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삶’에서 인식된 진실, 그 서정적 자아 --정소현 시집『바람아, 그대에게로』 김 송 배 (시인. 한국현대시론연구회장) 1. ‘나’라는 화자를 통한 자아 인식 현대시의 경향은 작금(昨今)에 와서 주지적인 방향으로 전환하는 시법(詩法)을 흔히 대할 수가 있는데 이는 종래의 서정성에 대한 정서를 보완하고 새로운 지적 세계의 탐구를 모색하는 일부 시인들의 적극적인 표현으로 독자들의 공감을 유도하고자 하는 욕구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우리 시인들은 보편적인 정서와 사유(思惟)로 일반 서정과 자연 서정의 탐미(眈美)로 작품을 창작하는 것을 많이 읽을 수가 있는데 이는 지금까지 우리 시인들이 자신의 내면에 깊이 간직한 인생 체험이 생활 주변의 상황에 착목(着目)하면서 추출한 이미지들이 투영되는, 자신의 체험(태어나서부터 오늘 이 시간까지의 체험-여기에는 인간의 오욕(五慾)과 칠정(七情)이 포괄한다)이 바로 작품의 이미지로 창출되고 이 이미지가 바로 주제와 연결되는 우리 고유의 시법을 선호(選好)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현현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 상재하는 정소현 제5시집 『바람아, 그대에게로』의 원고를 일별하면서 시인의 작품은 완전한 서정성의 추구로 자아를 인식하고 성찰하는 시법이 그의 서정시의 본령(本領)으로 정리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작은 전화기 안에서 우리들의 사는 이야기, 제비가 물고 온 봄소식이다 아직도 시들지 않은 사랑, 소통과 공감이 날고 있음을, 날갯죽지가 아프도록 날고 있음을 나는 안다 작은 꽃 피우려고 먼저 내민 따스한 마음 심장의 푸른 박동이 들려옴을 나는 안다 서로 어깨를 나란히 동무하여 부대끼며 힘찬 도움닫기로 달려가자는 그 마음 나는 안다 나에게 보내는 너의 응원, 너에게 보내는 우리의 박수, 우리들의 향기라는 걸 나는 안다, 그 마음 --「나는 안다, 그 마음」전문 정소현 시인이 이 작품에서 ‘나는 안다’라는 화자의 언술이 바로 ‘나’를 인식하면서 ‘그 마음’에는 다양한 현실적인 감응(感應)이 그의 뇌리(腦裏)에 집결되어 있다. 인용해보면 ‘날갯죽지가 아프도록 날고 있음’과 ‘심장의 푸른 박동이 들려옴’과 ‘힘찬 도움닫기로 달려가자는’ 것, 그리고 ‘나에게 보내는 너의 응원, / 너에게 보내는 우리의 박수, / 우리들의 향기라는 걸’ 그는 깊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시적으로 무엇을 암시(暗示)하면서 무엇을 진실된 메시지로 전해주고 있는가. ‘나’와 ‘너’라는 화자(話者)를 통해서 상호 대칭적인 교감으로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론적인 어휘(語彙)들이 그의 내적인 지향점을 이해하게 된다. 일찍이 그리이스의 대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외면서 아주 평이하고 친근한 이야기로부터 차츰 인생의 심오한 의미와 철학의 문제까지 이끌고 나아가서 무지(無知)의 지(知)를 역설한 것도 ‘나’를 먼저 알아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이처럼 정소현 시인도 자신의 지적인 인생관이 얼마나 필요했는가를 이 작품에서 역설(力說)하고 있는 것이다. 내 곁에 겨울비만 어제도 오늘도 내리던 날, 햇살이 없던 날, 새소리가 들리지 않던 날 내 모습을 본 저녁구름이 눈시울을 붉혔어 나도 구름을 따라 눈물이 강물처럼 흘렀지 하늘이 내게서 아득히 멀리 있던 날, 키 작은 들풀도 벗이 되어 주지 않던 날, 내 모습을 본 저녁 바람이 쓸쓸히 떠 다녔지 나도 바람을 따라 정처 없이 흔들리며 떠다녔지 --「나의 사랑, 위로. 1-내 곁에 겨울비만 내리던 날」전문 그는 다시 ‘내 모습’에서 ‘나의 사랑, 위로’라는 스스로의 위안과 자아의 인식을 확대하고 있다. 이 연작시 7편을 통해서 그가 희구(希求)하는 ‘나’에 대한 이해를 확충하는 시법이 바로 자아의 새로운 발견을 예비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내 모습을 본 저녁 구름’과 ‘내 모습을 본 저녁 바람’은 결국 ‘내 모습’은 ‘저녁 구름’이거나 ‘저녁 바람’이라는 자신의 현재 실생활(real life)과 상당히 근접한 관념의 흐름을 이해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눈시울을 붉’히거나 ‘쓸쓸히 떠 다’녔던 방황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내 곁에 겨울비만 내리던 날’에는 언제나 도지는 일종의 사랑병이다. 그러나 그는 ‘위로’라는 어조로 실재(實在)와 화해를 탐색하면서 자아의 인식과 성찰의 해법을 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어조는 작품「연민의 바다」「고마워 2-비누」「고마워 3-돌이킴의 마음」「나의 의자를 옮겨」등에서 그의 진솔한 자애(自愛)의 시적 진실을 읽을 수가 있게 된다. 2. ‘생명 대 축제’와 시간성의 화해 정소현 시인은 자아의 인식을 통해서 존재의 이유를 다시 확인했다면 이 존재의 근원인 생명성에 대한 천착(穿鑿)을 멈추지 않는다. 이러한 그의 인식은 삶이라는 대전제에서 생성하는 생명에의 적극적인 탐구가 시작된다. ‘밀가루 반죽을 쓰고 / 고온에서 완전히 죽었을 때 / 바삭바삭한 튀김이 된다 / 새 이름, / 새로운 삶, // 배추가 수십 번 죽고서야 / 김치꽃으로 핀다 / 어느 꽃에 비할까 // 이렇게 뜨거웠던 적이 / 이렇게 죽어 본 적이 있었냐고 묻는다 // 미열을 토해낸다.(「죽어야 얻는 새 이름」전문)’는 어조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우리의 생명은 생멸(生滅)에서 다시 획득하는 새로운 가치관의 설정을 도모하게 된다. 이 생명성은 일찍이 프랑스의 소설가 R. 롤랑이 말한바와 같이 ‘생명만이 신성하다. 생명에의 가장 첫 째 가는 미덕이다.’라는 명언으로 생명의 신성함을 피력하고 있어서 정소현 시인이 갈구하는 생명성이 바로 삶과 동시에 시간성(또는 세월)을 포괄하는 섭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요한 전쟁, 얼음벽이 높아만 갔던 겨울 한 줄기 빛을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한 방울의 물을 얼마나 목말라 했던가 휘어지고 메마른 겨울이 끝이 없을 때 지난 꽃잎들 아름다운 눈물의 한 모퉁이에 푸른 밭을 일구어 갔었지, 우리는. 검은 허공을 헤치고 봄비가 내린다 비는 지푸라기 들녘을 흔들어 깨운다 우리는 붉은 빛과 푸른빛의 새싹, 생명의 불길, 바람처럼 휘몰아 간다 아침 해처럼 솟아 오른다 풀, 꽃, 잎, 가지, 뿌리....... 생명의 합창 교향곡 하늘과 땅, 세상에 새 봄이 울려 퍼진다. --「생명 대 축제」전문 정소현 시인은 여기에서 그가 지향하고 갈망하는 생명의 원류가 그의 의식에서 끊임없이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바라고 원하는 ‘생명 대 축제’는 바로 ‘빛’과 ‘물’의 그리움과 목마름에 대한 애절한 화해의 손짓을 보내면서 생명성과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축제가 ‘고요한 전쟁’이거나 ‘얼음벽이 높아만 갔던 겨울’ 혹은 ‘휘어지고 메마른 겨울’이라는 상황 설정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의 외연(外延)을 상당히 중시(重視)하는 이미지를 공감하게 한다. 거기에서 그는 ‘지난 꽃잎들 아름다운 눈물의 한 모퉁이에 / 푸른 밭을 일구어’가는 형상의 시적인 전개를 확인하게 되는데 이는 ‘검은 허공을 헤치고 봄비가 내’리거나 ‘비는 지푸라기 들녘을 흔들어 깨’우는 정황(situation)이 바로 ‘생명의 불길’이며 ‘생명의 합창 교향곡’으로 전환하는 ‘생명 대 축제’로 발흥하고 있는 것이다. 태양의 열기가 대지로 몰락하는 여름 날 마른 풀잎의 청춘 그는 용기가 있었을까, 생애와 삶 전체 그리고 죽음이란 것에 대한 긍정이 있었을까, 그는 스스로 몰락에 대한 의지가 있었을까, 한 장의 거죽, 수의를 펼치고 그 앞에 닥친 검은 바람을 덧없게 하였을까, 기꺼이 스러져 주리라 용기를 냈을까, --「마른 풀잎 새」중에서 여기에서는 정소현 시인이 ‘생애와 삶 전체’라는 하나의 명제(命題)를 통해서 ‘몰락’과 ‘죽음’ 그리고 ‘수의’라는 어휘를 대입함으로써 생몰(生沒)에 대한 의구심을 현현하고 있다. 그것은 ‘용기가 있었을까’, ‘긍정이 있었을까’, ‘의지가 있었을까’, ‘ 덧없게 하였을까’ 그리고 ‘용기를 냈을까’라는 등의 의문형 어조에서 그의 진정성이 생명과의 화해를 위한 용기와 긍정 또는 의지의 결단을 표명(表明)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 “이것이 인생이었더냐? / 바람을 밀어내고, 또 밀어내며 / “이것이 인생이었더냐? / 바람 위를 날고, 바람 위를 또 날아서 / 영원 속으로 / 새 한 마리는 그렇게 날아갔다.’는 어조의 결론은 인생에 대한 의문에서 긍정으로 해법을 탐색하고 있어서 ‘영원으로 날아간 / 용기 있는 새’를 여망(輿望)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 밖에도 작품 「마중 나온 선운사」「모래꽃」「네 이름은 잡초가 아니다」「소나무의 사랑꽃」「사랑의 초대」등에서 삶과 시간 그리고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을 시적으로 형상화해서 그의 진실로 승화하고 있는 것이다. 3. ‘그리움’과 사랑의 세레나데 정소현 시인의 시법에서 간과(看過)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작품 중에는 사랑에 관한 시편들을 다양하게 읽을 수가 있는데 이러한 사랑의 소야곡(小夜曲)은 그가 집착하고 탐구하는 정감으로 거기에 내포(內包)하는 이미지나 의미성이 평범하면서도 깊은 주제를 함의(含意)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대는 나의 영원한 선물, 나는 그대의 꽃밭 입니다 이제, 그대의 쉼이 되어 사랑이 향기롭게 피어납니다 꽃의 영혼은 사랑으로, 꽃의 영혼은 믿음 안에서 바람에도 시들지 않고, 잠들지 않고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꽃의 마음은 사랑으로, 꽃의 마음은 희망 안에서 바람에도 시들지 않고, 잠들지 않고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나의 사랑, 위로-7-이제, 그대의 쉼이 되리라」전문 정소현 시인의 사랑학에는 ‘나의 사랑, 위로’라는 연작시 7편에 응집(凝集) 되어 있다. 그는 ‘그대’라는 화자를 통해서 ‘향기’와 ‘영혼’과 ‘희망’이 ‘사랑’으로 전이(轉 移)하여 ‘꽃밭’과 ‘바람’ 그리고 ‘마음’에서 안식(安息)하는 사랑의 노래 ‘이제, 그대 의 쉼이 되리라’를 아름답게 부르고 있다. 그는 이 사랑의 멜로디를 작품「사랑의 초대」에서 ‘사랑이여, / 그대의 초대가 있었던 날 / 얼마나 설레었던지-중략-아직도 문이 열린 사랑 안으로 가서 / 매일, 그 사랑을 먹으리라.’, 작품「눈꽃 세상」에서 ‘그대 날마다 / ‘사랑한다’라고 말해 주었지요’, 작품「사랑할 수 밖에요」에서 ‘알고 계시는 참 자상한 그대, / 그대를 믿고 / 사랑할 수 밖에요.’ 그리고 작품「오직, 그대 사랑뿐입니다.」에서도 ‘아마도 어머니의 자궁이듯이 / 이 고요는 / 오직, 그대 사랑뿐입니다.’라는 그의 간절한 어 조와 같이 사랑의 세레나데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수백 년 전 무덤 속 연인이 백골인데도 손을 잡고 있었다 사랑의 마음은 거울이었을까, 서로의 마음에 비친 마른뼈 조각들이 행복에 젖어있었다 넌 나의 그리움이었지...... 난 너의 눈물이었지...... 끝나지 않은 세레나데가 끝나지 않고 들려오고 있었다 그동안 남용했던 사랑이란, 말에 대해 사랑의 말, 앞에 가서 머리 숙여 사죄를 했다 오늘 백골의 잠언을 보면서 내 사랑도 미래의 과거로 돌아가서도 뼛조각에서 환한 빛이 나길 꿈을 꾼다. --「끝나지 않은 세레나데」전문 정소현 시인의 사랑은 ‘넌 나의 그리움이었지...... / 난 너의 눈물이었지......’와 같이 ‘넌(너)’라는 2인칭 화자가 등장하는데 이는 사랑의 불변의 일념을 너에게 띄우는 영원히 ‘끝나지 않은 세레나데’를 듣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수백 년 전 무덤 속 연인이 / 백골인데도 손을 잡고 있었다’는 상황 설정에서부터 ‘내 사랑도 미래의 과거로 돌아가서도 / 뼛조각에서 환한 빛이 나길 꿈을 꾼다.’는 그의 기원을 발양하고 있다. 그는 작품「사랑 -1」전문에서 ‘사랑은 소금이다. // 사랑을 세상에 넣지 않으면 / 무너지고 말며, // 사랑을 삶에 넣지 않으면 / 상하고 말며, // 사랑을 인생에 넣지 않으면 / 꽃이 피지 않는다.’는 장중(莊重)한 메시지를 적시(摘示)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영역은 확대되고 있다. 이와 같이 ‘사랑’ 연작시 3편에서 동일한 이미지로 명민(明敏)하게 흡인력(吸引力)을 지니고 있어서 그의 사랑학을 탐지하는데 많은 이해를 제공하고 있다. 이것이 그가 애절하게 접근하는 ‘오늘도 그대만을 믿으며 / 세상을 향해 나아가리라 / 내 손을 잡아 주시는 그대여.(「 내 손을 잡아 주시는 그대여」중에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가 정의하는 사랑은 ‘사랑은 눈물을 나누며 / 사랑은 나를 비워 네가 들어오게 하고 / 사랑은 향기로워 메아리가 네게 가며 / 사랑은 따뜻하여 내 안에 네가 살기 좋고 / 사랑은 너그럽게 기다리고 / 사랑은 아픔도 참고 견디며 / 사랑은 너를 지켜달라고 기도하길 좋아 해(「가을비」중에서)’라는 순정적인 시적 진실을 토로하고 있어서 그가 지향하면서 성취하고자 하는 사랑법이 적나라(赤裸裸)하게 전달되고 있다. 4. 꽃과 계절적인 순박한 서정성 정소현 시인에게서 발견되는 내적 풍경에는 자연 서정을 배제하지 못하고 그 자연과 동화(同化)하려는 시심의 발동을 감지할 수 있다. 그는 자연 중에서도 꽃을 사랑한다. 꽃에 관한 이미지는 보편적으로 아름답다는 감상주의적인 관념에 사로잡히지만 꽃에서는 봄이라는 계절적인 시간성과 함께 생명의 짧음이라는 일시성도 간과하지 못한다. 옛말에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것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열흘을 못 간다는 허무의 관념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꽃은 그 색깔에 따라 상징이나 이미지가 서로 다르게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장미에 대한 상징은 아름다움, 애정, 미덕으로 나타는데 그 색깔에 따라서 붉은 장미는 정절, 열렬한 사랑을, 백색은 사랑의 한숨, 황색은 질투, 부정 등으로 그 상징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꽃말을 들려주고 있다. 마음아, 너의 씨앗이 꽃씨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말이 소란한 세상에 나올 땐 꽃의 마음으로 꽃의 얼굴로 향기롭게 피어나 온 누리가 꽃밭이 되었으면 좋겠다. --「꽃밭이었으면」전문 정소현 시인의 꽃에 대한 감응은 ‘꽃씨였으면 좋겠다’거나 ‘온 누리가 꽃밭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원의 의식이 강렬하게 현현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좋겠다’는 어휘가 말해주듯이 ‘꽃의 마음’과 ‘꽃의 얼굴’로 피어나는 생명성이 ‘향기롭게’ 살아가고픈 욕망의 성취를 위한 간절한 기원이 녹아 흐르고 있다. 그는 다시 ‘만삭인 해가 / 꽃잎 한 잎, 한 잎을 낳는다 / 꽃이 종소리를 내며 세상에 태어났다 / 그 진동은 사람들의 마음에 금을 내었다 / 신비와 빛과 향기가 금을 내었다 / 금이 간 사람들이 / 그녀의 비밀스런 방에 들어간다 / 벌도 나비도 그 방에서 성스럽다 / 꽃이 갈라놓은 그 틈에서 / 봄날이었으면 좋겠다, 우리도.(「한 송이 꽃」전문)’라는 어조와 같이 ‘종소리를 내며 세상에 태어’나는 생명의 환희가 들려온다. 그러나 ‘신비와 빛과 향기가 금을 내었다’는 약간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보이지만 ‘벌도 나비도 그 방에서 성스럽다’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이 상황들을 순조롭게 정리하는 그는 이러한 시적 정황에서도 ‘봄날이었으면 좋겠다.’라고 기원이 다시 발현되고 있어서 정소현 시인의 사유 중심에는 꽃의 생명성과 동시에 미적인 탐구가 진행되지만 곧 허무라는 영혼의 발양이 시적인 진실로 유도(誘導)하고 있는 것이다, 정소현 시인의 꽃에 관한 서정성은 작품 「벼랑의 꽃」「누가 꽃을 버렸을까」「사막의 꽃」「꽃길을 걷는다」「사월의 꽃」「봄꽃」「웃는 얼굴」「평화」등에서 꽃과의 교감은 아름다움의 추구와 동시에 거기에서 파생하는 자연 서정의 묘미를 탐색하고 있다. 특히 작품 「들꽃에게」에서는 ‘때론 생명은 천벌 같아 / 벌서며 보냈던, 벌서며 보냈던 / 그 장마와 태풍은 잊으라 // 자유로운 영혼 구름을 보아라 / 손을 잡고 함께 날아가는 새들을 보아라’라는 관조의 언어가 보이지만 그는 생명과 영혼의 대칭이 바로 천박한 들꽃의 애환으로 현현되는 시법이 우리들의 이목(耳目)을 흡인시키고 있다. 꽃들도 소곤소곤 다정하고 나뭇잎들도 서로의 우산이 된다 이런 날엔, 차가운 빌딩도 마음을 열고 바다도 사랑의 풍경이 된다 가로등불빛도 빗길의 풍경이 되고 사람들도 그 길에서 따스한 이야기가 된다 가을비 내리는 날엔 서로의 우산이 된다. --「가을비 내리는 날엔」전문 정소현 시인의 서정은 꽃 피는 봄에서부터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대한 정감이 넘친다. 위에서 보는 가을비에는 ‘서로의 우산이’ 되고 ‘사랑의 풍경이’ 되고 다시 ‘따스한 이야기가’ 되는 우리들의 생활 정취가 바로 시간성(세월)으로 순박하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작품 「이 봄, 이 봄날은」에서도 ‘꽃용암 분출이다 / 척박한 마음을 뚫고 / 꽃불이 전쟁처럼 번지고 있다 / 그 꽃불의 열기로 / 모두가 홍역을 앓는 중이다.’라거나 작품「여름 장대비」에서 ‘검고 뾰족한 죄악들을 씻는 중이다 / 나도 죄를 창문에 걸어 두었다’ 또는 ‘빗줄기가 세어질수록 / 고요하고, 아늑하고, 가벼워지고, / 창가엔 작은 평화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는 계절적인 서정적인 이미지가 고즈넉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이처럼 그의 계절적 서정은 작품「가을이 분다」「가을 안에 있는 여름」「눈오는 날의 풍경-1, -2」등 사철의 조응(調應)에서 그의 묵시적(黙示的)인 시적 어조를 이해하게 된다. 이는 그의 자연관과 시간성의 조화를 통해서 서정적 자아를 인식하고 나아가서는 섭리를 순응하면서 시적 진실의 지향점을 모색하는 정소현 시학이라고 한 수 있다. 5. ‘시의 집’에서 구명(究明)하는 인생론 정소현 시인은 시인으로서 또는 시창작 행위 자체를 통해서 시적인 소재와 주제 등이 그의 인생론적인 담론(談論)과 스토리를 가급적 많이 융합함으로써 어떤 정화(淨化-catharsis)를 느끼거나 심리적인 도취(陶醉-narcissism)에 공감하는 경지를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는 시의 아름다움과 진실 그리고 구원을 찾는 인간의 순수하고 진솔한 표현으로 우리 인간들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시의 목적이나 위의(威儀)를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가 착목하는 외적 사물에서 동화하거나 투사(投射-project)하는 비정적(非情的) 타자성(他者性)이라는 감상적 오류와도 그의 내적으로 숭엄(崇嚴)한 의식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피로 쓴 것만 넋이 된다고 했다 영혼들은 피로 쓴 것을 수혈받기를 원한다 태양이 생물을 시험하는 팔월 외양간에서 양의 젖을 짜듯이 피를 짜고 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다 수혈을 받는 것은 아니다 꿈, 사랑, 바람, 노을, 구름, 노래..... 내가 짜낸 피는 무슨 형일까, 어디로 가서 우아하게 수혈을 할까 하늘, 바다, 들꽃, 물새, 별...... 詩를 쓴다는 것은 가난한 노동, 그 노동으로 꽃밭을 일구는 것이다. --「詩를 쓴다는 것은」전문 그는 이미 ‘시인의 말’에서 ‘그동안 시란 무엇일까? 왜 나는 시를 쓰고 있을까? / 외로움과 고독을 먼저 걸어 간 흔적으로, 만나는 모든 사물들과 먼저 나눈 대화로 누구에게로 가서 대화를 나누어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때론 회의 속에서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시를 썼다.’는 순정적인 고백을 하고 있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가 ‘詩를 쓴다는 것은’ 이처럼 잡다한 의식이 궁극적으로 탐구하는 인생의 진실로 시 속에서 진정한 인생론과 융화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깊게 간파(看破)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영혼들은 / 피로 쓴 것을 수혈받기를 원한다’거나 ‘꿈, 사랑, 바람, 노을, 구름, 노래...../ 내가 짜낸 피는 무슨 형일까,’라는 영혼과의 교감을 원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바로 그가 시를 쓰는 이유로 결론짓고 있다. ‘詩를 쓴다는 것은 / 가난한 노동, / 그 노동으로 꽃밭을 일구는 것이다.’라는 단정이 그의 심저(心底)에 깊이 흐르고 있다. 그는 다시 ‘지금도 봄을 부르며 피어나는 너는 제비꽃, / 세월은 멀어져 갔지만 추억은 시들지 않았어 / 아침 새가 노래하면 네 목소린가 들어볼까 / 그리움은, 그리움은 긴 시가 되고 말았네(「친구에게」중에서)’ 또는 ‘시를 쓰는 일, 시를 좋아하는 마음은 어느새 동행이 되었으며 / 내가 쓴 시가 길에서 소멸 되거나, 뿌리 채 말라버리거나, 가시에 눌리거나 그렇게 되지 않길 꿈꾼다.('시인의 말’ 중에서)’는 그의 숭고한 시 정신을 확인하게 된다. 정소현 시인의 시혼(詩魂)에는 시적인 ‘스승님’이 있었다. 그 스승님에게서 ‘시의 열매’를 맺었고 ‘시의 집’을 지어 ‘시의 고향’에서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헤아릴 수 없이 맺었던 시의 열매들 / 사랑, 위로, 평화, 구름, 바람, 기도....../ 이젠 현재에서 미래까지 잇는 구름다리, / 미래의 시의 꽃밭, 시의 고향이 되셨다’, ‘“평생 완벽하지 않는 시의 집에서 살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 나는 행복했습니다“’ 국화꽃 한 송이도 “감사했고 행복했습니다” 바람의 언어로 절을 하니 바람 속으로 날아갔다 ‘스승님! 영원히 빛나는 그곳에서 / 시의 노래 찬양하시며 영원한 복락을 누리옵소서.(이상「큰 산이 무너지던 날」중에서)’라는 시와의 인연이 스승님과 함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정소현 제5시집 『바람아, 그대에게로』읽기를 마무리한다. 정소현 시인은 평소에 일반적인 시창작뿐만 아니라, 시노래 혹은 가곡 작사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시인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시행이나 시구에서 운율을 상당히 중시하는 시법을 택하고 있다. 이 율격(律-rhythm)에서는 우리들의 감흥을 상승시키는 효과까지 음미할 수 있으며 대체로 시는 음악과 결부되어 있음도 주목하게 된다. 그는 이 시집을 통해서 대체로 제4시집 『바람이 그린 수채화』에서부터 그 시맥(詩脈)을 이어서 자연과 인생이 동행하는 진실을 탐구하는 경향의 작품들을 대할 수가 있다. 그는 우선 ‘나’ 의 존재를 확인하는 자아의 인식을 근원으로 해서 삶을 통한 생명과 시간의 화해 그리고 사랑이라는 명제를 실현하기 위한 그리움과의 상관성을 접맥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는 꽃과 계절의 순환을 감도(感度) 높게 천착함으로써 섭리와의 순응이라는 진실이 바로 인생론으로 나아가는 시 쓰기의 행로를 아주 명민(明敏)하게 적시해주고 있다. 그러나 시는 영혼의 음악이라는 프랑스 시인 볼테르의 충언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보들레르도 우리 일상사에서 일어나는 기쁨이든 슬픔이든 시는 항상 그 자체 속에서 이상을 좇는 신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첨언하면서 정소현 시 읽기를 끝낸다. 앞으로도 좋은 시 많이 창작하기 바라며 축하를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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