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불운이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이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 그런 불운으로 죽어 가고 있다 "
< 알베르 카뮈>
천년의 전설을 품은 것이 있다. 경기도 양평 용문사에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927~935)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떠나가는 순간 심었다는 전설의 은행나무가 있다. 그와 겨루면 인간의 유통 기한은 너무나 짧다. 오늘 태어난 아기조차도 백 년 후, 지구 위를 걸어 다닐 확률은 적기 때문이다. 천년의 세월은 인간의 전생과 현생 그리고 내생까지 더해도 나무 하나 따라가지 못한다.
은행(銀杏) 나무는 동아시아 원산의 나무로, 자웅 이주 즉, 암수 다른 몸이다. 가을이 되면 잎사귀가 샛노랗게 물들어 아름답고, 병해충에 강한 특징 때문에 가로수가 되는 영광의 고통을 받았다. 1문 1강 1목 1과 1 속 1종에 속하는 드문 현존 식물이다. 소위 말하자면 All 1등급의 SKY 대학교 입학 쌉 가능 나무이다. 돼지 엄마들이 좋아하는 올 1등급 학생이다.
지질학상 고생대 페름기부터 자랐고 대멸종에도 버텨온 뚝심 있는 나무이다. 그런 은행나무가 위기에 달했다. 이제 수컷만 심는다고 한다. 금슬 좋은 부부가 이별하게 되었다. 강제로 남자 고등학교나 군대 끌려간 기분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성자나 수도승의 길을 가게 된 금욕의 아이콘이 되어 버렸다.
지구는 인간만 사는 곳이 아니다. 만물이 암수 한쌍으로 지내야 하고 세상 이치가 음과 양인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참을성 없음이 한 종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휘집어 파내고 던져 버린 셈이다. 지구 지킴이 은행나무들이 가여워진다.
차, 오토바이의 소음에 짜증이라도 낼 법 한데 언제나 말이 없는 너희 들이 바로 성자다. 하루 종일 모든 그을음과 소음 다 들이마시고도 아름다운 숨결만 돌려준다. 은행 그대야 말로 진정 군자이다. 어떤 상황에서건 보드랍고 폭신폭신한 네몸! 힘들 때 포옹하기에도 좋다. 와인 마개 코르크처럼 부드럽고 섬세한 피부는 손으로 만지기에도 좋다. 공해를 줄여 주고 막아 주던 너의 정의감과 의협심! 시커먼 먼지와 배기가스를 들이켜고도 아름다운 황금빛 왕관을 뽐낸다.
"은행나무는 암수가 따로 있다는데 어떻게 구별해요?"라고 이제 막 성교육을 받기 시작한 은빈이가 물었다. 오십 평생 처음으로 은행나무 공부를 시작했다.
4월에 꽃이 피고 암꽃은 2개의 배주가 있으나 이 중 1개가 종자가 되어 10월에 누렇게 익는다. 수꽃은 꽃잎이 없고 2∼6개의 수술은 황록색이며 멀리까지 꽃가루가 퍼진다. 잎모양이 치마인 것은 암컷이고 바지 모양은 수컷이다. 흔하게 알려진 또 다른 방법은 나무가 자라는 모양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수나무는 꽃가루를 멀리멀리 보낼 수 있게 나뭇가지가 위로 뻗어 있고, 암나무는 꽃가루를 최대한 많이 받기 위해 나뭇가지가 넓게 퍼져 있다. 자세히 보면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이는 세상!
길 가다 은행나무가 있으면 올려다보기도 하고 만져 보기도 한다. 이 나무는 여자일까? 남자일까? 추리도 해본다. 중생대에는 초식 동물들의 간식거리였고 다람쥐 오소리가 먹는 열매이다. 스컹크와 겨루어도 지지 않을 독한 냄새를 풍기는 것은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식물의 방어작용이다. 그러나 그 냄새 때문에 멸종 위기에 봉착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은행나무는 억울하다. 많은 이로움을 인류에게 주고도 잠시 냄새 피운다고 온갖 욕 다 먹고 강제 피임까지 당했다. 여름날 쉬기 좋은 큰 그늘이 되고 잎은 징코민이란 물질을 함유, 뇌혈류와 기억력 개선, 말초 혈관과 우울증 치료에 좋다고 소문이 나서 약재로 한때 인기 최고였다. 잎을 책에 끼워 두면 책이 벌레로부터 상하는 것도 막아 주고 수십 년이 지나도 그대로이다. 나무 역시 잘 썩지 않아 최고급 목재이다.
3억 년 전 쥐라기 시대 공룡들의 카페였고 핵폭탄에도 살아남은 나무이다. 고생대부터 지금까지 지구의 모든 것을 견뎌 내며 사람들의 전쟁, 평화, 재난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흉년이나 전쟁이 오기 전 은행나무가 눈물을 흘렸다는 전설도 있다. 수많은 것들을 보고도 말하지 아니하고 들어도 모른 채 하느라 속이 탔을 것이다. 은행나무 입장에서 보면 인간들은 배은망덕한 동물일 것이다. 강제로 생이별을 당했으니 그 말 못 할 심정을 어찌할까? 지렛대로 지구를 뒤 흔들고 싶을 것이다. 예고 없는 이별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다.
오늘 은행나무를 심고 지금부터 매일 말을 걸어 준다면 천년이 흘러 내 말을 전해줄지도 모른다. 나무의 말을 해독하는 AI가 3022년 10월 어느 날, "나 사실 천년 동안 너무 외로웠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암수 같이 심어야 <돈> 들어온다는 풍수지리설을 여기저기 퍼뜨려야겠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이야기가 되는 아침! 길가 은행나무들이 소개팅해달라고 잎을 날린다.
<세상 모든 게 다 공부 거리이다.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기 때문이다. >
첫댓글 역시 선생님 글솜씨가 좋으시네요ㅎㅎ
길 가다가 은행나무를 보면서 왜 우리 집 근처에 많고 많은 나무 중에 왜 은행나무가 있는지.. 싫었던 적이 많았어요
선생님이 쓰신 글 읽으면서 은행나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ㅎㅎ 항상 학생들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이번엔 은빈이라는 학생 궁금증을 해결해 주려고 은행나무 공부도 하고 온쌤 역시 멋있으시네요
코로나로 힘든 사람들 많았겠지만 저는 온쌤이 제일 힘들었고 피해를 많이 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자영업자들은 재난지원금을 받지만 선생님은 많은 사람들한테 안 좋은 얘기를 많이 듣고 상처를 많이 받았을 텐데 마음의 상처는 보상받을 수 없으니까요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선생님 편이에요
진심으로 온쌤 존경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쓰시게 되면 저도 보여주세요!
애제자 <윤예지>댓글을 달수없게 되어있어서 톡으로 대신보냄
사랑하는제자 예지천사 한번제자는 영원한 제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