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잘 아는 분이 올 초에 몽골리안 그릴을 개업했습니다. 한인들은 별로 안 하는 비즈니스인데, 원체 이 분이 그런 방향으로는 귀재라 할 수 있는 분이고, 또 시애틀이나 그밖의 서북미 지역이 이런 음식들에 대해 상당히 '관대한' 곳이라...
몽골리안 그릴이란 게 상당히 간단합니다. 얇게 썰은 고기, 그리고 야채 등을 커다란 전기 화덕 위에서 소스를 넣고 볶아 내는 겁니다. 이곳에 제가 하나의 애착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 이곳의 와인 판매 전략 때문일 겁니다. 다른 와인 안 팔고, 오로지 콜럼비아 크레스트만을, 그것도 투바인 씨리즈의 카버네, 멀로, 샤도네 딱 3종만을 판매하는데, 판매가가 병당 10달러, 잔으로는 3달러입니다. 이러니 괜히 제 와인 가져갈 필요가 없이, 여기서 이 와인을 사 마시면 되는 겁니다.
오랫만에 가게 일 뺀 날에, 동서네 식구와 저희 식구가 함께 식사를 같이 합니다. 고기와 야채를 듬뿍 담아 화덕으로 가지고 가면, 두 명의 요리사가 이를 볶아 줍니다. 이중 한 분은 몽골에서 살다가 이주하신 고려인이고, 한 분은 진짜 몽골인입니다. 이들이 개발해 낸 소스가 참 색달라서, 다른 몽골리안 그릴에서 먹는 맛과는 한참 다릅니다.
이 집은 상당히 음식에 신경을 썼습니다. 그냥 몽골리안 그릴로만이 아니라, 여기에 사이드로 빵이나 밥을 놓고, 혹은 멕시칸 빵인 토띠야를 놓고 취향대로 즐길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또한 고기나 생선류도 모두 Costco 에서 구입해, 음식의 품질만큼은 믿을 수 있다는 것도 이 집의 자랑입니다.
문제는 이 집이 장사하기에는 좀 외진 곳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인장 말씀으로는, 적당한 렌트비에 적당한 장소를 찾기가 어려웠다는 것이지요. 최근 이쪽에서 불고 있는 부동산 광풍을 그냥 전해주는 듯 싶었습니다. 미국도 요즘 부동산 가격이 장난 아닙니다. 하긴 제가 살고 있는 게딱지 비스무레한 집도 상당히 그 가격이 올랐다고 하니...
어쨌든, 이 집은 그런 약점을 이기기 위해 음식의 질과 맛, 양으로 승부한다고 하니 두고 볼 일입니다만... 벌써 입소문은 넘치고 있는 모양입니다. 여기에 이 분의 장사 마인드가 장난이 아닙니다. 몇 개 주유소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일정 정도 넣으면 공짜 점심티켓을 주는 식의 적극적인 공세를 펴니 장사는 번창이 되고... 일단 음식의 질만 확실하다고 소문나면, 그 때부터는 확 피겠지요.
우선 고기와 야채를 잘 볶아 주셔서, 여기에 콜럼비아 크레스트 멀로를 먼저 해 봅니다. 이런 볶음 야채고기 요리에 멀로는 괜찮은 궁합인듯. 문제는 형님과 제가 뭐 몇점 고기 먹기도 전에 와인부터 모두 작살을 내 버렸다는 겁니다. 아내가 자기에겐 한 잔도 안주며 다 마셔치우는 남자들을 원망하듯 바라봅니다. 재빨리 이번엔 카버네 소비뇽 한 병을 더 주문합니다. 이번엔 고기를 볶을 때 치즈를 넣어 달라고 해 봅니다. 필리 스테이크 샌드위치를 만들어버릴까, 혹은 전병에 싸 먹을까 하면서 머리를 굴려봅니다. 멕시코식으로 또띠야에 싸서 먹어 봅니다. 그리고 카버네 소비뇽 한 잔. 이번엔 아내에게도 한 잔을 권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하는 식으로 바라보는 어부인의 그윽한 눈길... 술꾼의 아내는 이미 남편의 악영향을 받은 지 오래라는 사실이 확 드러납니다.
흠, 치즈가 들어가서 볶인 야채 고기, 그리고 콜럼비아 크레스트 카버네의 어울림도 매우 좋습니다.
즐거운 식사가 끝나고, 모처럼 우리 식구들은 바닷가로 산책을 나갑니다. 평화로운 퓨젯사운드 레돈도 비치(캘리포니아에도 같은 이름의 비치가 있습니다만, 여기와는 완전히 느낌이 다릅니다)엔, 저녁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과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연인이며, 낚시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초여름 기운이 완연한 시애틀의 그림처럼 느껴집니다.
지금 이 순간을 그냥 가슴에 담아두고 싶습니다. 가슴이 화악 트이는 느낌입니다. 지호와 지원이와 바닷가를 따라 깔린 나무로 된 산책로를 함께 걷고 뛰면서, 또 모처럼 함께 한 형님과 처형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스트레스를 화악 풀었습니다. 아이들도 집에 와선 행복한 모습으로 뻗었습니다. 저요? 어떻게 뻗었는지도 모르게 뻗었다간, 아까 일어나 이렇게 그 순간을 회상하고 있는 중입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일 나가렵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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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맛있는 음식, 괜찮은 와인, 가족과 함께한 바닷가에서의 시간...부럽습니당~
우와 바닷가 쥑이네요, 외화에서 많이 본듯한 항구의 모습...
헉.. 투바인씨리지가 만원이라니 ㅜ.ㅜ 여기는 2만원이상인디 ㅠ.ㅠ
님은 정말 영화처럼 사는것 같습니다.^^
저두 잠깐 씨애틀에 있었는데...지금 씨애틀 날씨 너무 좋죠? 아.. 여유로운 님의 모습 너무 부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