서로 으르렁대니 어찌 자기 것이 되겠소이까. 그러므로 정치를 잘하면 성군(聖君)이 되려니와 사심을 가지고 하면 언제나 나라도 망하고 개판이 되어 남만 좋은 일을 시키는 법이옵니다.
그러므로 자고로 정치를 하려면 도덕을 겸비하여야 도덕 정치가 되어 나라와 민족이 안정되고 천하태평한 평화를 가져올 것이옵니다. 고로 옛날에는 왕은 정치만 알지 도덕을 몰라 왕사, 국사 등 도인의 고문을 받아가며 정치한 역사상의 사실이 있지 아니오이까.
정치를 하려면 나의 철학이 확립이 되어야 합니다. 박 대통령은 잘했건 못했건 간에 목적이 뚜렷하였습니다. 효도 정신과 우리 민족혼을 발굴하여 한민족의 자랑스러운 점을 온 국민에게 널리 알리어 자부심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전국 각 곳에 충효 사당과 민족정신을 장려하는 민속 예술을 개발하여 민족혼을 살리려고 노력하신 것만은 사실이 아니오이까. 집권을 너무 오래하여 모순이 많이 생겼지만.
대통령께서는 어떠한 철학을 가지고 계시나이까. 대통령 철학이 있어야 하며 철학 속에서 도덕과 충효 사상이 나타나야 우리 민족은 살아납니다. 그것은 오직 각 개인이 인간성을 회복하는 데서 만이 이루어지는 것이옵니다.
대통령께 누가 당신이 무엇이요 하고 물으면 뭐라 답하겠습니까. 옛날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시를 밤낮 돌아다니며 “네 자신을 찾아라” 외쳤습니다. 그때 한 제자가 “선생님, 선생님은 자신을 아십니까?” 물으니 소크라테스는 “나는 모른다. 그러나 모르는 놈은 안다.” 그것이 자명한 소크라테스의 부지(不知)의 철학이옵니다.
대통령께서도 철학을 가지세요. 명백하고 확고부동하고 절대 진리인 것이어야 합니다. 철학이 없고 진리가 없는 정치는 온 백성이 너무나 고생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도덕 정치를 하여야 한다고 하시었습니다. 카터가 인권과 도덕을 부르짖었지만 행(行)이 없으니 성취 못한 것이옵니다. 입만의 도덕과 인권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행이 있어야 덕(德)이 나오고, 덕이 있어야 인(仁)이 나오고 인이 있어야 도(道)가 나오는 법이옵니다. 실천하는 데서 만이 온 우주가 나의 것이 되는 것이 도입니다.
학문만 가지고서는 은행에서 돈 만지는 격이옵니다. 내 것은 아니옵니다. 내가 노동하여 돈을 벌어야 내 것이 됩니다.
남의 학설을 가지고 와서 왈가왈부하니 이 세상이 좌우로 갈려져 죽이고 살리고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생각을 모두 쉬고 나 자신으로 돌아가 나의 마음을 깨달아 인간성을 증득한다면 그 속에 좌우가 어데 있으며, 생사가 어데 있으며, 선악이 어데 있으며, 상하, 죄복(罪福)이 어데 있겠습니까?
나가 있을 때 저 것이 있고, 나가 없으면 저 것도 없네.
아유(我有)하니 피유(彼有)하고, 아멸(我滅)하니, 피멸(彼滅)이라. 이것이 우리 불교 소학교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것이 제일 문제입니다. “내가 무엇입니까?” 대통령이시여, 당신은 ‘나’를 아시오? 무엇이오? 말해 보세요. 모르지요? 자기도 모르면서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겠는가 말입니다. 나 자신을 모르면 어떻게 나라 일을 알아 올바로 정치 할 수 있습니까? 잘 살펴보시옵소서.
유가(儒家)에서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하시었습니다. 수신은 수심(修心)으로 오고, 수심은 바로 대도(大道)로 오고, 대도는 대우주의 절대적인 진리인 것이옵니다. 고로, 수신이 제일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것이 유교임으로 오륜삼강(五倫三綱)이 있지 아니합니까. 오늘날 그것이 땅에 떨어져 똥 막대기가 되었으니 이 세상에 도덕과 의리가 사라지고 개, 돼지, 짐승 모양으로 서로 물고 뜯고 죽이는 세상이 되지 아니 하였습니까.
그러하오니 우리 모두가 하루 속히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 제일 남북통일과 세계 평화와 직결되는 것이옵니다. 정감록 비결 결론이 적선지가(積善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라 하니, 선한 인간성으로 돌아가야만 개인은 물론, 국가적으로, 국제적으로 평등, 자유, 평화의 세계가 건설 될 것이옵니다. 그러하니 ‘나’를 찾아보아야지요.
우리 인생이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그러면 생은 하처래(何處來)요 사는 하처거(何處去)요, 생이란 일편부운기(一片浮雲起)요, 사란 일편부운멸(一片浮雲滅)이라. 부운자체(浮雲自體)는 본무실(本無實)인데 우리 인간의 생사와 거래가 또한 그와 같도다(生死去來亦如然). 그러나 독유일물(獨有一物)하야 상독로(常獨露)하니 항상 명백이 들어나 있으니 다시 말해서 그 일물(一物)은(마음 또는 정신) 하늘을 보면 푸른 줄을 알고, 소금은 짠 줄을 알고, 설탕은 단 줄을 아니 잠연불수어생사(湛然不隨於生死)라. 그 한 물건은 맑고 깨끗하여 생사에 다르지를 아니한다 하였습니다. 그것은 나의 몸덩어리는 생사가 있어도 참나(정신 또는 마음), 그놈은 생사가 없다는 것이옵니다.
그러면 그 잠연저일물마(湛然這一物큯), 맑고 깨끗한 그 한 물건은 무엇이냐? 하시었으니, 어떠하시오, 아시겠습니까? 그것을 알아야지요. 그것을 모르면 올바른 길을 모르고, 진리도 모르고, 올바른 생활을 모르오니 무엇을 가지고 정치를 하지요?
기독교 성경 말씀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로다.” 하시었습니다. 우리 불교에서도 ‘나’를 깨달으면 대도를 알아 대우주의 진리를 증득하여 일일 올바른 생활을 한다 하였으니, 기독교나 불교나 목적은 같으니 기독교는 객관적 종교요, 불교는 주관적 종교이므로 방법이 다를 따름이옵니다.
그럼 보시오. 요사이 기독교가 너무 날치는 꼴 그것은 기독교 문턱에도 못 간 인간들이 기독교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나를 깨닫는 참선을 가르치며 많은 신부님과 목사님이 찾아와 같이 참선하고, 도담을 하고, 중생을 위하여 같이 손잡고 일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에서도 그리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집안 싸움이 없어야 집안이 잘 되지, 집안 싸움을 하면 부뚜막 소금이 저절로 솥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법이옵니다. 이것을 하루 속히 지양시키시고 대통령께서부터 시작하여, 온 국민이 자성을 찾아 들어가는 대작업을 전개하여야 남북통일, 세계 평화는 속히 성취하게 될 것이옵니다.
이 세상에 세 끝이 제일 무섭습니다. 그것은 1. 칼 끝이요 2. 혀 끝이요 3. 붓 끝이올시다. 그러므로 칼 끝에 굴복하지 말고, 혀 끝에 놀아나지 말고, 붓 끝에 속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대통령께서도 칼 끝과 총 끝으로 혁명을 하였지요. 그 다음은 그것을 잘 써야 합니다. 그것을 묘용(妙用) 또는 대용이라 합니다. 대기대용(大機大用)이란 마음은 허공과 같이 가지고 마음 씀은 바늘 끝과 같이 세세밀밀하게 써라 하시었습니다. 평등성중(平等性中)에는 무피차(無彼此)요, 대원경상(大圓鏡上)에 절친소(絶親疎)라, 이것은 우리 마음의 본바탕이요, 석화광중(石火光中)에 분치소(分緇素)이요, 뇌전광리(雷電光裏)에 변단애(邊端崖)라. 이것은 대용을 말한 것이옵니다. 성품 중에는 상대가 끊어져 절대이지만 다음 묘용대용으로 나올 때는 상하, 천지, 산산수수가 분명한 것이옵니다.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시는 것이 대용이옵니다. 그러므로 이긴 자에게는 상을 주고, 악한 자에게는 벌을 주는 것이 법이옵니다. 법속에 대도가 있고, 의리가 있고, 인정이 있고, 덕행이 완성되어, 만민을 자식과 같이 사랑하고 연민하게 될 것이옵니다. 그것이 도, 대기요, 덕이 대용인 것이옵니다.
대통령께서는 도덕을 아시나이까. 우리 마음속에 무진장(無盡藏)로 있습니다. 모르시면 도인을 찾아 물어서 정치를 해야지요.
저는 평양에서 기독교 장로교 집안에서 자라나 교회를 열심히 다녔지요. 그러나 중학인 공업학교 시절에 왜놈이 반, 한국 사람이 반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 사람이 아무리 머리가 우수하고 뛰어나도 급장, 반장 하나도 주지 아니하고 왜놈, 머저리 같은 놈들이 다 차지하고, 반면 더욱 그 왜놈들이 우리 땅에서 살며 우리말도 우리 역사도 우리 국기도 나아가서는 우리 성명까지도 다 빼앗아 가고 못 쓰게 하니 그 젊은 나이에 그 왜놈을 미워하는 마음 참을 수가 없어 매일 싸움하다 왜놈 선생에게 매일 같이 기합 받던 중 독립 투사 김사량(金史郞)을 만나 독립 운동에 가담, 만주 하얼빈까지 가서 독립단을 만나려 할 때 나의 친구 형이 일본 대학 경제과를 나와 만주에서 큰 정미소를 경영하는데 찾아가 자랑 삼아 독립군을 찾아왔다 하니 노발대발하며 “이놈 머리통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독립 운동이 무엇이냐? 독립 운동은 감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지, 정, 의가 하나가 되어 철저한 인생관과 우주관이 정립되었을 때 행으로 가는 것이다. 아냐?” 하며 가르쳐 주신 것이 그 세 끝이 무서우니 너의 중심이 완전히 부동할 때까지 더 공부하라 야단을 맞고, 평양으로 돌아온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자기 자성을 찾아 이 세 끝, 칼 끝에 굴복 말고, 혀 끝에 놀아나서 나라 망치지 말고 또한 세상 망치는 일 말고, 붓 끝에 놀아나 공산주의, 민주주의 등을 만들어 온 인류를 자멸의 길로 끌고 가지 아니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러하니 그 세 끝에 속지 아니하고 마음을 깨달아 도덕 정치를 하려면, 우선 내가 내 자신을 모르니 도인을 찾아가 물어야지요.
나는 동국대학교 상무이사로 재직시 세상에 도학(道學)이 겸비한 사람을 찾아보았습니다만 학문이 우수한 사람은 많아도 학문과 도덕이 겸비한 사람은 많이 보지 못하였습니다. 학자들을 시켜 정치을 시킨들 도덕이 있어야 잘 되지요. 일학문(一學問)은 힘이 없습니다. 그것을 건혜(乾慧)라 합니다. 학문은 지식이요, 공부를 실천함은 지혜가 나와 도덕이 성취되는 법이옵니다.
지식은 녹음 테이프요, 나의 것은 아니옵니다. 지혜가 있어야 세상만사를 분명히 가리어 올바른 길과 진리와 생활을 하게 되며, 또한 사랑과 자비로써 만 중생을 제도하게 될 것이옵니다.
우리 한국은 역사적으로 위대한 도학을 겸비한 대선사들이 많이 출현하여 나라가 위급시 나라를 돕고, 세상을 돕고, 많은 사람들을 고해에서 건져 주시었습니다. 신라의 원효대사, 고려의 보조 국사, 이조의 서산, 사명 대사, 근세의 경허, 만공, 대사 등 그러한 성현이 출현한 곳이 우리 삼천리 강산이옵니다. 해방 후에도 여러 큰스님들이 활동하다 또는 고요히 돌아가시었습니다. 동산 큰스님, 효봉 큰스님, 금오, 청담, 경산, 경봉 등 위대하고 빛나는 별들이 사라졌습니다.
많은 큰 별들이 사라졌으나 다행히도 지금 세 큰 별이 남아 있어 그 법광(法光) 속에서 도덕을 배우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아니하옵니다. 그분들은 우리 한국의 보물뿐만이 아니라 서양에 태어났으면 대성현들이라고 추앙을 받았을 것이옵니다. 한국의 정치, 한국의 위신, 한국의 전통이 올바르게 되지 못하오니 그분들도 세상을 등지고 보지 않고 듣지 아니하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 옵니다.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하시면 그러한 분들을 배알(拜謁)하여 도를 묻고 덕을 닦아 자성을 깨달아 인간성을 복구하여, 한민족은 물론 온 만 중생을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기 간절히 바라나이다.
그 세 분은 대통령께서도 아시겠지만 한 분은 경남 가야산 해인사 백련암에서 세상을 등지고 나오시지 않는 성철 대선사요, 또 한 분은 유불선(儒佛仙) 삼도를 통달하신 위대한 대도학자인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김탄허 대선사요, 또 한 분은 경북 황악산 직지사 전관응 대선사입니다.
대통령님께서는 도덕을 알고 인간성을 찾아야지요. 세 분을 배알하여 도덕의 법과 인간성을 찾아 들어가는 공부를 하시옵소서. 이것이 제일 급한 일이옵니다.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 누가 보장하겠습니까? 죽을 때는 나라도, 국민도, 나의 식구도, 남북통일도, 세계 평화도 모두 쓸데없는 일이로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도를 알면 유가(儒家)에서는 조문도(朝聞道)이면 석사(夕死)라도 가야(可也)라 하지 아니하였습니까. 불가(佛家)에서는 자성을 깨달으면 생사가 없다 하니 무엇이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오직 만백성을 위하여 봉사할 따름입니다. 금생뿐만 아니라 내생, 내생, 무량세까지 보살도를 닦으며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우리 불가의 대자비동체요, 대보살도라 하는 것이옵니다. 나의 온갖 것을 모든 중생들에게 송두리째 바치는 것이옵니다. 그 표본이 그 위대하신 세 분입니다.
물론 우리 불교에만 그런 분이 계시지 않고 다른 종교 지도자도 계시겠지요. 그것은 나는 모르오니 대통령께서 또 발굴하여 내시어 그러한 위대한 분들이 힘을 합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우리 민족의 방향이 바로 서고 온 국민이 단합되고 남북통일을 하루 속히 성취하여 아름다운 세계 평화를 이 땅 위에 건설될 것이 아니오이까.
대통령, 역사를 보시옵소서. 삼국 시대는 올바를 종교가 나라 속에 있을 때 그 나라가 흥하고 그 종교가 쇠퇴되었을 때 나라는 망하였습니다. 그것은 동서고금 어느 나라도 다 그러하였습니다. 지금도 아랍 제 국가를 보시옵소서. 또한 일본, 미국 등을 보시옵소서. 모든 종교가 혼란기에 있으므로 정치, 경제, 문호, 학문이 모두 혼란기를 당하고 있지 아니합니까. 그러므로 이 시대는 나의 종교가 옳다는 견해를 버리고 우선 인간성을 되찾아 들어가는 것이 종교, 정치, 경제, 문화, 학문 등을 올바르게 정리 할 첩경이 되어 그 속에서 올바로 각기 종교, 정치, 경제, 문화, 학문이 새로운 방향과, 진리와, 생명 속에서 약동 하여야 할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누구나가 다 아상, 인상(나의 주장과 나의 입장), 중생상, 수자상(나의 환경, 나의 견해)이 모두 없어지면 나의 자성이 태양과 같이 빛나서 한량없는 공덕을 모두 획득하여 온 세계가 낙원으로 변화할 것이옵니다.
우리는 흐름을 알아야 하고 뿌리를 찾아내어 설 땅을 확인해야 하겠습니다. 뿌리 없는 나무는 쓰러집니다.
냄새를 맡아 온 국민이 원하는 바 희망이 무엇인가 깨달아야 하며, 또한 소리를 들어 온 국민의 마음 움직임을 알아야 하며, 또 맛을 알아 당장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를 발견, 실천하여야 하며, 다음 바람 부는 곳 방향을 깨달아 온 국민의 올바른 생활 생명을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여 눈으로는 색깔의 흐름을 알아야 하고, 귀로써는 국민 소리 들을 줄 알아야 하고, 코로써는 냄새를 맡아 국민이 하고자 하는 마음을 알아야 하고, 혀로서는 맛을 알아 내가 당장 무엇을 나라 민족을 위하여 할 일인가 깨달아야 하며, 우리가 몸으로 뿌리를 찾아내어 굳건히 서야 할 땅을 발견하여 뿌리를 내려야 오래가는 법이옵니다.
대통령님의 뿌리가 언제 어데서 생겨났는가 한 번 찾아보시고, 지금 어데 그 뿌리가 얼마나 자라났으며 또한 튼튼한가 재확인하시옵소서. 다음 우리 마음속으로 바람의 방향을 느껴서 시대의 국제적 사조를 깨달아 온 국민의 새로운 방향과 올바른 생활, 생명을 불어넣어 주어야 우리 민족은 살아나며, 국가는 남북이 통일 되고, 온 인류는 참다운 자유 평등의, 서로 사랑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세계 평화가 이 지구상에 이루어 질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생각을 쉬고 올바른 안이비설신의가 생기어 이 모든 정치인과 종교인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칼자루를 잡고 있는 권력자가 먼저 실천하는 데에서 만이 가능하다는 것이옵니다. 종교인은 막다른 골목에 다가서면 위대한 힘이 나오지만 우선 당장 권력층부터 실천하면 종교인은 보조를 맞추어 다 같이 대작업을 성취하게 될 것이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합니다. 나는 외국 생활 20년간 하루도 나라를 잊어버린 적이 없사옵니다. 누가 정권을 잡든 그것은 상관없이 잘 되기만 매일 매일 같이 염원한 것이었습니다. 보시오. 우리나라의 녹을 먹고 장성까지 되었던 최홍희, 최덕신 등 자기 태극기를 저버리고 빨갱이기를 찾아가 조조 노릇하는 개 노릇은 나는 하기가 싫습니다.
대통령, 그래서 참다 참다 이 글을 올리오니 넓으신 마음으로 동참하시어 하루 속히 도인을 찾아 배알하시어 도덕법을 배우고 나아가 나의 인간성을 되찾아 만백성의 대광명등(大光明燈)이 도어 주시옵소서. 온 국민은 그 등불 빛을 좇아 따라갈 것이며 민족은 단합이 되어 남북통일 세계 평화가 멀지 않아 성취될 것이옵니다. 그러면 우리 대통령께서 내내 건승하시고 모든 소원이 하루 속히 성취되시어 민족 단합, 남북통일, 세계 평화가 성취되옵기 손 모아 축원하오며 이만 각필하나이다.
한강수는 여전히 수백 년 흘러가고 삼각산은 예나 지금이나 구천에 우뚝 솟아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안녕하시옵소서.
1982년 8월 25일 미국에서
나라를 사랑하는 해동사문(海東沙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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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두
거울은 무한히 깊은 평면의 세계다. 그 속에 비친 나는 마치 곡두처럼 무한한 공간을 떠돌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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