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살던 동해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고 전망 좋았던 아파트는 임대 아파트였다.
나는 부동산을 극히 싫어 한다.
내 앞으로 물건을 사는 것도 혐오한다.
나는 亭主形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遊牧民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旅行者이고 싶다.
오늘은 운동을 조금 일찍 시작했다.
마지만 발한 동사무소에 오니, 벼룩시장이 열리고 남은 흔적이 있다.
묵호는 정주형 도시가 아니었다.
전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모여든 뜨내기가 대부분이었다.
비록 지금은 늙어서 어쩔수 없이 묵호에 머므르고 있지만, 언제라도 떠나도 아깝지 않는 사람들이다.
벼룩시장을 열어 도시를 흉내 내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비록 어쩔 수 없이 주저앉은 묵호이지만, 이제 정착을 해야 하지 않은가.
비록 젊을 때 시골을 떠나, 묵호에 왔지만, 여기가 당신들이 뼈를 묻고 마지막 삶을 정리할 곳인 것이다.
언젠가 어느 선원과 아래와 같은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선원이 말했다.
“옛날이 좋았어요. 그때는 오징어 배가 들어오면 개도 돈을 물고 다녔는데.........고향에서 사고 치고 도망 온 것이 묵호인데, 오징어 배 한번 타고 갈려고 했는데, 이렇게 평생 눌러 앉을 줄 몰랐어요.”
내가 말했다.
“나도 이곳에 인터넷 수산물 쇼핑몰 장사하러 왔다가 강릉에서 이사 오고 말았어요.”
이곳 묵호항에는 외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돈을 벌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때로는 배 타러 왔다가,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 왔다거나, 심지어 불륜을 저지르고 고향을 떠났다거나, 구로동 공장에서 공장장 때려누이고 온 사람도 있고, 태백 탄좌에서 역시 그렇게 도망 나온 사람도 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강릉고를 퇴학을 당하고 이곳 묵호 고등학교로 전학을 왔었다.
이곳 묵호항은 전부 실패한 인생의 사람들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곳 사람들은 항상 여행자로서 머믈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들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여행자의 조건은 삶에 대해 실패를 하고 항상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곳 동해시 구 도심 묵호항 주변의 묵호동 발한동 부곡동 일대는 가로등이 많다. 특히, 묵호항 산동네는 더욱 심하다.
힘든 비탈길 골목을 오르내리며 바다에 나가 목숨을 담보로 그들의 힘든 삶을 여기까지 살아 온 것이다.
30년 전 묵호에는, 꽃들이 많았다. 오징어배 선원들에게 술과 몸을 팔던 그녀들, 그녀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리고 그들은 어디로 갔는가.
그렇게 살다가 떠나간 사람도 있고, 이렇게 여전히 묵호항을 지키는 사람들도 있다.
떠나간 사람은 떠나간 대로 지나간 여행자였고, 남아 있는 사람은 여전히 묵묵한 여행자 일뿐이다.
선원의 말은 계속 되었다.
“자식들 맘대로 하라 그래요. 돈을 올리든 말든, 짜르든 말든, 망하던 말든, 지 맘대로 하라그래요. 그 힘든 시절도 잘 살아왔는데, 나쁜 놈들은 항상 나쁜 짓만 하고 불쌍한 사람들은 항상 당하기만 하는 것이 세상 법칙이죠.”
내가 말했다.
“맞아요. 여당 야당 국회에서 아무리 떠들어봐야 헛 지랄이죠. 어차피 세상는 지들 마음대로니까.”
“우린, 그저 살아가면 되요. 과거 처럼요.”
그도 역시 묵호의 여행자였다. 여행자는 미련이 없다. 그저 스쳐 지나가면 그만이다. 불만도 없다.
묵호로 이사를 와서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가장 옳은 판단을 한 것이 이곳으로 이사를 온 것이고, 가장 그른 판단을 한 것이 운전을 배우고 차를 산 것이다."
아내는 의아했을 것이다.
묵호로 이사 오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대가 없었던 아내이지만 왜 굳이 교통이 불편한 이곳까지 들어와야 하는 가에 불만을 나타냈던 아내였기 때문이다.
평소 내가 생활 속에서 보여주었던 생태적 신경질(?) 때문이라도 나는 아내가 나를 이해 할 줄 알았다.
나는 집안일에 대해서는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는 편이지만 음식물을 비롯한 쓰레기 처리에서는 아내를 심하게 감시하고 잔소리를 많이 했었다.
아마, 내 마음속 어딘가에 화석처럼 남아있었던 가부장적 기질이 그때 마음껏 발휘되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도시에 살면서 우울했었다.
그래서 택한 곳이 묵호였다.
나는 항상 들떠 있는 여행자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언젠가는 묵호를 떠날 것이다.
그것에 대한 아쉬움을 글쓰기로 대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