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sung Kim
1일 ·
어떤 의사가 KTX 정차역 증가에 빗대어 광역외상센터 설치를 비판한 글이 제법 공유가 되는 것을 봤다. 광역외상센터의 설치야 내가 문외한인 부분이니 그 분의 논리가 어느 정도 합치된다고 생각할 수밖에는 없었는데, 나는 이 분의 논리 중 하나가 좀 의아했다. "KTX 정차역이 늘어날 수록 소수는 이득을 보겠지만 다수는 피해를 입는다." 라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서울-부산간 KTX의 주파 속도가 느려지면 정확하게 누가, 어떤 피해를 입는가? 당연히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사람들은 다소간의 시간 손해를 입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KTX 라는 열차가 서울에서 부산만 빠르게 왕복하라고 있는 열차일까?
아니다. 실제로 국토교통부의 철도통계를 보면, KTX 전체 수송실적 중 운행거리 350km 이상 450km 이하, 즉 서울-부산을 오가는 사람의 숫자는 월별로 약간 다르지만 전체 수송인원실적의 1/4 정도에 불과하다. 예컨대 2022년 12월의 경우 전체 470만 7천명의 수송실적 중 350~450km 수송인원은 118만 5천명 정도였다. KTX-산천을 포함하면 이 비율은 더 줄어든다.
실제로 역별 승하차 실적으로 따져도 차이가 있는 것이, 2023년 4월 KTX 승하차객은 총 889만 4천명이었는데, 이 중 서울역 승하차객은 103만 8천명이다. 실제로 부산역을 제외한, KTX 경부선 연선에 있는 다른 정차역을 모두 합치면 353만명 정도가 나온다.
다시 묻자. 정말로 소수가 이득을 보고 다수가 손해를 보는가?
늘 어떤 사람들에게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구리디 구린 계급의식이야 하루이틀 일이 아니나, 서울 사는 사람이 부산 내려갈 때 시간 더 오래 걸린다고 '소수의 이득으로 인한 다수의 피해' 라고 말하는 말도 안 되는 논리는 너무 처음 보는 것이라 아연실색했다. 그리고, 서울 사람들 부산 빨리 가라고 KTX 서대동부만 정차하면 높은 확률로 KTX 는 적자다.
왜 그럴까? 앞서 봤듯이 중거리 수송실적이 제법 되기 때문이다. 만약 경부선을 서대동부만 운영하겠다 하면 같은 논리로 KTX 호남선도 용오익광(용산/오송/익산/광주송정)만 운영해야 한다. 이 둘을 합치면 대략 889만명 중에 667만명 정도를 수송하게 된다. 그럼 여기서 잘려나간 매출은 누가 책임지는가?
한번만 더 묻자. 정말로 소수가 이득을 보고 다수가 손해를 보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사람 말대로 KTX가 서대동부만 정차하는 그 상황이야말로 소수의 이득을 위해 다수가 희생하는 것이다. 당장의 KTX 운영실적은 반 토막 날 것이며, 저렴한 운임으로 무궁화호를 유지하는 것 때문에 만성적 적자에 시달리는 코레일은 KTX 적자까지 얹어져서 영국국유철도 꼴이 날 것이다. 그럼 그 돈은 무엇으로 메꾸나? 다 국민 세금이지. 그때는 또 '혈세' 운운하면서 공기업 다이어트를 주장할 분들 수두룩하지 않은가?
모든 사회 운동이 그렇고 모든 논리가 그렇듯이. 내가 불편하고 내 기분이 안 좋고 내 마음이 다쳤다고 해서 그게 다수의 손해가 아니다. 서울 사는 양반님네들이 부산 내려갈때 100분 걸릴게 150분 걸린다고 그게 다수의 손해가 아니라는 뜻이다.
정확한 사실을 잘 모르겠으면, 내 기분에 따라 그 현상을 정의할 생각을 말고 그냥 다른 비유할 거리를 찾아야 한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주변 오만 일을 다 정의하고 비평하기 바쁜 한동훈 같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그런 자들에게 국정을 맡긴 결과가 지금 어떠한가?
낡고 고민이 없는 논리에서 출발하면 그것이 뒷받침하는 본론이 아무리 설득력이 있다고 한들 불쏘시개만도 못한 무엇이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 글을 퍼다가 역시 지방자치제가 잘못됐다며 성토하는 사람들인데 그냥 웃음만 나온다. 본인 마음에 안 드는 것 욕하려고 무엇이든 가져다 쓰면서 평소에는 남들 진영논리 지적하는 사람들이 그러고 있어서 더욱 웃겼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논리들이 횡행하는 세상에 무슨 발전이 있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그릇된 계급인식에서 나온 부실한 논리는 결국 모두를 각자도생의 길로 인도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