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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목격자들... '순살 아파트', 누가 만들었나
"노가다 하슈? 그럼 이쪽으로 오셔."
대전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 취업을 확정하고 급히 숙소를 구하던 참이었다. 방이 딱 하나 남았다는 소리에 부랴부랴 찾아간 모텔의 주인은 '달방'을 원하는 나를 위아래로 훑더니 객실이 아닌 모텔 뒷문을 가리켰다.
건물 밖으로 나간 주인이 멈춰선 곳은 모텔 바로 뒤에 있는 낡은 샌드위치 판넬 창고였다. 타이어공장 간판 자국도 채 떼지 않은 창고 안에 들어서자마자 습하고 쿰쿰한 악취가 났다.
해가 들지 않는 창고 구석엔 곰팡이 핀 침대 매트, 책상, 가죽소파 등 모텔에서 갖다 버린 잡동사니와 쓰레기가 가득했다. 갑작스런 어둠에 적응이 된 뒤에야 창고 안쪽으로 열 개쯤 되는 방들이 보였다. 방문 앞엔 빨래 건조대가 있었는데, 널려있는 건 죄다 건설 현장에서 쓰는 헤진 조끼와 땀복, 두꺼운 양말들이었다.
나중에 안면을 트게 된 모텔 청소부는 "먼지투성이 꼴의 노가다 아저씨들이 모텔 안을 드나들면 다른 손님들이 싫어해 달방을 따로 분리시킨 것"이라고 귀띔했다. 실제 하루 종일 공사장에서 철근을 지고 나면 온몸이 철근에서 나오는 녹과 흙먼지로 범벅이 됐다. 신발 밑창에선 덜 굳은 시멘트가 뚝뚝 떨어졌다.
그런데 마침 모텔 뒤편 타이어공장이 창고를 비우고 떠나면서 모텔 주인이 이를 개조해 인부들 전용 숙소를 만들었다는 거였다. 이 모텔은 인부들에게 주차장마저 못 쓰게 했다. 공사장 흙탕물을 뒤집어쓴 차들이 미관상 안 좋으니 알아서 주변 길가에 대라는 식이었다. 이 창고 달방의 가격은 현금으로 월 60만원, 카드는 66만원이었다.
어둠 속의 공사장 안
"솔직히 저도 모르겠어요.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순살 아파트' 사태가 일파만파 커질 무렵이었다. 건설업계 관계자·기술사·교수 등 전문가들에게 어떻게 순살 아파트 같은 일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이상하게도 가장 많이 돌아온 대답은 '이해가 안 된다', '잘 모르겠다'였다.
심지어 한 원청 건설사 협회의 관계자는 순살 아파트 사태의 시작이었던 GS건설 검단 아파트 붕괴사고의 원인이 '철근 누락'에 있었다는 정부의 공식 발표를 두고 "철근 몇 가닥 빠졌다고 무너진다는 게 말이 되냐"면서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그 역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명쾌하게 설명하진 못했다. 어떤 변호사는 "건설 관련 재판을 하면 내부 구조가 하도 복잡해 판사들 이해시키는 데 애를 먹는다"고 했다. 한 전직 전문건설업체 사장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원래 이 정도 난리가 나면 온갖 교수나 전문가란 사람들이 나와서 전부 한마디씩 떠들잖아요. 뭐 해야 된다, 뭐 해야 된다… 근데 순살 아파트는 어때요? 생각나는 얼굴 있어요? 없죠? 왤까요? 책에 나오는 당연한 소리들 말고, 공사장 안에서 실제로 어떻게 일이 돌아가는지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요. 책상머리들이 노가다를 아냐고요. 거기다 건설사들이 돈이 좀 많아요? 언론이나 법조계, 정치권 꽉 잡고 꽁꽁 틀어막는데."
돌이켜보면 건설 문제는 늘 뉴스의 단골 소재다. 작년 한 해만 402명이 건설 현장에서 죽었다. 전체 산재사고 사망자 874명 가운데 46%에 달하는 압도적인 비중이다.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인 제조업(184명·21%)의 두 배가 넘는다. 근래 순살 아파트 같은 부실공사 사건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지난해 1월에도 현대산업개발이 짓던 광주 화정 아파트가 39층부터 23층까지 무려 16층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인명 사고가 없었던 이번 GS건설 사고와 달리 노동자 6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관심은 금세 식었고, 현대산업개발은 아직 행정처분조차 받지 않은 상태로 여전히 아파트를 짓고 있다.
순살 아파트의 목격자들
2021년 기준, 전체 국내 가구의 절반이 넘는 51.5%가 아파트에 산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아파트의 벽, 바닥, 기둥, 계단 속엔 모두 철근이 들어있다. 그 무거운 철근들을 일일이 옮기고 집어넣는 건 결국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높고 비좁은 곳이라도 어떻게든 철근을 져 올리고 묶어내는 사람들. 새벽 5시부터 출근해 어깨가 터지고 손에 누렇게 녹이 배도록 철을 잡는 이들이었다. 떨어지고, 기계에 맞아 죽어도 철근에 평생을 바친 충청도의 기술자들, 이제 갓 스무살을 넘긴 앳된 베트남의 노동자들이었다. 만약 철근 빠진 '순살 아파트'가 있다면 이들이 가장 확실한 목격자가 아닐까.
그런데 우리 사회엔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샌드위치 판넬 창고 구석 달방에 격리돼있기 때문이다. 매년 사백명 넘게 죽어도 다들 그러려니 하기 때문이다. 같은 일을 30~50년 한 '전문가'인데도 발언권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순살 아파트 사태와 관련한 정부조사 때도 마이크가 돌아간 건 오로지 학위나 자격증 있는 전문가들 뿐이었다. 이들, 사라진 목격자들을 부르는 이름은 '노가다'다.
이들의 존재가 소거될수록 공사장 펜스는 더 높아지고, 그 안은 점점 더 우리가 알 수 없는 불투명한 곳이 되어간다. 어쩌면 '순살 아파트'도 그 결과 아닐까. 나 역시 그곳을 다 알지 못한 채, 한 달 만에 공사장을 떠났다.
바닥엔 못, 위엔 크레인, 옆엔 불똥... 달궈진 철근을 메는 사람들
공사장 땅바닥엔 사시깽이는 물론 날카로운 못들이 널려있었다. 안전화 없이 밟았다간 발바닥이 뚫린다고 했다. 공기는 흙먼지로 탁했고, 시끄러운 기계 소음은 단 1초도 멈추지 않았다.
머리 위론 높이 솟은 타워크레인이 쉴새 없이 움직이며 육중한 자재들을 옮겼다. 아래로는 지게차가 '접근하지 마세요 위험합니다'라고 한국말로 한번, 중국말로 한번 녹음된 목소리를 반복하며 다녔는데, 그 소리가 하도 커서 꿈에 나올 지경이었다.
비포장 길목엔 굴착기나 대형 트럭, 레미콘차나 펌프카가 이리저리 후진을 하고 몸체를 돌렸다. 한쪽에선 가스 용접기로 용접을 하고 반대쪽에선 그라인더로 철을 잘라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걷다가 잠시라도 고소작업대나 비계 발판, 사다리 위에 올라가 일하는 사람들을 쳐다봤다간 밑에 구멍이 뻥 뚫린 엘리베이터 개구부나 계단 단부 낭떠러지에 이르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런 곳에도 철근은 들어가야 했고, 철근공들은 난간도 없는 허공에 어떻게든 다리를 벌려 철근을 대고 묶었다.
바닥이나 벽, 기둥 등 아파트에서 보이는 모든 콘크리트 속엔 다 철근이 들어있다. 그리고 이 철근들을 일일이 배치하고 고정시키는 건 모두 사람의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길면 8m, 무거운 건 30kg까지 나가는 철근을 멘 며칠 만에 어깨에 철 자국 그대로 피멍이 들고 물집이 터졌다.
특히 오후 1~2시가 되면 철근이 햇빛에 열을 받아 달궈졌는데, 어깨에 얹기가 뜨거워 장갑 낀 손으로 받치면 힘만 더 들었다. 그나마 9월 초 늦더위가 이 정도였다. 한여름엔 젖은 수건을 대지 않으면 뜨거워진 철근에 어깨가 다 데인다고 했다. 철이 수건에 닿는 순간 치익 증기가 나고, 철근 다발에 계란을 깨면 프라이가 된다는 거였다. 옷을 갈아입을 때 본 철근공들의 어깨는 살이라기보단 반질반질한 가죽에 가까웠다.
준비된 철근이 도면보다 길 땐 철근공들이 현장에서 즉석으로 철근을 절단해야 했다. 철근을 자르는 기계를 '핸디' 혹은 '절단기'라고 불렀는데, 휴대용이지만 무게가 20kg이 넘었다. 핸디 구멍에 철근을 끼운 뒤 버튼을 누르면 프레스가 나오면서 금세 동강을 냈다.
한번은 철근 여러 개를 한꺼번에 넣고 자르다 이리저리 으스러지는 철근들 사이에 새끼손가락 끝이 살짝 끼었는데, 시퍼렇게 부풀어 오른 붓기가 일주일 넘도록 가라앉질 않았다. 만약 핸디 구멍에 손가락이 딸려 들어가면 철근과 함께 잘려나온다고 했다. 주로 검지 아니면 새끼손가락이라고 했다.
바닥에 철근을 깔 땐 철근 위를 밟으며 작업을 해야 했는데, 새벽 이슬을 머금은 오전엔 더 미끄러웠다. 중심을 잡기도 어려운 철근 위에서 노동자들은 무겁고 긴 철근을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에 이고 다녔고, 손이 닿지 않는 하부 철근을 결속하기 위해 10m를 넘게 기어 다녔다. 고개를 박고 계속 철근을 엮다 보면 땀이 안경에 줄줄 흘러 맺힌 소금기 때문에 앞도 잘 안 보였다.
목이 아파 고개를 젖혔다간 머리가 핑 돌아 철근 사이에 발이 빠지기도 했다. 바닥에 콘크리트도 깔리기 전에 이뤄지는 공정이라 아래층의 '동바리'라는 임시 지지대들이 떠받치는 거푸집 위에서 일을 했는데, 아래층에서 다른 작업이라도 할 때면 동바리 개수가 눈에 띄게 줄어 불안했다.
철근으로 벽과 기둥을 만들 땐 '렌탈'이라고 불리는 고소작업대를 써야 했다. 고소작업대는 7m 정도까지 올라갔는데,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처음 철근을 배치해나가는 거기 때문에 주변에 안전줄 매달 곳도 없었다.
벽체나 기둥의 크기가 클 땐 바닥에서 미리 철근을 조립한 뒤 타워크레인으로 세우기도 했다. 이때 조립체를 정확한 위치에 꽂으려면 타워크레인이 착지시키는 밑에서 철근공들이 맨손으로 자리를 잡아줘야 했다.
철근으로 조립한 벽체 하나의 무게만 2톤이 넘었기 때문에 까닥 잘못 끼었다간 또 손가락이 잘린다고 했다. 혹시라도 타워크레인이 들어올린 조립체의 철근 결속이 부실하면 철근이 공중에서 풀려 떨어지면서 큰 사고가 난다고도 했다. 일명 '철근 비'라고 했다.
근로계약서엔 '모두 지급', 받은 건 5000원짜리 안전모뿐
혼란 속에 일하다 돌아서 생각해보면 현장 곳곳이 사지였다. 안전보건공단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간 개구부·단부에서 추락해 죽은 사람만 106명에 이른다. 같은 기간 비계 발판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만 77명, 굴착기에 부딪혀 죽은 사람이 63명, 고소작업대에서 떨어져 62명, 사다리에서 떨어져 62명, 트럭에 부딪혀 52명, 이동식 비계에서 떨어져 41명, 거푸집 동바리 위에서 일하다 39명, 이동식 크레인에서 떨어진 인양물에 맞아 33명이 죽었다. 모두 매일매일 지척에서 스치는 현실이었다.
실제 공사장은 일하다 죽는 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이다. 지난해 1년간 산재 사고로 사망한 874명 가운데 무려 46%인 402명이 건설 노동자였다. 하지만 철근공들은 이 수치마저 믿질 않았다.
"뭐 사백 몇명? 그건 공식적인 거잖여. 합의 보고 조용히 넘어가는 게 많어."
이씨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짧게 말했다. 이씨같이 경력 30년이 넘는 철근공들 중엔 사람 죽은 걸 본 적이 없다는 사람이 도리어 드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안전 보호구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근로계약서 상엔 회사가 안전화와 안전모, 안전조끼, 안전벨트, 보호안경을 지급한다고 돼있었지만,
실제로 내가 받은 건 시중에서 5000원 하는 안전모 하나가 전부였다. 나머지는 모두 각자 알아서 구해야 했다. 인부들은 구멍 난 안전화에 본드를 발라가면서도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듯했다. 노동자들은 "건설사들이 공사비 중 별도 항목인 안전관리비를 대놓고 빼돌린다"는 얘길 많이 했다.
'순살아파트' 사태의 시작이 된 GS건설 검단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적발됐다. 국토부는 지난 7월 5일 해당 사고 조사 결과 발표에서 "건설공사 안전관리비의 경우 건설사업자는 건설기술진흥법령상 정해진 용도 이외에는 사용할 수 없으나, 출퇴근 셔틀 임차비용으로 용도와 다르게 사용한 것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사지의 혼란에도… "새벽 3~4시면 눈이 딱 떠져"
"저번주에 온 젊은 애 있잖여. 일주일 하더니 도저히 못 하겄댜. 엊그제 가뿌렀어."
며칠 뒤 새벽 5시 반, 한 나이든 노동자가 식당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래기국 한 숟갈을 뜨며 말했다. 앞에 앉은 이씨는 식판에서 고개도 들지 않고 말 없이 깍두기만 씹었다. 공사장에서 맨 먼저 분주해지는 함바식당 바깥으론 아직 동이 트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작업 시작 시간은 아침 7시였지만, 철근공들은 보통 새벽 5시면 현장에 나왔다. 출근하면 곧장 공사장 안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휴게실에서 눈을 붙이거나 담소를 나누며 대기했다. 비좁은 컨테이너 휴게실에 자리가 없으면 공사장 바닥에 합판 한 장 깔아놓고 드러누웠다.
"왜 이렇게 일찍 오냐고? 노가다 오래 헌 사람들은 새벽 3시, 늦어도 4시면 눈이 딱 떠져. 현장이란 게 대중이 없어서, 집에서 가까운데 걸리면 상관 없는디 한두 시간 떨어진 데 잡힐 때도 많거든. 아무리 멀리 현장이 생겨도 새벽 3~4시에 일어나면 늦진 않으니께, 그게 몸에 배서 그려. 대신에 일찍 자지. 아홉시 뉴스도 못보고 자니께."
우리 팀에도 세종시나 충남 천안, 충북 옥천에서 대전 현장까지 오가는 팀원들이 있었다. 고참들은 젊은 사람들이 건설 일을 오래 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너무 이른 출근 시간을 꼽기도 했다. 내가 속한 한국인 철근팀은 모두 18명이었는데, 70대 한 명, 60대 일곱 명, 50대 네 명, 40대 네 명, 30대는 나를 포함해 둘뿐이었다. 나 역시 오후 4~5시에 일을 마치고 다음날 새벽에 출근하려면 적어도 저녁 7~8시엔 잠에 들어야 했다. 퇴근이 빠르다 해도 개인 시간이 거의 없는 셈이었다.
"노가다는 최 핫바지, 우린 죽어도 괜찮은 놈들인 겨"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쓰던 이씨는 자세히 보면 다리를 약간 절었다. 특별히 다친 건 아닌데 골병이 나서 지난 겨울 결국 무릎 수술을 했다고 했다. 이씨의 다리는 새벽 출근길보다 하루 종일 몸을 쓰고 난 오후 퇴근길에 더 심하게 비틀거렸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이씨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내가 휘청댈 때면 그는 말 없이 뒤에서 철근을 들어주고 주의사항과 노하우를 일러줬다. 다만 그는 신입인 나를 처음 봤을 때부터 그 어떤 인생사도 묻지 않았다. 일에 필요한 것만 말했고, 내가 묻는 것에만 답했다. 가끔씩 그저 "이제 노가다엔 젊은 애들 없으니께, 우리 세대 다 나가면 너가 왕이여. 긍께 한 번 열심히 해봐"라고 격려만 해줄 뿐이었다.
그런데 한 달이 다 돼갈 무렵, 여느 때처럼 퇴근길에 이씨와 함께 공사장을 나서는데 그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이씨가 크게 한숨을 한번 쉬더니 내게 조용히 말했다.
"너 벌써 꽤 지났는디. 안 나거냐. 너 자꼬 날 따르지 말어. 너한티 이런 말 허기 그러지만, 너가 내 아들이었음 난 이 일 못하게 혀. 노가다는 최 핫바지여. 최 핫바지. 여기 이 안 보이는 안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데서 평생 죽어라 일해봐야 뭐허냐. 누가 알아주긴 혀? 사람 취급도 못 받는 겨. 그래서 허구헌날 죽어나가도 괜찮은 놈들인 겨, 우리는. 오죽허면 장가 가서 씨 놓기 전엔 노가다 하는 거 아니란 말이 있겄냐. 용케 안 죽고 늙어봐야 어차피 평생 번 일당 몸 상한 데로 다 나가. 긍께 아직 젊었을 적에, 더 늦기 전에 너도 그만둬. 어여 딴 살 길 찾어."
이씨는 그 후로 더 이상 내게 말을 붙이지 않았다.
오마이뉴스 김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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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유익한 정보 되시길...
순살아파트, 순두부아파트들...
누가 저렇게 만들었을까요?
아파트 건설사, 하청업체, 아니면 현장 근로자나 팀장, 현장소장....
좋은 정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더욱 힘내시고 파이팅하시길 바랍니다
수고하세요~^^
유익했습니다. 분석 글 덕분에 잘 읽었답니다.
항상 건승하시고 파이팅하십시요^^
덕분에 잘 읽고 갑니다. 수고하세요...^^
덕분에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