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4:9~20 무익한 우상 숭배 2023.11.15.
사람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모든 동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권세도 받았습니다. 존재 자체가 우월한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후에는 우월함이 많이 손상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거듭나면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인도받으면 하나님과 영으로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바로 알고 바로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자기를 하나님이 설계하신 대로 바로 아는 사람이 적습니다. 성령께서 알게 하셔야 합니다.
특별함이 무너지는 것은 쉽습니다. 타락된 후에는 그냥 세상에서 강한 자가 되는 정도로의 힘만 자랑하는 자가 많이 생겼습니다. 그런 것들은 다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영웅이 있었고 많은 사람을 죽이고 세력을 얻었지만, 그들은 이름만 남기고 그냥 죽었습니다. 영원히 사는 생명을 얻지 못한 삶은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위해 예비한 가장 큰 선물은 아들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을 부활의 생명 구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사람은 우매하게 되어 자기 손으로 만든 우상을 신처럼 받들어서 하나님의 창조의 영광을 훼손하는 죄를 더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상은 무익한 것입니다.
1. 우상을 만들고 섬기는 자들은 다 허망하게 됩니다.
1)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신처럼 받들게 된 것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허망한 것을 섬기면서 의미를 두는 것이 그들의 행사를 그럴듯하게 하는 것입니다. 대구에서 신천지가 십만 명이 모인다고 합니다. 많이 모여서 행사를 하면 대단한 존재가 되는 줄로 아는 것입니다. 물론 모이지 못하는 교회와 비교하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생명이 없는 사람이 많이 모여도 그것은 죽은 자의 모임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 가운데에 생명을 주시는 예수가 함께 하셔야 의미가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두 세사람이 모인 곳에 주님은 함께 하십니다.
2) 우상을 숭배하면서 의식을 거창하게 하고 의미를 부여해서 절하지 않거나 섬기지 않으면 죽이는 것으로 의미가 크게 보이지만 그것은 허망한 것입니다.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황금 우상을 시날 평야에 세워놓고 악기를 연주할 때 절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왕의 명령이 무서울 정도로 지엄한 것을 알고도 절하지 않았습니다. 고발을 당하고 왕이 새로 기회를 주었을 때도 분명하게 절하지 않겠다고 공표했습니다. 그로 인해 평소보다 칠 배나 뜨거운 풀무불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지켜주심으로 우상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큰 능력을 보여주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느브갓네살과 바벨론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3) 우리는 세상에 수많은 우상은 그 시대의 문화를 보여줄 수는 있지만 오래 되었든지 또는 크게 만들었든지 또는 귀한 보석으로 만들어도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분해해서 팔면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정도인 것입니다. 국가적으로는 그런 것을 보물로 지정할 수 있지만 그것은 문화재로서의 가치일 뿐입니다.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섬기는 것은 다함께 망하게 되는 행동입니다. 무익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동조하는 자는 다 헛된 것입니다. 국가를 위기로 몰아가면서도 자기들이 할 일을 많이 했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하는 일과 같은 것입니다. 잘못된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상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만들고 섬길수록 하나님의 진노 아래 사는 세상이 되게 만들 뿐입니다.
2. 하나님은 우상을 만들고 섬기는 자들의 행동으로 헛된 것을 증명하셨습니다.
1) 사람의 손으로 정교하게 다듬어서 좋은 모양을 갖추어서 감상할 대상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은 근본적으로 아무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같은 나무로 음식을 만들고 같은 것으로 우상을 만들므로 같은 재로인 것입니다. 사람의 혼을 집어넣는다는 말을 하지만 그것은 생명이 아닙니다. 장인 정신이 들어가도 생명은 없습니다. 생각하고 말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을 보고 원하고 빌어봐도 자기 마음에 오는 대답은 자기의 바램일 뿐인 것입니다. 자기속에서 일어나는 욕심이나 원하는 것은 항상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2) 우리가 참 하나님을 만나서 그 은혜를 누릴 때에 세상에서 구별함을 받은 놀라운 사실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고 기도해서 응답받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서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을 하고 그 은혜와 응답을 받아서 누리게 될 때 우리는 세상보다 강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허망한 것을 섬기고 헛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망하게 하는 폭력과 전쟁과 힘으로 밀어붙이는 사람들은 같은 종류의 사람들입니다. 우상은 아무 힘이 없으니 그것을 숭배하는 사람이 자신이 가진 힘으로 세상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고 합니다. 그들은 진리가 없으니 힘 있으면 자기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그 말씀대로 다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구원의 사역을 십자가로 완성하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것은 완성된 구원의 사역인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세상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는 죄와 사망의 종이 되어 운명처럼 다가오는 시련과 문제에 잡혀 끌려갈 필요가 없습니다.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이겨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대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아멘
3. 하나님을 멀리하면 허망한 것을 두려워하면서 살게 됩니다.
1) 믿음의 조상들을 보면 처음에는 세상을 두려워하면서 살았습니다.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가기도 하고 아름다운 아내 때문에 죽을까 봐 아내를 누이로 속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였던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되면 될수록 담대한 믿음으로 소유하였습니다. 백 세에 낳은 아들을 모리아 산에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실 때에도 정말 아들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번제로 드려도 다시 살려내실 줄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약속을 이어갈 아들이니까 당연히 살리실 것을 믿으니 두렵지만 말씀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2) 우리는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런 것들에게 잡혀서 살아가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복음을 전해서 구원받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허망한 것을 의지해서 삽니다. 그게 비록 만든 것은 아닐지라도 자기를 의지하는 것도 우상입니다. 우리 인간은 구원받아야 하는 존재이지 구원받지 않아도 되는 완전한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 문제도 없다고 스스로 안심시키면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자기도 제대로 알아갈 수 있습니다.
3) 우상과 같이 허망한 것은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문화와 인간이 만든 가치가 허망하게 만들기 쉽습니다. 동물을 사람처럼 여기는 행위라든지 인간이 만든 제도와 권리를 하나님이 만든 것과 같이 여기는 것도 우상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그런 것들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면서도 그러려니 하게 됩니다. 진리를 모르니 우상이나 문화가 이끄는 대로 살아가면서 그게 전통이니 또는 가문의 일처럼 여기면서 사는 것입니다. 함께 망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