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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과 갑작스러운 결별을 선언한 첫날. 머리는 깨질 듯하고 도저히 제대로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나는 커피콩의 노예다. 필자의 집에서 사용하던 커피메이커는 한 번에 10인분의 커피를 만들 수 있었다. 처음 이 기계를 구입했던 1990년대 중반, 나는 매일 아침 마시는 커피의 양을 2~3잔으로 제한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양은 3잔에서 4잔, 5잔, 6잔으로 점점 늘어갔다. 나의 두뇌 가동 시스템을 고집쟁이 노새 떼에 비유한다면, 카페인은 그 노새들을 재촉하는 채찍이었던 셈이다. 문제는 아침에 다량의 커피를 마신 후에도 카페인 섭취가 계속된다는 점이다. 일단 점심시간이 되면 340ml짜리 캔 콜라를 한두 개 정도 가볍게 마신다. 하지만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는 오후 5시 무렵이면 인지력 향상이 아닌 체력 보강을 위해 다시 카페인을 다량 복용할 준비가 돼 있다. 나의 경우 수준급 실력을 지닌 아마추어 수영선수로 매일 저녁마다 수영 연습을 하고 있는데, 수영장으로 가는 도중 습관적으로 편의점에 들르곤 한다. 그리곤 연습 때 더 많은 힘을 내기 위해 680ml 카푸치노를 사서 급하게 들이마신다. 이렇듯 카페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약물’이지만, 나의 몸이 카페인에 내성이 생긴 탓에 안타깝게도 이제는 더 이상 확실한 효과를 느낄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것이 바로 카페인을 끊기로 맘먹은 결정적인 이유다. 나는 중요한 수영 시합을 앞두고 우승 확률에 대해 상당 기간 고민했다. 매우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미국 코네티컷 대학교 인간능력연구소 교수이자 카페인의 운동능력 향상 효과에 대해 오랜 연구를 진행해온 로렌스 암스트롱 박사의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암스트롱 교수는 “카페인에 내성이 생겼다면, 그 내성이 사라질 때까지 카페인을 끊었다가 수영 시합 직전에 다시 카페인을 섭취하십시오. 그러면 훨씬 큰 효과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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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은 ‘유비쿼터스Ubiquitous’적인 성격을 띤다. 커피나 음료, 초콜릿은 물론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해열제, 감기약, 체중 감량제 등 무수한 식품 및 약품에 함유되어 있다. 최근에는 카페인 껌도 등장했다. 커피콩 껍질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카페인 함유 음료를 만들어 낸 사람들은 수피(Sufi, 회교의 신비주의 종파)파의 제사장들이다. 그들은 이 음료를 밤새 지속되는 종교의식을 위한 ‘연료’로 사용했다. 그리고 이 광란의 의식을 목격한 유럽인들은, 그 의식에 참석한 자들을 ‘미친 듯이 빙빙 도는 수도승들’이라 불렀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카페인이 두뇌를 자극시키는 활동에만 관여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1982년에 획기적인 사실이 발견되었다. 카페인의 분자 구조가 인간을 포함한 많은 동물에서 발견되는 신경전달물질 억제 성분, 즉 아데노신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캐나다 국방부의 의뢰로 카페인 관련 연구를 진행해온 디펜스 R&D 캐나다 연구소의 과학자 톰 맥렐런 박사는 “동물 연구를 통해 아데노신이 최면 또는 수면 유발 물질이 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고 밝히며 “사람들에게 수면이 필요할 경우, 아데노신 수치가 높아지면서 뇌가 활동을 멈추도록 자극을 준다”고 설명한다. 깨어 있는 시간이 길수록 뇌 속에 더 많은 아데노신이 축적된다. 이렇게 증가하는 아데노신은 특정 아데노신 수용체와 결합해 신경계 활동을 저하시키고 무력감을 유발한다. 충분한 휴식은 인체 내에서 아데노신을 제거하고 피곤에서 완전히 회복된 몸으로 다음날을 맞게 해준다. 그러나 휴식 대신 아데노신을 제거해주는 방법이 있다. 사람을 졸리게 만들기 전에 아데노신을 억제하는 것이다. 카페인은 아데노신이 수용체에 도착하기 전에 수용체를 둘러싼다. 마치 열쇠구멍에 이쑤시개를 박아 열쇠가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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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가들은 지난 수십 년 간 심장병이나 암과 같은 주요 질병과 카페인의 관계를 알아내려고 애썼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일례로, 파밍햄 심장 연구는 카페인 복용이 심장병이나 뇌졸중 발병률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에 게재된, 성인 남자 4만5천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도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카페인과 암의 연관성과 관련해 1만5천 명의 피실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노르웨이의 한 연구에서도, 커피 음용과 암 또는 다른 질병과의 상관관계는 발견되지 않았다. 미국의 영양학 전문가 낸시 클라크 박사는 <의사와 스포츠의학>지에 게재한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내린다. “카페인은 영양 가치가 전무하고, 어떤 생리작용에도 필요하지 않으며, 피곤과 스트레스에 찌든 사람들에게 종종 남용되기 때문에, ‘깨끗한 삶’ 옹호자들에게 강한 비난을 받아왔다. 그 결과, 많은 커피 애호가들은 이른 아침에 마시는 커피가 건강 문제를 야기할지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 커피를 비롯한 카페인 함유 음료들을 적절히 마실 경우 건강에 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카페인의 적절한 자극 효과는 건강상의 문제점들을 일부분 완화시키기도 한다. 최근 하버드 대학교 연구원들은 카페인 복용이 제2형 당뇨병의 발병 위험을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지난해에는 이탈리아의 과학자들이 커피가 구강 및 식도암 발생률을 낮출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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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을 열렬히 옹호하는 사람들도 카페인이 일부의 복용자들에게는 부작용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인정해왔다. 가장 일반적인 부작용으로는 불안감을 들 수 있고, 심한 경우 공황발작도 여기에 포함된다. 시카고 의대 연구원인 드윗 박사는 몇 년 전 독일 유전학자 저겐 데커트 박사의 강의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이때 데커트 박사는 아데노신 수용체의 한 형태에서 발견되는 유전변이가 공황장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신경정신약물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드윗 박사는 무작위로 선정된 94명의 지원자들에게 카페인 150ml(커피 2잔 분량) 또는 위약(Placebo Substance: 가짜 약)을 복용하게 한 뒤, 기분과 경계심, 심장박동수, 혈압 등을 측정했다. 또한 각 지원자의 유전자형도 분석했다. 경계심 향상에서부터 피로 회복에 이르는 거의 모든 측정 부문에서, 카페인은 실험 대상자들에게 동일한 영향을 끼쳤다. 유일한 차이점은 특정 유전변이를 가진 약 30%의 참가자들이 불안감을 보고한 반면 70%는 불안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드윗 박사는 “이러한 자료는 카페인에 특이 반응을 보이는 사람의 경우, 그러한 반응을 유발하는 생물학적 이유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한다. 결국 보통 양의 커피로 극도의 초조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커피를 완전히 끊는 게 최선이라는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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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 카페인의 효능 중 카페인 예찬가들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일시적 두뇌 기능 향상이다. 순간적인 IQ 증가를 통해 중요한 시험에서 A학점을 얻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현재 알려진 연구 결과를 살펴볼 때 카페인이 IQ를 높여주지는 않는다. 맥렐런 박사는 “카페인이 놀라운 각성 효과를 유발한다는 사실은 분명히 확인됐지만, 의사 결정과 같은 고차원 인지 기능에 카페인이 끼치는 영향 또는 효과는 거의 없다”고 설명한다. 또 하나의 새로운 사실은, 아침에 마시는 커피의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미 공군성에서 카페인 섭취가 업무 능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임상 실험을 주관한 제임스 와이어트 박사는 “적은 양의 카페인을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늘려나갈 때 가장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하며, “유감스럽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카페인 복용 방법은 잘못되었다”고 덧붙인다. 졸음을 유발하는 아데노신 수치는 우리가 잠에서 막 깼을 때,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커피를 만드는 그 시간에 가장 낮다. 아데노신이 축적되기 시작할 무렵이면 아침에 마신 카페인의 효과는 이미 약해지기 시작한다. 와이어트 박사는 카페인 의존도가 높은 사람들을 향해, 아데노신 수치가 다시 증가하는 점심시간 후까지 기다리라고 조언한다. 그 후 ‘1시간당 4분의 1잔’ 정도로 소량의 카페인을 정기적으로 복용함으로써 더 확실하고 지속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밤에 충분한 수면을 취하려면 카페인을 너무 많이 섭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적어도 취침 4시간 전부터 카페인을 피하는 것이 좋다. 즉, 복용 방법만 올바르다면 카페인 섭취는 별 문제될 게 없다는 뜻이다. 와이어트 박사는 “모든 사람들이 매일 밤 평균 8.3~8.4시간의 숙면을 취할 수 있다면, 카페인은 애초부터 필요도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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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이나 테니스 등 다양한 운동을 즐기는 데 카페인이 운동 수행 향상 효과를 제공한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에 증명되었다. 가장 큰 효과는 지구력 향상이다. 2002년도 응용생리학 저널에 게재된 논문에서, 맥렐런 박사와 연구팀은 사이클 선수들을 대상으로 연습 시 피곤을 느끼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조사했다. 그 결과, 카페인을 복용한 선수들이 위약을 복용한 선수들보다 더 오래 버티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중에서도 특히 카페인을 정기적으로 복용하지 않는 선수들이 가장 큰 효과를 보았다. “카페인이 동기 부여의 촉진에 작용한다는 증거가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카페인은 노력의 인식에 영향을 주고, 현재보다 더 분발하도록 재촉하죠”라고 맥렐런 박사는 말한다. 이러한 효과를 얻기 위해 엄청난 양의 카페인이 필요하지는 않다. 맥렐런이 9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커피 2잔 분량의 카페인만으로 운동 시작 후 피곤을 느끼게 되는 시간이 늦춰졌지만, 카페인 추가 섭취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다음번에 친구와 테니스 시합을 할 땐 카페인의 효용을 시험해볼 생각인가? 그렇다면 간혹 커피가 위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커피 속의 산 성분과 기타 혼합물 때문이다. 캐나다 국방부의 의뢰로 실시한 조사에서 맥렐런 박사는 최적의 카페인 전달 체계를 발견했다. 바로 카페인 껌이다. 그는 “그 효과를 직접 체험했다”고 밝히며 “카페인 레벨이 5~10분 내에 최고치에 도달해 효과가 매우 빠를 뿐 아니라, 위장에 관련된 어떠한 이상 증후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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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을 끊은 처음 5일간 나를 괴롭힌 두통과 수면의 유혹은 서서히 사라졌고, 정상적인 일상생활도 가능해졌다. 사실 카페인에 크게 의존했던 과거보다 활력이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다. 어제, 수영 시합에서 사용할 비장의 무기가 드디어 배달됐다. 졸트 카페인 에너지 껌 12통! 지금부터 정확히 30분 뒤, 나는 펜실베이니아 주립 수영경기장의 자유형 450m 경기 출발대에 오를 것이다. 경기 준비를 위해 마침내 카페인 금지령을 철회하고 껌 한 조각을 입에 넣는다. 시합 5분 전, 두번째 껌을 씹으며 총 커피 1잔분의 카페인을 체내에 축적한다. 효과는 가히 환상적이다. 놀라운 활력과 지구력으로 출발대에서 뛰어내려 수영장을 가로지른다. 결국 27초의 기록으로 조 1위를 차지했다. 와우! 나의 전 생애를 통틀어 두번째로 빠른 기록이다. 우연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다음 이틀간 이어진 경기마다 ‘카페인 껌 2조각 복용 의식’을 되풀이했다. 그 결과는? 만세! 배영 100m, 자유형 50m, 100m, 200m 경기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물론 이 같은 성공이 쉽게 얻어진 것은 아니다. 경기를 치른 이틀간 거의 밤잠을 이룰 수 없었고, 경기 후에는 지독한 감기를 앓았다. 하지만 카페인이 이 모든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보다는 힘들어 보이지 않으려고 쏟았던 노력과 불면이 면역 시스템을 손상시킨 게 아닐까? 어쨌든 이 모든 경험을 통해 나는 그간 ‘뜨거운 갈색 음료’ 정도로만 여겼던 커피에 대해 새로운 이해와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커피와 카페인 껌을 평균치 이하로 복용하고, 진정 ‘초강력 슈퍼 파워’가 필요한 때를 위해 아껴둘 생각이다. 네가 있어줘서 고마워, 카페인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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