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막 론 - 김요한 선교사님
서문
교회를 제 2의 성육신이라고 한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인간으로 오심을 제 1 성육신이라
한다면 그 분이 믿는 자 안에 임하신 사건을 그렇게 표현한다는 말이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임하신 사실을 우리는 성령님의 가르침으로 안다.
여호와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자신의 영광을 모세에게 비취시고, 그 영광이 머물 성막을 지으라고 명령하셨다.
참으로 놀라운 은혜요 긍휼이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미치지 못하였거늘(롬 3:23) 하나님이 친히 강림하시어 이스라엘 진중에 머무신 곳이 성막이다. 죄인 중에 함께 거하시는 긍휼이 넘치는 그 분의 사랑은 오늘날도 새 언약의 은총 속에 있는 그의 백성들에게 동일한 복을 내리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上)
하나님은 죄지은 육신들을 향해 그의 영광으로 올라오라고 하시지 않고 그 분이 친히 우리 가운데 임재하신 것이다.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혜와 구속함과 의로움과 거룩함과 영광을 시청각으로 보여주시는 말씀이시다.
여러 학자들의 책을 요약하듯이 내용을 모았고, 약간의 주관적 지식을 보충 삽입을 했다. 우리 모두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에 나아갈 수 있는 지혜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 작은 책을 통해 많은 분들이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을 따라 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갈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다.
모름지기 하나님의 자녀라면
1) 영생을 얻은 믿음이 확실해야 한다.
2)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 확실해야 한다.
3)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공급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이 확실해야 한다.
그래야만 성막을 주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가 천사들 앞에서 큰 즐거움으로 “옳거니”하실 것이다.
인간은 영적 存在이다.(창 1:27)
: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창조된 특별한 피조물이다.
창 2:7 에는 人間을 만드신 구체적 방법을 제시한다.
: 땅의 흙(티끌)에다 하나님의 호흡을 불어넣으심으로 생령이 되었다.
.이 생령을 원어를 직역하면 “산 혼” 또는 “살아있는 혼”이다.
(고전 15:45 참조)
그러나 아담이 범죄 하므로 하나님과 분리가 되고 말았다.
(실락원 창 3:22-24)
창 5:3 아담의 형상(원:모양)
창 6:3 여호와의 신이 떠나가심 → 그러므로 육신의 껍데기(Form), 즉 모양만 있으나 사람(아담)이 아니라 육체가 되었다.
이스라엘을 모델로 삼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인간을 회복(回福)시켜주시기 위해 모세를 통해 지으라고 명한 것이 성막이다.
: 성막은 하늘에 있는 참 장막의 그림자(히 8:5. 9:24)이다
그리고 장차 올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히 10:1)이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본 자로서 그 모형인 성막을 짓는 일을 맡은 사환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참 장막의 아들이다.(히3:5,6)
하나님은 모세에게 윱법(공의)을 주시고 난 다음 성막(사랑)을 지으라고 명하셨다.
: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완성이심을 드러내신다(마 5:17, 롬 13:8-10)
1. 성소의 발전 과정
(요 1:1) ↓
새 예루살렘 ← 성도 ← 예수 그리스도
(계 21장) (고전 3:16. 6:19) (요 2:21)
2. 하나님이 성소를 짓게 하신 목적
1) 하나님이 임재하시기 위해 (출 25:8. 40:34. 40:38)
하나님은 자기영광을 빼앗기지 않으시는 분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자기 일을 쉬지 않으신다.
이 하나님이 말씀만 하시다가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심 (마 1:21,23)
이 말씀이 우리 가운데 임마누엘 하신다 (요 1:14)
2)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나타내시기 위해
: 자신을 계시하신다(하나님은 성막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 보이심)
성막의 구조와 양식은 하나님의 영화, 거룩, 공의, 자비, 영원하신 속성과 성품을 나타내는 시청각 교육 자료들이다.
또한 예수님이 보이신 모든 행동도 그 분이 창조주요 전능자 이시다는 것과 함께 하나님의 속성을 표현하시는 것이 많다.
ex) 예루살렘을 보고 우시는 모습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모습
오병이어의 기적 등
3) 하나님이 죄인을 만나시기 위해서(출 25:22. 29:42)
: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도 죄인을 찾아 구원하여 하나님께로 이끌기 위함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속죄의 제사장이시면서 중보의 제사장이시다.(히 3:1)
4)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기 위해서(히 9:11-12.. 9:23-24)
: 구약성경은 외국영화의 영상과 같고 신약성경은 자막과도 같다.
ex) 어린아이들에게 그림으로 기차를 가르치고 나중에 실물을 보이는 원리와 같다.
3. 성막의 이름들
1) 성막(히 미쉬칸)
거처하다는 동사에서 나온 말이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하나님은 거룩하심) 그러므로 그곳은 거룩한 곳이다.
ex) 하나님이 계시는 곳은 병아리도 있다면 거룩해진다.(고전3:16-17)
2) 장막(Tent의 개념: 출 25:9)
장막이란 거주하는 장소이다
요14:23▶하나님은 우리를 장막 삼으시고 거주하시길 원하신다.
3) 회막(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는 곳 : 출 29:42)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매우 큰 축복이다.
그러나 반드시 하나님의 방법과 절차와 시간과 장소가 지정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이었던 인간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요 길이다.(요 14:6. 행 4:12. 히 10:19-20)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죄인 된 인간을 연결시키는 유일한 고리요 면회 장소이다.
4) 증거막(증거의 장막)
법궤 안에 있는 십계명이 있는 곳이다.
죄를 지적하기도 하고 용서하기도 하는 곳이다.
: 시은좌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에 의해 죄인된 것을 깨닫고, 그 분께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들을 능히 구원하신다. (히 7:25)
5) 성소 (거룩하다, 구별되다)
하나님이 인간들 가운데 계시지만 구별된 장소에만 계신다.
고전 3:16▶ 성도의 몸 안에만 계심
엡 2:21-22▶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 계심
요한복음 14장▶ 너희 속에 계시겠으나 세상은 알지 못하리라고 하심(요 14:17)
6) 하나님의 집 (삿 18:31)
영구적 거처를 말씀한다.
하나님은 성도들과 더불어 영원한 거처를 삼으시고 함께 거하기를 원하신다.(요 17장)
7) 법막
법궤가 들어있으므로 법막이라고 불렀다.
* 신약 시대에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법궤를 대신하여 우리 가운데서 법이 되신다(롬8:1-2)
8) 기타의 이름들
여호와의 전 (삼상 3:3)
세상에 속한 성소 (히 9:1)
증거의 장막 (민 17:7-8)
요셉의 장막 (시 78:67)
실로의 장막 (시 78:60)
4. 성막의 기구의 구조에 대한 계시적 의미
성막의 설계와 고안자는 하나님이시다 (출 25:8-9. 히 8:5)
천지창조는 6일, 성막설계는 40일: 모세의 시내산에서 40일 금식기도를 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새로 만드시는 것은 쉬우나, 죄인들을 다시 구원하여 창조 목적대로 회복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뜻이다 (재창조)
* 성막의 모양, 재료, 색깔, 크기, 용도, 위치가 모두다 영적인 의미가있다.
1) 울타리와 출입문(출 27:9)
길이 100규빗 (45m), 넓이 50규빗 (출 27:12) 높이 5규빗 기둥은 60개로 되어있다 (출27:10-12)
울타리의 목적은 죄인들이 바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 울타리의 세마포는 “순전한 의”를 나타낸다.
인간이 누더기임을 알라 (사 64:6) 세마포의 울타리는 죄인 접근금지 팻말이다.
예수님도 요 10:1에서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라고 하셨다.
① 기둥과 놋 받침 :놋 받침 60개 (남과 북 20개씩, 동과 서 10개씩 출 27:6-8) 세마포는 하나님의 의 , 놋 은 하나님의 심판 : 출입문 외에는 넘어오지 말라 (죽음)
놋 기둥은 은 받침 위에 세워져 있다 : 교회의 모형 (딤전 3:15 진리의 기둥과 터)
은 받침은 속전으로 낸 반 세겔을 모아서 만든 것이다.
(출 30:11-15:세겔 한 개 175원 정도)
은(銀) 은 속죄를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속전 위에 서 있는 진리의 사람들이다.(레 17:11. 히 9:22. 고전 6:20. 벧전 1:18-19. 요6:54-57)
행 20:28 에는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교회라고 한다
*다윗의 실수를 보라 (삼하 24장, 대상 21장) : 속전을 내지 않고 인구조사. 그 결과 7만 명이 온역으로 죽었다.
고전 3:11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속전으로 낸 세겔로 만든 은 받침으로 말미암아 광야 사막에 세워진 성막의 기둥이 모래 속에 빠지지 않고 유지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전 위에 세워진 진리 안에서 성도들이 보존되는 것을 보여주는 예표이다.(요 17:17)
②세마포장
세마포는 “의”를 나타낸다. 계 19:8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한다.
성막의 뜰은 하나님의 요구이신 “의”로 둘러져 있다(하나님의 의에 포위되어 있음)
약 2:10에 율법을 한 가지라도 어기면 모두 범한 자가 된다. 하나님의 의 앞에 죄를 깨닫지 않을 자 누가 있겠는가?
율법을 주신 목적은 우리 인간이 얼마나 더러운가 보라는 뜻이다(X레이)
③ 성막문
동편으로 나있다.(에덴동산의 동편) 넓이 20규빗, 높이 5규빗
예수 그리스도는 양의 문이다(요 10:9. 요 14:6. 행 4:12 참조)
문 의 색깔(출 38:18) : 그리스도 예수의 속성을 나타낸다.
청색은 생명, 자색은 왕권(예수님의 옷), 홍색실은 보혈, 가늘게 꼰 베실은 성결(의)
2) 성막 뜰
성막 안 마당을 말하며 성막 울타리 안 전체이다.
남북으로 100규빗, 기둥 20개씩은 받침 20개씩 동서로 50규빗, 기둥 10개씩은 받침 10개씩
성막 뜰에는 일반 백성은 들어가지 못하고 오직 레위인만 들어간다.(민 8:14-15)
지금도 진리를 받고 거룩하게 구별된 자들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성막의 안 뜰은 성막이 있고 바깥뜰은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다.
① 번제단
첫 번째 기구이다.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입은 자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엡 2:11-18)
재료 (출 27:1-8) 조각목에 놋으로 입혀 만들었다.(광 5규빗 고 3규빗)
뿔은 네 모퉁이에 세워져있다.
: 구원의 뿔, 능력의 뿔 (구원과 심판) (히 2:14-16, 고전 1:18, 롬 1:16)
부속기구 : 재통, 부삽, 대야, 고기갈고리, 불 옮기는 그릇(출27:3)
단 중앙은 그물로 되어있다. 단 양편에는 고리 넷을 만들어 채를 꿰어 단을 운반하도록 했다.(이동식-광야)
VS〉 벧세메스의 두 암소의 사건 : 웃사의 죽음 (삼하 6장 다윗의 무지)
※ 조각목에 놋을 입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예표이다.
▶ 의미 - 제단의 뜻 : 죽인다, 도살하는 장소, 들려지다.
- 희생제물이 살해되어 불태워진다.
십자가에는 양면성이 있다.- 죽음과 부활 (속죄와 재창조) 지금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는 속죄의 제사장이시고 중보의 제사장이시다(히 3:1. 7:25. 딤전 2:5)
▶ 번제단의 불 - 하나님으로부터 나옴 (레 9:24)
구약의 제사는 불로 응답(ex 엘리야의 갈멜산 기도 왕상 18:38)
레 10:1-3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로 제사를 드리다가 그 불이 그들을 삼켜 버리고 말았다.
레 6:12-13 번제단의 불은 항상 꺼지지 않도록 하여 영원토록 타도록 명령하셨다.
② 물두멍 ‧
위치 : 성소와 번제단 사이에 놓여 있다.
요 13:8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발 씻음의 의미는 영접한다는 뜻이다. : 팔레스타인 지방의 풍습
번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사활의 은총이며 물두멍은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영접을 받는 의식이다.
‧ 재료(출 38:8) 놋으로 만들었는데 이 놋은 여인들의 거울이었다.
: 거울로 자신을 보고(심판) 물로 씻으라(용서)
요 13:20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막 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세례는 순장의 의미가 있다.
‧ 목적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씻으라.(출 30:18-21)
씻지 않고 성소에 들어가면 죽임을 당한다. 만약 씻지 않고 성소에 들어가서 성소기구(금)를 만지면 성소기구가 더러워 질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화합하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면 천국이 북새통이 될 것이다.
요 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엡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히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3) 성소
성막은 두 개의 방이 있는데 동쪽에 있는 방을 성소라 하고 서쪽에 있는 방을 지성소라 한다.
성소란 여호와가 거할 처소이다. (출 25:8): 박 윤선 박사
그리고 성소는 “언약의 집”이라고 했다.
성소의 크기는 장 10규빗 광 20규빗 고 10규빗
성소 내부의 벽은 금으로 입힌 널빤지에 등대의 불로 비추어져서 환하게 빛난다.
휘장도 아름답고 향은 항상 피워져 있어 향내가 성소안에 가득하다. 성소 안에는 금 촛대와 진설병 상(떡상)과 향단이 있다.
① 떡상
진설병의 규격과 모양 (출25:23-24) : 조각목이 재료-장이 2규빗, 광이 1규빗, 고가 1규빗반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두른다.
-조각목은 그리스도의 인성, 순금 테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나타낸다.
진설병은 한편에 6개씩 두 줄로 진설 되어 있다. (12지파)
떡상은 하나님과 그의 자녀들과의 영적 교제이다.
하나가 되는 연합을 의미(한 떡, 한 몸, 한 영)한다.
(고전 10:17, 고전 12:13-14, 엡 2:18)
상위의 떡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예표이다. (요 6:35,51. 요 6:53-58)
신자의 영혼의 생명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유지되고 성장된다(마 4:4)
성소에 있는 떡을 안식일마다 교체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교제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날마다 새로워 져야 한다.(요 14:21)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동안 진행하는 중에 매일 만나를 먹었듯이 신자들은 매일 영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요 6:57)
: 주 기도문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마 6:11)
그래서 제사장들이 매일 떡상 주위에 모였다.
: 人格의 교제(코이노니아)와 봉사(디아코니아)―집사(서 있다)
성소 안에는 의자가 없으므로 제사장들은 서서 먹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소는 먹고 즐기는 곳이 아니라 일하며 봉사하는 곳이다.(엡 4:11-12)
Soltau는 “성막 안에서나 성막 뜰에서는 앉을 의자가 없으므로 제사장들은 일을 다 해야 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제사장들이 떡을 먹는 것은 봉사의 일을 하기 위하여 먹는 것이지 떡을 먹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다.
고전 11:26에서 바울은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 했다.
: 우리의 산 떡이신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이 생명의 떡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주님의 생명의 떡을 먹고 일 할 준비와 봉사할 준비를 갖추고 언제든지 명령에 따라 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진설병의 교훈이다.
② 등대(촛대)
가) 등대의 제작(출 25:31-32)
주형(금형)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고 쳐서 만들었다.(전체가 한 덩어리) : 정금을 쳐서 만들어라
십자가의 대속의 진리로 구속함을 받는 원리이다
등대는 한 달란트로 만들되 하나님께서 보이신 식양대로 만들었다.(출 25:37-40)
: 하나님의 방법대로 믿어야 “의”가 되고 성령님이 역사하신다.
나) 등대의 빛
등대의 빛은 말씀을 의미하는 떡상, 기도를 나타내는 향단, 하나님의 거룩성을 나타내는 성소의 휘장(그룹들)을 비추인다(성령의 조명) :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빛이라고 하셨다.(요 9:5)
금등대의 빛은 성령을 통해 진리의 빛을 비추어 어두움에 있는 백성들이 하나님과 사귐이 있도록 하는 의미이다(마 4:16, 요 1:4, 요일 1:5-7)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빛을 심령으로 받아 삶을 통해 세상에 비추어야 한다 (마5:14-16)
다) 등대의 예표적 의미
성령의 조명 : 떡상, 향단, 거룩한 그룹이 새겨져 있는 휘장을 비추는 의미를 묵상해 보라. -등대는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요 1:9)
등대가 한 덩어리로 되었듯이 예수 그리스도와 몸 된 교회는 붙어있는 연합체이다.
(요 15장 포도나무와 가지) :한 떡. 한 영. 한 몸 (고전 10:16-17)
등대의 가지들은 모양과 장식이 다 같다 :그리스도인들의 평등 (롬 3:22. 롬 10:12)
③ 향단
가) 구조 : 길이 1규빗, 넓이 1규빗, 높이 2규빗 싯딤나무에 금을 싸서 만듬, 고리를 만들어 채에 꿰어 운반하도록 되어 있다(이동식) 향단의 모양은 네모꼴, 네 귀퉁이에는 금으로 싼 뿔, 향단 위에는 숯불을 담은 금향로가 놓여 있다.
나) 위치 : 성막단은 2개인데 하나는 놋으로 만든 번제단으로 성막 뜰에 있고, 다른 하나는 금으로 만든 향단으로 성소 안에 있다. 향단은 성소 맨 중앙에 위치하고 진설병 상과 금 촛대 사이에 있다. 그리고 지성소에 있는 언약궤와 휘장 앞에 있다.
다) 향단의 예표적 의미 : 놋제단은 백성들의 죄를 태우는 단, 향단은 향을 태우는 단이다
놋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의미한다(속죄의 제사장) 향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의 사역을 의미한다(중보의 제사장 히 7:25)
향단 위에는 놋제단에서 가져온 불씨에다 향을 끊임없이 피웠다. ( 히 3:1을 묵상하라) 또한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살전 5:16-18)
히 9:24 “그리스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 하나님 우편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중보의 사역을 계속하신다.
향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기도의 모형이다(롬 8:34. 히 7:25)
향의 종류(출 30:34-35) : 소합향, 나감향, 풍자향의 향품에 유향을 섞은 매우 향기로운 복합체였다 (향기롭고 순결하고 거룩한 그리스도의 중보기도를 의미)
또한 향단의 분향은 신자의 예배 (거룩한 산제사)와 기도(향- 계 5:8. 계 8:3-4)를 의미한다.
분향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하듯이 신자의 영적 교제는 항상 연속되어야 한다.(요 15:5)
시 141:2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다윗의 기도)
향단은 예배와 기도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우리의 삶의 제사와 기도는 향이 끊임없이 피워지듯이 계속되어야 한다.(고후 2:15)
그리스도인은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직분을 받았으므로 중보기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분향으로 상징되는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의 대속의 공로를 따라 드릴 때 성령님이 역사 하셔서 효력이 발생한다.
4) 지성소
길이 넓이 높이가 각 10규빗이다.
: 하나님의 처소의 완전성을 나타낸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처소이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고 계신다.(구름기둥 : 하나님의 현존의 상징)
이곳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사랑이 조화되어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킨다.
대제사장이 1년 1차씩 속죄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서 제사를 드렸다.
: 백성들의 죄를 사하고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함.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화해하시기 위해 은혜의 보좌에 언제나 앉아 계시는 왕이시다.
지성소에는 세 가지 기구 즉, 법궤와 속제소와 그룹이 있고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는 휘장이 가려져 있다.
① 휘장 :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혼합해서 짜여있고
그 위에 공교한 세 그룹이 새겨져 있다(출 26:31-33)
이 휘장을 파로케트(תꗋꗟ꘩)라 불렀는데 “구분, 분리”의 뜻으로 “나누다”란 의미의 파라크(ꗗꙝ)에서 나온 말이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이유는 죄를 지은 인간은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롬 3:23)
그래서 이 휘장을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라고 했다(히 10:19-20)
휘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을 나타낸다. 청색은 생명, 자색은 왕, 홍색은 보혈, 가늘게 꼰 베실(세마포)은 그리스도의 “의”를 나타낸다. - 그리스도의 완전하심과 거룩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지 않고는 하나님의 영광에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다 이루었다”(요 19:30)고 말씀 하셨다.(이젠 됐다)
마태, 마가, 누가는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된 사실에 대해 각각 증거 한다.(마 27:51 막 15:38. 눅 23:45)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자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두셨다.(요 14:6)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신령(성령)과 진정(진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길이 열렸다.
② 법궤 :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
법궤안의 세 가지 : 깨어진 돌 비(율법), 지팡이는 부활의 생명(마른 막대기에 싹이 돋음) 만나는 생명의 양식
돌 비 : 모세의 계명(율법)을 예수 그리스도는 완성하시는 분이시다.(마 5:17-18. 요 13:34. 롬 8:3-4)
만나 : 그리스도가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 이시다.(요 6:51. 출 16:33-34)
이 언약궤의 원형은 지금 하늘에 있다.(계 11:19)
계 2:17 감추었던 만나, 요 10:28 영원한 생명의 양식
싹 난 지팡이 : 부활을 상징
하나님은 민 17장에서 이스라엘이 모세에게 반항했을 때에 12지파 이름으로 12개의 막대기를 가져오라고 하여 언약궤 앞에 세워 놓고 싹이 나는 지팡이만 영원한 제사장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 민 17:8 아론의 지팡이만 움이 돋고 순 이 나며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맺음(부활의 생명 상징)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생명있는 자만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길 수 있다(마 22:23-33)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언약. 부활, 생명의 양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이루어 진 것이다 : 은혜의 보좌 (히 4:16)
그러나 삼상6장 벧세메스의 사건 : 피가 덮인 속죄소를 들여다 본 사람들은 다 죽었다.(삼상 6:19)
은혜의 보좌가 심판의 보좌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약속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 아니라 심판과 진노의 하나님이시다.(요 3:36)
그러므로 시내산에서 갈보리산으로 돌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기다리라.(롬 11:22)
▶성막은 보혈의 집이다.
하나님과 죄지은 인간이 화목 하는 데는 피가 필수적이다.(레 17:10-12. 엡 2:13. 히 9:22)
피의 신성 : 노아 홍수 후에 피를 먹지 말라. 행 15:19-20에도 피를 먹지 말라.
성막의 기초가 은 받침인 사실은 피로 구속의 값을 치뤘다는 의미이다 .
: 은 받침은 속전의 세겔로 만들었다.
성막의 앙장이나 휘장의 진홍색은 모두 피를 상징한다.
번제단에서 흘린 짐승의 피로 모든 제사의식이나 성물이 거룩하게 되었다.
성막은 피의 집이다 (출 29:12.16. 히9:18-22)
그러나 짐승의 피는 죄를 덮기는 할 수 있으나 속량은 할 수 없다.(히 10:1-14)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人間의 유일한 중보이시다.
그래서 짐승의 피는 참 화목제물이 될 수 없다.
(히 9:11-12)
죄는 하나님과 화목이 이루어지기 전에 해결되어야 한다.(엡 2:13-18절 참조) : 구속을 위한 값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속량의 필요성
1. 하나님은 엄청나게 거룩하신 분이다.
2. 반면 인간의 죄는 엄청나게 가증스럽고 무서운 것이다
: 하나님은 죄를 증오하신다(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보라)
오늘날 하나님의 거룩성이 강조되지 않으므로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다 .
: 예배를 좀 진지하게 드려라.
모든 죄가 해결되어야 하나님과 화목하고 참 평화를 얻는다.
(롬 3:23-26, 롬5:1-2)
이 제사와 예물을 하나님이 마련 하셨다 : 구약은 짐승, 신약은 예수그리스도
(히10:14)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증오와 사랑이 함께 있다 : 공의와 사랑
죄의 값은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 만약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을 거부하면 본인이 영원
토록 지불해야 한다(계6:15-17, 롬3:23-26)
속량(Atonement)이란 말의 뜻, (성막 M. R디한 P216) 히 Kaphar(카파르)
: 덮는다(창 6:14)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역청이란 말이 “속량”이란 뜻이다.
: 카파르(동사)와 코페르(명사)
창 6:14을 “너는 속량으로 안팎을 속량하라”고 읽을 수 있다.
역청은 홍수의 물이 방주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므로 하나님의 심판에서 속량한다.
그러나 구약의 짐승의 피는 죄를 속량했다(덮었다) 또는 그냥 지나갔다(간과)고는 해도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시키지는 못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죄를 완전히 도말(사함) 할 때까지 당분간 보류되었다. 그러므로 성막의 제사는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매일 드려야 했다.
그러므로 구약의 성도들은 죄를 용서받기는 했지만 결코 의롭다 하심을 받지는 못했다.
“칭의”는 말은 갈보리(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이전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용서란 말도 갈보리 이후에는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다.(롬 3:25 간과하시고 의로움을 나타내심)
구약의 제사는 죄를 덮고 용서하기는 했지만 하나님과 화목 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가 올 때까지 “스올 하데스”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속량의 필요는 양심이 있는 모든 인간은 다 느끼고 있다.
ex) 신들을 달래며 제사를 드리는 모습이 그를 증명한다.
혹자는 “인간은 도저히 치료될 수 없는 종교적 존재이다”라고 한다. 무신론은 현대문명이 만든 조작품이다.
어느 민족에게도 무신론은 찾아볼 수 없다. (전 3:11) : 책임과 죄성에 대한 의식을 지니고 태어난다.
하나님을 섬기든지 미신이나 이방신을 섬기든지 인간은 그 신들을 달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식이 그들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다.(요 3:36)
ex) 범죄 한 아담과 화와가 무화과로 치마를 해 입은 모습
그래서 구약의 제사는 수천, 수억의 짐승을 잡아 피 흘려 속량의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는 속죄의 효과만 있고 대속의 효력은 없었다.(히 10:1-6. 12-14)
속량을 받고 싶은 인간의 속성은 항상 있어 왔다.
몰렉에게 자기 아들을 바치는 사람의 심정을 생각해 보라.
이글이글 타는 불 속에 자신의 살과 피인 아들을 던져 넣는 모습을 생각해 보라.
젖먹이를 가진 어미가 악어 밥으로 그 자식을 던지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심청이를 인당수에 던지는 선원의 모습을 생각해 보라.
이들은 다 아들과 딸을 사랑하지만 신을 달래려고 하는 절망감과 굴복감으로 이런 짓을 한다. 또한 수도승의 모습도 죄에 대하여 속량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한 다른 표현이다.
이런 의식을 가지고 죄의 속량을 간절히 바라는 인간들을 위해 하나님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의 제물(속량)과 화목제물로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갈 3:13-14. 사 53:5)
▶ 하나님의 속성 중 두 가지
1) 하나님의 사랑 ― 사랑, 긍휼, 자비
2) 하나님의 증오 ― 거룩, 공의, 의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 영적인 사망, 하나님과 영원한 분리이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가 회복되기를 원하신다.
여기서 속량의 문제가 대두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다 충족시켜야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한 방법을 고안 하셨는데 이는 모든 책임을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가 인격을 가진 인간화 되셨다.
(동정녀 탄생 - 사 7:14)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심(전가 : 세례 요한의 세례) 그 다음 그 죄를 갈보리에 지고 가서 지옥의 고통을 당하시고 죽음의 형벌을 치루셨다.
(마 1:21,23. 사 53:6. 요 1:29. 고후5:21. 고후 5:18-20)
이제 인간의 죄의 문제는 다 해결되었다. 다만 인간의 문제는 이 해결책을 받아들이던지 거부하든지 선택이 남아 있을 뿐이다.
만약 복음을 그리스도를 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거절하는 것 (ex : 수혈 거부하는 중환자)
롬 1:17-18. 요 3:18, 36. 히 9:27-28
대속자이신 그리스도 (히 9:11-14), 피는 생명(FP 17:11), 죄의 삯은 사망(롬 6:23) 죽음을 없애는 길은 생명을 받는 길이다.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피를 흘려 사망의 값을 갚으신 것이다.(히 2:14-16) 그러므로 피 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다(히 9:22)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 피는 완전해야 되고 썩지 않은 피라야 한다.
따라서 인간의 피는 불완전하고 죄악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임시 조치법의 속죄의 제물로는 무용지물이다. 다만 구약의 제사에 쓰인 동물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일 뿐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완전하고 썩지 않는 영원한 피이다.
(보혈 롬 3:25. 히 9:14-15. 벧전 1:18-19)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대속 사건 이전에는 죄를 온전히 제거할 수 없었고 잠정적으로 죄를 가리는 것이었다.(히 9:25-26. 10:1-5)
대속이란 그리스도께서 다른 사람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자리에서 그 사람의 죽음의 값을 갚으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순교가 아니라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제한적이다. 선택된 자만 그분의 대속의 은총이 적용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구원에 초청에 응답해서 믿어야 하는 것이다. (요3:16. 행16:31) 믿어지면 하나님이 이루어 놓으신 것을 받아 누릴 수 있으나 거절하는 자들은 그저 죽어가는 것이다. (마 16:16. 요일 5:16, 요 3:18-19
ex) 전 재산을 다 바쳐 연구한 약을 죽을 환자에게 주었으나 안 받으면 영영 이별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대속의 잔치에 죄인을 초청하시고 애타게 기다리신다.
(사 55:1. 계 22:17. 요 6:37. 53-57.)
롬 3:23-26 (화목제물을 속죄소로 바꾸어 읽어 보라)
▶ 피의 신성함
창 9:4 홍수 후의 최초의 명령이다. 마지막 때에도 노아의 때와 같으리라고 했다. (눅 17:26)
레 7:26-27 무슨 피든지 먹는 것은 죄가 된다.
행 15:28-29 지금도 피를 금하는 의미
1) 생명은 피에 있고 생명은 신성하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피를 먹는 것은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2) 피는 구속에 대한 유일한 하나님의 값이다.
▶ 속죄일 (레 16:11)
속죄일은 가장 엄숙한 날이었다.(Yom kippur)
유월절 :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고전 5:7)
무교절 : 우리 죄를 도말하신 예수 그리스도 (히 9:26)
초실절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고전 15:20)
오순절 : 성령강림 (행 2:1)
나팔절 : 주님의 재림(παρὑϭἰα) (고전 15:52. 살전 4:16)
속죄일 :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한 완전속죄(히 8:12)
새 언약이 오늘날 첫째부활의 때이다.(요5:24. 롬8:1-2)
장막절 : 영원한 나라의 예표
(새 예루살렘 : 요 14:21,23 참조, 고후 5:1-2. 계 21:1-2 )
◎속죄일
1) 대제사장이 혼자 성소안 지성소에 들어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참 장막 안으로 들어가셨다 (히 9:24)
2) 제사장이 자신을 위해 속죄제사를 드린다 (레 16:11)
예수 그리스도는 집 맡은 아들이시므로 속죄제사 없이 들어가실 수 있다. (히 3:6)
3) 수많은 제물들
자기 권속을 위해 수송아지를 드림.
속죄물과 번제물을 위해 수송아지와 수양을 드림.
그 다음에 수 염소 한 마리를 잡아 그 피를 속죄소에서 백성들의 죄를 위해 7번 뿌렸다. 그리고 난 다음 대제사장은 아사셀 염소를 붙잡아 그 머리에 안수하고 백성들의 모든 죄를 거기에다 고백하여 전가하고 광야로 끌고 가서 버린다. 1년 후에 다시 이와 같은 예식을 또 하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가장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완전하고 좋은 제물로 오셔서 자신을 위해 제사를 드릴 필요 없이 단 한 차례의 희생 제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키셨고 또한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만족시키고 성취하실 수 있었다.
(히 9:12. 롬 8:3-4)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전에 승리의 말씀으로 “다 이루었다”고 외칠 수가 있었던 것이다(히 9:6-14)
◎ 다 이루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은 다 마치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이루어 놓으신 일 위에 더 이상 추가하실 것이 전혀 없다.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시는 길은 갈보리산상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대속의 사역을 떠나서는 도저히 다른 길을 발견할 수 없다. (고전 1:18, 24)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거부하는 것은 영원한 저주의 운명을 선택하는 것이다. (요 3:14-19. 요 5:24-29. 롬1:17-18)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은 것과 그 길과 진리와 생명의 동선을 따라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 성령을 통해 생명을 끊임없이 공급받을 수 있음을 감사한다. 할렐루야!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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