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초입에 들어설 무렵 버스를 타고 원주로 간다. 원주에 대한기억은 저멀리 있다.
23년전에 서울에서 직장생활 할ㄸ ㅐ야유회를 제천 의림지로 가는데 원주로 들러서 간 기억 밖에 없다.
울산에 4시간을 달려 온 원주 .
이 원주 또한 개발로 인해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누어져 울산과 비슷한 도시의 형태이다.
원주는 치악산이 가까이에 있어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원주에서 거돈 사지를 갈려면 택시비는 왕복100000이요 버슬 타면 부론면 까지가서 거기서 잘 없는 택시를타야 한다.
나는 뭘 타고 갔을까?
원주에서 1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거돈사지는 넓은 평원에 탑과 탑비만 존재하고 저뒤에 있는 부도는 새로 복원 한 것이다.
그냥 왔다가 가는 것일까 . 황량한 자체이다. 뭘 볼까 보다는 이 자리에 지키고있는 커다란 탑과 탑비 여러 석재 부재들
그리고 느티나무만이 객을 반긴다.
옛날에는 얼마나 큰 사찰일까? 여러가지 생각만이 떠오른다.
100m를걸어 탑비를 보니 귀부가 고달사지 귀부만큼이 크고 웅장함을 자아낸다.
하늘을보니 맑고 푸르다 .옛사람들의 눈에도 내가본 하늘을 봤을것이다. 당간지를 찾으니 없고 내가 못 찾을 것일까?
천천히 잔듸밭을 걸으며 옛님을 그림자를 밟아 본다.
<문화재청>
현계산 기슭의 작은 골짜기를 끼고 펼쳐진 곳에 있는 절터이다.
발굴조사 결과 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처음 지어져 고려 초기에 확장·보수되어 조선 전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밝혀졌다. 절터에는 중문터, 탑, 금당터, 강당터, 승방터, 회랑 등이 확인되었는데, 금당의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으로 2층 건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중문지 북쪽의 3층석탑(보물 제750호)은 처음 세워질 때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는데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탑의 동쪽에는 원공국사 지조(930∼1018)를 위한 원공국사승묘탑비(보물 제78호)가 있는데, 1025년 최충이 문장을 짓고 김거웅이 글씨를 썼다. 탑비와 함께 원공국사승묘탑(보물 제190호)이라 불리는 부도가 있었는데 현재는 경복궁 뜰 안에 옮겨 놓았다. 거돈사는 고려 초기 불교계의 중심이었던 법안종의 주요 사찰이었지만, 고려 중기 천태종이 유행하면서 천태종 사찰로 흡수되었다.
거돈사는 신라말 고려초의 절터로서 보기 드문 일탑식 가람으로 주목할 만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