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사(山寺)의 여름
수년 전 모스크바의 한 식당 벽에서 '여행은 걸어 다니는 책이다' 라는 문구를 봤었다. 도보여행을 하다 보면 그 말에 공감을 할 때가 많은데, 이번에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가 또 한권의 책을 읽는다는 의미에서 호남 북부지역에 소재한 사찰(寺刹)을 순례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그 지역은 이전에 가보지 못한 데다, 삼복 더위를 식히려면 산사만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윤달은 아니지만 삼사순례(三寺巡禮)를 한다는 기분으로 일단 김제의 금산사, 장성의 백양사, 고창의 선운사로 정하고 길을 나섰다. 그러고 보니 공교롭게도 조계종 교구 본사에 해당하는 사찰들이었다.
전주로 가는 버스 안, 이번 여정을 머리에 그리면서 불교(佛敎)는 어떤 종교인가 생각해본다. 글쎄, 종교(宗敎)라 함은 신이나 초자연적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의미를 추구할 지인데, 인간으로 해탈하여 열반에 드신 석가모니를 신이나 절대자라 하기에는 석연치가 않고, 그 핵심인 공사상(空思想)으로 볼 때, 신에 대한 절대성과 복종성과는 거리가 있어, 오히려 앎이나 지혜 자체를 추구하는 철학(哲學)의 한 분야로 보는 것이 일견 타당할 것 같다.
하지만, 신의 정체성이나 신앙의 구속성이 타종교에 비해 느슨하다 하더라도 부처님과 교리, 그리고 신도가 엄연히 존재하는 한 종교성을 부인할 수 없고, 타종교의 신학 체계도 철학분야에서 포괄적으로 다루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종교(宗敎)와 철학(哲學)을 일거에 분리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어쨌거나 왕자의 신분을 내려놓고 고행의 길을 택한 석가모니께서 다다른 해탈의 경지가 어떠한지 궁금하기는 하다.
2. 하심(下心)의 순례길
전주와 김제에 걸쳐있는 모악산에 위치한 유서 깊은 금산사(金山寺)의 압권은 단연 국보 62호인 미륵전(彌勒殿)이었다. 766년 진표율사가 조성한 후, 조선 인조 때인 1635년 복원한 목탑형 목조건물로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3층의 외관과 팔작형 전통 기와형태로 그 웅장함과 균형미를 과시하고 있었다. 외부 각층에는 1, 2, 3층에 각각 자비보전(慈悲寶殿), 용화지회(龍華之會), 미륵전(彌勒殿)의 편액이 걸려 있고, 통층으로 된 내부에는 높이 12m의 석고미륵여래입상을 비롯한 미륵삼존불이 모셔져 있어 그 위용을 더하고 있었다.
한편 이곳 금산사에는 935년 후백제 견훤이 아들 신검의 쿠데타로 왕위를 빼앗기고 유폐를 당했던 역사가 있다. 3개월후 견훤은 이곳을 탈출하여 고려의 왕건과 합세하여 신검을 격퇴한 후, 후백제를 고려에 넘겨 준다는 쓸쓸한 이야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었던 모양이다. 조선의 태종이 그랬던가 '권력은 호랑이 등에 탄 것' 이라고. 그래도 그는 생전에 왕위에서 내려왔으니 대단한 캐릭터임에는 틀림없다.
사찰 순례 두 번째, 일 년 중 가장 무덥다는 8월초인데도 불구하고, 내장산 국립공원내 백양사(白羊寺)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시원스런 장성호의 물빛, 계곡을 따라 수 킬로미터 이어지던 단풍나무 숲길, 산정에 우뚝 솟은 백학 봉우리들로 인해 단아한 백양사 법당들이 자연에 편안히 안긴 듯, 그 단순함과 소박함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마당 한편에 높이 5~6m 정도의 기품 있는 매화나무가 백양사의 상징인 양 의연히 자리 잡고 있었는데,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을 기리자는 뜻으로 고불매(古佛梅)로 부르고 있다니 새삼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문득 아잔 브라흐마라는 호주 출신의 승려가 쓴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에서 본 '벽돌 쌓다가 벌어진 일화' 가 생각난다. 이 책의 저자가 절을 짓는 과정에서 스스로 쌓은 벽돌 2장이 어긋나 있는 것을 나중에 발견하고 꽤나 실망하였으나, 더없이 훌륭하게 쌓아올린 나머지 998장의 벽돌을 인지하는 순간, 아름다움은 결국 마음을 얼마나 내려놓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사람은 누구나 2장의 잘못된 벽돌쯤은 가지고 있는 법!
세 번째 사찰 고창 선운사(禪雲寺)로 가는 길은 의외로 힘들었다. 전라북도 서해 끄트머리에 숨어 있어 열차나 자동차도 없이 도보와 버스로 가기에는 시간이 잘 맞지 않았는데, 그럭저럭 선운산 도립공원으로 들어갔다. 구름 속에서 참선 수도하여 큰 뜻을 깨친다는 참선와운(參禪臥雲)에서 유래되었다는 선운사는 고향의 뒷동산 같은 푸근한 느낌의 사찰이었다. 선운사를 에워싸고 있는 산들이 대부분 해발 삼백미터 내외에 불과하지만, 단풍나무를 비롯, 동백 숲, 꽃무릇, 그리고 녹차, 복분자 등등 갖가지 식물들로 넉넉한 산자락을 수놓고 있었다.
법당 건물들은 대웅전이 내부수리 중이라 참배할 수 없었을 뿐, 영산전, 팔상전, 관음전, 지장보궁 등에 여러 불상들이 모셔져 있었는데, 대웅전에는 다른 사찰과는 달리 석가모니불 대신 법신불(法身佛)인 비로자나불을 가운데에 두고 좌우에 아미타여래불과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다고 했으며, 지장보궁의 금동지장보살좌상은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보살님 스스로의 원력으로 다시 되돌아 온 사연이 있다고 했다.
마침 법당 마당에는 새만금 잼버리 대회에 참가한 일부 외국 스카우트들이 범종각에 모여서 한 스님의 타종 시연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리해 보면, 이번에 답사한 세 사찰은 모두 가을에는 멋진 단풍으로 이름난 곳이나, 여름철에도 그림 같은 자연과 어우러져 특유의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아름다움을 선보이고 있었다. 일주문을 지나 숲길을 따라가다 천왕문에 들어서면 바로 법당 마당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전각들은 이 마당을 중심으로 두르듯이 배치되어 있었다. 마치 시골 마을 어귀에 들어섰을 때와 같은 친근한 모습이었으며, 주변 꽃과 나무들의 조화와 함께 그 편안한 분위기에 시간도 마음도 정지된 듯 했다.
3. 공(空)의 양면성
사찰 순례를 하다보면 아무래도 불교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불교가 내세우는 공(空)의 핵심은 삼라만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諸行無常), 모든 이치에 고정된 '나' 라는 존재는 없는데(諸法無我), 인간의 모든 번뇌는 연기(緣起)에 따른 업(業)의 끝없는 순환에 있으니(一切皆苦), 이에서 벗어나 해탈(解脫), 열반(涅槃)에 이르는 경지를 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서양에서도 존재에 대한 안티테제(anti-these)로서의 허무(虛無)를 논하는 맥락에서, 니체 같은 철학자는 초월적 가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 필연적으로 영원회귀(永遠回歸)와 같은 허무주의에 봉착한다고 보고, 이를 타개할 수 있는 동력으로 자기 극복이나 힘에의 의지를 제시하고 있으나, 아쉽게도 이에 대한 보편적 윤리를 발견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반해 불교에서는 연기(緣起)에 의한 인과응보를 통해 인류보편의 자비(慈悲)나 연민(憐憫)을 설파하고 이의 방편으로 선업(善業)을 쌓을 것을 유도함으로써 인간 사회에 대한 다소 희망 섞인 기대를 하고 있다.
한편, 불교의 공사상(空思想)과 연기론(緣起論)에 기반한 사성제(四聖諦)나 팔정도(八正道) 등의 수행방법은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인격을 도야하는 데는 좋으나, 기성의 가치나 규범을 무조건적으로 부정하거나 '어차피 인생은 뜬 구름 같은 것' 으로 체념한다면, 오히려 인간 고유의 존엄과 가치를 상실할 수 있다.
일각에서 횡행하고 있는 포스트 모더니즘이나 PC 흐름에서 보듯 기존 사고가 부정되고 수천년을 이어왔던 기독교적인 가르침이 흔들린 이면에는 근대 과학문명의 무절제한 확산으로 인한 신(信)과 지(知)의 분열이 있었다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4. 난해한 번뇌(煩惱)
오늘날 우리는 정치 외교, 경제 금융, 사회 문화 등 전반적인 메카니즘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매트릭스 사회 속에서 풀어야 할 많은 과제들에 직면해 있다.
특히 과학문명의 발전으로 엄청난 부(富)를 움켜진 소수의 엘리트 그룹들은 이러한 과제에 대응하여 자연히 세상을 그들의 방식대로 유지 통제하려는 유혹을 쉽게 외면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최근 거론되고 있는 기후변화나 팬데믹, CBDC, 메타버스, 트랜스휴머니즘 등의 어젠다 역시 분명 인류가 고민해야 할 사안이지만, 그 운용에 따라서는 자칫 인간 본연의 권리에 반하여 오용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이 만든 영화 '언더그라운드(1995)'를 떠올려 본다. 2차 세계대전과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내전을 거치면서 겪는 유고슬라비아의 명멸의 역사를 풍자한 이 블랙 코메디 영화는 정치적으로 세뇌된 국민들이 자신이 사는 세계 외에 별도의 세계가 있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동안, 일부 극소수의 사람들은 두 세계를 넘나들면서 이득을 챙기기도 하지만, 실상이 모두 밝혀진 이후에는 사회 전체가 새로운 현실 세계에 대한 면역력(免疫力)을 잃어버려 또다른 내부 이전투구(泥田鬪狗)에 희생된다는 서글픈 내용을 담고 있다.
만약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누군가 교묘한 방법으로 정부와 언론을 장악하고, 대중들을 공포(恐怖)와 과학(科學)의 이름으로 호도하거나 또다른 이분법(dichotomy)에 의한 통제를 획책한다면, 무도덕한 자의식 덩어리(amoral ego)에 불과한 인간의 개인성(個人性)은 더욱 길들여지고(institutionalized), 다양성과 창의성을 상실한 전체주의(totalitarianism)를 위한 도구로 전락할 지도 모른다. 이를 말해주듯, 조지 오웰(1903 ~1950)의 소설 '1984' 에서 오세아니아 진리부에 근무하던 윈스턴 스미스도 결국 '전쟁(戰爭)은 평화, 자유는 예속(隸屬), 무지(無知)는 힘' 이라는 당의 슬로건을 인정하고 빅브라더(big brother)를 사랑하게 된다.
사실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으로 사는 것이 우리의 로망이라 하더라도, 어차피 인간이 레밍(lemming)의 습성을 갖고 있는 사회적 동물이라면, 이미 짜여진 세상의 별종(別種, outlier)으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갈수록 정교해지는 스마트폰 알고리즘의 위력을 감안하면, 나 역시 현실에 대한 모순을 부지불식간에 받아들이는 자기최면(自己催眠, double think)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렇지만 결국은 마음먹기 나름 아니겠는가? 아이즈 와이드 셧(Eyes wide shut)! 눈 한번 질끈 감으면 유토피아든 디스토피아든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이치에서는 마찬가지니까~
아무튼 번뇌를 끊는 해탈에의 길은 멀기만 하다. 부처님! 어디 지름길 없습니까?
'보이고 들리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 세상의 진실은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금년 8월 여행 명상록입니다)
첫댓글 금년에 게재된 여행명상록(trip meditations)을 소급해서 올리고 있습니다만, 글의 주제와 관련해서 불가피하게 역사나 철학적 사고 등에서 그 해석이 다르고 난해할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