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축사는 (天竺寺)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1동 549에 있는 조계종 사찰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010BC33851A3D9401E)
서울 도봉산 중턱에 위치한 천년고찰 천축사는 신라 문무왕 13년인 673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수차례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씨도 한때는 천축사에 출가하여 정진수행하던때가 있었다
데뷔1975년 주간종교 소설 '목탁조' 당선 경력 월간 '세상의 꿈' 편집기획위원 수상2002년 제7회 현대불교문학상 수상
김성동은 한때 수행과 파행을 오고가며 만다라를 통해 불교를 재조명하여 불가의 사상을 고취시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매우 전문적인것에서부터 자유로울수없는것을 뛰어넘어 정신세계의 완성을 이루어 내보고자 한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깨달음이란 명제앞에 나타나는 결국 한인간으로서의 고뇌와 번뇌를 통한 절제의 상하를 논하는것은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종교란 무엇인가 믿고 의지하는 가운데 의미를 두기 때문에 정진이 미진할 경우 부처의 경계를 허무러 뜨릴수도 있게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정진을 통하여 누구든 부처가 될수있다는 불교의 사상에서 보여지듯 자애심이 보여 지기도 하지만 결국 떨쳐버릴수 없는 108 번뇌에서 죽을때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워 할수도 있다는것은 누구도 부처가 될수도 없다는 뜻도 된다
이렇듯 어떠한 종교적 수행이라는것은 쉽게 이루아지는것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을 태우듯 성원의 불을 밝히는 촛불처럼 되기란 더더욱 어려운 것이다
김성동은 1945년 11월 8일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났다. 이후 6·25전쟁 때 아버지와 큰삼촌은 우익에게, 외삼촌은 좌익에게 처형당하면서 가정이 파탄지경에 이르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워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맹자」를 읽었다. 1964년 서울 서라벌고등학교에 편입하였으나, 3학년 때 연좌제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학교를 그만둔 뒤 도봉산 천축사로 출가해 `무(無)`자 화두를 붙잡고 6년 동안 선방과 토굴을 오가며 지냈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다시 지효선사 문하로 들어가 계속 공부에 정진하였으나 뚜렷한 진전이 없자 이후 방랑의 길을 오가기도 했지만 결국 문학에 정진하여 꽃을 피우고 있다
♣
의상대사는 누구인가 (625∼702)에 대해 북한에서도 역사적 의미를 두고 교육하는 것으로 밝혀져 주목을 끌고 있다.
북한 '역사 인명사전'에 쓰여진 의상 대사에 관한 기록에 따르면 "의상은 신라의 중으로 고향은 경주이다. 속성은 김씨(또는 박씨)이고 한신의 아들. 그는 644년 신라수도에 있는 황복사의 중이 되었다. 얼마후 원효와 함께 고구려로 가서 반룡사의 중 보덕에게서 배웠다"고 전하고 있다.
인명사전에는 이어 "의상대사는 650년 당나라로 가려고 하였으나 료동지방에서 고구려 경비군사들에게 간첩의 의심을 받고 붙잡혔다가 놓여나왔다. 661년(혹은 662년) 배를 타고서해를 건너 양주를 거쳐 장안 (서안) 종남산 지상사에 가서 지엄에게서 불교 이론을 배웠다. 670년(혹은 671년)에 귀국한 후 국왕이 토지와 노비를 주는 것을 사양하고 불교전파에 전심하였다 한다"고 기록했다.
북한력사인명사전의 의상대사에 대한 기록의 특징은 주관적인 인물평이나 찬양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사전에서는 "676년 태백산 부석사를 세웠으며 690년경에는 당나라 중 현수가 보내는 불경해설서를 받아서 가야산 해인사, 금정산 범어사, 지리산 화엄사 등 10개 절간에 배포하였다. 화엄종 교리를 통달한 그는 668년 '법계도서 인병략소'라는 글에서 화엄종교리의 기본을 요약기술 하였다.
그의 관념론 철학은 본체와 현상을 서로 불가분리적인 것으로 설교한 것이었다"고 이어 전한다.
낙산사를 창건을 비롯한 대사의 업적에 대해서도 사실 중심의 건조체로 일관하고 있다.
그는 양양 낙산사를 비롯한 여러 절간들을 세웠으며 표훈, 진정 등 10명의 이름난 중들을 양성하였다. 그는 원효와 함께 해동화엄종의 시조로 알려졌고 신라에서 불교를 퍼뜨렸다 . 철학사적으로 볼 때 그는 관념론 철학의 발전과 중국과의 문화교류발전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저서로는 '화엄일승법계도' '십문간법관' '백화도장발원문'등이 있다고 하였다."
원효와 동등한 반열에서 의상대사의 위치를 설정하고, 한국불교의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가감없이 기술하고 있다
♣
De Cara A Capared / Lhasa De Se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