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느냐 안 따르느냐는 좋다, 안 좋다 정도의 차원이 아니라 원론적으로는 사실상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인 것이고, 에베소서 2장 1~2절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실상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자들은 이미 영적으로는 죽어 있는 자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또한 만일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하고 하나님의 것이 되며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난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죄와 세속과 정욕과 자기 소견과 우상들 등에 빠져있고 반복한다면 잠자는 신앙이거나 병든 신앙이거나, 심지어는 그러한 죄악들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에 따라 마치 죽은듯한 신앙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어쨌든 그러한 모든 사실들에 있어서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 인생들은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과 단절된 것이며, 실상 죄와 진노들, 사단과 음부의 세력들,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들이 된 것이고, 영적으로는 이미 죽은 상태인 것인데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이 있었고..
그러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특히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 같은 선물인 역사들을 위해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며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고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에 있어 길과 통로와 접촉점 등과 같은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해 필요한 모든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심으로 인해 그 누구든지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바로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될 수 있게 된 것이며..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그 역할과 위치에 따라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 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인데 사실 본질적으로는 더 이상의 죄와 심판과 음부와 사망의 노예가 아닌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또한 하나님의 법인 말씀이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뀐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영적으로는 죽음에서 다시 살게 된 새 생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사실상 사단 마귀들이 우는 사자들과 같이 삼킬 자들을 찾는 이 험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한 그러한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에 있어서 그 처음 사랑이 전부일 수는 없는 것이고, 실제로 다윗이나 솔로몬, 베드로 등과 같은 믿음의 대 선배들도 비록 한 때이긴 했지만 심각한 죄악들이 있었으며 그로 인한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같은 징계들이 결코 작지 않았음을 볼 수 있는 것이며, 오늘 날에 있어서도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크고 작은 죄악과 세속과 불신앙들 속에서 헤매며 마치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으로 살면서 여러 모양의 곤고와 버거움과 침체들에 빠진 이들이 많은 실상이라 할 수 있는 것인데..
진정 모든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마다 이제라도 다 함께 각성하고 돌이키며 결단하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특히 인간적인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이 아니라 처음의 사랑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마다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죄악들과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 혹 범한 죄악들은 최대한 빨리 철저하게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주야로 더욱 말씀을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의 몸부림과 열정들로 나아가야 하며, 실상은 그러한 것만이 실제적인 회복과 승리와 역전을 위한 유일한 방법인 것이고..
참으로 바로 그러한 말씀의 치열한 신앙을 깨어 있는 신앙, 살아 있는 신앙이라고 하며, 근원적으로는 말씀 그 자체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치와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샬롬과 안식 가운데 거하며 그러한 하나님과 동행하고 영광 올려 드리는 신앙이라 할 수 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법인 말씀이 통치하는 나라의 역사들로, 또한 말씀의 신앙의 절정이자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복음의 능력들로 삶의 자리와 인류 역사의 상황들 속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차고 넘치게 되는 신앙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위기18:5)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2년 11월 9일(수)1/사진(조연진사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