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에 따른 절식

[환한소나무]

우리 조상들은 다달이 있는 절기에 맞춰 특별한 음식을 해 먹었는데 이를 절식(節食)이라 하고, 시식(時食)은 춘하추동 계절에 따라 나는 식품으로 만든 음식을 통틀어 말한다. 예부터 홀수이면서 달과 날이 같은 날을 큰 명절로 여겼는데 단일(端一), 단삼(端三), 단오(端午), 칠석(七夕), 중구(重九)가 있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제철에 나는 재료를 그 때에 맞게 조리하여 먹는 음식을 시식(時食) 또는 절식(節食)이라 이르니 흔히 명일(名日)을 중심으로 하여 이를 각미(覺味)하였다”고 하였다. 시절식은 궁중이나 민가나 비슷하고, 서울이나 지방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명절은 대부분 농사의 월령과 관련지어 지키는 세시풍속이 대부분이다. 조선 시대의 세시풍속은 『경도잡지』, 『동국세시기』, 『열양세시기』에 잘 나와 있다.

정월

정월 차례(正月 茶禮)
종묘나 가묘에서 제사 지내는 것을 차례라 한다. 정월 차례를 떡국차례라고 하는 것은 메(飯(반)) 대신에 떡국을 올리기 때문이고, 차례를 지내기 위해 만드는 음식을 세찬(歲饌)이라 한다.

원단(元旦)의 절식은 흰떡, 떡국, 만두국, 약식, 약과, 다식, 정과, 강정, 전야, 빈자떡, 편육, 족편, 누름적, 떡찜, 떡볶이, 생치구이, 전복초, 숙실과, 수정과, 식혜, 젓국지, 동치미, 장김치 등이다. 세찬 중에 가장 으뜸은 멥쌀로 만든 흰떡이며 이것으로 떡국을 끓일 때 쇠고기, 꿩고기, 닭고기 등을 넣는다.

정월 삼일에는 승검초편, 꿀찰떡, 봉오리떡(두텁떡), 오리알산병, 각색주악, 각색단자 등을 절식으로 삼기도 한다.

   

정월 설날설날에 세찬으로 떡국, 갈비찜, 편육, 수정과 등을 상에 올린다.

상원(上元)
상원을 대보름이라고도 한다. 상원 절식의 으뜸은 약식(藥飯)이다. 약식의 유래는 “신라 소지왕(炤智王)이 정월 15일 까마귀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였다. 그 은혜에 보답코자 찹쌀밥을 지어 까마귀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삼국유사』에 씌어 있다. 신라 시대에는 약밥이 아니고 찹쌀밥이었는데 고려 시대의 『목은집』을 보면 기름, 꿀, 잣, 밤, 대추 등을 넣어 만든 호화로운 음식이었다. 서민들은 약밥을 해 먹기가 어려워 대신 오곡밥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어 먹는 풍습이 남게 된 듯하다.

대보름 절식에는 오곡수라, 묵은나물(上元菜(상원채)), 약식, 유밀과, 원소병, 부럼, 귀밝이술, 복쌈, 팥죽 등이 있다.

상원채(上元菜)는 지난해에 말려 둔 묵은 나물들을 삶아서 나물을 만드는 것으로, 오곡밥과 같이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안 탄다고 한다. 아홉 가지 나물은 호박오가리, 가지고지, 시래기, 묵나물, 취나물, 박나물, 표고 등이다. 『동국세시기』에서는 이 나물을 ‘진채(陳菜)’라 하였다. 오래 산다고 하여 배춧잎, 취, 김으로 쌈을 싸서 먹는데 이를 복쌈 또는 명쌈이라고 한다.

또 이른 새벽에 날밤, 호두, 은행, 잣, 무 등을 깨물며 1년 동안 무사태평하고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달라고 축수한다. 이를 부럼 또는 작절(嚼癤)이라고 한다. 치아를 튼튼하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정월 보름경에는 씨를 뿌리기 전의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로 『경도잡지』나 『동국세시기』에 나와 있는 ‘화적(禾積)’이 있다.

시골 인가에서는 보름 전날 짚을 묶어 깃대 모양을 만드는데 그 안에 벼, 기장, 피, 조의 이삭을 집어 넣어 싸고 목화를 그 장대 위에 매단다. 그것을 집 옆에 세우고 새끼를 늘어뜨려 고정하는데 이를 화적이라 한다.

  

대보름대보름 절식으로 지난해에 말려 둔 묵은 나물을 삶아서 무치고 오곡밥과 함께 먹는다.

입춘(入春)
입춘날에는 진산채(進山菜)라 하여 경기도의 산골 지방에서 움파, 산갓, 당귀싹(辛甘草(신감초)), 미나리싹, 무싹 등의 오신반(五辛盤)을 궁중에 진상하고, 민가에서도 서로 선물을 주고받았다. 산갓은 초봄에 눈이 녹을 무렵 땅속에서 움터 나오는 풀싹인데 데쳐서 초장에 무치면 매우면서도 맛있다. 당귀싹은 움에서 키운 것으로 깨끗하기가 은동곳 같아 꿀을 찍어 먹으면 맛이 좋다고 하였다.

중국의 옛 기록에 “동진(東晉)의 이악(李鄂)이 입춘날 무와 미나리로 채반을 만들어 손님을 대접했다”고 했고, 두보(杜甫)의 시에 “입춘날에 가느다란 생채(春日盤細生菜(춘일반세생채))”라는 말이 있으며, 소동파(蘇東坡)의 시에도 “파란 쑥과 노란 부추가 봄에 채반에 올랐도다.” 하였다. 오신반의 다섯 가지 생채에 대하여 중국과 우리의 문헌에 여러 가지 설이 전해지나 그중 움파, 산갓, 당귀싹 세 가지가 속한 것은 확실하다.

이월

중화절(中和節)
정조 병진년(1766년)에 음력 이월 초하루날(朔日)을 중국 당나라의 중화절을 본따 농사일이 시작되는 날로 정하였다. 당나라의 이필(李泌)이 임금에게 “이월 초하루를 중화절로 삼아 백관으로 하여금 농서(農書)를 올리게 하고 힘써야 할 근본을 나타내게 하십시오”라고 한 기록에서 따 온 것이다. 농가에서는 그 해의 풍년을 빈다는 뜻으로 정월 대보름날 세워 두었던 볏가릿대에서 벼이삭을 내려 송편을 만들어 먹었다. 이 떡을 노비에게도 나누어 주어 농사일을 격려하여 이 날을 노비일(머슴날)이라고도 한다.

김장철에 말려 두었던 시래기를 양념하여 송편의 소로 넣어 쪄 먹으면 일 년 내 고약한 병과 액운을 면할 수 있다고 하여 액막이로 먹기도 하였다.

문묘석전(文廟釋奠)
이월 첫 정(丁)일에는 문묘석전을 행한다. 문묘는 공자와 그 밖의 명현의 위패를 안치하는 곳이다. 제물은 소나 돼지의 희생을 쓰고, 밥을 쪄서 올린다.

천빙(薦氷)
이월 안에 길일을 택하여 태묘(太廟)에 얼음을 천신한다.

삼월

삼짇날(上巳日(상사일))
삼춘(三春 : 봄의 석 달)의 가장 큰 명절로 삼는다. 삼동을 꼭 갇혀 살다가 화창한 봄을 맞아 해방된 기쁨을 만끽하는 명절이다. 이 때 동류수(東流水)에 나가서 불계(佛械 : 신에게 빌어 재액을 제거함)의 종교 의식을 행한다. 모든 묵은 때를 없애 버린다는 뜻이며 이 날은 강남에서 제비가 돌아오는 날이라 한다. 들판에 나가 무성한 풀을 밟고 새로운 생명을 반기고 풍류를 즐기는 인사들은 냇가에 모여서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 : 삼월 삼짇날, 곡수에 잔을 띄워 그 잔이 자기 앞에 오기 전에 시 따위를 짓는 놀이)을 벌인다. 이 고적이 경주 포석정(鮑石亭)에 남아 있다. 중삼절에는 두견화(杜鵑花)전, 화면(花麵), 수면(水麵)을 천신한다.

삼짇날의 절식은 청주, 육포, 절편, 녹말편, 조기면, 진달래화전, 수면(水麵), 청면(淸麵), 화면(花麵) 등이 있다. 오미자를 찬물에 담가서 우려내면 빨갛고 신맛이 난다. 꿀을 타서 신맛과 단맛을 맞추어서 오미자국을 마련한다. 두견화가 피기 전 이른 봄에는 화채감이 마땅치 않다. 이 때 녹두 녹말을 만들어 홀홀하게 풀어서 놋쟁반에 한술 떠서 얇게 펴 끓는 물에 중탕하여 익히다가 반 정도 익으면 더운물 속에 담가 말갛게 다 익으면 꺼내서 찬물 속에서 떼어 낸다. 이 얇은 조각을 돌돌 말아서 물에 훑어 곱게 채썰어서 오미자국에 띄운다. 마시면 매끄럽게 넘어가는 촉감이 아주 좋은데, 이를 수면 또는 청면, 창면(暢麵), 책면(冊麵)이라 한다. 화면은 오미자화채의 건지로 진달래꽃을 띄우는, 운치 있는 음료이다. 진달래꽃은 술을 따 내고 녹두 녹말을 묻혀서 끓는 물에 잠깐 넣어 녹말이 익어서 매끄러워지면 찬물에 건져서 오미자국에 잣과 함께 띄우면 맛과 빛깔이 아주 훌륭하다.

삼월 삼짇날3월이 되면 들이나 산에서 진달래꽃과 참꽃을 따서 꽃술을 빼고 화전을 부쳐 가묘(家廟)에 천신하고 함께 먹었다.

화전(花煎)놀이
진달래꽃과 참꽃을 따서 꽃술을 빼고 찹쌀가루를 지질 때 붙인 화전은 가묘(家廟)에 먼저 천신하고 함께 먹는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필운대(弼雲臺)의 살구꽃, 북둔(北屯)의 복사꽃, 흥인문(興仁門) 밖의 버들이 아름다워 이곳에 모여서 꽃놀이도 하고 화전을 부쳐 먹으며 하루를 즐겼다고 한다. 조선 말기 궁중에서는 창덕궁 후원(비원)의 옥류천에 나가서 궁녀들이 진달래꽃을 따서 그 자리에서 화전을 부치고 즐겼다고 한다. 왕은 봄, 가을로 꽃놀이에 행차하는데 이 날 준비는 소주방(燒廚房)에서 했다. 봄에는 두견화를 따서 화전을 부치고, 가을에는 국화전을 부치면서 꽃놀이를 했다.

곡우절(穀雨節)
곡우는 농가에서 모판을 만들기 시작할 무렵으로 곡우절 삼일은 공미리(針九魚(침구어))가 한창이고, 경기도 일대와 서울로 들어오는 연평도 조기는 이 때 기름이 가장 많이 오르는 때여서 맛이 좋다. 음력 삼사월이면 소어(蘇魚 : 밴댕이)와 웅어가 많이 잡혔다. 웅어는 한강 하류인 경기도 고양군 양주 근처의 사옹원의 관망(官網)으로 잡아서 진공(進供)했다. 궁중에서는 이 웅어로 고추장을 넣고 감정(찌개)을 만들어 올렸다. 소어는 안산 군자만에서 많이 잡히며, 회, 구이, 전, 찌개 등을 해 먹는다.

한식(寒食)
한식은 동지에서 105일째 되는 날이며 이 날 성묘를 한다. 민간에서는 설날, 한식, 단오, 추석의 네 명절에 제사를 올리고, 궁중에서는 여기에다 동지를 더하여 오절사(五節祀)를 지냈는데 술, 과일, 포, 식혜, 떡, 국수, 탕, 적 등을 차렸다. 민간에서는 이 날을 전후하여 쑥탕, 쑥떡을 해 먹고 조상의 무덤에 떼를 입혔다.

중국 춘추 시대에 개자추(介子推)란 신하가 진나라 문공(文公)이 공자(公子)로서 망명할 때 19년간 모셨다. 그는 문공이 귀국한 후에 간신의 모함을 받아 벼슬을 하지 못하고 면산(緜山)에 숨어 살았는데 문공이 잘못을 뉘우치고 나올 것을 간청했지만 나오지 않았다. 문공이 산에 불을 질렀으나 그래도 나오지 않고 늙은 홀어머니를 껴안고 버드나무 아래에서 타 죽었다. 그래서 이 날은 문에 버드나무를 꽂기도 하고 개자추를 생각하며 불을 쓰지 않고 찬밥을 먹어 냉절(冷節)이라 하기도 한다.

봄철 시식
이 때의 시식으로 탕평채(蕩平菜), 수란(水卵), 조기국, 하돈(河豚), 도미찜, 서여증식(薯蕷甑食), 떡 등이 있다. 탕평채는 늦은 봄 녹두묵(菉豆泡縷(녹두포누))에 돼지고기, 미나리, 김을 넣고 초장으로 무친 음식이다.

수란은 달걀을 끓는 물에 넣고 반숙한 것으로 초장을 찍어 먹으며, 조기국은 황저합(黃苧蛤 : 모시조개)과 석수어(石首魚 : 조기)를 한데 넣고 끓인 국이다. 하돈은 복어를 가리키는데 복숭아꽃이 떨어지기 전에 미나리를 넣고 기름장으로 국을 끓이면 맛이 아주 좋다. 도미찜은 가장 맛이 있을 때의 도미(禿尾魚(독미어))로 찜을 하는데 승기악탕(勝妓樂湯)이라고도 하였다.

서여증식은 서여(마)를 쪄서 꿀에 찍어 먹는 것으로, 생실과 접시에 함께 담아 낸다.

여러 가지 떡인 각색병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동국세시기』에서는 떡집에서 멥쌀로 만든 흰떡에 팥소를 넣고 방울떡을 만들어 오색빛을 찍어 다섯 개를 염주처럼 꿰어 만든 것을 환병(環餠)이라고 하였고 청, 백, 분홍색 등으로 반달형으로 만든 떡을 작은 것은 다섯 개, 큰 것은 두 개 또는 세 개를 잇대어 붙인 것을 산병(散餠)이라 하였다. 지금의 개피떡과 같다. 오색떡을 크게 만든 마제병(馬蹄餠), 대추를 넣은 찰시루떡도 춘절의 시식이다.

  

봄도미찜, 탕평채, 대합구이, 두릅회 등이 있다.

사월

초파일(燈夕節(등석절))
초파일은 석가모니의 탄생일로 저녁에 연등하여 경축한다. 중국의 연등회는 정월 15일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때부터 4월에 지낸다.

인가마다 등대(燈竿(등간))를 세우고 위쪽에 꿩의 꼬리를 장식하고 깃발을 만들어 자녀의 수대로 등을 달아 올렸다.

초파일에는 고기를 넣지 않은 음식을 만들어 소연(素宴)을 베푼다. 소찬(素饌)으로 삶은 콩, 미나리강회, 느티잎시루떡 등이 있다. 궁중의 초파일 절식에는 녹두찰떡, 쑥편, 화전, 청홍주악, 석이단자, 국수비빔, 양동구리, 해삼전, 양지머리편육, 신선로, 도미찜, 웅어회, 도미회, 미나리강회, 가련수정과, 순채화채, 청면, 제육편육, 생실과, 숙실과, 햇김치 등이 있다.

초여름(初夏(초하)) 시식
초여름 시식으로는 기주떡, 화전, 어채, 어만두, 미나리강회 등이 있다. 기주떡은 쌀가루에 술을 넣어 발효시켜서 쪄낸 증병으로 여름철에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떡이다.

여름철 화전은 노란 장미꽃을 찹쌀 반죽에 붙여서 지진 것이며, 어채는 흰살 생선의 살을 잘게 썰어서 녹말을 입혀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낸 숙회이다. 오이, 국화잎, 석이, 달걀 지단 등과 함께 놓는다. 어만두는 민어 같은 흰살 생선을 넓게 조각을 떠서 고기 소를 넣어 만두처럼 빚어서 쪄내어 초장을 찍어 먹는다. 미나리강회는 미나리나 연한 실파를 끓는 물에 데쳐서 강회로 말아서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 것으로 술안주로 많이 한다.

오월

단오(端午)
단옷날은 수리(戌衣(술의)), 수릿날, 천중절(天中節), 단양(端陽) 등으로도 불린다. 이 날은 여름 더위가 시작되는 날이라 하여 부녀자들이 창포 삶은 물로 머리를 감고, 창포 뿌리를 깎아 비녀를 만들어 ‘수복(壽福)’이란 글자를 새겨 꽂기도 하였다. 궁중의 단오 절식에는 증편, 어알탕, 준치만두, 앵두화채, 제호탕, 생실과, 수리취떡 등이 있다. 수리취떡은 수리취를 삶아서 절편을 찧을 때 함께 쳐서 수레바퀴 문양 떡살을 박아 만들어 차륜병(車輪餠)이라고 하고, 쑥을 삶아서 넣은 애엽고(艾葉餻)도 있다.

『성호사설』에는 “주악, 증편, 수단이 단오절의 절식”이라고 씌어 있으나 “지금은 중요시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고려 시대의 『목은집』에는 “창포 배금 술잔에 창꽃이 떠 있다”는 구절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창포주가 고려 시대의 단오 절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단오날 오시(午時 : 낮 12시)에는 쑥과 익모초를 뜯어서 응달에 말려 일 년내 약용으로 쓴다. 대추나무가 있는 집에서는 “대추나무 시집보내기(嫁樹(가수))”라 하여 대추나무의 두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놓으면 대추가 많이 열리고, 다른 과수도 이 날 전지(剪枝)를 하면 과일이 많이 열린다고 한다.

제호탕은 약이면서 청량음료에 속한다. 단오절부터 여름 내내 시원한 냉수에 타서 마시면 더위를 타지 않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한다. 제호탕의 재료는 백청(白淸) 한 두, 오매말(烏梅末) 10량, 백단향(白檀香) 8돈, 축사(縮砂) 4돈, 초과(草果) 3돈이다. 약재 모두를 고운 가루로 만들어서 백청을 끓이면서 넣어 되직하게 될 때까지 달여서 백항아리에 담아 놓고 먹을 때에 냉수에 몇 숟가락씩 타서 마신다. 속이 시원하고 향기가 오래도록 가시지 않는다고 한다.

장 담그기(沈醬(침장))
콩을 볶아서 삶아 메주를 만들어 장을 항아리에 담아서 겨울을 넘겼다가 먹는다. 신일(申日)에는 무슨 일이든 꺼리지만 장을 담글 때는 더욱 꺼린다.

유월

유두(流頭)
유월 보름을 유두라고 하는데 대개 신라의 풍습을 따른다. 동으로 흐르는 냇물에 머리를 감아 모든 부정을 다 떠내려 보내고, 액막이를 위해 모여 마시는 자리를 유두연(流頭宴)이라 하는데 산골짜기나 물가 등 경치 좋은 곳을 찾아가서 즐겼다. 하루 동안 자연을 즐기면서 시를 짓는 것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풍류놀이라 할 수 있다.

유두날 아침에는 수단, 건단, 유두면 등과 수박, 참외 등의 햇과일 그리고 피, 기장, 조, 벼를 조상께 천신했다. 궁중에서는 종묘에 천신했다. 수수피 나락을 가묘에 바치는 것을 천곡(薦穀)이라 하였다. 보리로 단술을 빚어서 바치기도 했다. 유두면은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서 닭국에 말아먹는데 이를 먹으면 더위를 안 탄다고 한다. 옛날에는 밀가루로 구슬을 만들어 오색으로 물감을 칠해서 세 개씩 꿰어 차고 다니거나 문설주에 매달아 놓으면 액을 면한다고 하였다.

유두 절식에는 편수, 봉선화화전, 감국화전, 색비름화전, 맨드라미화전, 밀쌈, 구절판, 깻국탕, 어채, 복분자(覆盆子 : 산딸기)화채, 떡수단, 보리수단, 참외, 상화병(霜花餠: 기주떡) 등이 있다.

삼복 시식
복날에는 더위를 피하여 산수 좋은 곳을 찾아가서 시를 짓고 술을 마시고 찬물에 발을 담그며 하루 더위를 잊는다. 복날에는 붉은팥과 쌀로 죽을 쑤어 더위를 이겼는데 여기에는 축원의 뜻이 담겨 있다.

삼복 시식으로는 수단, 연병, 편수, 계삼탕, 깨찰떡, 꿀설기, 주악, 규아상(미만두), 편수, 육개장, 깻국탕(荏子水湯(임자수탕)), 김치국냉면, 영계찜, 어채, 떡수단, 복분자화채, 장김치, 열무김치, 참외, 수박 등이 있다.

수단은 멥쌀가루를 흰떡처럼 쳐서 가늘게 비벼서 구슬처럼 만들어 꿀물에 넣어 먹는 것이다. 예전에는 차례에도 올렸다. 꿀물에 넣지 않은 것은 건단이라 하는데 지금의 절편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연병은 지금의 밀쌈과 같이 밀전병을 부쳐서 호박, 팥, 깨를 소로 넣어 돌돌 만 것이다. 편수는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서 호박 소를 넣고 빚어서 초장을 찍어 먹는다. 계삼탕은 닭을 잡아서 뱃속에 인삼, 대추, 찹쌀을 넣고 고아서 먹는 것으로 여름철에 좋은 보양식이다. 지금은 삼계탕이라고 한다.

  

여름삼계탕, 육개장 등 보신 음식과 규아상, 냉면 등 시원한 음식을 즐긴다.

칠월

칠석(七夕)
칠월 칠일은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일 년에 한 번 만난다는 날이다. 부녀자들은 마당에 바느질 차비를 하고 음식을 차려 놓고 길쌈과 바느질을 잘하게 해 달라고 바느질을 관장하는 직녀에게 빈다. 이 날 집집마다 책을 볕에 쬐는 풍습도 있다. 칠석날의 절식에는 밀전병, 증편, 육개장, 게전, 잉어구이, 잉어회, 복숭아화채, 오이소박이, 오이깍두기 등이 있다.

백중(百中)
칠월 보름은 중원이라 하고 백종(百種)일 또는 망혼(亡魂)일이라고도 한다. 불가(佛家)에서는 먼저 세상을 떠난 망혼을 천도하는 우란불공(盂蘭佛供)을 드린다. 도가(道家)에서는 천상의 선관이 일 년에 세 번씩 인간의 선악을 기록하는 때를 원(元)이라 하여 정월 보름을 상원(上元), 칠월 보름을 중원(中元), 시월 보름을 하원(下元)이라 하고 이 삼원에 제사를 지낸다. 여염집 사람들은 모여서 주연을 베풀고 팔씨름 내기를 하며 즐긴다. 또 이른 벼 즉 조도(早稻 : 올벼)를 가묘에 천신한다.

여름철 시식
이 때의 시식으로는 밀국수, 애호박전, 민어지짐이, 떡국, 과일로는 참외가 있다. 밀국수는 깻국(白麻子湯(백마자탕))에 말아서 호박과 닭고기를 얹어 먹으며 민어 대가리를 넣고 지짐이를 지져 먹는다. 궁중에서는 정월에 남겨 둔 흰떡을 다시 불려서 떡국을 끓여 먹었는데, 더위를 이기기 위해 겨울 음식을 여름에 다시 먹는 것이다.

팔월

추석(秋夕, 嘉俳(가배))
추석은 가배 또는 한가위라고도 하며, 설과 함께 가장 큰 명절이다. 오곡이 다 여물고 모든 과일이 다 익고 채소도 풍성한 추수절이므로 햇곡식으로 신곡주(新穀酒)를 빚고 햇과일을 따고 제물을 차려 조상께 제사를 올리는 추석 차례를 지낸다. 한가위 절식에는 오려송편(철 이르게 익는 벼인 올벼로 만든 송편), 토란탕, 밤단자, 갖은 나물, 가리찜, 배화채와 밤, 대추, 사과, 배, 감 등의 햇과일이 있다.

  

팔월 추석가장 큰 명절인 추석에는 햇곡식으로 신곡주(新穀酒)를 빚고 제물을 만들어 조상께 차례를 지낸다. 이때의 절식으로 송편, 토란탕, 송이산적 등을 마련한다.

구월

중양절(重陽節)
양수(陽數)가 겹치고, 구(九)가 겹친 날로 명절로 삼는다. 삼짇날에 돌아온 제비가 다시 강남으로 떠나는 날이다. 중양절에는 향기가 좋은 국화꽃이나 잎으로 화전을 지져 먹고 산과 들로 나가 단풍을 감상하며 국화꽃을 띄운 술을 마시면서 시를 읊었다. 가묘에 황국전을 지져서 천신했다. 중양절의 절식에는 감국전, 밤단자, 유자화채, 생실과 등이 있다. 유자화채는 배, 유자를 썰어 꿀물에 넣고 석류와 잣을 띄운 화채로 향기가 아주 좋다.

가을철 시식
추수가 한창이라 햇곡식이 풍성하여 인심도 후한 계절이다. 물호박떡, 무시루떡, 밤단자, 대추인절미 등의 떡과 토란탕, 토란단자 등을 만들고, 살찐 황계(黃鷄)를 백숙한다.

  

가을삼색단자, 초교탕, 두부선, 화양적 등이 있다.

시월

무오일(戊午日)
붉은팥을 고물로 하여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쪄서 마구간에 갖다 놓고 무병하기를 빌고, 무당은 오(午)일 중에 무오일이 가장 좋은 날이라 하여 성주굿(성주맞이굿, 성주풀이)을 하고 다닌다. 햇곡식으로 술을 빚고 붉은팥 시루떡을 바치고 빈다. 무오일의 절식에는 무시루떡, 무오병, 신선로, 감국화전, 유자화채 등이 있다.

초겨울 시식
이 때의 시식으로는 변씨(邊氏)만두, 애탕(艾湯), 쑥단자, 밀단고(蜜團糕), 연포탕(軟泡湯), 신선로(神仙爐) 등이 있다.

변씨만두는 모밀가루 반죽으로 빚은 만두로 모양이 세모꼴이다.

애탕은 쑥을 넣은 국이고, 쑥단자는 쑥을 찧어 떡을 만들고 볶은 콩가루를 묻힌 것이다. 밀단고는 찹쌀가루로 동그란 떡을 만들어 삶은 콩을 꿀에 섞어 바르되 붉은빛을 낸 것이고, 연포탕은 두부를 가늘게 잘라 꼬치에 꿰어 기름에 지져서 닭고기를 섞어 끓인 국이다. 신선로는 원래 화로와 냄비가 한데 붙은 그릇을 말하는데, 이 냄비에 갖가지 고기와 채소를 고루 꾸며서 담고 장국을 끓여서 먹는다. ‘입을 즐겁게 한다’고 하여 ‘열구자탕(悅口資湯, 悅口子湯)’ 또는 ‘구자(口子)’라고도 한다.

난로회(煖爐會)는 도회지 풍속으로 날이 추워지면 큰 화로를 둘러싸고 앉아서 전철(煎鐵 : 전골틀)을 걸고 양념한 고기를 볶고 가운데 장국을 부어 끓이면서 즐기는 시식이다.

동짓달

동지(冬至)
동지는 밤이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하지 때 가장 짧았던 해가 동지를 지나면서 조금씩 길어지는 현상을 고대인은 태양이 죽었다가 부활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생명과 광명의 주인인 태양신에 대한 축제를 열었다. 동지를 다음해가 되는 날이라는 뜻으로 ‘아세(亞歲)’ 또는 ‘작은 설’이라 부르기도 한다.

동지의 절식에는 팥죽, 전약, 식혜, 수정과, 동치미 등이 있다.

동짓날에는 온갖 귀신과 잡신을 쫓는다는 벽사(僻邪)의 뜻으로 팥죽을 쑨다. 먼저 팥죽을 사당에 올려 차례를 지내고, 다음에 방, 마루, 광에 한 그릇씩 떠 놓고, 대문이나 벽에다 팥죽을 뿌리고 나서 먹는다. 이 풍습은 팥이 액을 막고 잡귀를 없애 준다고 하는 데서 나왔다. 팥죽을 동네의 고목에 뿌리기도 했다.

민간에서는 동지 팥죽을 먹어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유두, 백중 등 제일(祭日)에 냇가에 뿌리고 먹는, 귀신을 쫓는 팥죽과는 달리 동지 팥죽에는 반드시 먹는 사람의 나이 수만큼씩 새알심을 넣어서 먹는 풍습이 있다.

동짓날 궁중에서는 전약을 만들어 진상하고 다시 이를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동의보감』의 전약에 쓰인 약재는 백청 1두, 아교(阿膠 : 젤라틴) 1두 3승, 관계(官桂 : 좋은 계피) 6포, 건강(乾薑 : 말린 생강) 1량 4돈, 후추(胡椒(호초)) 5돈, 정향(丁香) 3돈, 대추살(大棗肉(대조육)) 8홉 등이 있다. 아교를 녹이고 약재는 모두 곱게 가루를 내고 대추는 쪄서 체에 걸러 꿀에 넣고 오래 끓여서 족편처럼 굳힌다. 약재가 들어 있는 족편이라고 할 수 있으며 겨우내 추위로부터 몸을 보한다고 한다.

다음으로 강정이 있는데 찹쌀을 물에 담가 골마지가 생기도록 삭혀서 가루를 내어 반죽하여 반대기를 만든 다음 꽈리가 일도록 오래 쳐서 얇게 편다. 작게 썰어 말렸다가 기름에 튀겨 내면 고치처럼 부풀어오른다. 강정은 유과 또는 과줄이라고도 하고 모양이나 고물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불린다. 세건반강정, 매화강정, 빙사과, 연사과, 산자 등이 모두 유과에 속하는 과자로 겨울철이 제철이며 세찬으로도 중요하다. 오색강정은 색을 들인 세건반과 흰깨, 흑임자, 잣가루, 승검촛가루, 송홧가루 등 여러 고물을 묻혀서 만든다.

겨울철 시식
냉면은 추운 겨울의 시식으로 꼽힌다. 고종은 특히 면을 좋아하여 야참으로 냉면을 즐겼다고 한다. 냉면의 꾸미는 편육, 배, 잣뿐이었고 국물은 육수가 아니고 시원한 동치미국에 배를 많이 넣은 것이라 무척 달고 시원했다고 한다. 그 밖의 시식으로는 잡채와 골동면(骨董麵)이 있다. 잡채는 고기와 채소를 두루 볶아서 당면과 버무린 음식이고, 골동면은 비빔국수로 고기와 여러 채소를 넣어 기름 간장(진간장)으로 고루 섞어 비빈 국수이다.

섣달

납일(臘日)
납일은 동짓날에서 세 번째 미일(未日)로, 그 해 농사 형편과 여러 가지 일에 대하여 신에게 고하는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납향(臘享)이라고 한다. 수렵이 해제되는 때이기도 하다. 궁중에서는 왕이 수렵 행차 한다는 통고가 있으면 사냥터에서 먹을 음식을 소주방에서 차려서 나가고, 수렵에서 돌아오면 노루, 산돼지, 메추리, 꿩 등 잡은 고기로 전골을 만들어 잔치를 베푼다. 수렵한 산짐승, 산새 등으로 만든 전골을 납평전골이라 부르며 납일에 수렵해 온 고기는 모두 맛이 좋았다 한다.

종묘의 납향 때 납육(臘肉)으로 산돼지와 산토끼를 썼다. 경기도 산간 지역에서는 납향에 쓰는 산돼지를 조달하기 위하여 그곳 수령들이 군민을 동원하여 산돼지를 잡았다고 한다.

항간에서는 황작(黃雀 : 참새)이 특히 노인, 아이나 약한 이에게 좋고 마마를 깨끗이 낫게 한다고 하여 많이 잡아 먹었다고 한다. 납일 밤에는 사내들이 한패가 되어 그물을 가지고 새가 둥지를 튼 지붕 추녀를 찾아다니며 새잡이를 한다. 그물을 새 둥지에 대고 막대기로 추녀를 세게 치면 잠자던 새들이 깨서 날다가 그물에 걸리는 것이다. 납일에 내린 눈을 받아 독에 담아 두고 눈에 바르면 눈병이 없어지고, 옷이나 책에 바르면 좀이 슬지 않으며, 약을 지을 때나 장, 술, 김치를 담글 때 쓰면 벌레가 안 난다고 한다. 눈 녹은 물은 증류수와 같아서 귀하게 쓰인 모양이다.

대회일(大晦日)
섣달 그믐날은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한다 하여 제야(除夜)라고 한다. 그믐날의 절식에는 골무병, 주악, 잡과병, 떡국, 만두, 각색편, 각색전골, 정과, 식혜, 장김치, 보쌈김치, 비빔밥 등이 있다.

세찬(歲饌)
조선 시대에는 각 지방의 절도사, 각 도백(道伯) 수령들이 궁중과 고관 친지에게 토산물을 증정하고 세찬 단자를 바쳤다. 이것을 총명지(聰明紙)라 했다. 세찬이 토산물이 아닌 경우에는 떡쌀, 술쌀, 두부콩, 메밀쌀을, 세육(歲肉)으로는 쇠고기, 꿩고기, 북어, 참새 등이 좋으며, 과품으로는 밤, 대추, 곶감, 엿강정 등을 선물하였다.

  

겨울구절판, 떡찜, 고기산적, 수정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