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은 세상인과 다르다
09.7.15
그리스도인은 세상인과 다릅니다. 삶의 목표, 방식, 가치관이 세상인과 완전히 다릅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세상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그리스도인은 좋아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인이 좋아하는 것을 세상 사람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영계의 소속이 다르고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잔느 귀용은 젊은 시절에 용모가 몹시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용모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몹시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녀는 이 문제로 인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 기도의 응답인지 그녀는 천연두에 걸려서 몹시 앓았고, 그녀는 후유증으로 얼굴이 곰보처럼 얽히게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그녀의 아름다운 용모는 흠을 가지게 되었고 그녀는 몹시 기뻐하였습니다.
세상 사람은 이러한 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용모를 가꾸고 사람들의 관심과 호의를 얻고 싶어 하는 것은 대부분 여성들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과 다르며 사람들의 눈에 들기 보다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귀용은 사람의 껍데기에 주목하는 사람들의 시선보다 그 중심을 보시는 주님의 시선을 의식하기 원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을 보여줍니다.
사도 행전의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채찍질을 당하자 자신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으로 인하여 몹시 기뻐하였습니다.
세상 사람은 이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맞으면서 기뻐한다는 것을 세상 사람의 본능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바울과 실라는 성령의 감동과 주님의 인도하심을 통하여 빌립보로 갔다가 채찍에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들은 밤중에 일어나 기뻐하며 찬송을 드렸습니다.
세상 사람은 이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인의 명령을 듣고 순종하였다가 좋은 일은 커녕 모진 고통을 겪었을 뿐인데 원망도 하지 않고 찬송을 드리는 것을 그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과 다르기 때문에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언젠가 나의 머리에 실탄이 장전된 총이 겨누어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쏘겠다는 위협이 있었지만 나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저 죽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나의 생명을 주님께 올려드렸을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삶과 죽음을 대단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것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삶과 죽음이 주님의 손 안에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나 죽으나 오직 내 몸 안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을 원합니다. 그러므로 전쟁의 소문이나 세상을 흉흉하게 만드는 여러 소식에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 때에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거리마다 시체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병이 옮길까 두려워서 아무도 시체를 치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어떤 작은 무리들이 조용히 평화로운 노래를 부르면서 그 시체들을 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뒤에서 숨어서 물었습니다.
“저 사람들은 누구야? 병이 옮으면 어떡하려고 그러지?”
다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저들은 그리스도인이야. 저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말입니다.
세상 사람은 육체와 본능을 따라 살므로 편안하고 고통 없고 문제없는 삶을 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오히려 고통과 어려움이 있는 삶을 기뻐하며 훈련을 통해서 성장해가고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것을 사모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세상 사람은 남들이 알아주는 것을 좋아하며 칭찬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의 업적이나 행위나 장점이나 여러 가지 일로 자랑하는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들은 남들이 자기를 인정하지 않거나 무시할 때 상처를 받습니다. 이들은 사소한 오해나 억울한 일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칭찬받는 것이나 존경받는 것을 불편해하며 오히려 고통을 느낍니다. 그들은 칭찬으로 인하여 오히려 상처를 받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드러나는 것으로 인하여 주님이 가리워지는 것을 몹시 두려워합니다.
이들은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오히려 편안함을 느낍니다. 억울한 공격이 있을 때 이들은 내심 즐거워하며 변호의 입을 닫고 주님께 나아갑니다. 이들은 이러한 기회가 주님을 더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대접받는 것을 즐거워하고 높은 위치에서 남을 부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대접받는 것보다 대접하는 것을 즐거워하며 높은 곳에서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을 불편해하고 낮은 위치에서 섬기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은 다릅니다.
세상 사람은 손해 보는 것을 싫어하며 항상 자기의 이익을 좇습니다. 이들은 희생을 싫어하므로 더 큰 이익이 있지 않는 한 웬만해서는 양보하지 않습니다. 운전을 할 때도 이들은 양보를 좋아하지 않으며 항상 남보다 앞서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이익을 좇지 않으며 희생과 양보와 손해보는 것을 즐거워하고 남들이 싫어하는 궂은 일을 자원해서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있는 곳에는 항상 기쁨과 행복이 있으며 아름다움과 풍성함이 묻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썩고 부패한 곳도 그리스도인이 있는 곳에는 그의 빛과 소금 됨으로 인하여 변화와 새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문화에 민감하며 유행을 따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세상의 사악하고 향락적이며 인간 중심적인 문화로 인하여 고통을 겪습니다. 세상의 문화는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육체와 본능을 따르며 인간을 높이므로 그것들은 그리스도인들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오늘날 세상의 사악함과 음란함에 비하면 소돔과 고모라는 순결한 곳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 문화로 인하여 고통을 겪습니다.
세상 사람은 유행을 좇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유행을 싫어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유행하는 옷을 싫어하며 그리스도께 합당한 옷을 입기를 원합니다. 악하고 경박한 문화를 싫어하며 그리스도에게 속한 거룩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은 다릅니다. 세상의 즐거움은 그리스도인에게 고통입니다. 세상 사람은 쾌락을 원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순결함을 원합니다.
언젠가 상가 건물 하나를 살 정도의 금액을 헌금하겠다는 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접촉 후 나는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헌금의 동기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번 사정했지만 나는 듣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은 돈을 대단한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돈이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돈보다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돈입니다. 중요한 것은 헌금의 액수가 아니며 마음과 동기의 순결함,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므로 1만원이 1억원보다 더 가치가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돈이 없어서 일을 하시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손에 붙잡힌, 순복된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에 제한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순복과 헌신이지 돈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재벌과 같이 돈이 많은 사람들,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대접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그러한 이들이 아무런 지위를 얻지 못합니다. 교회에서는 오직 주님의 손에 붙들리고 십자가의 훈련을 통과하여 자기의 입장을 벗어나 주님의 통로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지위를 얻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이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마인드를 가진 사역자가 있다면 그는 부자와 세상적으로 지위가 높은 이가 자신이 사역하고 있는 교회에 오는 것을 기뻐할 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아마 외적인 풍성함이나 확장을 가져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은 그곳에서 많이 제한을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교회 안의 순결성을 유지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갈망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역자는 부자나 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이들, 용모가 매력적이거나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거나 유명세가 있거나 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들의 헌신도나 그리스도에 대한 갈망을 조심스럽게 관찰하고 점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물질이나 명예나 사회적 지위나 그 어떤 조건보다도 겸손하고 순결하고 그리스도를 갈망하며 그의 손 안에 다루어지고 굴복된 이들이 위치를 얻어야 합니다.
돈이 많고, 외모가 뛰어나고, 학벌이 뛰어나고, 사회적 지위가 높고.. 그러한 것들을 악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영적 성장에 많은 어려움을 끼칩니다. 그러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영적 성장에 훨씬 더 어려움을 겪으며 많은 고난과 혹독한 훈련을 통과하지 않으면 낮은 심령과 갈망을 얻고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것들은 악 자체는 아니지만 시한폭탄처럼 위험하고 다루기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나는 학벌이 뛰어나거나 사회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가지고 있거나 물질적으로 부유층에 속하거나 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조금 엄하게 대하는 편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 낮은 마음을 품지 않는다면 다른 이들보다 영적 성장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외모의 뛰어남이나 뛰어난 학벌이나 재능, 명예들도 이 부자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세상에서의 탁월함입니다. 세상에서의 우월한 위치와 상태입니다.
세상 사람은 그들을 부러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들을 불쌍하게 여깁니다. 이들에 대해서 걱정할 것입니다.
온 세상이 그들을 높여주기 때문에 그들이 낮은 마음, 상한 심령을 잃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세상과 탐욕의 함정에 빠져서 낮은 마음과 갈망과 눈물을 잃지 않기를, 그리스도를 소멸하지 않기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걱정하며 바라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은 세상 사람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부자에게 말했습니다.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너는 고민을 받고 저는 위로를 받느니라”
세상 사람은 살았을 때에 육체를 위하여 살며 좋은 것을 받고 영원한 곳에서는 고민을 받는 것을 선택한 사람들이며 그리스도인은 그 반대로 육욕을 거절하고 영혼의 성숙을 위하여 살며 그리스도를 갈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의 소원과 그리스도인의 소원은 다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돈이나 세상적인 성취에 대해서 부정적인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부자가 되었다고 해서 나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어떤 지위를 얻었다고 해서 그것을 비난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인 학생이 1등을 하고 장학생이 된다고 해서 심하게 꾸짖거나 정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아들인 주원이도 나의 여러 번 경고에도 불구하고 과에서 몇 번 수석을 하고 수석 장학금을 타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의 동기를 여러 번 점검하고 주의를 주기는 했지만 심하게 꾸짖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돈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며 지위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며 1등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입니다. 학생이 1등이 목표가 아니고 그저 주님을 붙들고 주님 안에서 감사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공부를 했는데 1등을 했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저 주님의 인도하심과 기름부음 안에서 순종하고 움직였는데 자연스럽게 어떤 것을 성취했다면 그것은 괜찮습니다. 그렇게 주안에 있는 상태라면 돈이 많아도, 높은 위치에 있어도 그리 위험하지 않습니다. 그는 주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주님이 원하실 때는 얼마든지 다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목표가 아니고 그 자체가 목표라면 그것은 이미 우상이 된 것이며 실패를 하면 다행이지만 그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되면 그는 비참한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명문대에 가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억지로 공부하고 그 결과 성취를 하게 되었다면 그의 영혼은 많은 고통의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자연스럽지 않고 억지스러우며 억압에 의한 것은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며 많은 후유증과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를 악물고 공부해서 원하는 명문대에 갔다고 간증을 하는 것은 많은 영혼들을 끔찍한 재앙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함께 감사하고 즐기며 행복하게 하지 않고 억지로 성취하는 모든 것들은 그가 거둔 것의 수천배의 후유증을 얻게 됩니다.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정입니다. 헌신되지 않은 사람의 성취는 곧 재앙 그 자체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각자에게 주어진 분깃을 따라 순종하고 살면 되지 세상에서 으뜸이 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편하게 살고 남들이 알아주는 삶을 살고 부자가 되려는 쓸데 없는 목표를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주를 붙들며 주님이 시키시는 것만 하고 살면 그것이 곧 성공한 인생입니다.
오늘날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생활 속에서 걱정이 많습니다. 돈이 부족하다고 걱정합니다. 그들은 돈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환경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바른 진단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문제는 그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은 순종하지 않음으로 에덴에서 쫓겨났지 돈이 모자라서 쫓겨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문제는 불순종이지 환경이 아닙니다.
돈은 세상에 널려 있는 것입니다. 천국의 부는 무한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며 주님의 훈련을 통과하며 주님께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돈의 부족이나 일상의 문제들은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한 주님의 훈련도구일 뿐입니다.
어려운 환경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우리가 얼마나 주를 신뢰함이 없는지, 이기적인지, 속이 좁은 지, 사랑이 없는지, 높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완악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힘든 환경은 주님이 우리 영혼의 상태를 보여주시고 절망하게 하시며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주님의 사람이 되어가도록 허락하신 것이지 우연히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일용할 것, 필요한 것을 주님은 주실 것입니다. 도무지 순종을 하지 않고 죄악 가운데 있으며 제멋대로 사는 사람에게도 주님은 목숨을 부지할 정도의 물질이나 건강을 주시는데, 그것은 주님께서 그 사람에게 조금 더 기회를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도무지 같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에 오면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전혀 다른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러한 것이 정상적인 기독교이며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들은 세상과 다르지 않으며 그 차이를 분간해내기가 어렵습니다. 어쩌면 이들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세상 사람과 비슷합니다. 세상과 비슷한 가치관과 철학과 목표를 가지고 삽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은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실제를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가까우심을 모릅니다. 그 영광의 세계를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살지 않고 세상의 영으로, 아담의 영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루 종일 마귀와 손을 잡고 다니면서 예배 시간이 되면 잠시 마귀의 손을 놓고 예배를 드리러 갑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고 와서는 다시 마귀의 손을 잡고 그 비참한 동행을 되풀이합니다. 이것은 아주 비극적인 일입니다.
나는 두려워합니다. 그 무엇보다 세상적인 가치관을 두려워합니다. 세상적인 가치관, 세상적인 철학들이 교회 안에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안에 너무나 많이 침투한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에게 합당한 사람이 되려는 목표를 가지지 않고 단순히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며 편안하게 사는 그러한 목표를 가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것들은 세상 사람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지 그리스도인들이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그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좋은 생각을 하고 낙관적인 마음을 가짐으로서 모든 문제들이 해결된다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애당초 그 정도로 별 문제없는, 괜찮은 존재였다면.. 구태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돈이 많아지고 사업이 잘 되고 건강해지고 환경이 좋아지기만 하면 다 괜찮다고 여기는 것은 바른 인식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뿌리끝까지 썩어 문드러진 존재이며 오직 십자가 외에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그 십자가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믿고 고백하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십자가의 역사는 평생 동안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 역사하는 것이며 그 십자가를 통과하는 분량이 곧 참 신자의 증거이며 성숙이며 간증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의 경험이 부족합니다. 자아의 옛 생명이 죽고 굴복되어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역사하는 영광스러운 새 삶에 대하여 잘 모릅니다. 본능을 초월하는 영광스러운 생명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십자가를 모르면 부활생명의 영광과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많은 어린 신자들은 삶에서 다가오는 십자가를 통과하지 못하며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로 십자가를 지다가 긁힌 자국을 치유받고 위로받기 위하여 애씁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통과한 천국의 무한한 생명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끊임없는 탐욕으로 썩어질 세상의 것들을 구합니다. 본능과 욕망을 만족시키는 삶을 추구합니다. 그리하여 마음의 평화를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교제를 알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다릅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욕심이 많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성공을 해야 복음 전파에 유리하다고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재벌이 되었다고 합시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칭찬을 하고 마음을 그리스도에게 열까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마음을 닫고 욕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큰 지위를 얻으면 - 예를 들어 대통령과 같은 - 그러면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을 칭찬하고 복음에 대하여 마음을 열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합당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인하여, 바른 진리에 접촉함으로서 그리스도에게 가까워지는 것이지 그리스도인의 외적인 출세나 지위로 인하여 복음에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을 증가시킬 수는 있지만 진실한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데는 오히려 방해가 될 것입니다. 역사를 보아도 황제가 기독교인이었을 때보다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사람이 황제로 있었을 때가 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많이 있었습니다.
벌거벗은 몸을 심사해서 미인을 뽑는 대회에서 어떤 여성이 우승을 한 후에 손을 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까요.. 나는 의문입니다.
노출이 심한 옷은 타락한 문화이며 악한 것입니다. 여성이 대중 앞에서 벌거벗는 것은 부끄러운 행위입니다. 세상에서 괜찮다고 천국에서까지 괜찮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합당한 것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노출은 세상에서는 익숙한 것이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축구장에서 그리스도인이 골을 넣었다고 무릎 꿇고 기도하는 세레머니를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과연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요.. 그것은 비그리스도인의 마음을 열까요..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오히려 격분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증오를 부추길 수도 있습니다.
축구장은 진지한 장소가 아닙니다. 육체가 흥분하는 곳입니다. 그 영혼의 잔잔함과 깨어남과는 거리가 먼 곳입니다. 관객들은 단순히 즐기러 왔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대중 앞에서 당당하게 신앙을 고백하고 그 결과 사자밥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그러한 고백은 가치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목숨을 담보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상황의 고백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주를 시인하는 사람을 마지막 날에 주님도 시인하실 것입니다.
간증을 위한 집회나 그와 비슷한 공간에서 스포츠 스타가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고 간증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운행하시는 거룩한 공간과 거룩한 임재가 흐르는 곳이나 상황이 아니라면 신앙의 표현은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의 분량만큼 제한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성공하고 부자가 되고 출세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복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적당하게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손 안에 굴복되고 엎드러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허락하시는 훈련과 십자가를 통과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입장과 자존심과 욕망을 초월하여 주님이 마음껏 사용하실 수 있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많은 돈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많은 조직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손에 굴복되고 다스려진 사람이 필요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편한 삶을 원하고 여전히 자존심을 굽히지 않으며 게으르고 고집세며 완악하고 순수하지 않고 교활합니다.
여전히 변명하며 억울해하며 주님을 의뢰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며 세상의 방법과 사람의 인위적인 방법을 의지합니다. 인내할 줄 모르며 주님을 기다릴 줄 모릅니다. 그들은 아직 십자가를 통과한 것이 아닙니다. 그 상태에서 백만금의 돈이 있어도 건강이 있어도 후원자가 넘쳐나도 그는 하나님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비기독교인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것은 오늘날의 기독교가 세상과 별로 차이가 없는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그들이 교회에 와서 그들이 알고 있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을 듣게 된다면 그들은 구태여 교회에 올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흔히 배울 수 있는 것을 교회에서 배우게 된다면 그들은 굳이 교회를 찾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욕망과 본능으로 가득한 사람들에게 동일한 욕망과 본능의 충족을 가르친다면 그것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새로운 욕망, 다른 갈망, 다른 세계를 전해야 합니다. 세상에 숨겨진 영광의 세계를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의 진리는 세상과 다릅니다. 세상은 잘 먹고 잘 살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기를 원하고 그것을 성공한 삶이라고 가르치지만 교회는 십자가를 통과하고 그 피를 힘입어 새 생명을 얻는 삶을 성공이라고 가르칩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보화는 세상에 숨겨져 있는 진리의 보화입니다. 세상은 삶을 갈망하지만 교회는 죽음을 갈망합니다.
세상인의 본능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생존본능]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본능은 핍박을 받고 오해를 받고 공격을 받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순교 본능]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팔복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인과 다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함을 누리는 그리스도인들은 많지 않습니다.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고백하며 누리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는 것을 원한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은 많지 않습니다.
내가 삶과 죽음 사이에 끼였는데 주님이 너무나 놀라우시고 영광스러우신 분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 위해서는 죽음이 훨씬 더 좋지만, 너희를 위하여 내가 육신에 거할 뿐이라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많지 않습니다.
오늘날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의 의식 가운데 세상 철학과 가치관이 혼합되어 많은 오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풍성하지 못하며 아주 가난합니다.
오래 동안 주를 믿으면서도 주와 친밀히 사귀며 그 품안에 거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단순히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급할 때만 주를 찾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많은 세월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전히 그들에게 삶을 허락하시는 것은 아직 좀 더 기회를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무디는 외적으로 풍성한 사역을 하였지만 그는 충분함과 만족감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두 여성 그리스도인에게 성령의 충만함, 다른 차원의 풍성함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그 때부터 그 충만함을 얻게 해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어느 날 길을 갈 때 그 충만함이 왔고 그는 너무 급하여 근처의 집으로 뛰어 들어가서 기도할 공간을 요청한 후에 그 영의 쏟아 부어지는 충만한 임재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영이 무디에게 계속 부어지자 무디는 말했습니다.
“오, 주님. 그만 하옵소서.. 더 하면 제가 죽을 것 같습니다..”
그 영의 충만함과 풍성함, 그리스도의 충만함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놀라운 것이며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어떤 이들에게 주님은 이와 같이 가까이 오십니다. 세상으로 채워지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얻으며 그리스도로 채워지기 원하는 이들에게, 목숨보다 더한 갈망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주님은 가까이 오십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말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좋은 것.. 이 두 가지를 비교하자면, 그것은 도저히 비교가 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감히 비교하자면 그것은 다이아몬드와 그것에 묻은 똥과 같은 것이다.”
세상의 모든 영광은 똥과 같은 것이며 주님의 영광과 임재는 아무리 낮추어 말한다 해도 다이어몬드 같은 것입니다. 아니, 주님의 영광과 임재는 다이아몬드의 가치와 천만배, 억만배로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영광을 취하고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며 주의 거룩함과 영광과 임재를 잃어버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세상 사람은 세상을 좇으며 세상을 추구하고 사랑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오직 주를 따르며 갈망합니다. 자기 욕망과 자아와 고집을 내려놓고 주의 손에 엎드러져 순복하기를 원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왕의 길을 찾지만 이들은 스스로 종의 길을 선택하고 자유를 포기하며 귀 뚫은 종이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어리석은 사람들이며 미친 사람들입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아내와 결혼할 때 아내의 집에서 반대하던 결혼을 간신히 승낙받고 결혼식을 올린 후 첫날 밤에 기도회로 모이는 것을 알고 장모님은 고개를 흔드시며 말했습니다.
“도대체 예수쟁이들은 이해할 수가 없어!”
세상인은 먹고 마시는 것과 육체의 욕망을 대단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것을 삶의 중요한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그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인과 다릅니다.
명문대학원을 나온, 부잣집에서 살던 아내가 왜 가난하기 짝이 없는 고등학교 중퇴자와 결혼하고 오랫동안 지하에서 살다가 천식을 얻어 죽을 뻔 하고, 그런 식의 선택을 했는지.. 세상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철학과 가치관과 다른 철학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상과 비슷한 많은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세상을 좇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혜로운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길입니다. 그것은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우리의 목표는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는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그의 사람으로 만드시는 그리스도의 훈련에 날마다 순종하고 합격하여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으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는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는 편안한 삶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는 오직 그리스도에게 순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왕이나 주인이 아니라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에 순복하며 날마다 그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자에게, 합격하는 자에게.. 세상을 따르지 않고 주를 순결한 마음으로 좇는 자에게 주님은 가까이 임하십니다. 그분의 풍성하심을 드러내십니다. 그것은 감추어진 영광과 아름다움의 세계입니다. 그것을 알고 누린 자들은 결코 그것을 목숨과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 가난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과 충만한 은총에 대하여 너무나 가난합니다. 이들은 탕자처럼 아버지의 영광을 떠나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를 얻으려 노력합니다. 세상을 기웃거리며 고생만 하고 얻지도 못하며 괴로워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사자 밥이 되면서도,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리스도를 갈망하고 사모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가까이 아는 이들에게는 세상의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며 세상의 핍박도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그 영광의 세계를 구하십시오. 그리스도의 그 풍성함과 영광 속에 들어가십시오.
세상과 핍박과 고난과 궁핍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자신을 드려 그리스도에게 함몰되십시오.
그분의 손 안에 자기를 드리십시오. 세상과 미래와 모든 생사화복은 오직 그분의 손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구하십시오. 사람의 영광을 구하지 말고 주의 영광을 구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발아래 엎드리십시오.
마음대로 살지 말고 항상 그분의 손아래 굴복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우리는 세상과 다른 세계를 갈망합니다.
세상과 다르게 구별된 자들, 진정 주를 갈망하는 자들에게 주님은 가까이 자신을 드러내시며
측량할 수 없는 그의 영광과 풍성함을 공급해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첫댓글 정원목사님의 글입니다.
너무나 은혜입니다..
정원목사님 책은 거의 다 좋아요.
거의가 아니고 100%입니다. ^^ ㅋㅋㅋ
예~ 내용면으로 보면 100%인데... 책끼리 중복되거나 비슷한 내용이 있는게 있어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