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그 아이를 처음 만난건 고등학교 때였다.
나보다 한 살 어렸던 그 아이는 동아리 후배였고 순진하게 생긴 얼굴에 유난히 수줍음을 많이 타던 아이였다.
동아리 모임을 할 때도 항상 구석에 가만히 앉아 얘기를 듣기만 하는 편이었고 나 또한 붙임성이 있는 편은
아니었기에 그 아이와는 많은 대화를 나누어 보지 못했다.
다 같이 있을땐 같이 웃고 떠들면서 친하게 지냈지만 둘만 있으면 약간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그 정도 사이였다.
전화나 문자로 사적인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도 아니었기에 고등학교에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고나서
자연스럽게 나는 그 아이에 대해 잊어버렸다. 대학에 들어간지도 어느새 1년이 지났고 다시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자취를 하던 나는 방학기간 동안 집에 올라와 있었고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고등학교 친구들과
자주 만나서 술을 마셨다. 어느 날 집에서 쉬고있는데 전화가 왔다. 고등학교 동아리 친구였다.
동아리 친구들과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으니 나오라는 전화였다.
술집에 도착하니 이미 술자리가 한창이었다. 거기서 그 아이를 다시 만났다. 예전에 봤던 모습과는 조금
달라진 모습이었다. 내 기억속의 수줍음 많고 어린애처럼 보이던 그 아이도 이제는 대학생이 되어
화장도 하고 제법 여성스러운 분위기까지 풍기고 있었다. 그 아이 옆자리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취기때문인지 아니면 성격이 변한건지 예전과는 달리 먼저 이런저런 얘기를 꺼내며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술자리가 한참 무르익어 가고 있을때 쯤 그 아이는 술기운이 올라오는지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은은하게 풍기는 샴푸냄새에 나는 조금씩 가슴이 설레이기 시작했다.
술자리가 끝나고 2차로 노래방에 가기위해 친구들과 술집을 나섰다. 하지만 이미 그 아이는 술기운이
올라오는 듯 비틀거리고 있었다. 상태가 안좋아보여 먼저 집으로 들어가라고 얘기해봐도 막무가내였다.
하는 수 없이 그 아이를 부축해 노래방에 도착했고 노래방에 도착해 쇼파 한 구석에 그 아이를 눕혔고
피곤했는지 눕자마자 잠이 든 그 아이를 두고 우리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시간 정도 지났을까 잠이 깼는지 그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냐는 우리의 말에 묵묵부답으로
앉아있던 그 아이는 갑자기 노래방 리모콘을 잡고 노래를 찾기 시작했다. 이제 좀 괜찮은가 싶어 우리는
다시 노래에 집중했다.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던 그 아이가 마이크를 잡았다.
소찬휘의 'tears'였다. 그리곤 열창하기 시작했다.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우리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그 아이의 끼에 감탄하며 열심히 흥을 돋구기 시작했다. 노래는 이제 절정으로 치닫기
시작했고 이제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지독했던~ 사랑까지~ 모두~ 지워버려으주어어어어어우에에엑우워어어꾸어엌'
끔찍한 장면이었다. 마지막 클라이막스의 고음을 끌어올리려던 그 아이는 그만 끌어올려서는 안 될 것마저
끌어올리고 말았다. 그 광경은 엑소시스트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우리는 당황했고
허둥지둥대는 사이에도 그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오늘 자기가 뭘 먹었는지 확인하려는 의지가 대단한 것
같았다. 마치 활화산 같았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광경에 우리는 망연자실 했지만
그 아이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다시 자리에 드러누워 잠이 들었다.
우리가 그 자리를 수습하는 동안에도 그 아이는 갓난아이와 같은 천진난만한 얼굴이었다.
자리를 다 치웠지만 그때까지 그 아이는 깨어나지 않았다. 한참을 이름을 부르고 몸을 흔들어
겨우 그 아이를 깨웠지만 이미 인사불성 이었다. 도저히 혼자서 집에 보낼 상태가 아니었고
이제 남은건 누가 이아이를 집까지 데려가느냐 였다. 그리고 나는 가는 방향이 같다는 이유로
이 인간인지 떡인지 모를 생명체를 집까지 무사히 배달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떠안게 되었다.
거의 바닥에 질질 끌고가다시피 겨우 그 아이를 택시정류장까지 데려와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
이 아이의 정확한 집주소를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뒤늦게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봤지만
아무도 이 아이의 정확한 집주소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아이를 붙잡고 집이 어디냐고
아무리 물어봐도 한국말인지 외계어인지 알 수 없는 말만 중얼거릴 뿐이었다.
부모님께 연락을 해야 할 것 같아 핸드폰을 찾아봤지만 망할 해드폰은 잠겨있었다.
일단 택시를 타고 무작정 그 아이가 사는 동네로 향했다. 그리고 그애를 업고 무작정 동네를 헤매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동네를 헤매고 있는 사이 뒤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 아이를 내려놓을 새도 없이 2차 폭발이 일어났다. 등뒤에서 느껴지는 축축한 느낌이
날 미치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 아이는 내 등에 선명하게 세계지도를 그려 놓았다.
참담한 마음과 노래방에서 그렇게 게워내고도 아직도 게워낼게 이렇게 많이 있다는 사실에 신기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일단 길거리 한 구석에 그애를 내려놓고 등에 묻은 잔해들을 털어내고 있는 사이 고개를 든 그 아이는
배시시 웃으며 내게 말했다.
"오퐈. 나 좀 취한거 같아요."
좀? 조금이라고? 많이 취하면 내장까지 쏟아낼 기세였다.
다시 그 아이를 업고 동네를 헤매기 시작했다. 날씨가 꽤 쌀쌀한데도 불구하고 이미 옷은 땀으로 흥건했다.
그냥 어디 파출소 같은데다 버리고 갈까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이 그 아이의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에 찍혀있는 '엄마' 두 글자에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드디어 이 고난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행여나 끊어질까 잽싸게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심상치 않았다.
그럴만도 한것이 밤 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딸이 걱정되어 전화를 했더니 왠 남정네가
그것도 헐떡거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면 아마 이세상 모든 부모가 그럴 것이다.
그렇게 겨우 집을 찾아 배달을 완수했지만 내 여정은 끝이 아니었다.
정신줄을 놓은 딸자식의 모습에 분노한 아버지와 한참동안의 면담을 가져야만 했다.
이미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있는 상태에서 불신의 눈으로 날 보는 후배 아버지와의 대화는 참으로
괴로운 것이었다. 애가 저지경이 될정도로 술을 먹이면 어떻게 하냐는 아버님의 역정에 나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한잔도 권한적이 없었다. 우리아이가 저런아이가 아닌데 도대체 어떻게 된거냐는
말에 아버님 딸자식이 노래방에서 환상의 분수쇼를 하는 아이라는건 알고 계십니까?
되새김질 하는걸 보니 방이 아니라 외양간을 준비해야 될 것 같던데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아야만 했다.
딸자식 가진 부모가 걱정되서 하는 말이니 너무 마음쓰지 말라고 데리고 오느라 고생 많이 했다는
어머님의 말에 기분이 어느정도 풀어지긴 했지만 개운치가 않았다.
다음 날 그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어제 일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과 데리고 와줘서 고맙다는 말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그 후배와 친해지게 되었고 그 이후 술을 몇 번 마시면서 알게된 사실은
그날 있었던 일은 애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2
그렇게 고생끝에 그 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그 이후 우리는 조금 친해졌다.
둘이 따로 만난적은 없지만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가끔씩 얼굴을 비치기 시작하더니 어느순간부터는
같이 술마시는 고정 멤버가 되어 버렸다. 여리여리한 외모와 지금까지 봐왔던 모습때문에
그저 조용한 성격인줄 알았던 그 아이는 친해지고 보니 상당히 활발한 성격이었다.
몇 번의 술자리를 통해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아이는 도저히 종잡을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술마시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남들보다 잘 마시는 편이었다. 특히 대학에 들어가고나서 부터는
거의 매일을 술로 지새다시피 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과 술을 마셔봤지만 이런사람은 처음봤다.
어떤 날은 술을 한잔만 마셔도 취해버렸고 또 어떤날은 멀쩡한 얼굴로 소주 두병을 비우기도 했다.
하지만 공통점은 높은 확률로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다는 것이었다. 한 잔을 마셔도 두 병을 마셔도
취하는 정도가 똑같은 것 같았다. 그리고 술에 취하면 온갖 해괴망측한 주사들을 볼 수 있었다.
난 마시기 싫다는 사람에게 술을 권하지도 또 더 마시겠다는 사람을 만류하지도 않는 편이었고
온갖 희안한 주사를 부리는 사람들도 여럿 만나봤지만 이 아이만큼은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동아리 친구들과 엠티를 갔을 때였다. 한적한 시골마을로 내려가 신나게 놀다가 밤이 깊었고 민박집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한참을 술을 먹는데 이 아이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본능적로
아.. 이건 뿜어낸다 라는 직감에 다급히 창문! 창문! 을 외쳤다. 다급히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
그 아이는 창문을 열기가 무섭게 또 한번 위장속의 내용물들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충망을
열 정신까지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방충망에 얼굴을 박고 오바이트를 하기 시작했고 방충망
사이사이에 끼인 라면면발을 본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2차피해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한번
민박집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자리를 정리하는 사이 이아이는 화장실로 향했다. 자리를 다 치우고 다시
술을 먹기 시작하는데 차가운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바닥이 물바다였다. 이게 왠일인가 싶어
주변을 살펴보니 화장실 문틈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화장실 문을 열어보니 그 아이가 물을 틀어놓고
화장실 바닥에 뻗어서 자고 있었다. 등으로 배수구를 막아 차오른 물이 방안까지 흘러내린 것이었다.
뭐지 얘는?.. 데어데블인가? 저런 상황에서 편하게 잘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피곤하다고 하던지 고개를 숙이고 잠이 든것처럼 보이는 것이 그 신호였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면 그때부터가 파티타임이었다.
술에 취해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는 날도 있었고 옆에 있는 사람을 깨물거나 때리기도 했으며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거나 길바닥에 주저앉아 버리는 일도 허다했다. 말 그대로 주사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아이였다. 일관적인 술버릇이 하나 있다면 오바이트였다. 어떤 주사를 부리던 간에 항상 오바이트를
동반했다. 그 아이와 오바이트와의 관계는 대형마트의 1+1 행사상품과 같은 관계였으며 자주가던
일식 돈까스집의 오늘의 메뉴세트에 딸려있는 미니우동같은 관계였다. 메인메뉴가 바뀌어도 항상 따라오는
미니우동처럼 볼 때마다 새로운 주사를 선보였지만 오바이트만은 한결같았다.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그렇게 인사불성이 되어있다가도 갑자기 제정신이 돌아오는 순간이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치매환자가 임종 직전에 잠시 제정신으로 돌아오듯이 어느순간 잠시 멀쩡하게 변하는 순간이 있었다.
문제는 취해버린 그 아이를 데려다 주는 건 항상 나의 몫이었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숱하게 많은 옷들이 그 아이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그 아이 집에 하도 얼굴을 비치다보니 이제는
그 아이 부모님도 익숙해져 버렸다. 나 역시 이제는 날 노려보는 아버님을 봐도 아버님 방가방가를 외치며
집안에 들어갈 수 있을정도로 이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날 항상 딸년택배기사라 부르며 이런건 뭐하러 데려
오냐며 다음부터는 그냥 길바닥에 버리고 오라는 어머님의 말에 그럼 한 번 데려올때마다 참잘했어요
도장이라도 한장 찍어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항상 이 정신나간년을 외치며 그 아이에게 등짝스매싱을
날리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고 나오는게 나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한번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도대체 얘는 왜 이러는건가에 대한 심각한 토론을 나눈적이 있었다.
친구들은 그 아이가 혹시 너에게 호감이 있는건 아닐까 라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내 생각은 글쎄 였다.
저그도 아니고 세상천지에 어떤 미친사람이 오바이트로 호감을 포함한단 말인가.
그리고 첫 만남에서 느꼈던 작은 설레임조차 이제는 많이 사라져버린 후였다. 그 아이가 첫 만남에서
자신의 속을 너무 털어놓은 탓이었다. 물론 마음속이 아닌 몸속이었다.
다음 날 혼자 곰곰히 생각을 해 보았다. 과연 친구들의 말이 사실일까. 이게 요즘 흔히 말하는
그린라이트라는 상황일까. 아니었다. 이건 그린라이트가 아니라 그 아이의 내장기관이 보내는
레드라이트가 분명했다. 다음번에 만나면 꼭 내과에서 초음파라도 한번 받아보라고 권유할 것을 다짐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그 아이였다.
오늘 보자는 전화였다. 마침 다른 약속도 없어서 만나기로 했다. 그 아이 알바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만나기로
하고 시간에 맞춰 나가려는데 다시 그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갑자기 회식이 잡혀 약속시간을 좀 미루자는 것이었다.
알았다고 했지만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약속시간에 맞춰 만나기로 한 부평역으로 나가 그 아이를 기다렸지만
삼십분이 지나도 한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전화를 해봐도 받지를 않았고 기다림에 지쳐 그냥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 쯤 전화가 왔다. 술을 마신 모양이었다. 지금 어디냐고 물어봐도 모르겠다며 이곳은 너무 어둡다며
서럽게 울고 있을 뿐이었다. 전화를 끊고 일단 근처를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헤매고 있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다시 멀쩡해진 목소리였다. 또 잠깐 제정신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도대체 지금 어디냐고 이제 지하철에서 내렸다며
부평역 역사에서 만나자는 말에 다시 역사로 돌아갔다. 역사 앞에서 잠깐 기다리니 계단 위로 그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날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며 계단을 내려오던 그 아이는 그만 그대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으며 계단에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반은 엉덩이로 반은 온몸으로 굴러서 마침내 계단 밑으로 도착해 그대로 대자로 뻗어버렸다.
액션영화에서나 볼법한 모습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그 아이의 모습은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을 모두 붙잡았고
나는 대자로 뻗어버린 그 아이를 보며 혹시 얘가 죽은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내 걱정과는
달리 벌떡 일어난 그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다가왔다. 혹시 어디 다친데는 없나 이곳저곳을 둘러봤지만
놀랍게도 그 아이는 멀쩡했다. 바람만 불어도 훅 날아갈것 같이 생긴 외모완 달리 몸은 튼튼한 편인것 같았다.
외모는 내수용인데 내구성은 수출용이었다. 상태를 살펴보니 다시 인사불성의 만취상태였다.
얘를 데리고 도저히 뭘 할수가 없다는 생각에 그냥 집으로 데려가기고 결정했다. 동네에 도착해 그 아이 집으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술좀 깨고 가자며 나를 끌고 놀이터로 향했다. 벤치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일어난 그 아이는
혼자 놀이터의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워하기 시작했다. 웃으며 그네를 타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며 문득 귀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술집에서 만났을 때의 설레임이 조금씩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앉아있는 나에게 그네를 밀어달라고 하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그네를 밀어주기 시작했다.
한참 그네를 밀어주고 있는데 목덜미로 뭔가 투둑투둑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뭐지? 비가오나? 라고 생각하며
하늘을 봤고 난 알 수 있었다. 오늘 회식은 부대찌개 였구나.
그네를 탄 채로 그 아이는 뿜어내고 있었다. 그 아이의 토사물이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밤하늘을 은하수처럼
수놓고 있었다. 5분전까지 느꼈던 설레임이 언제 그랬냐는 듯 쏙 들어갔다.
개강을 하고 학교로 내려가면서 그 아이를 만날 기회는 줄어들었지만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그 아이의 위장은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어느덧 결혼까지 해 한 딸의 어머니가 되어
있는 그 아이를 가끔 만날떄마다 나는 항상 같은 얘기를 한다. 너도 한 번 니 딸한테 똑같이 당해보라고.
그럴때마다 그 아이는 농담하지 말라며 웃는다.
농담아니다. 너도 그 은하수를 너의 두 눈으로 직접 봐야지.
3
군입대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맞이하는 방학이었다. 입대를 석달정도 남기고 그날도 친구들과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물론 그 아이 역시 우리와 술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술을 마시다 그 아이를 살펴보니 얼굴이 빨개지고 동공이 서서히 풀려가는게 취기가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가 날 보는 시선이 느껴져 옆을 보니 그 아이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냐고 묻자 그 아이는 내 이마의 상처에 대해 물었다.
내 이마에는 어렸을적 다쳐서 꿰맨 상처가 하나 있다. 그렇게 큰 상처는 아니었고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나 상처도 거의 아물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는 상처지만
내가 고3때 한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이 상처에 대해 묻는 사람이 늘어났다.
갑작스러운 그 아이의 질문에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이건 비밀인데 이 상처는 내가 어렸을 적 이름을 말해서는 안되는 자에게 당한 상처란다.
지금도 비가오면 그때 당한 상처가 욱씬거리지. 우수에 젖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그때를 회상하는 듯한 내 모습에 그 아이는 연신 진짜요? 진짜요? 라고 되물었다.
반응을 보니 이미 절반정도는 취한 상태였다.
지금까지 너에게 숨겼지만 사실 나는 마법학과에 재학중이며 요번학기 마법방어술 성적이
좋지 않아 걱정이란다. 그리고 니 앞에 앉아있는 부엉이를 닮은 저 오빠는 마법을 써서
사람으로 변신한 내 애완부엉이이며 석달 후 사단 쿼디치병으로 입대하게 되었다는 말을
할때 쯤 그 아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잠이 든 모양이었다.
다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집에서의 갑작스러운 호출로 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야했다.
저 아이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기에 사실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그 동안 그 아이를 바래다주며 내가 당했던 고통들을 친구들도 느끼게
해주기 위해 먼저간다는 인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그 아이를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잠에서 깬 그 아이가 내 팔을 덥썩 물었다. 깜짝놀라 소리지를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뒤늦게 고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어찌나 꽉 물고 있는지 팔을 아무리 흔들어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격렬한 고통에 나도 모르게 이 미천한 머글년이! 라고 소리를 지를 뻔 했다.
그렇게 한참동안 내 팔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나서야 내 팔을 놓아줬지만 이미 내 팔에는 선명한
이빨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악마는 다시 깨어났고 이제는 도망갈 차례였다. 오빠 어디가요? 라는 그애의 말에 부평역 9와 3/4 승강장
으로 간다는 말만 남기고 도망치듯 집으로 향했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친구에게서 수십통의 전화가 와 있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해 어제 잘 들어갔냐고 물어보니 한참동안 대답이 없었다.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는 친구의 말에
집을 나섰다. 하룻밤 만에 급격하게 초췌해진 친구의 얼굴을 보니 대충 어떤상황이 일어났는지 짐작이 갔다.
친구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내가 자리를 비우고 친구들은 술을 더 마시다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고 한다. 문화의 거리를 지나가고 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멀쩡해 보이던 그 아이가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아 훌쩍거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황한 친구가
일으켜세우려 했지만 친구의 얼굴을 보고는 급기야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부엉이 오빠
불쌍해서 어떡해 목이 막 이렇게 이렇게 돌아가잖아 라며 울면서 친구 목을 잡고 흔들었고 힘이 어찌나 좋은지
스티븐 시걸이 목을 잡고 흔드는 기분이 들었다며 친구는 아직도 목이 쑤신다고 했다.
토는 안하디? 라는 내 말에 친구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우는걸 겨우 달래서 데리고 가는데 문화의 거리 분수대에서
쌍분수를 만들고 뻗어버렸다고 한다. 몇 몇 건더기는 자기 손으로 직접 건져냈다며 울먹거리는 친구의 얼굴을 보니
괜시리 마음이 짠해졌다. 나야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하지만 아마 그 광경을 처음 본 친구는 적지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특히나 마음이 여린 그 친구는 이제는 사람이 두렵다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에
시달리는 상이군인을 보는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만약 어제 집에서 전화가 오지 않았다면 이라는 생각을 하자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부모님께 효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4 술만 마시면 취하는 여자후배. 특별편.
나에겐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여자 후배가 하나 있다. 이름은 도혜정(가명).
같이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얼굴을 알게 되었고 고등학교 시절엔 그리 친하게 지내진 않았지만 졸업 후 우연히 함께 술자리를 하면서부터
우리는 친해졌다. 그렇게 함께 어울리면서 학생시절엔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혜정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생각보다 말이 많았으며
생각한 것 보다 훨씬 주사가 심했다.
그리고 항상 술에 취하면 토를 했다.
처음 같이 술을 마시던 날.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혜정이를 집까지 데려다 준 이후로 항상 뒷감당은 나의 몫이었다.
혜정이를 집에 데려다주면서 혜정이 부모님을 처음 뵈었고 어느샌가 부모님들과도 안면을 트게 되었다.
어느순간부터 혜정이 부모님들도 내가 술취한 혜정이를 데려다주는걸 자연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혜정이네 부모님은 딸을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키우시는 분들이었다. 비록 아버지는 그렇게 술을 마시고 취해서 들어오는걸
못마땅하게 여기셨지만 다른 아버지들처럼 아예 외출을 금지시킨다던지 술을 못마시게 한다는 일은 없었다.
다만 나에게 얘가 혹시 술먹고 실수라도 할지 모르니 니가 꼭 붙어서 지켜보고 집에 갈때도 같이 데려오라고 신신당부 하셨다.
이미 저지른 실수들만 글로 적어도 팔만대장경은 족히 나올정도였지만 나는 그저 내가 잘 보살필테니 걱정마시라는 말밖엔 드릴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내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분위기가 한창 달아오를때쯤이면 혜정이는 뻗어버리기 일쑤였고 그러면 나는 혜정이를 집에 데려다 주고 다시 술집으로 돌아오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럴때마다 친구들은 굳이 니가 데려다줄 필요가 있냐며 혹시 너 쟤 좋아하는거 아니냐며 넘겨짚고는 했다. 사실 그런 모습을 보고 나와 혜정이 사이에 핑크빛 기류가 흐른다며 우리 둘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친구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핑크빛은 개뿔 우리 둘 사이에 흐르는 것은 난기류였다. 지독한 난기류.
내가 혜정이를 이렇게 챙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너는 못생겼으니 남들보다 친절하기라도 해야 여자를 만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는 부모님의 말씀이었다.
또 하나는 지금 혜정이가 이지경이 된 데에 어느정도 책임을 통감하기 때문이었다.
가끔 혜정이를 집에 데려다 주고 혜정이 부모님들과 얘기를 나눌때면 항상 듣는 말이 있었다. 분명 지금까지 이런적이 없는데
갑자기 얘가 뭐에 홀렸는지 술만 마시면 인사불성이 된 다는 말이었다. 자세히 듣다보니 그 시기가 나와 처음 술을 마신 시기와
맞물려 떨어졌다. 나는 술을 빨리 마시는 편이다. 남들에게 막 마시라고 권하진 않지만 혼자서 홀짝홀짝 잘 마시는 편이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친구들도 술을 빨리 마시게 되었다. 이런 내 페이스에 맞추다보니 혜정이도 평소 마시는 속도보다
빠르게 술을 마시는 일이 많았고 그러다보니 갑자기 훅 취하게 되는 일이 생기게 되는 거였다.
마지막으로 다른 친구들에겐 말할수 없는 비밀이 하나 있었다.
같은 동네에 살던 혜정이와 나는 가끔 둘이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어느 날 둘이서 술을 마시는데 그날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결국 그날 나도 술에 취해버렸다. 어찌저찌해 겨우 혜정이를 집까지 데려다 주는덴 성공했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대문 앞을 나서자마자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 잠들어버렸고 아침에 깨어나보니 혜정이네 집이었다.
집에 들어오시던 아버지가 집 앞에서 자고있는 나를 발견하고 집까지 끌고 들어가서 재운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부끄러움에 도망치듯이 그 집을 빠져나왔고 그 이후로 혜정이 부모님의 충실한 노예가 되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혜정이의 보호자아닌 보호자 역할을 해야만 했다. 항상 술을 마실때면 제발 취하지 말고 천천히 마시라고
얘기했지만 그때 뿐이었다. 이미 나의 속도에 적응이 되어버린 혜정이는 그저 달릴뿐이었다.
큰 오바이트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나의 충고도 소용이 없었다. 아마 내가 죽어야만 정신을 차릴 모양이었다.
언젠가부터 내 좌우명은 토사구팽. 토하는 사람은 구냥 버리고 간다. 가 되어버렸고 혜정이에게 너 진짜 그냥 버리고 간다. 라고 했지만 차마 그럴수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오빠."
"왜?"
"나 이제부터 금요일엔 금주할래."
"퍽이나. 토요일엔 토하고?"
"아냐 진짜야."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금요일날 학과 스터디모임에 나가기로 했다는 혜정이는 진짜로 그때부터 금요일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스터디모임에서 만난 과선배와 사귀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은 내가 해방됐다는 이야기와 같은 뜻이었다. 그 후로 나는 한동안 자유로운 음주라이프를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혜정이와 술을 마시는 일이 점점 뜸해졌다. 얼마 후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을때였다. 핸드폰이 울렸다. 혜정이 어머님이었다.
"어머니 웬일이에요?"
"응.다른게 아니고 너 혜정이랑 같이 있니?"
"아뇨? 저 친구들이랑 있는데요. 왜요 무슨일 있어요?"
"아니 이 기집애가 전화를 안받네. 들어올 생각도 안하고."
"그래요? 또 술먹는거 아니에요?"
"아무래도 그런거 같네. 너 집근처니? 좀 찾아봐줄래?"
"엄니 저 친구들이랑 있어요. 걔가 애도 아니고 잘 들어가겠죠. 걱정 마세요."
"그래? 그렇겠지? 그래 뭐 잘 들어올거야. 아니면 그냥 길바닥에서 자빠져 자겠지 뭐. 누구네집 아들래미는 입돌아갈까봐
집까지 낑낑대면서 끌고와 재워줬는데 우리 딸래미야 뭐 그냥 입 돌아가라고 하지 뭐."
"... 산채로 데려갈까요? 죽여서 끌고갈까요?"
결국 난 또 혜정이를 찾아 나섰다. 어디에 있는지는 대충 감이 왔다. 어차피 평소에도 동네를 벗어나는 일이 별로 없어
우리가 가는 곳은 한정적이었다. 우리가 자주가던 술집으로 향하니 아니나 다를까 거기엔 혜정이가 있었다.
과 친구들은지 모르는 여자들이랑 술을 마시고 있었고 얼굴을 보아하니 이미 될대로 된 얼굴이었다.
"야 너 뭐하냐? 엄니 전화도 안받고?"
이미 취할대로 취해 횡설수설하는 혜정이를 두고 친구들에게 무슨일이지 물어봤다.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짧았던 평화도 그 종말을 맞았다는걸 직감할 수 있었다.
혜정이는 날 보고 꼬부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야 이새퀴야. 니가 뭔데 바람을 펴? 니가 뭔데?"
나는 당황했다. 졸지에 바람핀 남자친구가 되어버린 나에게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어머어머 바람을? 저얼굴로? 돈이 진짜많은가봐. 라고 수근거리는게 들리는 듯 했다. 당황한 나는 혜정이를 끌고 나와
집으로 향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혜정이를 업고 집으로 향하고 있으니 처음 혜정이와 술을 마신 그날밤이 떠올랐다.
그리고 설마 또? 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예전 그날밤처럼 혜정이는 또 내 등에 세계지도를 그렸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집으로 향하다 잠깐 놀이터에 앉아 쉬기로 했다. 혜정이를 벤치에 대충 던져놓고 숨을 돌리고 있는데
혜정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생긴건 멀쩡하게 생겨서 도대체 왜 이러는걸까. 라고 생각하며 빤히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동안 품고지냈던 나쁜생각이 떠올랐다.
나도 한창 피가 끓을 나이였었고 무방비 상태에 있는 여자아이의 얼굴을보니 그동안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참고있었던
본능이 꿈틀대는게 느껴졌다. 사실 그런 못된생각을한게 처음은 아니었다. 마침 주변에 인적도 드물었다.
확 저질러 버릴까 라는 생각에 나는 갈등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술에취해서 기억하지 못할수도 있었고 서로 합의하에
벌어진 일이라고 둘러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성의 승리였다. 결국 끓어오르는 본능을 억제해내고 나는 다시 혜정이를
들쳐업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며 나는 그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못하고 할 수도 없었던 내 못된 생각을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 아 진짜 존나 쎄게 한대만 때리고 싶다.."
집에 도착해 혜정이를 내려놓고 다시 돌아가려는데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자꾸 고생시켜서 미안하다며 술을 한잔 사시겠다는 거였다.
그날 나는 혜정이 아버지와 술을 마셨고 아버지의 등을 두드려드리면서 혜정이의 술버릇은 유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뜻 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혜정이가 그날 일때문에 미안하다며 밥을 산다고 했다. 약속장소로 나가니 새로운 얼굴들이 보였다. 저번에 술집에서 봤던
그 여자들이었다. 자기 친구들이라며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해주고 우리는 그날 함께 어울렸다. 친구들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술을 적당히 마셔 취하지도 토하지도 않는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 날 이후 우리는 자주 만났고 제법 친해졌다.
그리고 우리는 날을 잡아 내 친구들과 함께 놀러갈 계획을 세웠다. 지금까지 업고 들쳐매가며 집까지 데려다 나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놀러갈 날짜가 점점 다가오고 나는 조금씩 설레기 시작했다.
놀러갈 날을 며칠 안남기고 혜정이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 나 못갈거 같아."
"뭐 왜?"
"배가 아파서 병원 가봤더니 위염이래."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되도않는 술을 그동안 그렇게 퍼먹었으니 법적근로시간을 초과해도 한참 초과한 과다한 업무로 인해 위장이 파업을 선언하는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친구들은 다 갈수 있대. 근데 내가 못간다니까?"
"그래? 아쉽다 너무 아쉬워. 아쉬워 죽을거 같아. 걱정마 니 몫까지 잘 놀다올게. 몸관리 잘하고."
단 하나의 위험요소였던 혹까지 제거하고 새로운 얼굴들과 즐겁게 여행을 즐길수 있다니.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동안 내가 했던 고생을 생각하니 그 미안한 마음도 금새 씻은듯이 사라졌다.
그렇게 떠난 여행은 참으로 즐거웠다. 낮에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놀다 해가 저물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평소엔 자제하며 마시던 그 여자들도 그날은 긴장감이 풀어졌는지 편하게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하나 둘 곯아 떨어지고 한 여자아이와 나 둘만 남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봤을때 부터 관심있게 본 여자아이였다. 우리는 술을 마시며 진솔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은근슬쩍 그쪽이 마음에 든다는 내 속내를 내비칠때였다. 그 아이는 피곤한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에게서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고개를 숙인 그 아이가 우욱 우욱 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배에서 부터 목까지 리드미컬하게 꿀렁꿀렁 거리는 그 움직임은 마치 새 부하를 생산해내는 피콜로 대마왕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미처 마봉파를 쓸 새도 없이 그 아이는 부하대신 아까먹은 안주들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끼리끼리 어울린다. 라는 슬기로운 옛 선조들의 말씀이 떠올랐다. 결국 그 여행의 마무리 또한 오바이트 였다.
나는 조용히 눈을감고 되뇌였다.
"혜정양.. 보고 있나.. 여기 자네를 능가하는 인재가 있네.."
먼저 뻗은 여자아이는 언제 그랬는지 누운채로 입주변에 부침개를 한판 부쳐놓았다.
사인은 라면이었다. 오바이트로 다잉메세지를 남겨놓은 그 여자아이를 보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것도 둘이나.."
(가져온 글)
|
첫댓글 아.. 잠시 90년대 초중반 먹자골목으로 내달렸습니다..ㅎㅎ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시절에는 어딜가나 무리속에 저런 애들이 꼭 있었음.
남자분이 너무 착하다
2편까지 일고 잠이 들었네욤~~~
마지막 다 읽고 ㅁ ㅁ 답글 올려 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