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gg5fJFKYm_0
<영상 요약>
해외에서 러시아 침입군이 우크라이나의 종자은행을 파괴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종자 은행은 이류가 먹고 살기 위해 생산하는 것이 필수적인 식물의 종자를 보존하는 곳으로 우크라이나의 경우 비옥한 토지로 다양한 식물 종자를 보유하고 있어 국가 내에서 자체적인 종자보관소를 운영하고 있다. 종자 은행에 종자를 따로 보관하는 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 농작물 생산에도 트렌드가 존재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집중적인 생산이 이루어지는 작물이 발생하면 질병 피해같은 것에 취약해지는 점에 대응을 하는 것 등이 종자 보관소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종자 보관은 언젠가 인류에게 닥칠지도 모를 식량 대란의 차원에서 다양한 식물 종자를 보존하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종자 다양성은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고, 이를 위해 세계를 협업하여 노르웨이 스발바르에 위한 국제 종자 저장소 같은 것을 운영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세계의 규탄과 보이콧을 받고 있으며 이미지적으로도 당연히 강대국, 리더 역할을 하는 국가에서 배제되어가는 등 부정적인 인식이 굳게 자리했다. 전쟁이 길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경제 규모가 현재 매우 불안한 상태로 전쟁의 장기화는 러시아에게도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 심지어 어떤 방역 전문가는 러시아는 겨울이 길어 폐 관련 질환이 많은데 방역까지도 실패하는 바람에 그 돌파구로 전쟁을 수행한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국제 정치 평론에서는 러시아가 국내 정치의 어려움을 전쟁으로 해소하고자 했으나 전쟁의 장기화로 푸틴이 몰락하게 될 것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국제 정치 상황에서 이런 선제적인 평가들이 유용한지 의구심이 든다. 그러나 러시아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입장 표명만으로도 그 자체적인 의미가 있다. 꼭 어떤 효과가 있어야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효과가 없는 악행에 대한 비판은 지속되어야하는가.
물론 계속 이어져야할 것이다. 당위성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이다. 효과가 없더라고 우리는 규탄하고 계속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얌체 운전자를 만났을 때 알박기를 하고 차에 내려서 지적한 경험이 있다. 험악한 상황이 벌어졌고 교통 경찰을 만나 그 얌체 운전자를 결국 직진하도록 한 적이 있다. 쓸데없는 오지랖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개미 사회는 오지랖으로 굴러간다. 이를 유워커 폴리싱이라고 부르는데, 일명 일개미 경찰행동으로 여왕 개미만 알을 낳아야하는데 자기 누이가 알을 낳으려고 한다면 곧바로 신고를 하는 행위이다. 개미들도 서로서로 감시한다. 그래야 사회가 제대로 굴러간다.
쓸데없는 오지랖이라 불리는 행동들을 하는 사람들이 어느정도는 있어야 얌체짓하는 사람들이 경각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며 모름지기 사회의 일원으로서 때로는 불의를 참지 않아야한다. 설령 험한 꼴을 당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가끔은 오지랖 넓은 짓을 해보자!
최재천 교수님의 숙론 소개와 클로징 멘트 : 서양에서는 토론이 '누가 옳은가' 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 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오늘 주제에 대해 영상을 찍었지만 답이 없이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는 러시아 정부에 대해 비판 할 때, 숙론 참여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조리있게 말하며 어떤 답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생각>
악행 규탄과 보이콧은 그런 움직임이 이루어지는 것 자체로 공동체의 신뢰를 회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의에 침묵으로 대응하는 것은 때로 그들에 동조하는 행태가 되어버릴 수도 있음이다. 우리는 자꾸만 나빠지는 사회에서 그 구성원으로서 기꺼이 목소리를 내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의 세상을 알아야 하고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좀 더 자세히, 건강한 시선으로 알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세상이 계속 빠르게 바뀌고 있고 지구의 96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인간들은 계속해서 많은 정보를 양산하고 많은 사건들도 일어난다. 세상의 모든 일들을 알 수는 없고 우리가 아는 모든 일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내 생각을 정립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세상이 굴러가는 속도에 처참히 못 미치는 우리는 세상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은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너무나 파편적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대화를 해야 한다. 세상에는 답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방향성을 찾아야한다. 최재천 교수님은 우리가 주로 하는 것은 discussion이 아니라 debate 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숙의'다. 숙의는 여러 사람들이 특정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또 충분한 의논을 나누는 일을 말하는데, 갈등과 문제의 상황에서 나의 말만 하기보다 서로의 말을 듣고 공감할 줄 알아야 이루어진다. 상대를 곤란하게 하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생각과 대화를 통한 좋은 방향성을 찾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는 능력과 그렇게 하기 위한 개인의 용기가 필요하다.
최재천 교수님은 한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의견이 비슷하면 갈등도 적을 텐데, 사람들의 생각은 제각기 다릅니다. 우리 사회에 다양한 목소리는 왜 중요한가요?" 라는 질문을 받고 이런 답변을 하셨다.
: 말로는 다양성이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실제로는 의견이 조금만 달라도 야단법석을 치고 불편해 합니다.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시끄럽게 싸우면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게 민주주의거든요. 다양한 사회는 결코 편안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가 아니었다면 지도자 한 명이 반역자 몇명을 처단한 다음, 자기 뜻대로 쉽게 통치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사회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이견을 갖고 서로 부딫치고 갈등하는 게 정상입니다.
더군다나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균질의 사회' 에서는 발전이 없다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전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조용하고 안정적인 집단에서는 새로운 게 나올 수 없어요. 창의성은 시끄럽고 불편하고 골치 아픈 곳에서 나옵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는 분위기 속에서 발현되죠. 어느 천재가 골방에서 갑자기 떠올리는 경우는 거의 드뭅니다. 여러 사람이 의견을 내놓고 부딪치는 과정에서 불꽃이 튀어 커다란 불을 이루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