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재즈
1)프리재즈의 발생
프리재즈의 본격적인 출발은 1950년대 말 경에 젊은 흑인 재즈 큐지션들인 오넷
콜맨(Ornette Coieman)과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에 의해서라고 보지만, 이
런 움직임은 이미 10년 전인 1949년에 쿨 피아니스트인 레니 트리스타노(Lennie
Tristano)와 그의 6중주 일행에서 나타나므로 프리재즈의 출현은 갑작스러운 것
이 아니다. 트리스타노와 그의 일행은 여러개의 독립된 멜로디선이 빛는 불협화
음으로 이루어진 음악을 캐피틀(Capital)레코드사에서 레코딩함으로써 처음으로
조성의 기틀을 벗어난 혁신적인 음악을 발표하였던 것이다.
60년대에 들어서면서도 계속 악화되고 있는 흑백문제는 젊은 흑인들을 더욱 자
극시키고 있었는데, 이런 불만이 젊은 흑인 음악가들에 의해서 격하고 공격적인
음악으로 표현되었다. 즉 매우 높은 음역이나 매우 낮은 음역으로 악기소리를
냄으로써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날까로운 음향을 내기도 하고, 음악에서 사용하
는음 뿐만 아니라 소음까지 포용하며, 서양 세계 밖에서 온 이국적인 악기를 사
용하고, 즉흥적이며 도취적인 야성미를 지닌 아프리카 음악의 요소를 받아들인
여지껏 들어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연주기법과 음향이 나타난 것이다.
2)프리재즈의 음악적 특징
프리재즈는 한 마디로 말하여 모든 전통규칙과 원칙이 파괴된, 단어 그대로 매
우 자유롭고 우연적인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주가들은 개별적인 표
현욕구를 구속없이 주관적으로 즉흥연주를 함으로써 이루어지므로 조성도, 박자
도, 형식도 없다. 여기서 무조성이란 뜻은 서양의 음열을 기초로 하는 12음기법
이라든가 하는 무조성을 뜻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아무런 내부적인 규칙이 없는
것을 뜻하는데 흑인노예의 노동요와 같은 아프리카적인 무조성에 접근한다. 프
리재즈는 연주 중에 연주자가 각자가 차례로 듣고 연주하는 새로운 연주 방법을
도입하였는데,이 잇달아 나오는 내부적인 반응도를 보는것이 프리재즈의 묘미다.
프리재즈의 전성기는 1960년대 이후라고 보며,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레니 트리
스타노(Lennie Tristano,피아노), 오넷 콜맨(Ornette Coieman,색소폰), 존 콜트
레인(John Coltrane,색소폰), 에릭 돌피(Eric Dolphy,플룻, 바리톤 색소폰), 돈
체리(Don Cherry,트럼펫), 챨리 밍거스(Charlie Mingus,베이스), 아키 세프(Arc
hic Shepp,색소폰) 등이 있다. 프리재즈는 유럽에서도 유행하였는데, 이들은 미
국재즈보다 유럽 예술음악의 갈래인 전위음악과 가깝다.
- 프리재즈의 간추린 역사 -
- 자유를 위한 투사들 -
프리재즈. 이 낱말을 단지 말하는 것만으로도 이에 대해 잘못된 정
보를 가진 이들은 두려움에 떨거나, 혐오감에 몸서리를 칠 것이다.
이들은 아무런 규칙과 짜임새 없이 나오는 혼돈스러운 잡음을 마음
속에 떠올릴 것이다. 또한 스윙할 수 없는, 아무런 뜻없는 불협화
음이나, 재즈전통과 아무런 연결없이 미쳐 날뛰며 떠들어내는 것을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이런 그릇된 인식은
진실을 담고 있지 않음을 깨달을 것이다.
"프리재즈"라는 내건말은 모던재즈의 어휘목록에서 가장 비참하게
오해를 받으며 불려온 이름이다. "프리"라는 말, 그리고 이와 관련
된 꼬리표들인 "전위(아방가르드)", "바깥의 것들", "즉흥"따위 말
들은 1960년대 이후로 수없이 그릇 써오면서 그 담겼던 뜻을 잃어
버려 왔다. 더 나쁘게는, 이런 낱말들에 낮게 업신여기는 뜻이 담
기게까지 되었다.
"자유형식"(free form)이란 말은 형식'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
을 뜻하는가? 그건 불가능하다. 무엇과 견주어서 "전위"라는 말인
가? 어디로부터 "바깥에 있다"는 말인가? 주된 줄기(메인스트림)의
대부분 장소에서 이들 음악을 문밖으로 내쫓기 때문에, 그런 포장
도로의 바깥에 있다는 말인가? "즉흥"이란 말은 시험연주를 하지
않거나, 생각이 담겨져 있지 않다거나, 준비가 덜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시끄럽게 논란이 되어온 이런 낱말들
을 두루 끌어내온 음악인들은 자신들의 삶 전체를 통해 훈련을 거
듭하여 매순간 생각깊게 행동하고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사소통이 무너진 이유는 아마도 우리의 언어 자체에 내
재된 흠 때문이거나, 언론매체의 제한된 공간이 짧고 간결하게 표
현된 말만을 요구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또 어쩌면 '아트 앙상블
오브 시카고'의 공동설립자이자 트럼펫 연주자인 레스터 보위가
"이 음악에 반대하는 백만달러짜리 홍보 프로그램"으로 불렀던 것
으로부터 그릇된 정보가 줄기차게 흘러나와 수많은 비평가들과 이
들의 독자들이 잘못된 인식을 받아들여 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보위는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그건 아주 잘 조직된 것이죠.
사람들로 하여금 퍼져 있는 경향을 따라가도록 하고, 그저 텔레비
젼을 보게 하는 일들은 미국정신의 일부이죠. 상황을 좀 보세요.
주요 음반회사와 시장매체들은 사람들이 생각을 하도록 만들지 않
아요.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사람들에게 사라고 말한 것을 사람들
이 사는 걸 원할 뿐이죠.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을 원하진 않
습니다. 제시 헤름스같은 녀석들이 이 나라에서 문화를 위한 기금
을 삭감했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그런 일은 사람들이 현상에 대해
생각하고 물음을 던지는 것을 막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일부러
노력한 것이에요."
과격주의자인 바이올린 연주자 빌리 뱅은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
한다. "이놈의 나라는 그걸 두려워 하죠. 만약 사람들이 라디오에
서 이 음악을 듣기 시작하거나 자기들 차안에서 이걸 틀어놓기 시
작한다고 해봅시다. 그리고나서 일하러 차를 몰고 나갔다가 그날
일하러 가고 싶지 않다고 결정했을 때, 그네들은 그걸 빌리 뱅의
테입 탓이라고 덮어 씌울지도 모릅니다."
뱅은 25년이 넘는 세월동안 재즈 계보에서 무엇이라고 이름 붙이
기 어려운, 가장 도전적인 영역을 탐험해 왔다. 자신이 해온 음악
의 본바탕은 그 작곡기법이 어찌되었든지 상관없이 모두 "자유에
대한" 것이었다고 뱅은 털어놓는다. 뱅은 다음과 같이 말을 잇는
다. "우리 음악은 국민총생산(GNP)에 대항하는 것입니다. 그건 자
본주의에 대항하는 것이지요. 자본주의 같은 체제에서 그런 음악을
활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음악은 어떠한 삶에서도 꼭 필요
로 하는 것, 즉 선택사항, 다시 말해 대안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러한 음악의 한 부분이 되는 것조차 원하지 않을 것입니
다. 하지만 그러한 음악이 있음으로 인해 그들은 그들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게 해주는 관점을 얻게 될 겁니다."
이른바 "프리재즈"란 것은 혁명적인가? 30년 경력의 노련한 음악
인인 레스터 보위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음악은 생각을 자극하기
위해 고안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거
죠. 바로 이러한 방식에서 이건 혁명'입니다'. 특히나 미국에서는
말이지요." 보위는 이러한 종류의 재즈가 가져다 주는 보람을 다음
과 같이 설명한다. "이 음악은 음악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
는지 당신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합니다. 연주자들을 살펴보면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귀기울여 들으면서, 그것이 무엇이고, 어디
서 왔는지, 연주자들이 그것을 어떻게 하는지, '왜' 그것을 하는지
이런 것들을 헤아려 보려고 노력하는 것 말이지요. 우리가 하고 있
는 일은 바로 사람들을 열어놓아 자신들이 지닌 잠재력과, 자신들
이 생각'할 수 있음'을 깨닫는 데에 이르도록 애쓰는 것입니다. 보
위는 잘되리라는 희망을 갖고 다음과 같이 결론내린다. "우리는 우
리의 혁명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싸움은 언제나 오르막에 놓여 있다. 라디오는 이런 음악
을 매우 드물게 틀어준다. 언론매체들은 이 음악을 잘못 전하거나
그냥 버려대기가 일쑤다. 클럽들은 이런 음악을 거의 무대에 올리
지 않는다. 음반회사들은 이런 음악을 거의 발매하지 않는다. 발매
한다고 해도 최소한의 배포만 하는 일이 잦다. 또한 좋은 보수를
받고, 잘 차려 입었으며, 겉보기에 생각과 표현이 명료하고, 겉보
기에 능력이 있는 음악인, 이를테면 윈튼 마살리스 같은 이는 공공
연하게 이런 음악을 비난하고 있다. 이로부터 피할 수 없는, 불행
한 결론이 나온다. 즉 아주 많은 재즈'애호가'들이 자기 스스로 이
음악을 심각히 탐구해 보려고조차 하지 않으며, 별 생각없이 이 음
악을 무시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 언론의 자유 -
이뉴이트(옮긴이 주 : 북미, 그린랜드의 에스키모들)들은 거의 12
개 정도의 각기 다른 낱말로 눈(옮긴이 주 :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요.)을 묘사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사랑을
나타내었는데, 서로 다른 형태의 사랑에 이름을 따로 붙인 것이다
(옮긴이 주 : 다 아시죠?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 말이에요.). 마
찬가지로 폭넓게 "프리재즈"라는 말로 제시되어온 음악들에서도 역
시 좀 더 명확한 이름붙이기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일을 통
해 개개 연주자들의 개성이나 개인만의 양식을 잡아낼 수 있을 것
이다. 왜냐하면 "프리"란 용어는 마지막까지 가면 모든 사람들에게
서 서로 달리 뜻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도 있을 듯 싶다. 90년대 중반에서 장벽을
파괴하는 이들, 이를테면 래리 오크스, 그렌 스피어맨, 라일 엘리
스, 빌리 뱅, 벤 골드버그, 매튜 쉽과 같은 이들은 "프리"를 연주
한다고 말이다. 이것은 마치 60년대에 오넷 콜맨, 존 콜트레인, 에
릭 돌피, 선 라, 세실 테일러, 앨버트 아일러들이 이른바 "프리"
연주자들이라고 주장했던 것과 비슷하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하
지만 이런 주장은 반정도만 타당하다. 색소폰 연주자 스피어맨은
다음과 같이 차근히 이야기 해준다. "어느 때부터 '프리'란 용어는
이미 틀린 이름이었어요. 왜냐하면 그건 각 전문가들마다 서로 다
른 것들을 뜻했기 때문이죠. 오늘날엔 이들 음악을 다루는 방식도
크게 자라났어요. 그래서 이제는 세계음악 운동이나 전자음악 운동
들을 뜻하기도 하고, 아니, 실제로는 귀에 들리는 범위 안에서 이
루어진 모든 음악의 발전들을 뜻하게 되었죠. 이런 중에도 젤리 롤
모튼에서부터 내일의 혁신가까지 아우르는 재즈전통의 스펙트럼 전
영역을 충분히 지각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이 세계가 제공하는
음악적 장치들이 점점 더 많이 '프리'란 말에 포함되어 온 것이에
요."
클라리넷 연주자 벤 골드버그는 베이 에어리어(Bay Area)의 모험
적 4중주단인 스노컬(베이스에 트레버 던, 기타에 존 쇼트, 드럼에
스코트 아멘도라와 함께한)이 보여준, 집단으로 음악만들기 작업이
그 근본에서 '프리'인 것으로 규정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골드버그는 스피어맨의 생각에 메아리를 울리고 있다.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연주를 시작할 때에는 모든 재료들이 늘 널려있
는 거죠." 모든 선율들, 장단들, 화음의 조합들을 어느 순간에서라
도 자유롭게 끌어다 가져와 서로 맞서게 나란히 늘어놓기도 하고,
서로 층층히 쌓아 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보위는 이러한 논의를 또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프리란 말은
내가 느끼는 것 어떤 것이라도 이를 연주하는 데에 나는 자유롭다
는 것, 그리고 나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 자유롭다는 것을 뜻합니
다. 만약 내가 윌리 넬슨의 곡을 연주하고 싶다고 느낀다면, 나는
그걸 연주할 겁니다."
로바(ROVA) 색소폰 4중주단의 래리 오크스는 보위가 뜻한 바를
또렷하게 말해준다. "즉흥연주는 에테르 (옮긴이 주 : 아무 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물질을 뜻하고자 쓴 낱말입니다.)로부터 나오
지 않아요. 우리 셋이 (오크스가 베이스연주자 라일 엘리스, 드럼
연주자 도날드 로빈슨과 협연한 새로운 3중주단인 '왓 위 리
브'(What We Live)의 구성원들을 가리키는 것임) 연주를 시작하고
나서 갑자기 한 순간에 폴카를 자유롭게 즉흥연주를 할 것이라는
말은 사실과 달라요. 우리는 우리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우리가
하길 원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
가 걸어 나가길 원하는 일종의 길을 하나 찾게 되지요. 그리고는
그 길을, 그러한 음악의 영역을 탐사합니다." ('왓 위 리브'는 데
뷔 시디음반을 'Black Saint'에서 96년 내어 놓는다.)
오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프리재즈란 말은 60년대에 지어
낸 말이죠. 왜냐하면 그때 형편과 맞았거든요." 물론 오크스는 당
시에 "프리"란 말이 혁명적인 그 시대 분위기와 어느정도 관련되어
있음을 인정한다. 이 색소폰 연주자는 100%로 작곡된 음악과 100%
로 작곡되지 않은 음악 사이를 구별하려 들기보다는 둘 사이에서
닮은 점을 더 끌어내려고 한다. (작곡되지 "않았다"는 것은 "프리"
에 대해 보통 갖게 되는 인식일 것이다.) 따라서 이런 말은 아마도
뜻밖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크스는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내보인다. "'모든' 음악들에는 세가지의 일반 성질이 들어있죠. 가
장 작게 보아도 말이에요. 우선 연주자들은 함께 같은 언어를 갖고
작업을 해 나가죠. 또한 그들은 같은 목표를 음악에 두고 함께 작
업을 하죠. 또한 그들은 어떤 뜻을 창조해 내고자 노력해 나갑니
다."
라일 엘리스는 이런 음악을 어떻게 창조하는지를 두고 사람들이
근본에서부터 갖는 오해를 한탄한다. "자유형식이란 말은 우리가
형식을 내던졌다는 걸 뜻하지 않아요. 아마도 또 다른 형식들을 조
사하고 연구하는 일에서 우리가 자유롭다는 말이 맞을 겁니다. 음
악이란 많은 형식들을 갖기 마련이고, 우린 이점을 믿습니다. 지금
여기에 음악작업을 하고 있는 한 지성이 있다고 해봅시다. 우리는
이때 음악에 한 형식이 내재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형식
에 따라 음악을 만들고 있는데, 그 형식이란 바로 사람이기 때문입
니다."
(사람에) 내재된 형식에 대한 생각과, 음악의 핵심부에서 사람의
속성이 작용을 한다는 개념은 위대한 모든 음악들이 함께 갖고 있
는, 평범함을 뛰어넘는 주제이다. 또한 이런 음악을 가장 잘 아는
사람과 토론을 하다 보면 끊임없이 나오는 주제이기도 하다. 보위
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해주고 있다. "우리는 모두 근본 바탕에서
똑같죠.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사람이거든요. 인종, 나이, 성, 종
교에 관계없이 말이에요. 이 음악은 바로 그 근본에서 이러한 점에
대한 것입니다."
뱅의 얘기를 들어보자. "저에게 프리란 말은 열려있음을 뜻해요.
열려있다는 건 장단, 박자의 전개, 작곡, 선율따위에 대해서 도표
를 작성하거나, 이런 것에 대해 느낀다는 게 아니죠. 그건 바로 당
신이 어떻게 느끼냐는 것, 즉 감정에 대한 거에요." 여기서 감정이
란 건 틀림없이 사람됨의 본바탕일 것이다. 형식에 대한 뱅의 생각
은 엘리스와 비슷하다. 연주자들이 힘찬 집단연주를 할 동안에 고
유한 "내부 구조"가 항상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뱅은 알고
있다. "그런 집단연주할 때 음악인들은 귀기울여 듣고 있죠...또
자신들이 연주를 하는동안 실제로 음악을 써내려가고 있어요. 그러
한 내부구조가 지닌, 글로 쓰이지 않은 규칙들과 어휘들을 연주자
들이 이해하게 될 때 나타나게 되는 음악들은 부드럽거나, 강하거
나, 폭신하거나 하여튼 모든 종류의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을 거에
요. 이렇게 하는 연주는 인간으로서 서로 얽혀 있으면서 주고받는
의사소통과 관련되어 있죠. 그냥 '불어제끼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
다."
- 새로운 것의 '정치학' -
(옮긴이 주 : 제가 아래 올린 '프리재즈' 용어해설을 보면 알겠지
만'새로운 것'(the new thing)이란 말은 '프리재즈'의 또다른 이름
입니다.)
1959년에 오넷 콜맨이 재즈계를 뒤흔들며 앞날을 미리 내다 본 작
품, '다가올 재즈의 모습'('The Shape of Jazz to Come')을 내어
놓자 비밥(bebop)이 재즈에서 마지막 낱말이라는 생각은 송두리째
날아갔다. 이보다 몇년 앞선 때에는, 찰리파커와 디지 길리스피가
2차대전 이후로 전개해온 비밥이 가져온 변화를 스윙 보호자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밥(bop) 전통을 지키려
는 조급한 이들은 오넷의 무한히 열린 하모로딕(harmolodic) 에너
지에 당황하고 두려워 했다.
(옮긴이 주: '하모로딕스'(Harmolodics)는 오넷이 자신의 음악을
펼치며 제시한 이론입니다. 단순히 말하면, 전통적으로 악기들에
주어온 할 일을 벗어나자는 겁니다. 이를테면 선율(멜로디)악기와
장단(리듬)악기가 서로 맡은 일을 뒤바꾸는 겁니다. 반주를 주로
하던 악기인 베이스가 앞장을 서고, 드럼이 '선율'(!)을 연주하고,
이때 관악기는 반주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선율-반주
'를 뒤바꾸는 건 일부분이고, 오넷의 음악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이
런 '선율-반주'구도 자체가 깨어지는 겁니다. 연주할 때, 모든 악
기는 자신의 '선율'을 갖고 나옵니다. 오넷의 음악에선 전통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악기들이 내는 음 사이끼리 (미리 약속한 코드에
바탕한) 화음을 맞추는 일은 더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각자 자신의
선율을 진행해 나가면서 다른 연주자와 서로 '주고 받고' 그러면서
진행을 새롭게 펼치는 일이 중요한 겁니다.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한거죠?)
그 당시 '모던 재즈 쿼텟'(MJQ)의 음악지휘자인 존 루이스는 콜
맨이 "진정으로 새로운 것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존경받는 작
곡가 군터 슐러는 오넷의 음악이 "재즈전통에 대한 깊이있는 사랑
과 지식으로 흠뻑 물들어 있다"고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이런 말
들이 있긴 했지만, 이때 콜맨은 비평가와 음악인들로부터 집중포화
를 받았다. 심지어 길레스피조차도 1960년에 '타임 매거진'에서 이
렇게 말했다. "나는 그사람이 무엇을 연주하고 있는 지 모르겠어
요. 그건 재즈가 아니에요."
반면에 에릭돌피와 존 콜트레인 같은 개척자들은 오넷의 새로운
접근법에 영감을 받아 연주를 해나갔다. 이들의 활동을 가리켜 베
이 에어리어에 소속된 코토(koto, 옮긴이 주 : 일본악기입니다.)
연주의 대가인 미야 마사오카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 작업들은 새로운 소리들을 창조해 내는 방법, 소리를 재편성
할 수 있는 방법들을 흥미있는 여러 방식을 쓰며 개인들마다 탐구
해 나간 것이었어요."
이들이 자신들의 전례를 만들어 나가며 발전해 나가자, 이와 함
께 퍼져나간 보수적 적개심이 이들을 맞아 주었다. 1961년 '다운비
트'에서 비평가 존 타이넌은 한껏 비웃는 투로 "트레인과 그의 조
수 돌피의 축복이 넘치는 재즈가락은 재즈에 거스르는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터무니 없는 비판에 기가 꺾이지 않고,
"프리" 운동 (또는 음반산업이 붙인 꼬리표인 "새로운 것")은 앞으
로 힘차게 나아갔다.
1960년대 초기의 재즈 혁명은 똑같이 급진적이었던 그당시 사회
와 정치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었다. 인권운동이 터져나오고, 흑
인민족주의가 출현하고, 아프리카에선 해방운동이 일어났다. 또 존
에프 케네디의 암살로 1950년대의 이상주의는 끝장났다. 이시기의
재즈선구자들은 재즈의 진화과정에서 다음에 올 단계에 손을 대었
고, 따라서 그들의 음악은 그 시대가 절박하게 필요로 한 것들을
담아낼 수 밖에 없었다.
격렬한 한 시대가 펼쳐지면서, 대중운동이 표출해온 정치적, 사
회적 자유에 대한 보수적 반동이 점점 거칠고, 견딜 수 없게 늘어
났다. 베트남 반전운동가들은 폭행을 당하고, 감옥에 잡혀 들어갔
다. 켄트 주에선 대학살이 있었다. 도시 안에선 폭동이 일어났다.
말콤 엑스, 마틴 루터 킹,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되었다. 에프비아
이(FBI)는 흑표범당(Black Panthers)을 해체하는 일을 포함해, 정
치운동가들에 대해서 교활하게 정보공작을 벌였다. 바로 이러한 때
에, 한무리의 새로운 음악이 나타나 강인하고, 날카롭게 소리내고,
미치도록 터지는 차원을 떠맡기 시작한다. 예상한대로 주된흐름(메
인스트림)의 반격은 호되었다. 이른바 실제로 모든 주요 (연주)장
소에서는 "프리" 음악인들을 밖으로 내몰고 문을 잠갔다. 그러나
혁명은 늦춤없이 계속되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젊은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소리를 들리게 하는
데 단단히 마음을 잡고, 온힘을 기울여 나타났다. 이름난 이들 몇
명만 들어보면, 아치 셰프, 찰스 타일러, 마리온 브라운, 파라오
샌더스, 앤드류 시릴이 있다. 시카고의 '창조적인 음악인들의 진보
를 위한 협회'(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reative
Musicians = AACM)에선 무할 리차드 아브람스, 앤소니 브랙스턴,
르로이 젠킨스, 레오 스미스, 헨리 스레드질과 같은 이들, 그리고
아트 앙상블 오브 시카고 구성원들인 로스코 미첼, 레스터 보위,
조셉 자만과 같은 두드러진 혁신가 군단을 길러 내었다.
새로운 음악을 위한 확립된 지원이 없음으로 겪어야 했던 좌절
속에 태어난 AACM은 '손수 네가 해라'(Do-It-Yourself, DIY)는 규
칙아래 운영되었다. 그런 규칙에 따라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공연을
스스로 조직하고, 여러가지 실험 기획들을 북돋우고, 또한 도시젊
은이들을 위해 자유음악(free music) 교실을 열기도 했다. AACM은
셀수없이 많은 다른 연주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를테면, 풍성
한 활동을 한 세인트 루이스의 '흑인 예술가 단체'(Black Artist
Group, BAG)가 있다. 이 단체는 쥴리우스 헴필, 이와 마음을 같이
한 음악인들인 올리버 레이크, 해미엣 브루이엣 (이분은 뒷날 데이
빗 머레이와 함께 '월드 색소폰 쿼텟'이란 팀을 짠다.) 같은 이들
이 공동으로 세운, 온예슬가의 연합체이다.
돈을 제공하지 않고도 연주할 수 있는 장소를 60년대말이 되어서
도 갖지 못했던 AACM의 회원들, 이를테면 브랙스턴, 젠킨스, 스미
스 그리고 또 다른 이들은 자신들의 재산과 가족, 악기들을 싸 짊
어지고는 유럽으로 떠난다. 그리고 스티브 레이시 같이 이미 떠나
있던 이들과 만나고, 미국에서 겪었던 문화에 대한 억누름, 닉슨이
이끈 맹목적 애국주의로부터 벗어났음을 한껏 즐기게 된다. 여러해
동안 유럽대륙은 창조적인 재즈 예술가들에겐 대서양 너머에 놓인
'메카'로 떠올랐다. 실로 아트 앙상블은 이점을 몸소 증명해 주었
다. 그들은 유럽에 온 첫주가 끝날때까지 매일 밤을 새며 작업했던
것이다.
- (재즈의) 진화는 혁명이다 -
70년대 초에 이르러, 이전 10년동안 발전해온 "프리"라는 개념이
재즈 혁신을 위해 나아갈 새로운 방향들을 활짝 터놓았다는 점은
많은 음악인들에게 (그리고 가장 현명한 비평가들에게) 분명한 것
이었다. 그런 혁신은 악기편성, 곡의 구조양식, 집단 즉흥연주, 작
곡과 같은 여러가지 점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주된 줄기에선 여전
히 이런 진보들을 인정하길 거부했다. 왜냐하면 그음악을 팔 방법
을 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진보적 음악이 있다는 점
자체가, 똑같은 옛 생산품을 포장만 다시 싼 판형으로 내어 놓아
대중을 현혹하는 회사들의 시도를 무디게 하였다.
다음 20년동안 대부분의 주요 음반회사들은 해롭지 않은 퓨전과
신전통주의, 회고주의 음악들을 현대적인 새로운 소리로 내어 놓았
다. 다만 이런 흐름에 예외로, '아리스타/프리덤' 회사는 야심에
찬 작업들을 하기도 했는데, 결국 70년대에 몇 년도 못넘기고 사라
지고 말았다. 이탈리아의 '블랙 세인트/소울 노트'같은 유럽음반회
사들은 이런 빈자리를 채워 나갔다. 보난드리니 가문 (옮긴이 주 :
지오반니 보난드리니는 이 회사를 운영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음반을 제작(프로듀스)하고 있습니다.)은 많은 경험을 쌓아온 재즈
인들을 지원해 왔다. 여기에는 스티브 레이시, 조지 러셀, 맥스 로
치, 그리고 수많은 AACM의 대들보 연주자들이 있다. 또한 이뿐만
아니라 특출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을 소개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는
데, 여기엔 빌리 하퍼, 제밀 문독, 월드 색소폰 쿼텟들이 있다. 녹
음 계약에 대한 보수로 많은 돈을 주지는 못했지만, 이런 음반회사
들은 새로운 음악의 진화에 매우 가치 높은 자료들을 제공해 왔다.
여기에 덧붙여 유럽의 음반회사와 도타운 관계를 맺게 되면서 예술
가들은 성공적인 해외 연주여행기회를 풍부히 가질 수 있었다.
미국으로 다시 돌아와보자. 모험적인 재즈연주자들은 (AACM이나
BMG에 속한 위대한 연주인들을 포함한) 자신들이 있던 곳에서 다들
뉴욕시로 이주해왔다. 이곳 뉴욕에선 모험기업가다운 음악인들이 '
손수 네가 해라'(DIY)라는 원리에 따라 자신들의 "창고재즈" (loft
jazz)(옮긴이 주 : 아래 "프리재즈" 용어해설에 약간 설명해 놓았
습니다.) 무대를 창조해 나가면서, 주된줄기의 무관심에 거세게 저
항하였다. 이러한 생활장소 겸 연주공간 - 스튜디오 위(Studio
We), 레이디스 포트(Ladies' Fort), 샘 리버스 리베아 스튜디오
(Sam Rivers' Rivbea Studio), 오넷 콜맨의 창고 - 에서는 앞을 내
다보며 생각하는 연주자들을 정규적으로 무대에 올렸다. 이들 연주
자에는 빌리 뱅, 해미엣 브루이엣, 프랭크 로위, 데이빗 머레이,
제임스 뉴튼, 헨리 스레드질들이 있었다.
70년대말 무렵이 되면서 '로바(ROVA) 색소폰 쿼텟'이 서부지역에
서 나타나면서, 샌프란시스코의 베이 에어리어(Bay Area)엔 비슷한
음악인들을 후원하는 무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래리 오크스는 그때
를 다음과 같이 돌이켜 본다. "그때 열린 무대는 뉴욕의 창고 무대
보다는 더 작고 열리는 횟수도 더 적었죠. 하지만 정말로 열정에
가득차 있었죠." 주요한 연주자 몇명을 들어보면, 로바의 구성원들
인 오크스와 브루스 액클리, 여기에다 헨리 카이저, 루이스 조단,
조지 샘스, 아드리스 액커무어, 존 그런트페스트들이 있다. 특히
그런트페스트는 36명에 달하는 관악기 연주자들을 한무대에 올려
밤새도록 영감에 찬 즉흥연주를 벌이기도 했다.
열정에 불탄 새내기들이 인정을 받기 위해 애쓰는 동안에도, 노
련한 개척자들은 여전히 먹고 살정도의 생활을 위해서 애를 썼다.
앤소니 브랙스턴, 선 라, 세실 테일러처럼 괴짜면서도 생각과 표현
이 분명했던 이들은 대학강단에서 일순간이나마 경제적 안정을 찾
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상황은 언제나 편안치 못했다.
선 라는 버클리의 캘리포니아 대학(UC at Berkeley)에서 "우주
속의 흑인"(The Black Man in the Cosmos)이라는 제목으로 강좌를
열고 가르쳤지만,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급료를 받지 못한 것으
로 전한다. 그리고 테일러는 메디슨의 위스콘신 대학 행정당국이
자신의 학생들 거의 모두를 낙제시킨데 화를 내었는데, 전하는 말
에 따르면 낙제 이유는 충분한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기 때
문이라고 한다.
7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그리고 현재에도 여전히 이어오면서
테일러, 브랙스턴, 조지 루이스, 유진 채드본, 존 조온(John Zorn)
과 같은 전망가들은 "재즈"의 요소를 훨씬 더 늘려 놓았다. 이들은
현대 무용, 영화, 영상, 시, 전위 연극, 20세기 고전양식의 예술
들, 전자/컴퓨터 응용장치과 같은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과 협연을
해나간 것이다. 보통 이들 활동은 정상궤도에서 벗어난 장소, 이를
테면 예술가들이 세얻은 공간에서 열렸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은 소호(SoHo) (옮긴이 주 : 뉴욕 맨하탄 남부지구로 (전위) 예
술가, 미술화랑의 중심가로 유명하다고 하네요.)에 있는 실험음악
작곡가들의 마당으로 '부엌'(the Kitchen)이 있다.
80년대 후반에 마이클 도르프는 모든 종류의 실험예술가들을 위
한 안식처로 삼고자 뉴욕에 '니팅 팩토리'(Knitting Factory)를 열
었다. 그러자 창조적 음악은 오랫동안 애타게 찾던 알맞은 자리를
얻게 되었으며, 새로운 시대를 맞이 하게 되었다. 조온, 채드본,
찰스 개일, 팀 번, 윌리암 파커, 매튜 쉽, 데이빗 에스 웨어 같은
음악인들은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기획들을 얼마든지 작업할 수 있
는 호의로운 환경을 제공받게 되었다. 이리하여 도르프는 도시중심
부에서 오늘날도 계속 번창하는 무대를 이끌어 낸 것이다.
이 무대에서 가장 중요하고, 많은 작품을 내어 놓은 젊은 예술가
가운데 한명인 조온이 1989년에 니팅 팩토리에서 '네이키드 시티
'(Naked City)(조온이 프레드 프리스, 빌 프리셀, 조이 바론, 웨인
호비츠와 함께하여 만들어낸 확 튀는 하드코어한 펑크/재즈 잡종)
를 데뷔시켰을 때, 이날 듣는이들은 무언가 색다른 것이 탄생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조온은 불에 부채질 하는 듯한 이 혼합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프리재즈와 하드코어 펑크 사이를 잇는
것은 저에겐 자연스러운 듯 합니다. 이건 오늘날 많은 사람들도 납
득할 수 있을 듯 해요. 하지만 우리가 처음 연주여행을 떠나 이런
생각을 펼쳐 보였을 때를 돌이켜 볼께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짓
거리들을 하는 것인지 몰라했죠."
도시중심부의 무대에 네이키드 시티가 가져온, 젊음에 찬 반항과
시끄러운 전자음들은 상당히 많은 수의 "대안" 또는 "독립" 록연주
가들을 새로운 소리로 끌어들였다. 또한 해외 여러 나라들에서 극
단의 음악을 추구하는 이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특히 일본에선 '루
인스 앤 보어덤'(Ruins and Boredom)과 갈은 악명 높은 "소움공해
"(noise)(잘못 붙인 이름일 터이다) 록연주자의 애호가들 사이에서
조온의 그룹 네이키드 시티와 '페인킬러'(Painkiller)가 많은 환영
을 받았다. 오늘날 락을 중심으로 한 최신 음반회사들 몇군데에서
첨단의 재즈가 같은 시대의 펑크 세대에게 말을 거는 것을 깨닫고,
최고수준의 새로운 재즈를 현재 발매하고 있다. 이런 보기 드문 것
으로 몇개 찾아본다면, '팀 커 레코드'(Tim Kerr Records)에서 내
놓은 웨인 호비츠의 그룹 '피그펜'(Pigpen)의 음반, '헨리 롤린스
213시디'(Henry Rollins 213CD)에서 내놓은 매튜 쉽의 음반, '홈스
테드'(Homestead)에서 내놓은 데이빗 에스 웨어의 음반이 있다.
지난날의 "전위"가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 목청을 한껏 돋
구자 이제 이음악은 틀에 박히지 않은 재즈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주된줄기(이럴수가!)의 진영과 연결을 맺고 있다(믿을 수 있나
요?). '다운비트'에서 레지 워크맨의 음반 '서밋 컨퍼런스'(Summit
Conference)를 평하면서, 비평가 래리 번바움은 다음과 같은 의견
을 제시하고 있다. "이전의 전위 음악 가운데 일부가 점점 잘 닦이
고, 세련되면서 일종의 주된줄기 그림자로 되었다."
레스터 보위는 이보다 더 긍정해서 말을 한다. "윈튼 같은 친구
들인 전통주의자들에 대해 커다란 저항이 있어요. 왜냐하면 사람들
은 그런 연주회는 이제 따분해 하거든요. 유럽에선 윈튼 같은 친구
는 어떤 것도 끌어모으지 못합니다."
나는 이렇게 거꾸로 "저항"이 일어나는 것을 환영하면서 이를 증
언할 수 있다. 이런 저항은 베이 에어리어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
다. 음반가게에 가보자. 윈튼 마살리스의 음반은 낡은 통에 담겨
싸구려 값으로 쌓여 있고, 에릭 돌피의 음반목록은 웃돈을 얹어주
고야 구할 수 있다.
지구 전체에 걸쳐 존경을 받고 있으며, 무어라고 정의내릴 수 없
는 이 위대한 음악은 끝내 미국에서도 마땅한 대접을 받으며 폭넓
게 여러 매체를 통해 나타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다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그것은 혁명적 음악이고 혁명은 사
람들을 두렵게 한다. 그러나 이런 점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오
로지 이 음악은 지난 30년동안 용감하게 탐험을 해오면서 다음을
증명해 왔다. "고대에서 미래로" ("from the ancient to the
future")라는 AACM의 표어를 항상 마음에 두며 계속해서 앞으로 행
진해 나갈 것이라는 점 말이다. 언젠가 이 음악에 이르게 될 운좋
은 이들은 이 음악을 들을 때, 그것이 지닌 불가사의한 힘을 알게
될 것이다.
- 서부 지역 -
뉴욕, 시카고, 로스앤잴레스, 보스톤, 이밖에 미국의 구석구석에
있는, 같은 성향을 지닌 이들의 무대와 발을 맞추면서, 샌프란시스
코의 베이 에어리어(Bay Area)는 세계적인 재즈 르네상스가 펼쳐지
는 본고장이 되고 있다. 여기서 펼쳐지는 음악은 아마도 틀림없이
동시대 음악 가운데 가장 참신할 것이다. 현재 거센 흐름으로 펼쳐
지는 이들 활동은 앤소니 브랙스턴이 밀스 대학 (Mills College)에
재직하기 몇년 전에 시작되었다.
(옮긴이 주 : 브랙스턴은 1985년부터 1990년까지 캘리포니아주, 오
클랜드에 있는 밀스 대학에서 음악과 교수직에 있었습니다. 이 기
간에 브랙스턴은 작곡자 겸 연주자인 데이빗 로젠붐, 타악기연주자
윌리암 위넌트와 함께 활동하고, '챌린지'(Challenge)를 결성하기
도 합니다. 이시절에 브랙스턴은 이밖에도 여러가지 다양한 음악활
동을 펼쳐나갑니다. 이어서 1990년부터는 코넷티컷에 있는 웨슬리
안 대학 (Wesleyan University)에 음악과 - 이곳은 '세게 음악
'(world music)의 세계중심지 노릇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 교수로
임명됩니다. 여기서도 음악과의 학과장까지 맡고, '트라이 센트릭
앙상블' (Tri-Centric Ensemble)을 조직하기도 하면서 교육과 연주
양쪽에 걸쳐 여러가지 신선한 활동을 펼칩니다.)
오늘날 창조적 음악공동체의 바탕에는 활동적인 탐구자들의 3가
지 세대가 폭넓게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작업에서
어떤 모양으로든지간에 이른바 "프리" 기법을 자주 가져다 쓰고 있
다. 한편엔 글렌 스피어맨, 라일 엘리스, 존 장, 올레이우미 토마
스, 이제오마 토마스, 로바, 마크 이주같은 음악가들이 있다. 다른
한편엔 벤 골드버그, 그래이엄 콘나, 프란시스 웡, 댄 프론시, 미
야 마사오카, 스트래터 트리오가 있다. 또 다른 한편에는 젊은 혈
기 가득한 바이제이 아이어, 패티 붐 붐, 브라이언 케인이 있다.
대중적인 행태와는 반대로, 베이 에이러의 최고 음악인들은 몇
년전 다음과 같은 일을 하기로 의식있게 결정하였다. 즉 공동자금
을 모으고, 속좁은 질투나 자기중심적 행동, 가장 "고급"인 예술
형태와 종종 연관되는 남보다 더 낫다는 배타주의 따위를 씻어 내
어 버리기로 한 것이다. 오늘날엔 나이, 성, 인종, 음악훈련과정이
서로 다른 연주자들이 함께 모여 특별한 협연을 펼친다. 이 연주들
은 매력있고, 아주 성공적인 묶어내기를 많이 하고 있다. 코토와
하프의 즉흥 2중주에서부터, 래리 오크스, 글렌 스피어맨, 마르코
에네이디, 그래이엄 콘나, 패티 빅밴드의 바이타스 나지세티 들이
이끌어 가는 본격 빅밴드까지 그러한 묶음은 실로 다양하다.
베이 에어리어의 음악인들은 상호작용하는 대안적 방법을 탐구하
고, 광범위한 영역에 걸친 사상들에 열린 태도를 갖고 이를 조사하
며, 위험을 무릅쓰는 일들 따위를 사회적, 음악적 양쪽 영역에서
서로들 기꺼이 하려고 한다. 이러한 혁명적인 긴박함은 '새로운 것
'이 본래 지녔던 에너지와 비슷하다. 이러한 포용성은 여러가지 방
식으로 인류평등주의 윤리를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 이 윤리는 우
리의 분열을 일으키는 행동이 지구상에서 우리 자신을 사라지게 하
기 전에 우리가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라일 엘리스는 이렇게 주장
한다. "이 음악은 기분전환이나 기분풀어주기와 같은 뜻을 지닌,
단순한 오락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이 음악은 오히려 의식을 일깨
움, 관용, 의사소통과 같은 쟁점을 정면으로 다루는 사회적, 문화
적 울림통(resonator)입니다."
이 지역에서 이러한 작업양식은 수지가 맞고 있다. 베이 에어리
어 현장에서는 점점 더 많이 (결코 충분하지는 않지만) 이들 음악
을 정기적으로 무대에 올리고 있으며, 갖가지 청중을 끌어모으고
있다. 청중에는 앨리스 도넛 이나 헨리 롤린스들을 좋아하는 젊은
이에서부터 충실한 재즈애호가까지 여러사람들이 걸쳐 있다. 이들
의 뛰어난 음반들은 최신 유행의 음반가게들에서 잘 나가고 있다.
또한 세계가 이들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에 영국의 BBC방송은 베
이 에어리어의 활동이 일으키는 회오리바람을 취재해 갔다. 또 스
노컬과 '왓 위 리브'가 최근에 펼친 유럽연주여행은 뜻깊은 성공을
거두었다. 스피어맨, 로바, 엘리스, 골드버그 이밖에 여러 다른 이
들은 '뱅쿠버 재즈 한마당(페스티벌)'에 정기적으로 연주하고 있
다. 또한 지난해 여름 미야 마사오카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
린 국제연합 기념 연주회에서 수브라매니암이 이끄는 유명한 집단
즉흥연주에 협연하도록 부탁받기도 했다.
베이 에어리어 무대는 여러 연주인과 강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
다. 뉴욕 중심가 니팅 팩토리(Knitting Factory) 공동체의 여러 사
람들 이를테면 존 조온, 마티 에르리히, 엘러리 에스케린 같은 이
들, 여기에 로스 앤젤리스의 비니 골리아, 콘 필리아노, 넬스 클라
인 같은 이들이 있다. 또한 이 지역 연주인들은 오늘날까지 살아남
은, 초기 자유투쟁 물결의 구성원들과도 풍부한 교류를 갖고 있다.
작년 10월에 열린 샌프란시스코 재즈 한마당에선, 세실 테일러가
자신의 '크리에이티브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위해 베이 에어리어의
최고 연주인들을 상당수 끌어들이기도 했다. 또한 트롬본 연주자이
자, 전자음악 혁신자인 조지 루이스 (스티브 콜맨도 함께)가 23세
의 나이인 바이제이 아이어의 데뷔 음반인 '메모로필리아'에 나타
나기도 했다.
만약 음악의 자유가 자신의 본능적인 느낌에 따라 선택을 하는
것을 뜻한다면, 또는 상업주의가 가하는 압력에 굴하지 않고 집단
의 합의에 따르는 것을 뜻한다면, 또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지, 무엇이 재즈이고 무엇이 재즈가 아닌지에 대하여 건설적으로
꾸며 내는 것을 뜻하다면, 이 음악은 자신이 얻는 것만큼 자유로울
것이다. 우리가 이 음악의 소리를 정의내리기 위해 어떤 낱말을 쓰
든지 간에, 이 음악은 변함없이 그러한 정의가 포괄하는 영역 너머
로 나아갈 것이다. 바로 그러한 점이 이러한 종류의 노래만들기 작
업이 지닌 아름다움이다. 이 음악은 아마도 말로 정확히 묘사하기
어려운 것을 뜻할지 모른다. 양쪽 귀를 활짝 열어 놓고 이 음악을
듣는 것이 아마도 가장 올바른 일일 것이다.
듀크 (옮긴이 주: '듀크 엘링턴'일 겁니다.)가 말했듯이,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이 있다." 확신을 갖고 말하건데, 이런 "자유"
(free) 담론 속에서 우리에게 이야기를 하는 음악은 모두 좋은 것
이다.
[베이 에어리어의 알짜 음반들]
-Graham Connah Group 'Snaps Erupt at Pure Spans' (Soul Note)
-Fatty Boom Boom 'Fatty Boom Boom' (Fat Free)
-Steve Adams (of ROVA) & Ken Filiano 'In Out Side' (9 Winds)
-ROVA Saxophone Quartet 'Works Vol. 1' (Black Saint)
-ROVA Saxophone Quartet 'From the Bureau of Both'
(Black Saint)
-Figure 8 [ROVA Double Quartet] 'Pipe Dreams' (Black Saint)
-Glenn Spearman Double Trio 'Mystery Project' (Black Saint)
-Glenn Spearman Double Trio 'Smokehouse' (Black Saint)
-Myles Boisen [of Splatter Trio] 'Guitarspeak' (Rastascan)
-Splatter Trio 'Anagrams' (Rastascan)
-Various Artists 'Wavelength Infinity' [2-CD Sun Ra Tribute
(w/ Splatter Trio, Dan Plonsey, Graham Connah)] (Rastascan)
-New Klezmer Trio [w/ Ben Goldberg] 'Melt Zonk Rewire' (Tzadik)
-Ben Goldberg & Kenny Wollesen 'The Relative Value of Things'
(33 1/4 Records)
-Ben Goldberg, John Schott, Trevor Dunn & Kenny Wollesen
'Junk Genius' (Knitting Factory Works)
-Lisle Ellis 'Elevations' (Victo)
-Plimley-Ellis-Cyrille Trio 'When Silenve Pulls' (Music & Arts)
-Splatter Trio & Debris Play Braxton 'Jump or Die' (Music & Arts)
-Positive Knowledge [Oleyumi & Ijeoma Thomas] 'Another Day's
Journey' (Music & Arts)
-Room 'Hall of Mirrors' (Music & Arts)
-Anthony Braxton Quartet 'Live at Yoshi's 1993) (Music & Arts)
-Francis Wong 'Ming' (Asian Improv Records)
-Francis Wong 'Great Wall' (Asian Improv Records)
-Francis Wong/Tatsu Aoki 'Chicago Time Code' (Asian Improv Records)
-Miya Masaoka 'Composition & Improvisations (Asian Improv Records)
-Glenn Horiuchi 'Kenzo's Vision' (Asian Improv Records)
-Vijay Iyer 'Memorophila' (Asian Improv Records)
-Mark Izu 'Circle of Fire' (Asian Improv Records)
-Tatsu Aoki 'Kiotto' (Asian Improv Records)
-Dean Laabs & Jeff Song 'Invisible Maniac' (Asian Improv Records)
-Jeff Song & Matt Turner 'In Vivo' (Asian Improv Reco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