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기 6주차] 공부하는 선생님
공부하는 선생님으로 살아간지 8년째 되었다. 이번 학기에는 학위논문지도 수업을 신청해 자주 대학원에 간다. 매주 월요일 6~9시에는 논문을 읽고 공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한 달에 2번 정도 대면하여 논문의 진행상황을 나누고 피드백을 주고 받는 시간이다. 2021년 8월에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2년 만에 다시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과제도 제출하는 대학원생의 일상을 살아가게 되었다. 지난 2년 동안 여러 개인적인 삶의 변화들로 공부를 잠시 쉬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그 기간 동안 학술지 논문 2편을 쓰고 학회에서 발표할 수 있도록 믿어주시고 지도해주신 교수님의 배려로 공부의 끈을 미약하게나마 잡고 있었다.
내 마음과 감정을 풀어내는 글을 원없이 썼고 그 덕분에 이제 내 마음과 생각을 지면에 쏟아내는 것이 익숙하면서도 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1년 반이면 새로 바뀐 삶의 형태에 충분히 적응했고 넘치게 쉬었으며, 크고 작은 내적 갈등이 있으나 삶은 대체로 안정되었다. 마침 등재지에 논문 게재 횟수도 채우고 학회 발표도 해서 학위논문을 쓸 자격 요건도 갖추게 되었다. 그리하여 해야 할 목록 1순위지만 선뜻 시작하기가 두려워 발만 까딱까딱 담그고 있었던 학위논문에 집중하리라 마음 먹으며, 이번 논문지도수업이 대학원생으로 듣는 마지막 수업이 되기를 바라며 2학기 수료생 등록을 했다.
9월과 10월에 대면으로 이루어진 2번의 학위논문 세미나에서 교수님, 선생님들과 나눴던 대화를 4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주고 받은 대화를 정리해놓고, 공부하다 힘이 들거나 목표의식이 희미해질 때면 꺼내볼 수 있도록 글로 남겨본다.
1. 논문
논문 세미나를 시작하며 한 선생님께서 교육철학 논문들을 읽다보면 결론이 다 일반적으로 아는 내용으로 귀결되어 창의적인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는 답답함을 토로하셨다. 우리는 논문을 마무리하는 결론 파트에서 일반적인 결론과 창의적인 결론은 무엇이며, 무엇이 창의적인가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교수님께서는 나의 메세지(생각)을 정리해서 나의 언어로 쓰면 창의적인 글이 되며, 논문이란 내 삶과 맞닿아 있는 문제의식과 의미, 메세지를 논문의 전체 흐름에 조직화하는 것이라 하셨다. 기존 학자의 정당성에 나의 정당성을 제시하고, 제목과 서론을 읽으면 뒷 내용을 더 읽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쓸 수 있어야 한다.
2. 연구
지금까지 연구된 여러 선행 연구보다 더 나아가야 한다. 선행 연구, 기존 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논지를 끌어가야 한다. 요즘 젊은 30~40대 박사들은 매우 유연하다. 글쓰기 교실에서 발표한 <공부하는 엄마에게>를 출간한 송수진박사는 논문 1편 쓰기 위해 300~500편의 논문, 글을 본다고 했다. 그렇게 논문 1편 쓰기 위해 300편씩 읽어야 길이 보인다. 공부 하다보면 티가 난다. 차곡차곡 쌓여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3. 자신만의 스타일
미국에서 '교육철학'으로 유명한 2개의 대학은 듀이, 킬패트릭이 강의했던 콜럼비아 대학교, 보이드 보드가 강의했던 오하이오 주립대이다. 존 듀이는 보드를 가리켜 "보이드 보드는 굉장히 창의적이다. 어떤 글이든 보이드 보드에게 가게 되면 그 글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우리가 공부를 했다면, 많은 부분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이 필요하다.
4. 대학원은 글
모닝 글쓰기는 머리가 맑고 지적 희열이 많이 느껴진다. 부지런히 글을 써라. 모든 개개인은 다 다르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열심히, 성실히 글을 써야 한다. 서로를 통해 자극 받고 자신감을 얻어라. 부족하더라도 계속 애쓴 사람들, 부지런히 하는 사람들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 철학하는 사람들은 단어 사용 하나하나가 참 중요하다. 논문도 계속계속 써야 한다. 학위 따면 그만한 보상이 주어지고, 기회의 문이 열린다. 월요일 6~9시는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해서 꼭 글을 쓸 것을 권한다. 하다 보면 된다,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철학의 연구 방법은 논리적 구조에 나의 글쓰기가 더해진 글쓰기이다. 문단의 내용이 일맥상통해야 하는 논리적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인간으로서 살아가며 굉장히 큰 지적인 희열, 기쁨인 지적 유희를 느낄 수 있다. 철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위대한 사상가의 정신' 이라는 선물이 있다. 대학원은 말이 아닌 글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많으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드물다. 논리적인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한국교육철학회, 사상학회의 글들은 굉장힌 논리적으로 파고들어가기에, 논리성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연습하고 훈련해야 한다.
A4 6쪽에 달하는 필기를 4가지 키워드로 정리하니 머리에 하나씩 정리가 된다. 대학원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교수님, 부모님께서 줄기차게 해주신 말씀이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실감이 나고 와 닿는다. 2015년 가을,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마음 먹고 입학시험 준비를 하던 때가 떠오른다. 교육이 왜 이러냐며 불편함과 분노에서 시작된 독서가 더 많은 배움으로 이어져 건강한 분노를 몸소 느낀 첫 경험이었다. 작금의 세태에 더 큰 분노와 부당함을 느끼는 요즈음, 이 분노가 건강한 에너지로 활활 타올라 논문을 쓰는 동력이 되리라 본다.
공부하는 선생님으로 살아가며 체력이 달리고 건강을 잃어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래도 글을 쓰고 공부를 해야 더 행복한 '지적 유희'를 선물로 받아 가늘지만 긴 끈을 이어가고 있다. 퇴근하고 이어지는 공부와 배움이 꼭 종례 후 방과후수업, 학원, 공부방 등의 사교육을 이어가는 우리 아이들의 처지와 비슷하다. 힘든 건 매한가지나 그래도 선택해서 할 수 있음에, 지금은 고될지라도 돌아보면 자산이 되어 있을 거라 믿는다. 이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힘 닿는 데까지 책 읽고 글 쓰는 삶을 누리는 공부하는 선생님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