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계고교 졸업40주년을 맞아 고교3년의 추억을 찾아서ᆢ
우리들이 초계고교3년 졸업을 하고 교정을 떠난지 어언40년의
세월!!!사람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추억을 먹고산다는 이야기들이
있듯이 40년전 고교시절의 추억의 현장으로 들어가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것이 아닐런지요? 우리내 인생살이에서 수 많은 일들이 쌓여서 생이되고 지금의 모습으로 되었지만 지난60년 시간들중 가장 꿈많았던 청춘의 전성기가 고교시절이 아닐까요?물론 제각기 생각하는바 다를수는 충분히 있다고봅니다ㆍ그렇지만 고교3년의 추억을 우리들 초고26동기생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것이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고 봅니다ㆍ
1980년 격동의 시절 우리들은 시기적으로 사춘기의 반항아의 추억과 함께 중학교를 졸업하고 초계종합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게되었습니다 종합고등학교이니만큼 농과2반,축산과1반,상과1반,보통과2반 6개반으로 농촌하교이니만큼 골고루 진학을 하게되었는데 합천의 동부6개면에서 입학하게된 동기생들로 초계면,율곡면,청덕면,쌍책면,적중면,덕곡면에서 진학을 하게된 동기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일부는 대구등 도회지에서 적응이 어려운 자녀를 시골학교로 보낸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1학년을 못채우고 자퇴등으로 학교를 떠났지만 가끔은 그동기들도 그립네요ᆢ(차**외 등등ᆢ) 당시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새내기 1학년은 선배기수 2.3학년 선배님들의 엄격한 위계질서 속에 힘든 저학년을 보냈죠(칼같이 거수경레를 해야되고 복장불량으로 혼나는경우 많았음ᆢ)어느듯 시간이 지나 우리들이 선배기수가 되었을때도 똑같은 모습으로 후배들은 느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ㆍ(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그시절 고교생들의 모습중에 하나였음)
우리들이 고교입학으로 크게 달라진 풍경이 그 당시에는 교련과목이 있었고 교복과 교련복을 번갈아가면서 입고 등교가 가능했던것입니다ㆍ특히 학교마다 자랑스럽게 여겨던 교련사열을 교육청의 매년 검정을 하는 중요한 학교행사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ㆍ
교련샘으로 이상관(?) ㆍ김동택ㆍ김창린샘들이 많이 생각이나네요ᆢ
또한 매년 학교에서는 추수감사절 행사로 지역 특산물품평회도 잊을 수 없는 추억꺼리였죠? 이때 각지역별(초계ㆍ계남ㆍ쌍책ㆍ청덕ㆍ율곡ㆍ덕곡팀)팀을 나누어 축구ㆍ배구등 구기종목을 비롯한 육상ㆍ마라톤등을 하면서 열띤경쟁을 갖져던 기억도 납니다ㆍ마라톤에는 홍**친구가(실제 선수생활함)ᆢ 체육행사에서는 쌍책팀의 배구경기가 제일 돋보였던 기억이납니다ᆢ
뿐만아니라 우리들이 고교는 농촌지역에 위치하여 매번 농번기에는 부모님들의 농사일을 도와주도록 3~4일기간으로 학교등교
대신 일손돕기를 하였으며 가끔은 초계인근지역 모내기철에는 직접 농사일을 도와주고 새참으로 국수ㆍ막걸리등을 먹었던 추억도 있습니다ㆍ
어느듯 고교생활의 황금기였던 2학년 가을(10월마지믹주)날 갖게된 수학여행은(신흥관광 버스6대로 2박3일간 여행) 우리들에게 많은 추억꺼리를 만들어주었습니다(※수학여행 추억은 별도정리 참조)
고교시절의 추억를 생각하니 매주 조회를 운동장에서 갖었는데 그 또한 우리들의 학창시절 모습이었으며, 악대부(조**악단장이하)의 연주모습들ᆢ특히 3학년때에 오광대공연단이 실제로 재현하는 공연을 우리동기들이 주연이되어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고교시절의 추억여행을 하다보니 고교3학년 대학진학을 위한 학력고사를 진주에서 보았는데 시골 학교에서 진주시로 이동하여 1박을 하고 시험에 응시를 하였는데, 당시 우리들의 학창시절이 초계고의 최고의 전성기였다고 자부합니다ㆍ많은 동기들이 대학을 진학하게 되었으며 졸업후 사회의 각분야에서 열심히 살아오다보니 어언 "세번째스무살"(60세)을 맞은 나이가 되었고 올해가 교정을 떠나온지 40년째를 맞게되는 뜻깊은 시간입니다그립고 보고픈 친구들아!! 가끔은 40년전 초계고교시절 3년을 되돌아보는 추억여행은 어떠할런지요ᆢ두서없이 쓴글 끝까지 읽어주어 감사합니다ㆍ
- 2023년 7월 어느날 김정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