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인문학자들은 밈 연구를 멸시한다.
문화적 과정을 조악한 생물학적 유추를 통해 설명하려는 아마추어적 시도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학자 중 많은 이가 밈 연구의 쌍둥이 자매 격인 포스트모더니즘을 고수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는 문화를 건축하는 별돌로서 밈이 아니라 '담론(discourse)' 을 들먹이지만
이들 역시 문화는 인간의 이익과 무관하게 스스로 퍼져나가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가령 민족주의를
19세기와 20세기에 퍼져서 전쟁 압제, 증오, 인종청소를 일으킨 치명적 전염병으로 묘사한다.
한 나라의 사람들이 거기 감염되는 순간, 이웃 나라의 사람들도 그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이 컸다.
민족주의 바이러스는 스스로가 인간에게 혜택이 된다고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주로 자기 자신에게만 이익이 되었다.
사회과학에서도 게임이론의 비호 아래 비슷한 주장이 흔히 이야기된다.
게임이론은 다수가 참여하는 게임에서
어떻게 모두에게 해가 되는 시각과 행동 패턴이 뿌리를 내리고 퍼져나가는지를 설명해준다.
유명한 예가 군비 경쟁이다.
군비 경쟁은 참여하는 모든 당사국들을 파산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군사력의 균형을 실제로 바꾸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파키스탄이 첨단 항공기를 구입하면 , 인도가 동일한 조치로 대응한다.
인도가 핵폭탄을 개발하면, 파키스탄도 그대로 따라한다.
파키스탄이 해군력을 확장하며, 인도가 그에 대응한다.
이 과정의 끝에 다다르면, 힘의 균형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동안 교육과 의료에 투자할 수 있었을 수십억 달러가 무기의 구입과 개발에 사용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군비 경재의 역학은 저항하기 힘들다.
'군비 경쟁'은 하나의 행동 패턴으로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며 모두에게 해를 끼친다.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이롭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진화적 기준에서 보면 그렇다.
(군비 경쟁은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자각이 없다는 점을 기억해두라.
그것이 의식적으로 생존과 번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강력한 역학의 의도치 않은 결과로 그것이 전파되는 것뿐이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이름 붙이든 ㅡ 게임이론, 포스트모더니즘, 밈 연구 ㅡ
역사의 역학은 인간으 복지를 향상시키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문화가 반드시 호모 사피엔스에게 가장 좋은 문화라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
진화와 마찬가지로 역사는 개별 유기체의 행복에 무고나심하다.
그리고 개별 인간은 너무나 무지하고 약해서,
대개는 역사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재되도록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역사는 교차로에서 교차로로, 뭔가 알 수 없는이유 때문에
처음에는 이 경로를 택했다가 다음에는 저 경로로 진입했다가 하면서 나아간다.
1500년경 역사는 가장 중대한 선택을 했다.
인류의 운명뿐 아니라 아마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의 운명까지도 바꿀 선택이엇다.
우리는 이것을 과학혁명이라고 부른다.
그 혁명은 서유럽에서, 아프로아시아의 서쪽 끝에 있는 커다란 반도에서 시작되었다.
그때까지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던 지역에서 말이다.
왜 과학혁명은 하고 많은 곳을 놔두고 하필 그곳에서 일어났을까?
어째서 실제보다 2세기 앞이나 3세기 뒤가 아니라 두 번째 천년의 한중간에 일어났을까?
우리는 모른다. 학자들은 열몇 가지 이론을 내놓았지만,
특별히 그럴싸한 이론은 없다.
역사는 무수히 많은 가능성들이 있는 드넓은 지평을 갖고 있으며,
그중 많은 가능성들은 영영 실현되지 않는다.
세대에서 세대를 거듭하면서 역사가 진행되지만
과학혁명을 비켜가는 흐름도 얼마든지 상상 가능하다.
기독교나 로마 제국, 금화가 없는 역사를 상상하는게 이상할 것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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