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듣기의 필요성과 중요성
♬ 우리도 전에는 부지런히 감탄하고 감동하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지요. 그때는우리 눈에 비치는 것들은 모두 매 순간이 새로웠고, 아주 단순한 일상적인 경험조차도 경이로웠습니다.
첫눈이 오면 창가에 모여 앉아 ‘어머! 눈이 오네, 어쩜! 우와! 많이도 오네, 어마! 눈은 왜 이렇게 오는 걸까.’ 온갖 감탄사를 다 동원해 가며 탄성을 질러댔습니다. 그러고도 벅차오르는 가슴을 주체할 길이 없어 밖으로 뛰쳐나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낙엽이 지나 딱 한 마디면 족합니다. ‘비가 오네, 눈이 오는군, 단풍 색깔이 참 곱구먼!'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들의 심장은 무디어져 가고, 새처럼 팔딱거리던 생명력은 조금씩 사그라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나이가 들고 늙어서 감탄하지않는 게 아니라, 감탄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늙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것을 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재상영하는 흑백영화를 보는 것처럼 도무지 새롭지 않고 전혀 신선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삶에 남은 것은 세상사에 대한 우울한 한탄과 결기(結己) 맺힌 비난과 막연한 분노뿐입니다.
사람에게는 본능적으로 감탄의 욕구가 있다고 하지요. 태어나 자라면서 자신을향해 끝없이 감탄해 주던 엄마로 인해 아이들은 점차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해 간다는 것입니다. 감탄을 잃어버리면 정신이 무너지고 감정이 메말라 버립니다. 감탄이 없는 삶은 자신을 스스로 식물로 전락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삶이라는강물 위를 나무토막처럼 하릴없이 떠내려가도록 방치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지나치게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은 별로 감탄하지 않습니다. 감탄은 머리에서나오는 게 아니라 가슴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이로운 순간에 맞닥뜨렸을 때, 아무런 감정의 여과장치를 거치지 않고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느낌, 벅찬 감동으로 인해 내 안의 영혼이 꿈틀하며 순간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 삶이 일순간 그 신비한 창문을 열어 푸른 하늘을 보여 주는 것, 그것이 신이 인간에게 부여해 준 감탄이라는 선물입니다.
삶의 무거움을 이기려면 잃어버린 감탄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방구석에서 침울하고 저조한 기분으로 지내려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창조주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우주 만물을 우리가 바라보며 감탄해 주기를 원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도 감탄하지 않는 것은 자연에 대한 도리가 아니지요. 우리가 삶에서 감탄을 되찾을 때, 잃어버린 삶의 의욕도 꿈틀거리며 되살아날 것입니다.
나날이 발전해 가는 기계문명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감동시켜 주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 사소한 것에도 스스로 감탄해 보려는 의지는 점점 약해져 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두꺼운 생존의 갑옷으로 무장하고 살아가는 이 시대에, 감탄만이 마음과 정신의 두꺼운 껍질을 뚫고 마음 깊숙이 파묻혀 있는 인간 본연의 따뜻한 감성을 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될 수 있는 대로 많이 감탄하라. 많은 사람이 충분히 감탄하고 있지 못하니까.’
미술이나 음악, 그 밖의 모든 훌륭한 예술 작품도 따지고 보면 감탄할 줄 아는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감탄이나 감동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켜 영혼의 긴장을 풀어주고 모든 영감이 깨어나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즐겨 감탄하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또한 감탄함으로써 사람은 더욱더 아름다워집니다. 감탄사는 마음의 윤활유가 되어 딱딱하게 굳어진 인간의 마음을 녹여주고 표정도 부드럽게 만들어 줍니다. 감탄하는 사람들에게 생명력이 느껴지고 매력이 넘쳐납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시를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그림을 감상하고 자연을 보면서 삶의 감동을 되찾아 감탄사를 연발하는 사람이 되도록 애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