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바라보고 삽시다
본 문: 히브리서 12:1-2
설교일: 2024. 4. 28(주일 낮 예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오늘 말씀은 우리의 믿음의 주로서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람을 바라보면 종종 실망도하고, 실패도 하지만,
예수님을 바라보면 절대로 실망도 없고 실패도 없습니다.
그러면 주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첫째, 바라본다는 것은 믿고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17장 7절을 보면 “그 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이를 쳐다보겠으며 그의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를 바라 보겠고” 했습니다.
사람은 자기를 지으신 자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믿고, 의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의 주가 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으 영과 육은 온전하게 하십니다.ㅣ
역대하 20장 12절을 보면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했습니다.
여호사밧왕이 유대나라를 통치하고 있을 때, 주변의 모압과 압몬의 자손들이 연합해서 엔게디라는 곳에 진을 치고 공격태세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여호사밧 왕이 성전으로 들어가 기도를 드렸는데,
그 기도 중의 한 대목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하나님 우리에게는 공격자를 대적할 만한 능력도 방법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무슨 뜻입니까? 오직 주만 믿고 의지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날 여호사밧 군대는 적병을 진멸하고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믿고 의지하고 주님만 바라보면 전쟁도 이깁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은 돈이 있다고 이기고, 명에가 있다고 이기고, 권력이 있다고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입니다.
둘째, 바라본다는 것은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앞을 못보는 사람들은 손으로 만져서 물건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눈을 가진 사람은 눈으로 보고 상대나 물건을 선택합니다.
사람은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엇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3장 10절 이하를 보면 롯이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란이라는 곳에 살던 아브라함과 그 조카 롯이 가나안으로 이사를 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유목시대였기 때문에 물과 풀이 넉넉한 들판이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삼촌과 조카네 짐승떼가 불어나면서 목동들 간에 물과 풀 때문에 자주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 서로 싸우지 말자 네가 오른 편을 택하면 나는 왼편을 선택하고, 네가 왼편을 선택하면 나는 오른편을 선택할 테니 네가 먼저 선택하라”했습니다.
창세기 13장 10절을 보면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같고 애굽땅과 같았더라”했습니다.
그 때 롯이 눈을 들어 바라보고 선택한 곳이 소돔과 고모라 였습니다.
롯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초원과 풍부한 물만 바라보고 선택했더니
그곳은 불과 유황으로 심판받을 땅이었습니다.
선택은 행복과 불행을 결정합니다.
아니 “그보다 사느냐, 죽느냐?”, 삶과 죽음을 결정합니다.
배우자 선택에 실패한 사람들이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때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 때 내 눈이 멀었지!”그럽니다.
우리는 절대 잘못 바라보고 그런 후회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님을 선택하면 절대로 후회하지 않습니다. 영원히 후회하지 않습니다.
셋째, 바라본다는 것은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민수기 27장 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32장 49절도 보면 “너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바라본다는 것은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40년동안 행군하면서
장차 들어갈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소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기도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소망을 가진 사람이 기도를 할 수 있지,
세상을 바라보고 절망에 빠진 사람은 기도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바라보는 곳에 소망이 있습니다.
응답이 있습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영원한 행복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첫째, 가까이 가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멀찍이 바라보며 따라가다가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신앙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주님을 멀찍이 바라보고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주님을 바라보되 더욱 가까이 주님 곁으로 가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둘째,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바라보아야 합니다.
인애는 사랑의 행동이고, 공의는 공평한 법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을 실천하면서도 불의를 떠나 공의로운 법에 따라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셋째, 항상 바라보아야 합니다.
특별한 때만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나 변치 말고 항상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 1절을 보면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경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주하는 사람이 무거운 짐을 지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경주하는 선수들은 가능하면 몸을 가볍게 하려고 옷도 신발도 가장 가벼운 첨단재료로 만듭니다.
또 경주하는 사람이 쉬었다가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마라톤 경주를 하는 선수들은 달리면서 물을 마십니다. 잠시도 쉬지 않습니다.
누가 응답을 받는지 아십니까? 항상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축복을 받습니까? 항상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믿음이 좋은 믿음입니까? 항상 변치 않는 믿음입니다.
어느날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셨습니다.
그 모습을 본 베드로가 “주여 저도 물위로 오라 명하소서”하고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향해서 “오라” 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물위를 걸어 갔습니다. 그러다가 무섭게 몰려오는 파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는 바다 물 속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한 순간도 딴 데로 돌리지 마십시요..
한눈을 팔거나 곁눈질해서는 물에 빠집니다.
오늘 말씀 2절을 다시한번 보겠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도 어떤 고난이나 부끄러움도 개의치 않고 주님만 바라보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는 축복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오직 주님만 바라보심으로,
항상 하시는 일마다 성공하시고,
기도하는 제목마다 응답받으시고,
복되게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