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오싱(绍兴)의 맛집, 함형주점(咸亨酒店)을 드디어 갑니다^^;;
* 노신(鲁迅) 선생이 자주 배경으로 삼았던 유서깊은 식당이기도 하고, 샤오싱(绍兴) 일대의 맛집이기도 해서, 3년전 이 곳을 고민했을 때, 식사는 꼭 여기서 먹어야지 싶었었습니다...
* 특히 이 식당을 무대로 하는 특출한 단편소설 공을기(孔乙己), 그 퇴락한 만청 시대의 한 인물을 음미해봄직합니다^^
이제 드디어 함형주점(咸亨酒店)을 갑니다...
노신(鲁迅)의 개인사와도 관련이 깊기도 하고, 근대 중국의 적나라한, 그리고 처참한 어느 몰락한 선비 공을기(孔乙己)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냈던 단편 소설 공을기(孔乙己)의 유일한 무대이기도 했던 이 곳, 그런 얘기들을 나눠가며 근사한 점심을 나눌 수 있었을 식당을 우리는, 천진난만하게 들어갑니다^^;;
결국은 노신(鲁迅)에 관해 그닥 많은 얘기를 나누지도 못하고, 식사 후 쏟아지는 비 때문에 그 앞의 공을기(孔乙己)를 얘기해 볼 여유도 못 가지고 출발해야 해서 조금은 아쉽지만, 그래도 무사히 예정했던 식당을 들러 충분히 맛을 즐기며 천천히 식사할 수 있었음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함형주점(咸亨酒店)은 1894년, 노신(鲁迅, 본명은 周樹人, 1881-1936)의 당숙(堂叔) 주중상(周仲翔) 등이 샤오싱(绍兴) 성내(城内)의 동창방(东昌坊) 동쪽 어귀에 세웠는데, 샤오싱(绍兴)에서 가장 유명한 '대표' 식당의 하나입니다. 주인은 역경(易经) 곤괘(坤卦)에서 단전(彖传), “포용하고 너그러우니 만물이 다 통한다.(含弘广大,品物咸亨)” 구절에서, “함형(咸亨)” 두 글자를 따와 이름을 지었고, 주점이 번창하고, 만사 형통하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았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咸'은 모든 것, '亨'은 순리를 따른다는 뜻으로, '咸亨'은 만물이 순리를 따른다는 기복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구요, 한편 당 고종(高宗)의 연호(670-674)이기도 했습니다.
1981년, 노신(鲁迅) 선생 탄생 100주년에 맞춰 만청(晚清) 시기의 샤오싱(绍兴)일대의 건축양식으로 식당이 다시 개업했고, 2007년부터 시 당국 주도로 2년 넘는 기간에 걸쳐 식당 및 호텔을 중점적으로 재개발하면서, 범위를 넓혀 인근의 노신고거(鲁迅故居), 백화원(百草园), 삼매서당(三味书屋), 토곡사(土谷祠)과 연계하여 노신(鲁迅) 작가의 연고 문화상품의 컨셉을 강조하기 위해, 기존 식당의 '당흘(堂吃)'만 남겨두어 현관 중앙 위에 '함형주점(咸亨酒店)'으로 걸어놓고, 그 외 기존 건물 전반을 뜯어고쳤다고 하구요, 옛 현관 앞에는 바로 그 공을기(孔乙己)의 동상을 세워놨습니다^^;;
중국 전역에 30여군데 지점이 성업중이고, “중화노자호기업(中华老字号企业)”, “중국찬음명점(中国餐饮名店)”, “전국녹색찬음기업(全国绿色餐饮企业)”, “절강성지명상호(浙江省知名商号)” 등, '함형(咸亨)', 황주(黄酒) 브랜드 '태조(太雕)' 등 저명한 상호마저도 수두룩합니다^^ 월채(越菜) 문화 발굴에 앞장서 왔다고 하는 함형주점(咸亨酒店) 관련해서도, 함형연(咸亨宴)은 절강명연(浙江名宴), 절강명채(浙江名菜) 등에 선정되기도 했고, 샤오싱(绍兴) 전통 황주(黄酒)를 개발하여 주점 특산 태조(太雕) 계열 황주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그 태조(太雕) 황주를 우리가 맛보게 됩니다^^
"술 두 사발 데워주오 (溫兩碗酒) ! 회향두(茴香豆) 한 접시하고 (要一碟茴香豆)."
소설의 한 구절이 어디선가 들려올 거 같기도 하고, 지금 식당의 옛 현관 앞마당에 세워져 있는 공을기(孔乙己)가 어느 탁자에선가 주문해오던 말소리가 들렸을 법 합니다... 조금 길지만, 나름 단편소설이라 한 호흡으로 읽어볼 정도는 되는 분량이라, 그냥 전편을 올려봅니다^^;;
魯迅 - 孔乙己 (1919年3月)
노신 - 공을기(1919년 3월)
魯鎭的酒店的格局,是和別處不同的:
고향, 노진(魯鎭)은 술집이 다른 데랑 구조가 달랐다.
都是當街一個曲尺形的大櫃臺,櫃裏面豫備着熱水,可以隨時溫酒。
'ㄱ'자 모양의 탁자가 큼지막하게 거리 쪽으로 나 있었고, 그 밑엔 언제든 술을 데울 수 있게 물을 늘 끓여놓아 두었다.
做工的人,傍午傍晚散了工,每每花四文銅錢,買一碗酒,——這是二十多年前的事,現在每碗要漲到十文,——靠櫃外站着,熱熱的喝了休息;
막벌이꾼들은 점심이나 해질 무렵 일이 끝나면 동전 네 푼에 술 한 사발을 사서는, - 20년 전의 일이고, 지금은 한 잔에 열 푼은 될 것이다. - 탁자에 기대 선 채 따끈하게 들이키며 쉬곤 했다.
倘肯多花一文,便可以買一碟鹽煮筍,或者茴香豆,做下酒物了,如果出到十幾文,那就能買一樣葷菜,但這些顧客,多是短衣幫,大抵沒有這樣闊綽。
거기에 한 푼 더 보태면 안주로 소금에 절여 삶은 죽순(鹽煮筍) 한 접시나 회향두(茴香豆)를 곁들일 수도 있었고, 거기에 열 푼만 더 있으면 고기 요리도 한 접시 먹을 수 있었지만, 이 집 손님은 대개 입은 옷도 변변찮은 편이라, 펑펑 쓸 형편이 못된다.
只有穿長衫的,纔踱進店面隔壁的房子裏,要酒要菜,慢慢地坐喝。
긴 두루마기 정도는 입어야 술과 안주를 시키고 술청 옆방에 자리잡아 느긋하게 마실 수 있었다.
我從十二歲起,便在鎭口的咸亨酒店裏當夥計,掌櫃說,樣子太傻,怕侍候不了長衫主顧,就在外面做點事罷。
나는 열두 살 때부터 노진(魯鎭) 마을 입구의 함형 술집(咸亨酒店)에서 일했다. 주인은 내가 맹해보인다며, 두루마기 손님 시중은 어려울 것 같으니 밖에서 일하라고 했다.
外面的短衣主顧,雖然容易說話,但嘮嘮叨叨纏夾不清的也很不少。
밖에서 어수룩한 손님 말상대하기는 쉬웠지만 그 중에는 까다로운 손님도 적지 않았다.
他們往往要親眼看着黃酒從罎子裏舀出,看過壺子底裏有水沒有,又親看將壺子放在熱水裏,然後放心:
그들은 가끔 내가 항아리에서 황주(黃酒)를 뜨는 걸 지켜보거나 술병 밑바닥에 물이 있진 않은지 살피기도 하였고, 술병을 물에 담가 데우는 걸 직접 봐야만 맘을 놓곤 했다.
在這嚴重監督下,羼水也很爲難。
이렇게 지켜보는 데 물을 탄다는 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所以過了幾天,掌櫃又說我幹不了這事。
그렇게 며칠 지나자, 주인은 내가 이것도 못한다며 타박했다.
幸虧薦頭的情面大,辭退不得,便改爲專管溫酒的一種無聊職務了。
다행히도 나를 소개한 분과 친분이 있어 내쫓지는 못하고, 무료하게 술이나 데우는 일만 하루종일 맡게 되었다.
我從此便整天的站在櫃臺裏,專管我的職務。
이때부터 나는 온종일 술청 안에 서서 내 일에만 전념했다.
雖然沒有什麼失職,但總覺得有些單調,有些無聊。
이제 쫓겨날 일도 없었지만, 일이 너무도 단조롭고 무료하기까지 했다.
掌櫃是一副凶臉孔,主顧也沒有好聲氣,教人活潑不得;
주인은 무섭게 찡그린 얼굴에, 점잖지 않은 손님들로, 나는 늘 주눅들어 있었다.
只有孔乙己到店,纔可以笑幾聲,所以至今還記得。
단지 공을기(孔乙己)가 술집에 나타났을 때에야 비로소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곤 하여, 지금도 기억이 난다.
孔乙己是站着喝酒而穿長衫的唯一的人。
공을기(孔乙己)는 바깥 손님치고는 유일하게 두루마기 차림이었다.
他身材很高大;青白臉色,皺紋間時常夾些傷痕;一部亂蓬蓬的花白的鬍子。
키는 훤칠했으며, 창백하면서 주름진 얼굴에는 상처가 가실 날이 없었다. 턱에는 희끗희끗한 반백의 수염이 마구 엉켜있었다.
穿的雖然是長衫,可是又髒又破,似乎十多年沒有補,也沒有洗。
입고 있는 두루마기마저도 더럽고 너덜너덜한게 적어도 십수년은 꿰매기는 커녕 빨아본 적도 없었던 같았다.
他對人說話,總是滿口之乎者也,教人半懂不懂的。
하지만 말끝마다 '지(之)' 라든지, '호(乎)'나, '자(者)'라거나, 아니면 '야(也)'로 끝맷는 구닥다리 말투 탓에,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因爲他姓孔,別人便從描紅紙上的「上大人孔乙己」這半懂不懂的話裏,替他取下一個綽號,叫作孔乙己。
성이 '공(孔)'이라 사람들은 그를, 묘홍지(描紅紙) 교재에 나오는 '상대인 공을기(上大人孔乙己)'라는 아리송한 문구에서 따와 공을기(孔乙己)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孔乙己一到店,所有喝酒的人便都看着他笑,有的叫道,「孔乙己,你臉上又添上新傷疤了!」
공을기(孔乙己)가 술집에 나타날 때마다, 술 마시던 손님들은 모두 그를 놀렸는데, 어떤 사람이 소리치며, “공을기(孔乙己), 얼굴에 상처가 또 늘었구만.”하고 놀리면,
他不回答,對櫃裏說,「溫兩碗酒,要一碟茴香豆。」便排出九文大錢。
그는 아무 대꾸 없이 술청 안에다가, “술 두 사발 데워주오! 회향두(茴香豆) 한 접시하고.” 그러고는 아홉 푼을 꺼낸다.
他們又故意的高聲嚷道,「你一定又偷了人家的東西了!」
사람들은 일부러 더 큰 소리로, “자네, 또 남에 꺼 훔쳤구만!”하고 떠들면,
공을기(孔乙己)는 눈이 부릅뜨며, “그대는 어찌하여 터무니없이 누명씌우려는 게요?”라며 대든다.
「什麼清白?我前天親眼見你偷了何家的書,吊着打。」
“뭐, 누명을 씌워? 그저께 하(何)씨네 집 책을 훔치려다 매달려 실컷 두들겨 맞는 거, 내가 이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
孔乙己便漲紅了臉,額上的青筋條條綻出,爭辯道,「竊書不能算偷……竊書!……讀書人的事,能算偷麼?」
공을기(孔乙己)는 얼굴이 빨개지며 이마에 푸른 핏발을 세우며 항변하곤 했다.
“책 훔치는 것은 도둑질이 아니야... 책 훔치는 건... 책 읽는 사람에겐 그럴 수 있는 일이야. 도둑질이라 할 수 있겠소?”
接連便是難懂的話,什麼「君子固窮」,什麼「者乎」之類,引得衆人都哄笑起來:店內外充滿了快活的空氣。
그러곤 무슨 '군자란 본디 곤궁하나니(君子固窮)' 라든지, '자(者)'니 '호(乎)'니 알아듣기 힘든 말을 늘어놓아, 여기저기 “와아!”하고 웃음보가 터져 나오면서 술집 안팎은 쾌활(快活)한 공기로 가득 차곤 했다.
聽人家背地裏談論,孔乙己原來也讀過書,但終于沒有進學,又不會營生;于是愈過愈窮,弄到將要討飯了。
사람들이 뒤로 수군수군대는 말을 들어보면 공을기(孔乙己)는 본래 글줄이나 읽는 선비였다는데, 끝내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고, 갈수록 집안이 기울어 급기야 구걸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얘기였다.
幸而寫得一筆好字,便替人家鈔鈔書,換一碗飯喫。
다행히 글줄이나 쓸 줄 아는 덕에 책을 베껴주고 밥 한 사발 바꿔먹곤 했다.
可惜他又有一樣壞脾氣,便是好喝嬾做。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한 가지, 게으른 데다가 술을 좋아하는 못된 버릇이 있었다.
일을 시키면, 며칠 못가 사람은 물론, 책, 종이, 붓, 벼루까지 같이 사라져 버리곤 했다고 한다.
如是幾次,叫他鈔書的人也沒有了。
몇 번을 이러는 바람에 이제는 책을 베껴 달라는 사람도 없어져 버렸다.
孔乙己沒有法,便免不了偶然做些偷竊的事。
공을기(孔乙己)는 할 수 없이 이따금 도둑질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但他在我們店裏,品行卻比別人都好,就是從不拖欠;
하지만 그나마 우리 술집 손님치곤 품행이 점잖은 편이라 외상값을 질질 끄는 일은 없었다.
雖然間或沒有現錢,暫時記在粉板上,但不出一月,定然還清,從粉板上拭去了孔乙己的名字。
간혹 동전이 없어 외상을 칠판에 써놓다가도 한 달도 안되어 꼭 갚고는 칠판에 이름을 지워버리곤 했다.
孔乙己喝過半碗酒,漲紅的臉色漸漸復了原,旁人便又問道,「孔乙己,你當眞認識字麼?」
붉게 달아올랐던 그의 얼굴은 반 잔 술 마시는 동안에 점차 제 색깔로 돌아왔다. 그러면 옆 사람이 또 묻는다.
“공을기(孔乙己), 자네 정말 글자를 아나?”
孔乙己看着問他的人,顯出不屑置辯的神氣。
공을기(孔乙己)는 묻는 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대꾸하기도 귀찮다는 듯한 기색이다.
他們便接着說道,「你怎的連半個秀才也撈不到呢?」
그러면 그들은 바로 묻는다.
“자넨 어째 과거에도 급제 못했나?”
孔乙己立刻顯出頹唐不安模樣,臉上籠上了一層灰色,嘴裏說些話;
그러면 공을기(孔乙己)는 별안간 어쩔 줄 모르는 불안한 표정에 얼굴은 더욱 창백해진다.
這回可是全是之乎者也之類,一些不懂了。
그리곤 입으로 무슨 소린지 중얼거리는데, 이번에야말로 온통 '지(之)'니, '호(乎)'니, '자(者)'니, '야(也)'니 하는 통에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在這時候,衆人也都哄笑起來:店內外充滿了快活的空氣。
그러면 군중들의 폭소가 터져 나오며 술집 안팎은 다시금 쾌활한 공기로 가득차곤 했다.
在這些時候,我可以附和着笑,掌櫃是決不責備的。
이럴 땐 나도 따라 웃었고, 주인도 나무라는 일이 없었다.
而且掌櫃見了孔乙己,也每每這樣問他,引人發笑。
오히려 주인은 공을기(孔乙己)를 볼 때마다 부러 그렇게 치근대며 손님들을 웃기곤 했다.
孔乙己自己知道不能和他們談天,便只好向孩子說話。
그 자들과 말이 안 통한다 싶은 공을기(孔乙己)는 늘 애들한테 말 걸곤 했다.
有一回對我說道,「你讀過書麼?」
한 번은 공을기(孔乙己)가 나 보고 물었다.
“너 글 좀 읽어봤냐?”
我略略點一點頭。他說,「讀過書,……我便考你一考。茴香豆的茴字,怎樣寫的?」
나는 고개만 끄덕였는데, 그는 다시 물어봤다.
“글 읽어봤다고 ? 그럼 내가 시험 좀 해볼까? 회향두(茴香豆)의 회(茴)자는 어떻게 쓰지?”
我想,討飯一樣的人,也配考我麼?便回過臉去,不再理會。
거지나 다름없는 주제에 날 시험하겠다니, 이내 얼굴을 돌려버리곤 거들떠도 안봤다.
孔乙己等了許久,很懇切的說道,「不能寫罷?……我教給你,記着!這些字應該記着。將來做掌櫃的時候,寫賬要用。」
한참을 기다리던 공을기(孔乙己)는 무척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쓸 줄 모르나본데. 내가 가르쳐 줄 테니 기억해 둬. 이런 글자는 알아둬야 해. 다음에 주인이 되면 장부에 쓰는 데 필요하니깐!”
我暗想我和掌櫃的等級還很遠呢,而且我們掌櫃也從不將茴香豆上賬;又好笑,又不耐煩,嬾嬾的答他道,「誰要你教,不是草頭底下一個來回的回字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주인이 되려면 아직도 까마득하지 않은가? 그리고 지금 주인도 지금껏 회향두(茴香豆)를 장부에 쓴 일도 없었고, 도대체 우습기도 하고 귀찮아서, 나는 싫증이 나는 걸 꾹 참고 대답했다.
“누가 가르쳐 달래요 ? 초두(艹) 밑에 돌아올 회(回)자 아녀요 ?"
孔乙己顯出極高興的樣子,將兩個指頭的長指甲敲着櫃臺,點頭說,「對呀對呀!……回字有四樣寫法,你知道麼?」
공을기(孔乙己)는 신이 나서, 손톱이 길게 자란 두 손가락으로 술상을 두들기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물었다.
“그렇지! 맞았어. 그런데 회(回)자도 쓰는 방법이 네 가지인데, 아는가 ?”
我愈不耐煩了,努着嘴走遠。
나는 더더욱 귀찮아져 입을 삐쭉거리곤 멀리 가버렸다.
孔乙己剛用指甲蘸了酒,想在櫃上寫字,見我毫不熱心,便又歎一口氣,顯出極惋惜的樣子。
공을기(孔乙己)는 손톱을 술에다 찍어 술상 위에다 글자를 쓰려다 내가 전혀 배울 생각이 없는 걸 눈치채고는 무척이나 아쉬운 듯 한숨을 쉬었다.
有幾回,鄰舍孩子聽得笑聲,也趕熱鬧,圍住了孔乙己。
또 언젠가는, 이것도 몇 번 있었던 일인데, 터져나온 웃음소리에 동네 꼬마들이 몰려와 공을기(孔乙己)를 둘러쌌다.
他便給他們茴香豆喫,一人一顆。
그러면 그는 아이들한테 회향두를 한 알씩 나눠줬다.
孩子喫完豆,仍然不散,眼睛都望着碟子。
애들은 모두 콩을 먹고서도 안 물러나고 접시를 기웃거린다.
孔乙己着了慌,伸開五指將碟子罩住,彎腰下去說道,「不多了,我已經不多了。」直起身又看一看豆,自己搖頭說,「不多不多!多乎哉?不多也。」於是這一羣孩子都在笑聲裏走散了。
그러면, 공을기(孔乙己)는 당황해서 다섯 손가락을 펴 접시를 덮고 허리를 구부리고는, “없어. 이젠 나도 얼마 없어!”라고 말하다, 허리를 펴 슬쩍 콩을 세어보곤 고개를 흔들며, “이젠 없다! 없어! 많다구? 안 많아.”라고 말하면, 그제야 아이들은 모두 깔깔대며 흩어지곤 했다.
孔乙己是這樣的使人快活,可是沒有他,別人也便這麼過。
이처럼 공을기(孔乙己)는 사람들을 유쾌하게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없을 때에도 사람들은 또 그렇게 지냈다.
有一天,大約是中秋前的兩三天,掌櫃正在慢慢的結賬,取下粉板,忽然說,「孔乙己長久沒有來了。還欠十九個錢呢!」
어느 날, 아마도 추석 이삼일 전 쯤, 느긋하게 장부 정리하던 주인이 갑자기 칠판을 치며 말했다.
“요즘 공을기가 통 안오네. 외상값이 아직도 열아홉 푼이나 남았는데!”
我纔也覺得他的確長久沒有來了。
그러고 보니 나도 한동안 그를 보질 못했다.
一個喝酒的人說道,「他怎麼會來?……他打折了腿了。」掌櫃說,「哦!」
그러자 술 먹던 한 사람이 말했다.
“올 수 있겠어 ? 다리가 부러졌는데!”
“허! 그래 ?”
주인이 말했다.
「他總仍舊是偷。這一回,是自己發昏,竟偷到丁舉人家裏去了。他家的東西,偷得的麼?」
“개 버릇 남 주겠나 ? 또 도둑질했지. 이번엔 정말 미쳤지. 정(丁) 거인(擧人, 향시 급제자) 나리 댁에 훔치러 들어갔다잖아. 다른 집도 아니고 가당키나 한가?”
「後來怎麼樣?」
“그래서 어찌 되었는데?”
「怎麼樣?先寫服辯,後來是打,打了大半夜,再打折了腿。」
“어찌 됐냐구 ? 우선 자술서부터 쓰고는, 흠씬 두들겨 맞았지. 밤새 맞다가 다리까지 부러졌대나봐.”
「後來呢?」
“그래서?”
「後來打折了腿了。」
“그래서 다리 부러졌다니까.”
「打折了怎樣呢?」
“다리 부러져서 어찌 됐냐니까?”
「怎樣?……誰曉得?許是死了。」掌櫃也不再問,仍然慢慢的算他的賬。
“어찌 됐냐구? 누가 알아 ? 죽었겠지 뭐.” 주인도 더는 안 묻고, 하던 장부 정리를 계속 했다.
中秋之後,秋風是一天涼比一天,看看將近初冬;
추석이 지나며, 나날이 쌀쌀해지는 가을바람에 금방이라도 초겨울이 닥칠 것 같았다.
我整天的靠着火,也須穿上棉襖了。
나는 온 종일 불을 끼고 살고도, 솜옷을 껴입지 않으면 안되었다.
一天的下半天,沒有一個顧客,我正合了眼坐着。
어느 날 오후, 나는 손님 하나 없어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忽然間聽得一個聲音,「溫一碗酒。」
갑자기 “술 한 잔 데워다오!” 하는 소리가 들렸다.
這聲音雖然極低,卻很耳熟。
착 가라앉았지만, 무척이나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看時又全沒有人。
눈뜨고 살펴보니, 아무도 안 보였다.
站起來向外一望,那孔乙己便在櫃臺下對了門檻坐着。
벌떡 일어나 밖을 내다봤더니, 술상 밑에 문지방을 마주하고 공을기(孔乙己)가 앉아 있었다.
他臉上黑而且瘦,已經不成樣子;
까맣고 마른 얼굴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穿一件破夾襖,盤着兩腿,下面墊一個蒲包,用草繩在肩上掛住;
그는 너덜너덜 겹저고리 한 벌에 다리를 꼰 채, 깔고 앉은 거적을 새끼로 꿰어 어깨 위로 둘러매고 있었다.
見了我,又說道,「溫一碗酒。」掌櫃也伸出頭去,一面說,「孔乙己麼?你還欠十九個錢呢!」
날 보곤 다시, “술 한 잔 데워달라니깐 !” 하고 말하는 소리에 주인이 머리를 쓱 내밀고는 말했다.
“공을기(孔乙己)인가? 자네 아직 열아홉 푼 외상이 남았어!”
孔乙己很頹唐的仰面答道,「這……下回還清罷。這一回是現錢,酒要好。」
공을기(孔乙己)는 힘없이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그건... 다음에 갚죠. 오늘은 외상아니니깐, 술은 좋은 걸로요!”
掌櫃仍然同平常一樣,笑着對他說,「孔乙己,你又偷了東西了!」
주인은 전과 다름없이 웃으며 말했다.
“공을기(孔乙己) 자네, 또 도둑질했군 그래!”
但他這回卻不十分分辯,單說了一句「不要取笑!」
그러나 그는 이번엔 별다른 변명없이 그냥, “농담 마슈!”하고 한 마디 했다.
「取笑?要是不偷,怎麼會打斷腿?」
“농담이라니! 도둑질을 안 했으면 다리는 왜 부러졌나?”
孔乙己低聲說道,「跌斷,跌,跌……」他的眼色,很像懇求掌櫃,不要再提。
공을기(孔乙己)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넘어져서 부러졌어요, 넘어져서. 넘어진 거에요...”
눈치가 더는 묻지 말아달라 애걸하는 듯하였다.
此時已經聚集了幾個人,便和掌櫃都笑了。
그 무렵 이미 사람들 몇몇은 모여들어 주인과 같이 웃어댔다.
我溫了酒,端出去,放在門檻上。
나는 데운 술을 문지방 위에 올려 줬다.
他從破衣袋裏摸出四文大錢,放在我手裏,見他滿手是泥,原來他便用這手走來的。
그는 헤진 주머니를 뒤적거려 동전 네 푼을 꺼내 내 손에 놓았는데, 보니까 손이 흙투성이였다. 그 손으로 기어왔던 것이다.
不一會,他喝完酒,便又在旁人的說笑聲中,坐着用這手慢慢走去了。
그는 금세 술을 비우곤,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동안, 앉은 채로 그 손으로 기어 천천히 사라져 버렸다.
自此以後,又長久沒有看見孔乙己。
그 뒤로 또 한동안 공을기(孔乙己)를 보지 못했다.
到了年關,掌櫃取下粉板說,「孔乙己還欠十九個錢呢!」
연말이 되어 주인은 칠판을 내리면서 중얼거렸다.
"공을기(孔乙己)는 외상이 아직 열아홉 푼 있는데!”
到第二年的端午,又說「孔乙己還欠十九個錢呢!」
그 다음해 단오(端午)에도 또, "공을기(孔乙己)는 외상이 아직 열아홉 푼 있는데!", 라고 중얼거렸다.
到中秋可是沒有說,再到年關也沒有看見他。
하지만 추석이 되어서는 아무 소리도 안했고, 다시 연말이 되어서도 그를 볼 수 없었다.
我到現在終于沒有見——大約孔乙己的確死了。
지금까지도 나는 끝내 그를 보지 못했다. 공을기(孔乙己)는 아마도 죽었을 것이다.
一九一九年三月。
1919년 3월
샤오싱(绍兴) 시내로 들어가면서 어느 순간 이면도로 뒤쪽 부분을 찾아가는 중에 뭔가 낯익은 현관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회향두(茴香豆) 한 점을 먹으려는 순간 멈춘 회색 빛 공을기(孔乙己) 동상이 서 있습니다...
허름한 입구와는 별개로 바로 안에 펼쳐지는 홀은 꽤 번듯하고, 이층 난간까지 꽤 고급스러운, 어느 잘 나가는 중국 본토 식당 모습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이층으로 안내를 받아 어느 너른 방 안으로 들어서니, 역시 여기서도 꽤 성대한 향연이 준비되어 있습니다@@아마도 우리가 잡았던 메뉴 단가가, 현지 기준으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는 가이드 분의 언급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매번 확인하고 있습니다...@@
식사를 맛있게 하긴 했는데, 나중에 받아든 메뉴를 보면, 앞서 식당만큼이나 도통 알기 힘드네요^^;;; 기억나는 몇몇 메뉴는 회향두, 취두부, 황주 정도 ?? @@ 여튼, 추후 보완하기로 하고 일단 기록삼아 아래와 같이 남겨둡니다...
美味八碟
油炸臭豆腐 <-- 기름에 튀긴 취두부겠죠 ?? ^^
河蟹沙年糕
培红菜蒸白产
花椒鸭子
笋干野菌煲
海鮮小沙皇
法式煎对虾
干菜焖肉
霉菜梗蒸豆腐
糖醋里脊
饭捂茄子
淸炒时蔬
点心 麻团
主食 菜泡饭
应时水果
아마도 이게 회향두인 듯^^;; 맛있었습니다 !!
아직까지 첫날 점심 취소로 남은 답사회비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죽 그랬던 것처럼, 식사 반주로 술을 곁들이는 데 비용으로 산입하여, 식당 측에 문의하여, 이 식당의 대표적인 황주를 반주로 골라달라고 부탁하여 아래 사진과 같이 태조십육(太雕十六)을 골라 내왔습니다.. 이 식당에서 내놓고 있는 네 종류 중 가장 전통적인 황주(黄酒)의 맛을 보여준다고 하네요^^ 흔히 황주에서 단 맛, 신 맛, 쓴 맛, 매운 맛, 신선한 맛, 떫은 맛 등, 여섯가지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그 맛을 다 느끼셨는지 ?? ㅎㅎ 과연 제 입맛에는 딱이다 싶었고, 개인적으로는 상하이에서 맛봤던 황주보다도 더 맛이 훌륭한 것 같네요^^;;
황주(黄酒)는 맥주, 포도주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술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장강 이남에서 인기있는 술입니다. 삼천년전 상주(商周)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한 역사에 걸맞게 꽤 저명한 상품도 수두룩합니다만, 지명도에 비해 아직도 대부분의 생산기업이 가내수공업 방식이라 생산량도@@... 수수나 좁쌀 등을 주로 사용하여 빚는 백주와는 달리 쌀, 기장 등을 주로 사용하며 누룩을 이용하여 술을 빚는데 도수는 14-20% 정도입니다...
산동즉묵노주(山东即墨老酒), 강서길안고강동주(江西吉安固江冬酒), 무석혜천주(无锡惠泉酒), 소흥장원홍(绍兴状元红), 소흥여아홍(绍兴女儿红), 장가항(张家港) 사주우황(沙洲优黄), 오강(吴江) 오궁노주(吴宫老酒), 백화양(百花漾) 등 동원황주(桃源黄酒), 상해노주(上海老酒), 학벽예학쌍황(鹤壁豫鹤双黄), 복건민안노주(福建闽安老酒), 강서구강봉항주(江西九江封缸酒), 강소백포황주(江苏白蒲黄酒(수명루,水明楼), 강소금단(江苏金坛) 및 단양(丹阳) 봉항주(封缸酒), 하남쌍황주(河南双黄酒), 광동객가랑주(广东客家娘酒), 장가구북종황주(张家口北宗黄酒)와 소흥가반주(绍兴加饭酒(화조주, 花雕酒 등), 광동진주홍주(广东珍珠红酒) 등등 지역도 다양합니다....
역사적으로는, 공영달(孔颖达, 574-648)이 한(汉) 대 응소(应劭)의 '세본(世本)'에, '두강이 술을 빚었다.(杜康造酒)' 했다고 인용하기도 했고, 송(宋) 주익중(朱翼中)의 주경(酒经)에서는, “의적이 막걸리를 빚고 두강이 차조술을 빚었다. (仪狄作酒醪,杜康作秫酒)'라고 나오기도 해서, 굳이 사소강(姒少康, BC 1972-BC 1912)으로부터 내력을 찾기도 하는데, 대략 BC 200년 한(汉) 왕조에서 1000년 경의 북송(北宋) 왕조에 걸쳐 주조기법이 완숙되어, 그 결과 '제민요술(齐民要术)', '주고(酒诰)' 등의 저작이 속속 등장하기도 했고, 영주(酃酒)、신풍주(新丰酒)、난릉주(兰陵酒) 등의 저명한 전통주가 탄생하였습니다. 장재(张载), 이백(李白), 두보(杜甫), 백거이(白居易), 두목(杜牧), 소동파(苏东坡) 등 술을 애호했던 문화인도 등장하면서, 전통주로서의 황주는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흔히 알려진 방법은,
쌀을 물에 불렸다가 (浸米)——술밥을 쪄서(蒸饭)——말렸다가(晾饭)——항아리에 넣어 발효시켰다가(落缸发酵)——항아리를 열어 가래질하여 섞었다가(开耙)——다시 항아리에 담아 발효시켰다가(坛发酵)——꺼내 짜내서(押着)——끓인 후(煎酒)——항아리에 담아(包装)
만들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이 곳 샤오싱(绍兴) 일대에서 빚는 특산주인 소흥주(绍兴酒)는 소흥노주(绍兴老酒)라고도 하는데, 보통 오래 숙성한 것일수록 가격이 올라가고 품질도 높게 평가받는다고 하네요^^ 언듯 소곡주와도 느낌이 비슷하기도 한~~
양(梁) 원제(元帝, 508-554)의 금루자(金楼子) 자서(自序)에, "내 어릴적, 여름 밤에 붉은 비단옷을 입고, 은잔에 산음의 단 술을 담는다.(吾小时,夏日夕中下绛纱蚊綯中有银瓯一枚,贮山阴甜酒)'라고 언급되기도 했고, 서진(西晋) 혜함(嵇含, 263-306)의 남방초목장(南方草木状) 권상(卷上)에,
"
...
南人有女数岁,即大酿酒。
남쪽에는 여식이 태어나면 몇 년 있다가 술을 빚어 놓는다.
既漉,候冬陂池竭时,置酒罄中,密固其上,瘗陂中;
술을 거르고, 겨울이 되어 연못이 다 말랐을 때 즈음, 술을 다 따라낸 후, 뚜껑을 단단히 닫고, 비탈에 묻어둔다.
至春潴水满,亦不复发矣。
봄이 되어 연못에 물이 차도, 다시 꺼내지 않는다.
女将嫁,乃发陂取酒,以供宾客,谓之女酒,其味绝美。
여식이 시집갈 때, 뚜껑을 깨 술을 꺼내서 손님을 접대하는데, 이를 여주(女酒)라 부르고, 그 맛이 참으로 뛰어나다.
...
"
라 하여, 황주의 하나인 여아홍(女儿红), 화조주(花雕酒)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송나라 이후 본격적으로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여 명청대에는 그 품질이 최고조로 자리매김하게 되면서, 샤오싱(绍兴)에서 빚은 술을 특별히 소흥주(绍兴酒)라 불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특히, 청대에 집필된 요리책인 조정집(调鼎集)에는,
调鼎集 - 第八卷茶酒部
조정집 - 권8 다주부
酒谱
술의 계보
吾乡绍酒,明以上未之前闻。此时不特不胫而走,几遍天下矣。
내 고향 소흥주(绍兴酒)가 있는데, 명 대 이전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이 때부터 세상에 널리 퍼졌다.
缘天下之酒,有灰者甚多,饮之令人发渴,而绍酒独无。
세상에 숱한 술이 있으나, 대개 사람에게 갈증을 일으키며, 오직 소흥주(绍兴酒)만이 그렇지 않다.
天下之酒,甜者居多,饮之令人停中满闷。
하늘아래 단 술은 많지만, 마시면 속에 머물러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데,
而绍酒之性,芳香醇烈,走而不守,故嗜之者以为上品,非私评也。
소흥주(绍兴酒)는 그 향이 순수하고 강하나 머무르지 않으니, 그를 즐기는 자는 상품으로 여긴다. 이는 개인적인 평가가 아니다.
...
이렇게 평하고 있고, 청대의 원매(袁枚, 1716-1797)의 저서인 수원식단(随园食单)에도 소흥주(绍兴酒)에 대한 높은 평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随园食单 - 卷四 茶酒单
수원식단 - 권4 다주단
绍兴酒
소흥주
绍兴酒,如清官廉吏,不掺一毫假,而其味方真。
샤오씽 술은 청렴한 관리처럼 터럭 한오라기의 거짓이 없이 맛과 향이 진실되며
又如名士耆英,长留人间,阅尽世故,而其质愈厚。
또한 오랜 세월의 역경을 겪은 뛰어난 선비와 같이 파란을 겪더라도 그 성질은 갈수록 깊어진다
故绍兴酒不过五年者不可饮,掺水者,亦不能过五年。
그리하여 소흥주(绍兴酒)는 다섯살 아래는 마시면 안되고, 물을 섞는 것 또한 할 수 없다.
余常称绍兴为名士,烧酒为光棍。
보통 소흥주(绍兴酒)는 선비라고 부르고, 소주(烧酒)는 건달(光棍)이라 부른다.
...
그렇게나@@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명맥을 유지하다가, 191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파나마-태평양 만국박람회(Panama-Pacific Exposition)에 출품되어 금상을 받고, 이어서 1929년 항저우 서호 박람회에 심영화묵기(沈永和墨记) 양조장에서 출품한 선양주(善酿酒)가 금상을 받으며,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달달한 정도, 당분의 함량에 따라 원홍주(元红酒), 가반주(加饭酒), 선양주(善酿酒), 향설주(香雪酒) 등으로 나눈다고 하는데요,
먼저, 원홍주(元红酒)는, 원래 붉은 칠을 한 단지에 술을 담았던 것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대표적인 종류이며, 건형(乾型) 황주로 당분 함량은 15.0 g/L 이하로, 드라이한 맛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와인으로 치면 가장 바디감이 있는 종류인 셈이라는 뜻 ?? @@
가반주(加饭酒)는 황주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품질로 꼽히는 술로, 화조주(花雕酒)라고도 하는데, 술밥을 만들 때 다른 종류에 비해 물이 적게 들어가 술밥이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가는 이유로 가반주(加饭酒)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구요, 반건형(半乾型) 황주로 당분 함량은 15.0~40 g/L 정도 된다고 합니다. '雕'를 연상해보면, 우리가 마신 술은 아마도 이 종류인 듯^^;;
선양주(善酿酒)는 술을 담글 때 물 대신 1-3년동안 숙성시킨 원홍주(元红酒)를 쓰는 쌍투주(双套酒) 종류로, 진한 황적색에 항기가 부드러우면서도 진하며 맛이 달고 좋다고 하구요, 반첨형(半甛型) 황주로 당분 함량이 40.1-100g/L 로 조금 더 높습니다.
향설주(香雪酒)는 이번에는 물 대신 백주 종류인 조소주(槽烧酒)로 쌀을 하루 이틀 불려 밑밥을 지은후 술을 띄우는 임반법(淋饭法)을 이용한 쌍투주(双套酒) 종류이며, 첨형(甛型) 황주로 당분 함량은 100g/L 이상으로 꽤 달달하다고 하네요^^;;
아마도 우리가 주문한 술은 아래 종류 정도 되는 듯합니다^^;; 대략 4-5만원 선 ?? 이 정도면 꽤 근사한 반주로 손색이 없었던 것 같네요^^ 하지만, 이렇게 해서 첫 날 점심 식대는 다 나가고, 이후에는 갹출해서 쓰고 있던 추가 답사비를 써야 하는 모드로 들어가게 되었네요^^;;; 이럴 때 여유있게 쓰기 위해 모으기도 했지만, 여튼 이후에도 가급적이면 반주를 즐길 수 있게 계속 고민하는 것으로~~ ^^;;
이것이 아마도 문제의, 기름에 튀긴 취두부입니다^^
그런데, 저는 꽤 맛있게 연달아 집어먹었는데, 다른 분들은 마치 홍어를 처음 대하는 외국인의 반응 흡사하게 꽤 먹기 힘드셨던 듯하네요^^;;; 아마도 저만 맛나게 신나게 먹었던 듯~~ ㅎㅎ
하긴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깻잎이, 서양인에게는 고수만큼이나 입에 대기 힘들어한다고 하니, 취두부에 대해서도 여간해서는 모두의 입맛에 다 맞기도 쉽지 않다는 평이 이해될 만도 하네요^^;;;
식사도 여유있게 마무리하고, 몇몇분은 반주로 즐겼던 소흥주(绍兴酒)를 선물로 주문하여 사들고는나섰는데, 다들 그렇게 함형주점(咸亨酒店)에서의 점심을 마무리하고 그렇게 별 생각없이 나서려는 그 때 밖에는 소나기가 난데없이 내리네요@@
그 예고없는 급한 상황에, 얘기거리도 많은 공을기(孔乙己) 동상도 노신(鲁迅) 선생 얘기도 꺼내볼 틈없이, 어떻게 용케 선물을 챙겼는지도 기억 안날 만큼 허둥지둥, 현관 앞에서 다들 어디들 가셨을텐데, 혹 길 잃는 벗이 있으면 당황할 상황이라, 저도 그렇고 많은 분들이 빗속에 허둥대기만 합니다. 어떻게 어떻게 안내받아 하나둘, 큰 길 뒷편 주차장에 머물러 있던 버스로 모인 분들을 세어보니, 그래도 다들 노련하게 모이셨네요^^;; 다행, 그리고 감사@@
그렇게 해서,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출발했지만, 순탄하리라 낙관했던 그 길, 예상보다 더 막히던 교통 체증 끝에, 문 닫아버린 취백지 정문 앞에 다다른 가이드 분의 가슴이 시꺼매지게 되어버릴 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첫댓글 스크롤의 압박... 다 읽기 힘들어유~~~ ㅎㅎㅎ
ㅎㅎ죄송~ 글을 더 정리했어야하는데 일단 올리는데 급급해서리@@
본편 '강남 정원답사'에 부록 '강남 미식기행'으로 책으로 만들어도 멋진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