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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강원/충청 스크랩 충청 외암민속마을
설악산 추천 0 조회 66 08.01.03 10:12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외암민속마을(12.29)

 

현충사를 떠나 외암민속마을로 갔는데 아마도 오후 5시가 넘어서 인지 입장료도 받지 않았다.

너무 늦게 가는 바람에 구경을 많이 할 수 없었는데 느낌이 아주 좋은 민속마을이었다.

그동안 용인민속촌, 제주도 성읍민속마을, 낙안읍성 등을 갔었는데 외암민속마을도 나름대로 가볼만한 곳이었다.

들어가는 입구에 섶다리가 있었는데 출입금지라고 쓰여 있었다.

사람들이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는 돌로된 다리인데 반석교라고 이름이 새겨 있었다.

반석교를 건너가니 반석이 개천에 있고 동화수석, 이백선서란 글이 보였다.

생각보다 집들이 보존이 잘 되어 있어 우리의 옛 향취를 맛볼 수 있는 곳이었다.

시간이 없어 서둘러 민속가옥 전시관을 둘러 보았는데 상류층, 중류층, 서민층 가옥을 차례로 전시시켜 놓아 예전 생활상을 잘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런 것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예전 생활용품과 밀랍으로 만든 인형을 전시시켜 놓아 아주 실감이 났다.

날이 어두워져 서둘러 둘러 보고 왔는데 사람들이 실제 살고 있는 생생한 곳이었다.

초가집에 사람이 사는 지는 확인을 못해보았지만 기와집에는 분명 불이 켜져 있고 사람 소리가 들리었다.

정신없이 시간에 쫓겨 마을을 나왔는데 나중에 인터넷을 살펴보니 우리가 본 것은 마을의 1/4 정도에 불과했다.

화장실 쪽으로 마을이 많이 형성되어 있는 것같았다.

나중에 시간을 내어 이 마을을 하루종일 구경을 해야 할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래 내용은 아산시청 홈페이지에서 가져 온 것입니다.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36호로 (1999년 12월 28일) 국가에서 지정 보호하고 있는 마을로 아산시 송악면 설화산밑에 위치하고 있는 외암리 민속마을 에는 약5백년 전에 이 마을에 정착한 예안 이씨 일가가 지금까지 주류를 이루어 살고 있다. 문중에 걸출한 인물들이 많아서 큰집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지금도 옛 모습을 간직한 집들이 이끼 낀 돌담을 돌면 이 마을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데 돌담너머로 집집 마다 뜰 안에 심어 놓은 과일나무 및 마을 입구의 장승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디딜방아, 연자방아, 물레방아, 초가지붕 등이 보존되어 있으며, 이밖에 많은 민속 유물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특히 이 참판댁과 중요민속자료 95호로 지정되어 있는 영암군수댁(건재 가옥)은 아름다운 정원과 더불어 조상들의 삶의 모습을 느껴볼 수 있는 장소이다. 최근에는 이곳에서 사극이나 영화 촬영이 종종 있으며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원래 외암마을의 주인은 평택진씨였다. 지금도 참봉 진한평(陳漢平)의 묘가 외암 마을 남쪽으로 약 500m의 거리인 구릉의 골말에 위치하고 있어, 과거 이 마을의 주인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묘소의 남쪽에 집터와 연못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이곳이 진참봉의 집터가 아닐까 생각된다.

오늘날 외암마을에 거주하는 주민의 절반이 예안이씨다. 시작은 평택진씨 참봉 진한평의 사위인 이사종이다. 당시 진한평에게는 아들이 없고 딸만 셋 있었는데, 예안이씨 이사종이 진한평의 장녀와 혼인하면서 마을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외암 이간 선생이 쓴 [외암기]"예안이씨가 온양에 들어와 살게 된지 이미 5세가 되었다" 고 하였는데, 조선 명종 때 장사랑을 지낸 이연은 6대조이고, 이사종은 5대조가 된다. 그렇다면 이사종 때부터 이곳에 살았던 것이 분명하다.

또한 [외암기]에서는 선조 이사종이 그의 부친인 이연의 묘를 송악의외록에 정하면서, 별업을 외암에 지어 열승정(閱勝停)의 위치에 대해 읍지에서도 기록되어 있을 만큼 널리 알려져 있었다.

예안이씨는 전의 이씨에서 갈라져 나온 분파로 10세손인 익(翊)이 예안이씨의 시조가 된다. 7세손인 이연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는데 둘째 아들 이사종 계열만 번창하고 있는데, 이사종부터 예안이씨 온양파가 시작되었다.

 

외암 이간 선생은 조선후기의 문신ㆍ학자로 본관은 예안, 자는 공거(公擧),호는 외암 외에 추월헌(秋月軒)이라고 하였다.
숙종 36년(1710)순무사 이만성(李晩成)에 의하여 장릉참봉(葬綾參奉)으로 천거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고 6년뒤인 숙종 42년(1716)에 다시 천거되어 세자시강원자의가 되었는데, 이때 그의 나이가 젊은데도 벼슬이 뛰어오름을 논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숙종실록에서도 '호서사인(濠西士人)이간'이라는 표현이 보이듯

이 온양 향리에서 주로 지낸 이간은 31세 되던 해 권선재를 건립하여 후학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영조 3년 51세로 일생을 마감했는데 정조는 이조참판과 성균관 좨주를 증직하였으며 순조는 이조판서를 추증하였다. 시호는 문정공이고 저서로는 [외암유고]가 있다. 마을에는 외암 이간의 학문적 유업을 기리는 사당이 있고 매년 외암 이간 선생이 사망한 음력 3월14일 불천위제사를 지낸다. 외암 선생의 묘소는 외암리 오른쪽 산기슭에 있으며 입구에 신도비가 남아있다.

외암리에서는 조선후기에 많은 과거 급제자들이 배출되었다. 예안 이씨 집안의 족보를 보면 문과 급제자로 이성렬이정렬이 있다. 이성렬은 고종2년(1865)에 태어나 고종25년(18888)에 문과에 급제하여, 응교, 직각승지, 대사성, 참찬까지 지냈으며, 독립운동에 관여하였다.
이정렬은 고종 5년(1868)에 태어나 고종 28년(1891) 과거에 급제하였으며,참판에 까지 이르렀고, 고종황제로부터 퇴호거사라는 호를 받았다.

조선시대 생원ㆍ진사 합격자의 명단인 [사마방목]을 통해 확인된 외암출신 생원ㆍ진사는 11명에 달한다. 이외에 이사병과 이건주가 학행으로 천거되었고 이건주는 1796년(정조20)에 충청도 관찰사 이정운이 국왕의 분부에 응해 천거한 3사람중에 포함되어 있다.

또한 이건주가 죽은지 3년이 지나 1822년(순조22)에는 선비들의 상언으로 예조에서 고 광흥수 이건주의 효행에 정려할 것을 청하니, 그대로 따르기도 하였다.

퇴호 이정렬(1868~1950)은 조선말기에 이조참판을 지낸 인물로 고종으로부터 퇴호거사(退湖居士)라는 호를 받았다. 이정렬의 할머니가 명성황후의 이모였는데, 명성황후는 이정렬을 매우 아끼어 필묵과 첨지를 내려주기도 하였다.그는 17세 되던해 명성황후에게 당시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음모가 꾸며지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24세 되던 해 과거에 급제하고 관직생활을 시작하여 이조참판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34세때 일본이 강제로 통상조약과 사법권이양

을 요구하니 이에 통분을 이기지 못하고 고종황제에게 상소를 올려 당시의 책임인외부대신을 탄핵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공의 뜻이 조정에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신은 나라를 팔아먹는 조정의 신하가 될 수 없다며 관직을 포기하고 낙향하였다.

관직에서 물러나 송악으로 낙향한 그해 11월 칠은계를 조직하여 충남일대의 항일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참판댁'이라 부르는 퇴호 이정렬이 살던 집에는 지금도 유품이 많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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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1.03 18:09

    첫댓글 마을의 풍경이 너무나 ~~정겹습니다.

  • 작성자 08.01.03 18:22

    새로운 느낌으로 만난 민속 마을 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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