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는 언제나 옳다 *
새는 마음속에 미움이 없다
증오도 분노도 없다
인간은 인간을 미워하느라
잠 못 이루는데
새는 새를 미워하지 않는다.
새는 마음속에 원수가 없다
오히려 내 마음속에 있는
원수를 데려가
창공을 난다
원수를 사랑할 줄 모르는
내 마음속에
원수가살지 않도록
새벽 일찍 날아와 내 창을
두드린다
새는 원한을 원한으로 갚는
원수를 원수로 갚는 인간을
가장 슬퍼한다
새가 하늘을 나는 것은
버릴 수 없는 내 원한을
지평선 너머로
멀리 버려주기 위한 것이다
새는 언제나 옳다
새가
사랑하는 것은 언제나 옳다
새는 진리를 위해 하늘을 난다
땅에서는 인간의 거짓을 쪼아 먹고
하늘에서는 진리의 똥을 눈다
* 새는 인간의 영혼 *
아침에 일어나면 부라인드를 올리고 창밖부터 살펴본다, 새들을 위해 아내가 창밖에 헌식대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새들은 날이 밝기만 하면 헌식대로 날아와 모이를 쪼아 먹는다. 약간 묵직한 국그릇만 한 그릇에 종이컵 한 컵 정도의 쌀을 담아놓으면 보통 한나절이면 다 멊어진다.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먹을 것을 찾기 어려운 겨울철에는 더 빨리 없어져, 겨울 한철 10킬로그램 쌀 서너 포대가 모두 새 모이로 없어질 때도 있다.
내가 아파트 1층에 살기를 좋아하는 까닭은 바로 이 새들 때문이다. 대부분 고층을 선호하고 아파트 값 또한 고층이 더 비싸지만 1층에 살면 새들에게 물과 모이를 줄 수 있는 것 외에도 여러가지 장점들이 많다.일단 승강기를 타지 않아서 좋다. 승강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의 낭비도 없앨 수 있고,이미 개인화된 이웃들을 그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주 마주치지 않아서 좋다.
아파트 1층은 대부분 베란다 쪽으로 크고 작은 정원이 확보돼 있고 이런저런 나무가 심어져 있다 나는 가끔 정원에 내가 나무를 심은 듯한 착각에 빠질 때가 있는데, 그런 착각에 대해 뭐라고 시비 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구나 아파트 1층이 바로 산자락 밑에 있으면 창밖을 내다보기만 해도 내가 마치 신속에 집을 짓고 사는 듯한 착각에 빠질 때도 있다.
처음으로 산 자락에 있는 아파트 1층에 살 때였다. 겨울이 되자 새들이 먹을 게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맨땅을 자꾸 쪼아대었다.그걸 본 아내가 "겨울이라 새들이 배가 고픈가 보다"하고 창밖으로 쌀을 몇 줌 뿌려 주었다. 새들이고맙다는 듯이 아주 맛있게 쪼아 먹었다. 아내는 그날 이후로 아예 정기적으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쌀을 뿌려주었다.
새들은 새벽 일찍 날이 밝기만 하면 날아와 모이를 쪼았다. 휴일이라 늦잠을 자려고 해도 새소리 때문에 일찍 잠을 깰 때도 있었다. 물론 낮에 주로 날아와 모이를 쪼아 먹지만 일몰 직전에 더 많이 날아와 쪼아 먹고 그날 하루식사를 마무리했다. 어둠이 깃들면 일절 날아들지 않았다. 한번은 참새 스무여 마리가 떼 지어 날아와 소나무 가지 끝에 앉아 있었다. 맨 윗가지부터 중간 가지와 맨 아래 가기까지 세 그룹으로 나뉘어 앉아 있었다.
얼른 모이를 뿌려주었다. 맨 아래 가지에 있던 새들이 순식간에 내려와 모이를 쪼아 먹었다. 그런데 그 그룹의 새들이 계속해서 자기들만 쪼아 먹는 게 아니었다.두세번 정도 콕콕 쪼아 먹고는 포르르 맨 윗가지로 날아갔다. 그러면 맨 윗가지에 있던 새들이 그사이 아래 가지로 미리 내려가 있다가 얼른 바닥에 뿌려진 모이를 쪼아 먹었다.
그들 또한 한꺼번에 많이 먹는 게 아니라, 톡톡 몇 알 쪼아 먹고는 다시 맨 윗가지로 날아갔다. 그러면 맨 윗 가지에 앉아 있던 새들이 다시 중간 가지로 내려앉고 중간 가지에 앉아 있던 새들이 다시 맨 아래 가지로 날아가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이런 상황은 한동안 계속 되풀이 되었다.새들이 그룹별로 차레차례 순서를 지키면서 서로 모이를 나누어 먹었다. 어느 힘있는 구룹이 독식하는 게 아니라 서로 양보하며 나눠 먹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은 먹을 게 있으면 서로 많이 먹으려고, 혹은 적당한 기회에 독식하려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새들은 그러지 않았다.
'아, 인간이 새보다 못하구나!" 나도 모르게 탄식의 신음이 새어 나왔다. 베란다 창틀에 연결해놓은 에어컨 실외기 위에 새들이 항상 찾아와 먹을 수 있도록 물과 모이를 구비해놓기 시작한 것은 그날 이후였다. 헌식대가 마련되자 참새뿐만 아니라 박새, 멧새,오목눈이, 직박구리, 사까치, 심지어 딱따구리도 나라들었다. 박새나 참새는 겁이 많아 자기보다 큰 새들이 있으면 선뜻 다가오지 않았다.
큰 새들이 모이를 다 먹고 날아가버릴 때까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기다렸다. 까치나 직박구리 등 몸집이 큰 새들은 욕심이 좀 있어서 혼자 먹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적당히 먹고 물러날 줄을 알아 서로 먹이다툼을 하는 일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쇠박새나 진박새같이 10세티미터 정도 되는 작은 새들이 모이를 먹는 걸 보면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기 짝이 없다, 목에 검은색 넥타이을 한 듯한 박새가 모이를 쪼며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넋 잃은 듯 바라볼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박새처럼 작은 새는 경계가 철저하다.자칫 잘못 고양이 한테 잡아먹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없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다가 안전하다고 판단돠는 순간 날아와 모이를 먹지만 그 또한 한꺼번에 많이 먹지 않는다. 안타까울 정도로 겨우 몇 알 쪼아 먹고는 바로 다른 새들이 먹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준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새들의 삶인가.
가을에 헌식대 가까이에 있는 감나무에 주황빛으로 잘 익은 감이 주렁주렁 달리면 그때부터 우리 부부는 긴장한다. 감을 지키기 위해서다. 아무리 새들이 먹게 따지 말라고 해도 아파트 주민들이 다 따서 가져가버린다. 아파트단지 내에 있는 것은 주민 공동의 것이니 주민인 내가 먹고 싶어서 따는 게 무슨 잘못이냐는 태도다.
한번은 아파트 관리 사무소 측에서 감을 따서 원하는 주민들에게 나눠주겠다고 안내문을 붙여놓은 적도 있다. 인간은 감 하나에도 그렇게 이기적이고 추하다. 서로 모이를 나눠 먹는 어린 새들보다 못하다. 지금도 헌식대는 아내가 관리한다. 봄이 오고 꽃이 피고 벌레들이 생기면 새들은 먹을 게 많아지기 때문에 인간이 준비한 헌식대로 잘 날아오지 않는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야생에서 스스로 모이를 구하는 게 자연에 사는 새의 생존 법칙이다.그러나 겨울에 땅이 얼고 눈이 많이 내리면 이 도시화된 세상에서 새들은 제대로 먹이를 구하지 못한다. 작은 새들이 낙엽이 쌓인 눈밭에 고개를 박고 모이를 찾는 모습은 참으로 가엾고 안쓰럽다. 먹을 게 없어 굶주리는 겨울 새들이 내 아파트 1층 헌식대를 찾아와 먹이를 쪼며 기뻐하는 모습은 바로 나의 기쁨이다.
새는 인간의 영혼의 모습이다.. 노을 지는 천수만이나 금강 하류에서 가창오리 떼의 군무群舞를 보면 참으로 황홀하고 찬란하다, 첫눈 위로 걸거간 새들의 발자국은 또 그 얼마나 순수한 아름다움인가, 나는 죽어 새가 되고 싶다. 사랑과 진리를 찾아 날아가는 작은 새!
- 정 호 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