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삯은 사망”
본문 말씀 ; 롬 6:23
인도의 어느 선교사 가정에서 있었던 일을 소개합니다.
어느 날 아침에 어린 딸 아이가 정신없이 뛰어 들어오더니 흥분된 목소리로 저쪽 풀 속에서 아주 예쁜 보석 목걸이를 발견했으니까 빨리 좀 와서 보시라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아버지가 깜짝 놀라서 달려가 봤더니 산호 빛을 띤 독사였습니다. 그것에 한번 물리기만 하면 즉사하는 무서운 뱀이었던 것입니다. 이 아이는 아침에 이슬 속에서 반짝 반짝 하는 것이 아마 보석처럼 보였던 것 같습니다. 만일 아빠에게 말하지 않고 여기에 웬 보석이 있나 하고 가서 잡았다면 생명을 잃는 비극이 일어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 오래 전에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간증을 들은 일이 있는데 금이나 은을 녹여서 보석을 만드는 가정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부모님들이 집을 비우는 사이에 어린아이가 이것저것 손을 대다가 어느 유리병 뚜껑을 열고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마셔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금이나 은을 녹이는 화공 약품이어서 속에 창자가 녹아 내리기 시작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건진 일이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보기에는 아름답고 멋있고 재미있게 보이나 잡으면 죽게 되는 것과 보기에는 아주 맛있을 것 같은데 먹으면 죽는 독극물과 같은 것이 바로 ‘죄’라고 하는 물건입니다.
요즘에는 곤충 잡아먹는 식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옵니다. 어떤 식물은 아주 얌전하게 있는 것 같은데 긴 주둥이 같이 생긴 끝에 달짝지근한 것들이 있어서 곤충들이 그 꿀을 찍어 먹으려고 들어가다가는 죽음의 함정으로 쏙 들어가 버립니다.
인류역사는 죄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첫 번째 부분은 창1-2장에 하나님이 처음에 사람을 만들었을 때의 에덴 동산 시절입니다. 그때는 죄가 없었습니다. 사람은 거룩하고 하나님과 좋은 관계가 이루어지고 서로 사랑하고 정말 죄 없는 사회요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창3장에 사람이 마귀의 유혹을 받고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파기시킴으로써 죄의 역사는 시작이 되었고 계20장에 마귀가 잡히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 이어지다가 계21-22장에는 죄 없는 세계가 펼쳐집니다.
사도 바울은 죄와의 갈등 속에서 언제나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하면서 그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면서 살았습니다.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감옥에 갔다 온 일이 없다 할지라도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다 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계21-22장에 주님이 오시면 그때는 자유로워집니다. 죄의 유혹도 갈등도 고민도 없어지게 됩니다.
이같이 인류 역사는 범죄한 이후부터 죄의 역사가 계속됩니다. 그래서 죄를 가르치는 학원이 없어도 인간은 죄를 짓는데는 능숙해서 거짓말을 하고 도적질도 하며 폭력도 휘두르는 등 죄의 본성이 어렸을 때부터 나타납니다.
그런데 오늘날처럼 죄가 선이 되고 죄에 대한 분별력과 저항력이 사라져 버린 때가 과거에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떻게 보면 온 세계가 죄의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 들어가고 있으면서도 잘 모르고 있을 정도로 아이들이 사람을 쉽게 죽이고서도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즐겨하는 게임기 속에 두들겨 패고 죽이고 하는 것들이 머리 속에 입력이 되어 있어서 우리의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여 그런 나쁜 행동들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죄가 선처럼 둔갑해 버렸습니다. 세상이 경제라는 틀 속에서 돈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다 보니 돈 잘 버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남편이 퇴직하고 나면 이제 능력이 없다 하여 이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돈이 중심이 되고 능력이 되면 불행한 것입니다.
우리 한국도 지금 상당히 영적으로나 윤리와 도덕적으로 위험 수위에 빠져들어 가고 있습니다. 성도들까지 그러한 삶 속으로 다가서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딤후3:1-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이미 1900년 전에 마지막 때의 사회 현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그래서 참된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 것입니다.
그리고 도박이나 술 담배 마약등으로 자기의 인생을 파멸케 하는 젊은이들이 점점 더 많아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완전하게 의를 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예수 안에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그러나 살아가는 동안 죄라는 것은 피해야 될 것이고 싸워야 될 요소지 기쁘게 맞이할 일이 아닙니다. 왜 그러냐면 죄가 가져다 주는 고통이 크기 때문입니다.
삼손도 기생집에 드나들다가 두 눈이 뽑히게 되었고 다윗도 범죄하고 난 다음에 일생동안 그것이 올무가 되었습니다.
죄는 자기의 건강을 파괴시킵니다. 대만에 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약 성분이 들어 있는 삥랑이라는 것을 껌 씹듯이 씹고 다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것을 없애려고 하지만 폭력 집단들의 압력 때문에 건드리지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사단이 우리를 유혹할 때 네 가지의 과정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누구나 다 하는데 뭘 그러냐 그러다가는 너 굶어 죽는다고 유혹하여 타협주의로 만듭니다.
두 번째는 아주 조그마한 것인데 뭘 그러냐면서 조금씩 발을 들여놓게 하여 다 점령해 버립니다.
세 번째는 너는 아직 젊은데 젊은 날 동안 멋있게 살아야지 하고 향락에 빠지도록 부추깁니다.
제가 헌 책방에서 ‘악마의 바이블’이라는 책을 사다가 봤더니 ‘자기 속에서 끌어 오르는 욕망을 자제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왜 인간의 본능을 자제하려고 하느냐 그것은 살려야 하고 성경은 자제하라’고 합니다. 정말 해야 될 것과 안 해야 될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됩니다.
네 번째는 딱 이번 한번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한 잔을 딱 하고 나니까 이 속에서 끌어들이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취할 정도로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 말에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먹고 그 다음에는 술이 술을 먹고 그 다음에는 술이 사람을 먹고 요즈음에는 하나 더 붙어서 술이 마약을 먹는다고 하는 참 안타까운 시대입니다.
계18장을 보면 이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심판 받는 내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심판 받는 죄목이 세 가지입니다. 물론 다른 곳에 있는 내용을 하나 더 보태면 네 가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계18:2절에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제가 지난번에 태국에 갔다 오면서 아시아에 특별한 분야들을 소개하는 비디로를 봤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국을 소개하는데 저 같으면 한국은 교회가 많다고 소개했을텐데 아쉽게도 그 비디오에는 우리 한국에 무당 점치는 곳이 많다고 소개가 되어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지 최첨단이 되어 컴퓨터 앞에서 점 쳐주고 사주카페라는 곳이 있어서 커피 마시면서 점을 봅니다.
아주 현대인들의 구미에 맞는 분위기 속에서 점보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또한 주님께도 부탁하고 혼자 도와주는 것보다도 그냥 부처님도 도와주면 좋겠고 성황당님도 도와주면 좋겠고 삼신 할머니도 도와주면 좋겠고 또 쪽집게 도사를 찾아가기도 하니 정말 세상이 귀신의 처소가 되고 우상의 세계가 되고 있습니다.
과학과 지식이 발달할수록 그런데서 벗어나야 되는데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일본 같은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말하지만 영적으로 보면 얼마나 원시적인지 모릅니다. 여우나 쥐의 모양을 만들어 놓고 빌고 어느 부족은 똥의 모양을 만들어 놓고 자기들의 신으로 섬기는 데도 있다고 하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두 번째는 계18:3절 전반절에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가정의 가치를 상실하고 많은 사람들이 불륜의 모습들 속에서 방황하고 인터넷 채팅을 통해서 가정이 파괴되는 경우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에디슨은 유혹을 어떻게 이기느냐는 질문에 나는 유혹을 받을 시간이 없다고 했습니다.
마귀가 유혹을 하려고 와 보니까 자기 일에 몰두하느라고 유혹할 틈을 얻지 못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어떤 젊은이가 임금에게 찾아와서 ‘왕이여 제가 어떻게 하면 이 죄의 유혹이 많은 세상에서 유혹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랬더니 그 왕이 ‘컵에다가 물을 따라 줄테니 이 물 컵을 들고 성을 한바퀴 돌되 가다가 물을 조금이라도 쏟으면 네 뒤를 따라가는 군사가 네 목을 칠 것이다’ 이 사람이 바들바들 떨면서 좌로나 우로나 쳐다볼 겨를이 없이 돌고 오매 왕이 묻기를 ‘너 성을 돌아오면서 무엇을 봤느냐’ ‘전하 물이 떨어지면 목이 달아날 것 같아서 물이 안 떨어지게 하느라고 신경 쓰다 보니 아무 것도 못 보고 왔습니다.
’ 왕이 ‘바로 그렇게 하면 유혹을 받을 이유가 없다’ 그렇습니다. 자기 사명의 길을 걸어갈 때 주위 환경이 어떻든지 간에 똑바로 앞만 보며 열심을 가지고 달려가야 합니다.
또 유혹을 피해서 도망갈 줄도 알아야 하고 때로는 뜻을 정해서 대적할 줄도 알고 때로는 눅18:9-13절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자기의 약한 것을 부둥켜안고 울 줄도 알고 때로는 손해볼 줄도 알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기 위해 힘써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는 계18:3절 후반절에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이런 속에서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을 세상은 미워하고 핍박을 합니다.
성도 여러분들 우리는 물론 우리 힘으로 온전한 의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아픔과 괴로움도 가지고 있지만 우리의 부족함을 다 씻어 주시려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의인입니다.
구원받은 의로운 사람들임을 믿으시고 죄악에 깊이 빠져 들어가는 이 시대 속에서 선악을 잘 분별할 줄 알아 대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이 시대의 싸움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이 영적인 싸움 속에서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