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장 1~12절/증인들이 보인 믿음(375/545)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믿음으로 출발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대속하신 분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이 된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의 삶은 믿음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 믿음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은 없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눈에 보이는 어떤 현상을 보고 믿는 사람들이 아니다. 지금은 현실적으로 전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먼저 믿음의 눈으로 보고, 자신이 믿은 그 모든 것이 실제로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들이다(1,2).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이 믿음의 대 전제를 먼저 말하고 이 믿음의 대전제를 한 시대를 믿음으로 살아간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1.우리가 창조를 믿는 것도 역시 믿음이다(3). 세상은 진화론을 주장하면서 창조가 거짓이며 황당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화만큼 거짓되고 황당한 이야기도 없다. 마치 진화가 역사적인 사실이며, 과학을 근거로 하고 있다고 주장을 하는데, 진화라는 것 자체가 먼저 믿음에서 출발한다. 그러니까 사실 세상에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은 모두 믿음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창조가 더 사실에 바탕을 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알고, 그리고 과학적인 사실로 하나씩 확인해 갈뿐이다. 비행기나 빌딩이 저절로 생겼다고 말하면 믿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저렇게 정교하며 체계적인 것이 저절로 생길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비행기나 빌딩보다 더 훨씬 체계적이고, 정고하며, 복잡한 것이 이 세상이고, 사람이고, 동물이고, 식물이고, 우주가 운행하는 것들이다. 어떻게 저절로 생겼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2.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4). 창세기에는 믿음에 대한 내용이 없다. 그러나 히브리서에서는 아벨이 더 나은 제사를 드린 것은 그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벨은 평상시에 하나님과 관계를 중시하였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경건하게 살았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과 관계 맺음이 없이 어쩌면 의무적으로 드렸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수가성 여인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3.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사람이다(5).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 부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에녹은 무드셀라를 낳은 후에 삼백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을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무드셀라’는 이 아이가 죽으면 심판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기에 에녹은 날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던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는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인도받는 사람이다.
그러한 만큼 에녹은 하나님이 계신 것과 또한 상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6). 에녹은 오늘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또한 하나님이 상 주실 것을 믿고 세상의 악에 휩쓸려 가지 않았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세상의 죄악과 탐욕에 휩쓸려 가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면서 그 가치에 대해서 상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이 더 가치있으며, 영광스러운가? 이것을 상대화 할 수 있는 사람은 마치 귀한 보화를 사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팔아서 보화하나를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상을 바라보자.
4.노아는 경고를 받은 다음에부터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만들었다(7). 노아 시대는 세상에 죄악이 관영한 시대이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더 이상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영적인 악취가 풍기는 시대였다. 이때 노아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받은 다음에 가족들과 함께 방주를 지었다. 노아는 현재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미래의 심판을 준비한 사람이다. 미래의 심판이 분명히 있을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심판의 어떤 징조도 없었다. 변화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삶을 살았다. 우리는 모두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이 말씀을 믿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지금 전혀 징조가 없고, 변화가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신실했다. 우리 노아 시대에 있었던 심판의 증거를 가지고 믿는 사람들이다. 노아는 심판의 말씀이 있었지만, 앞선 세대에 이러한 증거가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이 심판의 날이라는 것을 믿고 미래를 준비하면서 거룩한 영적인 싸움을 싸우며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이 되자.
5.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부름을 받았기에 순종하면서 길을 떠난 믿음의 사람이다(8~10). 아브라함은 처음에 부름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약속은 있었지만 그 약속이 정확하게 어떤 장소에서, 언제 성취가 될 것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부름에 순종하였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인도하실 때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 인도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믿음은 모든 것을 다 보고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 주어진 말씀을 믿고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은 나그네로 살았다.
6.사라는 믿음으로 이삭을 낳았다(11,12). 사라는 자신의 몸에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죽은 자와 같은 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따라서 그는 이삭을 낳았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것은 언제나 먼저 믿음이 선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