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치자들과 권세들에 대한 인본주의적인 견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6:12)
우리 시대 최고의 신학자 중의 한 사람인 존 스토트는 에베소서 3장을 강해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본문 구절들 특히 10절에 대한 주석을 끝내기 전에 지금까지의 견해와는 전혀 다르지만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한 가지 해석을 최소한 언급은 하고 넘어가야겠다. 그것은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우주적 존재들(다시 말해서 천사들과 귀신들)로 보지 않고 인간사회의 정치·경제적 구조들로 본다. 이 견해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비평은 6:12에서 '통치자들과 권세들'과의 싸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때까지 유보해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 문제를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다. 이 문제의 중요성은 10절에 관한 캐어드(G. B. Caird)의 다음과 같은 진술에 잘 나타나 있다. '에베소서에 대한 주석이 잘못되었느냐 못되었느냐는 이 구절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
나는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이 학자들 앞에서 저절로 망설여지긴 하지만 이 문제를 신중하게 고려해볼 때 내 자신의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나는 바울이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 대하여 기술하였을 때 지상의 사회적 구조들을 언급하고 있다거나, 그것들의 정체가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다양한 지혜를 그들에게 알리는 것을 구속적(교육적인 것에 반대되는 것으로서) 활동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주제에 대하여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기로 한다."
약속한 대로 존 스토트는 에베소서 6장 12절을 강해하면서 다시 이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바울이 말하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이라는 것을 악령의 인격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것으로 간주해왔다. 그러나 현대 신학자들 가운데는 바울이 이 말을 통해서 사상, 구조, 특히 국가와 그 제도 속에서 구현된 사상 구조(전통, 인습, 법, 권위, 심지어는 종교까지)를 지칭하고 있다고 보는 이론이 점차 득세해나가고 있다. 1930년대에 수많은 독일 신학자들은 이미 이 가능성을 두고 논쟁을 벌여왔지만, 영어를 말하는 나라들의 경우는 2차 대전 이후에 와서야 비로소 이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문제가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우선 이 이론이 발전되어 나온 과정을 살펴본 후에 그것을 비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입을 연 존 스토트는 고든 럽, 핸드릭 벌코프, G. B. 캐어드, 마르쿠스 바르트의 견해를 요약해서 소개했습니다. 그것은 중요하지도 않고 여러분이 굳이 알 필요가 없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이 네 사람의 견해를 소개한 후에 그는 왜 그들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는지를 겸손한 자세로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나는 우선 그 착상이 훌륭하다는 점에 대해서 감탄해 마지않는다. 관계되는 학자들은 바울이 하늘의 권세에 대해서 모호하게 언급한 것을, 실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상의 상황에 대해서 적절하게 말한 것이라고 노련하게 결론을 내린다. 여기에 이 이론의 매력이 있어서, 복음주의적 신앙을 가진 많은 저자들도 이 견해를 채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미진한 점이 있다. ... 나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는 자들이 재구성한 내용이 착상은 훌륭하지만, 인위적인 설명 때문에 부자연스럽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에베소서에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언급하고 있는 중요한 본문 세 곳을 잘 살펴보라. 1:20-21의 경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모든 지상의 주관자들과 제도들 위에 높이 들어 '만왕의 왕과 만주의 주'(사실이 그렇고 또 이런 사상이 포함될 수도 있겠지만)로 삼으셨다고 해석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지극히 높임을 받으신 영역은 특히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신 '하늘에서'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3:10의 경우에서도, 교회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는 대상이 지상의 권력 구조라고 바울이 뜻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이들에게는 '하늘에서'라는 말이 아무런 의미 없이 첨가하는 결과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또한 세 번째의 경우도, 기독교인의 영적 싸움이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 대한 것'이라고 특별히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오늘날까지 '인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악령의 세력에 대한 것'이라는 의미로 일반적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악의 영들'이 그것들을 대항하기 위해 필요한 갑주 및 무기와 함께 언급되고 있는 것도, 두 번이나 마귀가 언급되고 있는 문맥 속에서 바라본다면 초자연적인 권세를 지칭한다고 보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 그렇지 않다면 '하늘에 있는'이라는 말은 그 역시 아무런 의미 없이 첨가된 결과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사실상 나는 새로운 이론가들 가운데서 에베소서에 기록된 통치자들과 권세들에 관한 세 곳의 본문 모두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실재의 세계인 하늘에 대해서도 역시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절하게 고려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하늘에 대한 언급은 하나의 확고부동한 사실로서, 바울은 이 말을 통해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의 신분과 그것들이 활동하는 장소를 의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 덧붙여서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런 새로운 주장을 하는 신학자들이 예수님이나 사도들과는 달리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신앙을 '신화적' 또는 '미신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여 성경의 가르침을 '비신화화'하려고 시도하는 자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최근 제가 존경하는 아주 실력 있는 교수님으로부터 그들의 주장과 매우 유사한 주장을 전해 들었습니다.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딛3:1)
이처럼 성경은 천사나 귀신뿐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통치자와 권세자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그 교수님은 "당시 바울의 독자들이 통치자와 권세라는 말을 천사나 귀신들로 이해했겠느냐?"고 제게 물었습니다. "그냥 통치자와 권세자로 이해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존 스토트는 "묵시문학의 경우는 통치자와 권세라고 할 때 주로 하늘에 있는 천사들을 생각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 교수님은 이 점에 착안하여 에베소서 6장 12절에 나오는 "통지자와 권세들"이 가정의 지도자인 부모를 비롯해서 교계의 지도자, 나라의 지도자와 같은 사람을 의미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그분은 에베소서 2장 6절의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있는 하늘과 에베소서 6장 12절의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 있는 하늘이 같은 하늘이라는 의외의 주장을 했습니다. 거기서 서로 영적으로 싸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그릇된 견해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하늘들의 하늘"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왕상8:27)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느헤미야 9:6)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내시니 웅장한 소리로다."(시68:33)
또한, 성경은 셋째 하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고후12:1-2)
셋째 하늘이 있다면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도 있어야 합니다. 세 하늘 중 첫째 하늘은 대기권 아래에 있는 허공으로, 새들이 날아다니고 구름과 비행기가 떠다니는 하늘입니다. 둘째 하늘은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공간, 즉 우주입니다. 셋째 하늘은 하늘 중의 하늘로서 주기도문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표현한 하나님의 보좌와 천사들이 거주하는 하늘, 즉 천국입니다.
그런데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면 에베소서 2장 6절의 하늘은 셋째 하늘인 천국을 뜻함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부활하사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는데, 바울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2:5-6)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6장 12절에 나오는 하늘은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둘째 하늘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바울은 우리가 씨름하고 싸워야 할 대상에 대해서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듣자마자 그 견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주장 중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 바울은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따로 구분합니다. 문자적으로는 뒤의 것만 하늘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케네스 해긴 목사님이 앞의 세 가지는 땅에 있고 맨 뒤의 것만 하늘에 있다고 주장한다고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제가 책에서 확인한 결과 해긴 목사님은 이와 달리 앞의 세 가지는 첫째 하늘인 우리가 하늘이라고 부르는 곳에 있고 하늘에 있는 악한 영은 둘째 하늘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에베소서 3장 10절을 지적하면서, 거기에는통치자들과 권세들도 하늘에 있다고 쓰여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케네스 해긴 목사님이 받은 계시가 틀렸다는 의외의 주장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성경을 찾아서 읽어보았습니다. 실제로 그 교수님이 말한 대로 그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엡3:10)
그리고 에베소서 6장 12절에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면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왜 똑같은 통치자들과 권세들에 대하여 한 곳에는 하늘에 있다고 쓰여 있고, 한 곳에는 다르게 쓰여 있을까요? 저는 잠시 혼란스러웠습니다. 원어를 찾아보았더니 '하늘'은 물론 '통치자와 권세' 역시 모두 같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더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곧 바울이 왜 그렇게 쓰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에베소서 3장 10절에서 바울은 귀신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사들에 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있다고 한 것입니다. 천사들은 실제로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태복음 22:30)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태복음 24:36)
반면에 에베소서 6장 12절에 나오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귀신들로서 공중이나 지상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있다고 쓰지 않은 것입니다. 제 말을 듣고 어떤 분은 원어도 같다면서 왜 하나는 천사들로 다른 하나는 귀신들로 해석합니까? 너무 인위적인 것 아닙니까?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 근거를 말씀해드리지요.
첫째로, 성경은 본문 자체가 그 증거입니다.
에베소서 3장 10절에서 바울은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교회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증거입니다.
만약 이들이 귀신을 의미한다고 가정해보십시오. 귀신에게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하겠습니까? 그것도 "각종 지혜"를 알게 하겠습니까? 이것 자체가 이들이 귀신이 아닌 천사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존 스토트는 에베소서 3장 10절을 다음과 같이 강해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관점은 더욱 넓어진다. 그는 비록 복음이 일차적으로, 그기로 직접적으로는 인간을 향한 것이지만 간접적으로는 천사들, 즉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도 전해진다고 보았다. 사도의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과 '비밀'에 대한 전파함으로써 기대하게 되는 첫 번째 결과는 교회의 탄생과 성장일 것이다.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여 개종하고, 자신들이 하나님의 가족이요 그리스도의 몸의 공동의 지체들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사실상 구원받고 화해된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의 존재는, 하나님의 능력, 은혜, 지혜를 한꺼번에 공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첫째로 부활시키는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 다음은 그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와 자비, 그리고 셋째로는 그의 각종 지혜를 나타내는 존재이다 ...
이는 마치 거대한 드라마가 공연되는 것과 같다. 역사는 극장이요 세계는 무대이며 모든 나라와 교인들은 배우이다. 하나님 자신이 희곡을 집필하셨고 그가 그것을 감독하고 연출하신다. 막과 장이 바뀜에 따라 이야기는 계속해서 전개된다. 그렇다면 관객은 누구인가? 관객은 우주적인 존재들 즉,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the principalities and powers)이다. 우리는 그들을 구원의 드라마의 관객들로 생각해야 한다. 그리하여 기독교 교회의 역사는 천사들을 위한 대학원이 된다.
이들 영적 존재들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범위를 벗어나서 한가로운 사변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어쨌든 그들이 전지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도 베드로는, 그들이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신약의 사도들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좋은 소식에 관한 가르침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자들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벧전1:10-12) 이와 유사하게 우리는 본문 10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위한 그의 큰 계획을 직접적으로 그들에게 계시하시지 않았고 교회가 생성 성장함에 따라 교회 자체를 통하여 그들에게 알려지도록 의도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옛 창조(우주)를 통하여 인간들에게 그의 영광을 계시하셨다. 그는 새로운 창조(교회)를 통하여 그의 지혜를 천사들에게 계시하셨다. 우리는 그들을 볼 수는 없지만, 그들은 우리를 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들은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똑같이 새로운 사회에 합해지는 것을 황홀하게 지켜보았다. 실제로 그들은 교회의 생성에서 하나님의 각종 지혜뿐만 아니라(10절) 그의 영원한 뜻을 배웠다(11절)."
동일한 구절에 대해 천사와 귀신들에 대해 전문적으로 테리로 목사님 역시 같은 말을 했습니다.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에베소서 3:10에서 발견됩니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교회라는 장소를 통하여 성스러운 천사들이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천사는 우주가 존재하기 전에 창조되었다는 사실(욥38:4, 7을 보라)을 고려해볼 때 아주 놀라운 것입니다.
지구상의 시간으로 백만 년 또는 천만 년의 세월 동안에 천사들은 하나님의 존귀하심과 영광을 묵상해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은 창조주에 대하여 교회가 그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을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 그러한 일들에 대해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벧전1:12)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러한 일이란 하나님의 사랑, 은혜, 자비로움 그리고 희생으로써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볼 때까지는 천사들이 결코 분명하게 보지 못했던 것들입니다.
천사들은 예수님이 신성을 입고 계시는 것은 보아왔지만 인성을 품은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겸손입니까? 예수님이 미천한 피조물인 것처럼 종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법칙에 복종하시다니요! 이것으로 새로운 것, 갈등과 연속되는 유혹 속에서 사탄과 대적하셨습니다! 또 겟세마네 동산에서 희생양으로 두 도적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신음하셨습니다!
천사들은 예수님이 최상의 행복과 영광 속에 거하는 것만을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그를 배반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고뇌하는 것을 보고, 죽어가며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피로 얼룩진 시체가 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그것이야말로 우주의 도덕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사실입니다.
여기에 천사들이 살펴보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전에는 몰랐던 신성의 완전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더 빛난 광채를 발하는 것입니다 ...
헬라어 학자이면서 신약성경의 역자인 케니스 웨스트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교회가 천사들을 위한 대학교가 되는 것이며 각 성자들은 교수님이 되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오로지 교회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습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3장 10절에 나오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6장 12절과 달리 천사들을 의미함이 분명합니다.
둘째로, 다른 번역본들이 그 증거입니다.
제가 에베소서 3장 10절을 살핀 후 그 의미가 6장 12절과 다르다는 단서를 발견하고 주석을 찾아보니, 제가 찾아본 주석들에는 한결같이 이들을 천사들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경 번역본들을 읽어보았더니 일부 번역본들은 에베소서 3장의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천사들로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6장의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귀신으로 번역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과 공동번역 성경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교회를 통해 하늘의 천사들에게까지 하나님의 여러 가지 지혜를 알리도록 하신 것입니다."(에베소서 3:10,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사람을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이 어두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영들인 마귀들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습니다."(에베소서 6:12,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되어 결국 하늘에 있는 권세의 천신들과 세력의 천신들까지도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의 무궁무진한 지혜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에베소서 3:10, 공동번역 개정판)
"우리가 대항하여 싸워야 할 원수들은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세력의 악신들과 암흑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의 악령들입니다."(에베소서 6:12, 공동번역 개정판)
이런 번역들을 통해 우리는 에베소서 3장 10절에 나오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이 6장 12절과 달리 천사를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로, 다른 성경에 나오는 용례가 그 증거입니다.
에베소서에서 우리는 똑같은 "통치자와 권세들"이라는 단어가 3장에서는 천사들을 6장에서는 귀신들을 의미함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만이 아닙니다. 골로새서에서도 다시 이 둘이 각각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로새서 1:16)
여기서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은 천사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성경과 공동번역 성경은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그분에 의해서 모든 것이 창조되었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것들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천사들과 영적 존재들과 만물이 다 그분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골로새서 1:16, 현대인의 성경)
"그것은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 곧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왕권과 주권과 권세와 세력의 여러 천신들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모두 그분을 통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그분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골로새서 1:16, 공동번역)
주목할 점은 통치자들과 권세들이 왕권들이나 주권들의 뒤를 잇는 하위 천사들로 묘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서는 후에 설명할 에베소서 6장 12절을 바르게 해석한 것과 일치합니다. 그래서 신뢰감을 더해줍니다.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골로새서 2:10)
여기서도 통치자와 권세들은 천사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해졌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천사들의 머리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같은 책인 골로새서 2장 14-15절에 나오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그 의미가 다릅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이 구절에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마귀와 귀신들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현대인의 성경은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의 권세를 짓밟아 십자가로 승리하셔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 구절에 나오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그 교수님이 주장한 대로 절대 사람으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로 승리하셨을 때 가이사는 물론 헤롯왕과 빌라도 등 누구도 폐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영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자녀들아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히브리서 2:14)
이것은 골로새서 2장 15절과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음을 통하여 마귀를 멸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멸했다는 것은 사탄의 존재를 없앴다는 뜻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사탄을 정복하고 그의 권능과 권세를 다 벗겨버렸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골로새서 2장 15절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골로새서 2장 15절에 나오는 통치자와 권세들이 사람이나 천사들이 아닌 마귀와 귀신들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 말씀드린 것만으로도 충분히 에베소서에 나오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이 때로는 천사, 때로는 귀신을 의미했으며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들이 사람이 아니라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본서의 본문인 에베소서 6장 12절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 교수님은 제게 "여기서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은 인간 권세자들을 의미하며 우리가 그들과 육적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방법으로 싸워야 함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본래 영은 살과 뼈가 없습니다.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누가복음 24:37-39)
그런데 사도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라고 말함으로 혈과 육에 상반되는 대상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즉 영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바울은 여기서 씨름의 방법이 아니라 대상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같은 구절에서 두 번이나 "상대"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뒤에 나오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은 사람이 아니라 마귀와 귀신들을 의미함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이 사람을 가리킨다는 해석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 제가 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런 주장과 견해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히 설명하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그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제가 앞으로 여러분과 나눌 메시지가 지극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견해에 대해 해명하지 않으면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중대한 메시지가 의심받거나 거부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리 여러분에게 영적인 예방주사를 놓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