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박경림 : 데뷔작 [헤어스프레이] 2009년 한전아트센터
신시컴퍼니가 저지른 역대 최악의 캐스팅 실수. 뮤지컬 [헤어스프레이]가 국내에서 올라가기 전부터 이 작품 판권에 관심이 많았던 박경림은 [헤어스프레이]가 초연됐던 2007년도에도 출연 희망을 비췄지만 원체 가창력이 따라주질 않다보니 신시컴퍼니는 거부했고 대신 공동 프로듀서 직함을 주었다. 그리고 이벤트 형식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과 제휴하여 까메오 출연으로 배역 못 맡은것에 대한 원을 풀기도 했다. 이 정도로 만족하면 좋았겠는데 그녀의 야망은 늘 과해 능력 이상의 일을 벌리곤 한다. 급기야 2009년 [헤어스프레이]재공연에선 못생긴거 외에는 어느걸로 봐도 전혀 조건이 안 됐던 그녀가 여주인공 역에 낙점됐다. 그 소식을 듣고 난 평지풍파가 일어난 기분을 느꼈다.
박경림은 [헤어스프레이]의 못생기고 뚱뚱한 여주인공 트레이시에 감정이입하여 미국 유학 시절 열다섯번이나 반복 관람을 하면서 이 작품에 대한 애착이 대단히 깊었다. 그래서 그 역을 직접 소화해 작품 속 여주인공인 트레이시가 세상에 희망을 준것처럼 자기 역시, 자기처럼 못생기고 하자 많은 사람도 뮤지컬에 출연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며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마차 희망전도사라도 된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건 박경림 혼자만의 착각이다. 뮤지컬이란 상업예술은 한 개인의 힐링캠프로 소모될 수 없다. 끝내 박경림은 나도 할 수 있다는 개인적 자아실현과 뮤지컬은 아무나 하나? 라는 대중들의 한탄 사이의 괴리감을 공연이 종료될때까지도 좁히지 못했다. 박경림이 출연한 [헤어스프레이]는 박경림 덕분에 홍보는 잘 됐지만 예매율은 탄력받지 못했다.
12. 김유영 : 데뷔작 [스프링 어웨이크닝] 2009년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토니상 다수 후보에 올랐을 때부터 이 작품을 사오려는 국내 기획사들의 판권경쟁은 치열했다. 그 때가 라이센스 뮤지컬 경쟁이 가장 폭주하던 시절이라 로열티는 천정부지로 뛰었다. 그래서 과연 국내에서 이 작품을 볼 수나 있을까, 그리고 본다면 가격이 어느 정도로 올라갈까가 관객들의 1차적인 걱정이었고 2차적으론 [스프링 어웨이크닝]이란 작품이 작품성은 있지만 대중적인 작품은 아닌데 국내에서의 성공이 보장될 싹이 있느냐는 보다 세속적인 물음이었다. 결과적으로 초연이나 재공연이나 흥행에선 재미 못봤다. 대신 완성도와 배우들을 건졌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거둔 수확은 여주인공 김유영의 발견과 처음에 김무열 언더스터디로 참여한 주원이었다. 조정석과 김무열은 직업 뮤지컬 배우로서 그들이 단순히 젊은 여성팬들에게 인기만 있는것이 아닌 진짜 배우라는것을 증명시켰다.
동서대 뮤지컬학과 4학년 재학중에 4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출연한 김유영은 오리지널 캐스트 음반의 여주인공 목소리와 흡사한 음색과 가식없는 연기로 회를 거듭할수록 빠른 성장을 보여줬다. 당시 김유영의 등장은 작년에 영화 [은교]에서 김고은이 그랬던것처럼 국내 뮤지컬계에서 센세이셔널했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김유영의 본격 프로무대 데뷔작이지만 이 작품 출연하기 전년도인 2008년도에 대국국제뮤지컬페스티벌의 대학생 부문에 동서대 소속으로 참여하여 [레미제라블]로 최우수 여자연기상을 타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은바 있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이후 김유영은 연극열전 작품인 [너와 함께라면]과 PMC주크박스 뮤지컬 [늑대의 유혹], 케이블 드라마를 무대로 옮긴 [막돼먹은 영애씨]등을 통해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아직 데뷔작 이상의 기운을 발견할 수 없다는건 아쉽다.
13. 이영자 : 데뷔작 [라이프] 1998년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
이영자의 뮤지컬 데뷔 무대는 연예인 뮤지컬 진출 문제에 있어 선례를 남길만하다. 이영자 같은 경우가 없었다. 고수가 제대 후 복귀작으로 택했던 연극 [돌아온 엄사장]에서 중간에 칼맞고 죽어버리는 엄사장의 아들로 출연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 작품에선 엄사장 조무래기로 나오는 김영필 보다도 출연 분량이 많은 조연이었다. 1998년도의 이영자는 코미디언으로서 전성기였다. 그런 그녀가 대극장 뮤지컬의 앙상블로 출연한것이다. 조연이 아니라 앙상블이었다. 치치 역을 맡긴 했지만 배역이 딱히 구축된것도 아니고 그저 창녀 무리 중 한명이었다. 솔로곡도 없고 단독 장면도 없다. 좀 더 욕심을 부려서 타 작품에 주연으로 설 수도 있었고 본인 중심의 창작 뮤지컬을 기획하여 오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영자는 뮤지컬이 처음인만큼 완전히 초심으로 들어가 앙상블 출연을 기꺼이 받아들인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이영자의 앙상블 출연을 다루는 언론이었다. 마치 이영자가 주연인것처럼 소개를 해서 계속 해명을 하게 만들었다. 주연은 전수경, 허준호이고 자기는 앙상블일 뿐이라고. [라이프]이후 이영자가 출연한 뮤지컬은 [메노포즈]다. 출연 편수로는 두편이 다다. 이영자가 잘 드러내질 않아서 그렇지 노래 부르는 음색은 예쁘다. 고음은 잘 안 되지만 쇼맨쉽이 좋고 꽁트 경력이 많아서 그런가 연기력도 수준급이다. 연예인들이 뮤지컬 출연할 때 다들 이영자처럼 앙상블부터 시작하란 얘기는 아니지만 최소 기본기는 다져놓고 출연했으면 좋겠다. 기본이 없으면 연습이라도 열심히 하던지. 배역 준다고 덥석 물고부터 볼것이 아니라 앞뒤 상황을 재고해보고 작품에 임한다면 작품 망가지는 사태를 반으로 줄일 수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