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에세이스트 가을세미나는 천년의 고도 경주에서 열리는 것 다 알고 계시지요?
경주, 너무나 유명한 도시라 다 한 번씩은 다녀오셨을 것입니다. 친목 모임에서 가셨을 수도 있겠고, 학창시절 수학여행을 다녀오셨을 수도 있겠고, 아니면 혹시 신혼여행을 그곳으로 가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게다가 경주의 유적 사진들은 너무나 흔해빠져 서울만큼이나 우리의 의식엔 익숙한 도시지요. 그러나 정말 우리는 경주에 관하여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요? 혹시 잘 안다는 확신 때문에 통 모르고 있는 것을 아닐까요?
저희 <에세이스트>는 이번 경주세미나에서 가장 경주를 잘 아시는 두 분의 전문가를 모시고 집중 탐구하고자 합니다. 부디 함께하여 주실 것을 간곡히 청합니다.
에세이스트 가을세미나
― 세미나 1 : 경주를 다시 듣는다 ―
때 : 2014년 11월 8일(토요일) 오후 4시~6시
곳 : 켄싱턴리조트 강의장
주제발표
1. 정강정(전 경주세계엑스포 사무총장)
신라의 달빛문화―부디즘buddhism과 로맨티시즘romanticism
2. 엄기백(경주예술의전당, 예술감독)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사투리와 문화유산
강평
김종완(문학평론가, 에세이스트 발행인)
― 세미나 2 : 경주를 걷고 보고 만지기 ―
일정표
(11월 8일)
07:00 서울 운현궁 앞에서 출발
12:00 경주 궁 한정식(점심식사)
14:00 경주 켄싱턴리조트 도착(자유시간)
16:00~18:00 세미나(켄싱턴리조트 강의장)
18:30~19:30 저녁식사(리조트 클라우드&마키)
20:00~22:00 뒤풀이(리조트 강의장, 노래방 기기 완비)
(11월 9일)
07:00 아침식사
(20.3Km, 약 50분)
09:00~10:00 석굴암
(7.km, 약 30분)
10:00~11:00 동리목월문학관
(0.4km, 2분)
11:00~12:00 불국사
12:00~13:00 점심 식사(불국사)
(10km, 약 20분)
13:00~14:30 경주 수오재
(354.9km, 약 4시간 30분)
20:00 서울 도착
자, 그러면 세미나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아볼까요?
우선 2014 에세이스트 연간집 <해인사 소리길>의 출판기념식을 간략히 열 것입니다. 필진들께서 꼭 참석하여 영광을 함께 나누시길 간곡히 청합니다.
그 다음 <경주를 다시 듣는다> 주제 발표가 이어집니다.
첫 번째 강연은 국무총리국무조정실 규제개혁조정관, 국무총리비서실 실장,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원장,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경주시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신 정강정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조선일보 등 각 신문에서 경주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재미 있게 설명하는 분으로 소개된 바 있는 선생께서 이번에 경주의 문화 저변에 흐르는 구체적 바탕을 집중 탐구하겠다고 하십니다.
다음 소개할 강연자는 엄기백 선생님인데요. 등단한 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막강한 폭팔성을 띤 글을 몇 번 발표하며 단숨에 많은 독자를 사로잡고 있는 문제작가입니다. 선생은 작년에 뮤지컬 <무녀도동리>를 기획 연출하여 전회 매진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킨 분으로 연말에 에술평론가협회로부터 <특별예술가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KBS드라마 PD, 수원드라마센터장, 경주예술의전당 사무총장을 역임하셨고 현재는 예술의전당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입니다.
이번 세미나의 주제는 <경주의 언어와 음악과 정신>으로 무녀도동리 제작 과정과 의미를 새롭게 짚어볼 계획이랍니다.
마침 10월 17일 목포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선생이 강연한 원고가 입수되어 카페에 올리겠습니다. 오셔서 일독하시면 새로운 비전을 얻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57호에 실린 정강정 선생의 <모래내 이야기>에 대한 평을 정승윤 선생님께서 써주셨네요. 조금 요약하여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경주는 삼한통일의 모태이며 우리 민족의식의 자궁이다. 신라의 삼한통일에 대하여 지금은 여러 가지로 역사적 평가가 갈리고는 있지만 경주와 신라를 부인하고는 ‘민족국가’라는 개념 자체를 운위할 형편이 못된다. 신라는 이후에 성쇠를 거듭하는 왕조들의 뿌리가 되었으며 우리 민족의 가능성과 한계를 규정하는 원형으로써의 역할을 해왔다. 작가는 삼한통일의 핵심적 인물로써 원효, 김유신, 김춘추(무열왕), 김범민(문무왕)을 꼽았다. 여기까지는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다. 그들이 단지 전쟁을 잘 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뛰어나서 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다는 이야기는 너무 평면적이고 일방적인 이야기다. 작가는 그들이 얽힌 설화에 궁극적으로 어떤 상징적 의미가 있는가에 착안한다. 설화는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딱히 역사적 사실만은 아니다. 그래서 설화는 물론 역사적 해석이 가능하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얼마든지 다른 해석, 다른 의미도 천착할 수 있는 것이다. 하물며 그것이 사랑이야기임에랴. 사랑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구이다. 사랑의 중요성은 고금古今은 물론이고 양洋의 동서東西를 불문한다. 사랑은 한 개인뿐만 아니라 한 국가에도 치명적인 질곡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랑은 한 개인의 정신사뿐만 아니라 한 민족의 정신사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만큼 사랑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폭넓은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원효를 보자. 원효와 요석공주의 사랑은 인간적인 욕정에 무릎 꿇은 한 수도승의 타락일 수도 있고 과감히 민중의 세계로 뛰어든 한 위대한 정신의 파격일 수도 있다. 속인俗人은 속인의 해석을 할 것이며 원효는 원효의 해석을 할 것이다.
그리 행복해보이지 않는 이 특별한 사랑도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깨달음의 세계인 남산·도당산에서 수행하던 원효가 피안교彼岸橋인 유교를 넘어 번뇌의 세계를 향해 도피안到彼岸함으로써 젊은 청상 요석공주와 부왕 김춘추의 안타까운 마음을 구제하였을 뿐 아니라, 설총을 낳아 최초의 우리글인 이두吏讀를 만들어 온 백성을 깨우쳤으니 그 보시가 파계의 갈등을 해소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다.
(정강정, <모래내 이야기> 부분
불교는 우리 민족의 정신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는 중요한 생사관을 제공했으며 끊임없는 환난을 극복할 수 있는 종교적 가치관을 제시해 주었다. 불교가 없었다면 삼국은 통일 이후에도 계속해서 분열과 이합집산을 거듭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이두는 태동하는 민족정신의 산 증거이다. 우리말의 뚜렷한 증거이며 후일 위대한 한글 창제의 전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불교의 전파와 이두문자의 발명은 비로소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 중대한 두 사건을 ‘원효와 요석공주의 사랑이야기’로 함께 엮어 풀어놓은 솜씨는 대단하다. 이 해석을 온전히 작가 몫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설화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은 모래내를 원효가 되어 걷고 있는 작가의 숨결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모래내 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는 어느덧 유신이 되어 말 앞에 칼을 들고 서게 되고, 천관녀가 되어 땅에 쓰러져 피울음을 울게 된다.
애마의 목을 내리치는 유신의 잔혹한 칼날을 지근에서 쳐다본 천관녀의 상처는 생명을 지탱할 수 없을 만큼 끔찍했을 것이다. 스스로 목숨을 거둔 천관녀는 속설에서 말하듯 기생도 무당도 아니다. 오래 전부터 하늘과 별을 섬겨온 우리 민족 토속신앙의 성지인 천경림天鏡林의 천경단天鏡壇 제사장이었던 신녀神女 천관天官은 신라 초기만 해도 제왕과 버금가는 귀족이요 실력자였다. 왕실의 주도로 삼국 중 뒤늦게 불자의 나라가 된 신라(고구려 372년, 백제 384년, 신라 527년 이차돈의 순교 계기로 불교 공인)는 이차돈의 유언에 따라 천경단을 헐고 절(흥륜사, 544년 완공)을 지었으나, 하늘과 별을 섬기는 백성들과 왕실 중심의 불교간 갈등은 상당기간 지속되었고, 그 과정에서 토속신앙의 구심점이었던 천관의 후손들은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천관녀는 바로 이 신녀 천관의 후대로 곱게 자란 규수였다.
(정강정, <모래내 이야기> 부분
어찌 이 이야기를 방탕한 귀족 자녀와 기생의 이야기로만 흘릴 수 있겠는가. 작가의 말마따나 ‘윤리의 벽, 계율의 벽, 신분의 벽을 뛰어넘은 거꾸로 사랑, 역리의 사랑, 파격의 사랑’의 위대함과 절절함이 지금도 가슴에 스미어 드는 듯하다. 김유신과 김춘추, 그리고 김범민의 사랑이야기는 서로 얽히고 설켜 마치 한 폭의 태피스트리를 보는 듯하다. 그 당시 삼국의 흥망성쇠도 살벌한 전쟁 이야기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겪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긴 운명 이야기만 같다. 우리는 작가 ‘정강정’을 통해서 모래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름답고 눈물겨운 사랑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들은 이웃동네 이야기처럼 정겨웠고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그가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불렀으니, 이제 우리가 이야기 속으로 그를 찾아가는 일만 남았다.
첫댓글 경주....몇 번 가 봤지요...초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시작하여...부산의 집 앞 부전역에서 강릉까지 가는 비둘기호 완행열차를 타면 해운대 송정 일광 기장.....동해의 해안 마을들을 거쳐 기차는 덜커덩 덜커덩....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북으로북으로 갑니다. 그러다가 바닷가 풍경의 여운이 사라질 때 즈음에 기차는 경주역에 도착합니다. 고딩, 대딩 때는 그런 낭만여행도 제법 했었는데...근데...뭐 그렇게 가서 문화유적지 몇 군데 둘러 봤다고 경주를 잘 아는건 아니겠죠? ^^;; 따로 머리 싸매고 공부한 적도 없으니까 ㅎㅎㅎㅎ 결론은......모름미더....경주를 아시냐고 물어서....
아, 샘요~~
지 한텐 절대 그런 질문 절대 마이소.
중요한 건 경주 몰라도 경주서 잠 자도 아무도 안 물었시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