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이는 어딨 어요? '
늘 고양이 안부 부터 묻는 손녀딸
강아지처럼 옆에서 따라 주면 좋으련만 고양이는 시크하다
그래도 요즘은 손녀딸이 주는 간식을 먹고 곁에서 만지는 것을 허락한다
긴 연휴 첫날 홍천집에 와서 계곡가 밤나무 아래서 밤 줍기 체험도 하고
계곡물에서 잠시 놀기도 하며
아빠 엄마가 읍내 카페에 커피 마시러 간다 해도 손을 흔들며 갔다 오라 하고
할머니와 꽃밭에서 꽃도 따고 여치와 사마귀도 구경하며 호기심을 한껏 올린다
디딤돌에 그림도 그리고, 양양이 꼬리 몰래 만지며 놀라는 표정도 짓고
4살짜리 손녀딸은 자연속의 모든 것이 궁금하고 즐겁기만 한가 보다
동네가 궁금하면 할아버지에게 산책을 가자고 한다
추석연휴 첫날은 홍천집에서 여러 체험을 하고
추석날은 할머니 나무에 인사드리고
양양바닷가에서 파도를 따라다니며 즐겁게 지냈다
저녁에는 시누네 식구들과 바베큐파티를 즐기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아들의 대학입시를 잠시 도와주었던 조카는
대학시절까지의 여유로웠던 그래서
철없이 행복하게 호기를 부리며 성장했다
그러던 조카가 본가의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는데 무슨 결심인지
어느 날 느닷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을 데리고 유학을 떠났다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많이 힘들고 외로웠던 10년간의 날들은
조카에게 많은 경험과 소소한 행복이 무엇인지 일찍 알아차리게 한 것 같다
대학에서 제자들을 키우는 교직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이
어려웠던 시절의 보상을 받고 있다며,
이젠 아버지 보다 훌쩍 커 버린 고2짜리 아들의 등을 쓸어주며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한다
조카와 아들은 대학에서 직장에서 같은 계통으로 연계되는 일이 있어
가끔 연락을 하나 보다
어려서는 여행도 같이 다니고 가깝게 살다 보니 형제처럼 지냈다
지금은 부모들이 홍천에서 같이 사니
형제들이 많지 않은 요즘 시절에, 서로 바쁘게 지내다
여름휴가나 이런 추석연휴에 만나 술잔을 나누며 옛날이야기,
지금 사는 이야기 나누니 참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첫아들 낳고 9년 만에 낳은 조카의 딸(9살)과 나의 손녀딸(4살)이
고기 구웠던 잔불에 마시멜로우를 노랗게 구우며 마냥 행복해한다
두 집안의 3대가 모여 웃고 떠드는 모습과 이야기가 밤하늘에 스며들어
돌아가신 조상님들이 미소짓고 계시지 않을까
추석 며칠 전 남편의 5 남매 부부가 모였다
한 시대가 지나가는 75세에서 88세 사이의 남매들이다
나는 알 수 없는 남매들의 어릴 적 이야기들이 조각을 맞추어
한 장 한 장의 필름들로 만들어져 상상을 하게 만들고 영화처럼 펼쳐진다
6.25가 가까워지면 TV에 나오는 피난민들의 모습처럼
그들의 기억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묘사된다
일제에서의 해방과 6.25 전쟁을 직면했고
1.4 후퇴 때 피난을 가며 어머니는 2살짜리 시누를, 15살형은 5살짜리 동생을 업고
춥고 힘들고 배고픈 와중에 서로 잘못 알고 있었던 일들을
이제야 이야기하며 웃음들을 참지 못한다
건축설계사였다는 시아버지는 일 때문에 지방에 계시다
식구들을 만나러 오시는 길에 행방불명되셨다는데
일 년에 13번의 제사를 지냈지만 아버님의 제사는 지내지 않았다
혼자서 5남매를 키우셨던 어머님의 고생을 난 도저히 상상도 못 한다
일제의 막바지 만행을 피해 아이 셋을 두고 사별한 아버님과 혼인한 어머니는
결혼 몇년 만에 6.25가 터 졌다 어머니 나이가 26세였다고 한다
1.4 후퇴 때 지방에 있는 남편을 기다릴 수가 없어
5남매를 데리고 23일을 걸어 시댁으로 갔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남이 살고 있던 서울집을 다시 찾느라 많은 고생을 했고
그 집에서 대학생들 하숙을 시키며 자식들을 키우셨다 한다
다행히 남매들은 공부도 잘했고 큰 시아주버니가 건축학과를 나와 아버님의 뒤를 이었고
지금은 둘째 조카가 건축학과를 나와 설계사무소를 지키고 있다
유난히도 형제애가 깊은 남매들로 자랐고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며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일 년에 한 번은 어머님을 모시고 일본 온천여행을 5남매 부부가 함께 다녔다
마지막 여행은 홍천집에 모두 모여 2박 3일간 설악산과 삼봉약수터를 다녀왔다
단풍이 고왔던 10월 23일쯤이다
그리고 그해 12월 26일 어머님은 폐암으로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어머님은 홍천집 앞마당에 수목장으로 모셨다
어머님이 가신뒤에도 형제들의 모임이 한 달에 한 번, 그리고 일 년에 한 번 여행을 다녔지만
언제부터인지 여행은 못하였고 모임도 두 달에 한번, 이제는 일 년에 서너 번
두 형과 누나가 휠체어와 지팡이에 의지 해야 외출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추석을 앞두고 만났던 형제들의 시간은 애잔했지만 즐거웠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피난길 이야기부터 오빠와 동생들 때문에
엄마와 같이 고생하며 자신을 희생했던 큰 시누의 한 맺힌 공부 못한 이야기와
형제애가 좋았지만 털어놓지 못했던 서운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그리고
이제는 모두 이렇게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해했다
큰 시누 남편이 작년에 돌아가시어 못 만났지만
올해 큰 시아주버님과 작은 시아주버님의 수술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기운들이 활발하시어 마음이 놓였다
추운 겨울 잘 보내고 따뜻한 봄날에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어머니를 모시며 소소한 일에 불편이 있었고 말씀에 서운함이 있어 서러웠던 시절
이 나이가 되어 뒤 돌아보니 언제나 당차게 사실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어머니의 표현방식이 늘 나를 긴장시킨 것 같다
어머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나는 감히 말할 수가 없다 내가 겪어 보지 않았기에...
혼인한 순간부터 엄마라는 이름으로 남편의 부재(不在)에도
혼자서 5남매를 남들에 뒤쳐지지 않게 키워내신 어머니께
뒤늦은 아픔과 그리움이 밀려든다
13번의 제사가 버거워 힘들다고 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고
아이들이 한창 잘 먹고 잘 놀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에
마음 한끝이 허허롭다
아침안개가 골짜기에 아스라이 피워 오르는 것처럼
지나온 시간들의 온갖 상념들이 피워 오르며
나의 감정들이 성글게 엉키고 있다
가을바람이 자작나무잎 사이로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