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적돌봄과 임상목회교육
임상목회 교육을 진행하면서 만난 신학생들은 대부분 임상목회 교육을 상담 훈련으로 생각하였다. 아직 임상목회 교육이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신학교 상황에서 가장 비슷하게 이해할 수 있는 틀은 목회상담이기 때문이다. 임상목회교육은 분명 실제 상담훈련을 위한 효과적인 교육이 되기도 하지만 이는 임상목회교육의 특성을 모두 설명해 줄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목회상담에 종속되지 않고 임상목회 교육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선 목회상담이 아니라 목회 돌봄이라는 구분된 용어 사용이 필요하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상담자가 특별한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상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목회자가 일반적인 성도를 대상으로 영적 돌봄 훈련을 하는 것이 임상목회교육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용어 정의만으로는 여전히 한계가 있는데 영적 돌봄의 영역은 임상목회 교육에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역시 전체 교육을 설명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2. 영적돌봄을 넘어 임상목회교육으로
192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임상목회 교육의 출발은 신학교의 이론중심 교육의 한계를 지적하며 목회 현장교육을 시도한 것이다. 주요한 훈련의 방법으로 대화록이라는 목회자의 돌봄 영역이 사용되었고 후에 이 부분이 발전하여 전문적인 목회상담 운동이 발전한 것이다. 임상목회 교육 운동의 출발과 목표는 목회자의 돌봄을 위한 훈련이 아니었던 것이다.
미국의 임상목회교육 운동을 연구했던 독일의 목회자요 학자인 헤인지 페이버는 미국의 신학생들이 목회적 돌봄의 훈련을 받지도 않고 먼저 목회적 돌봄을 실천함으로 목회적 돌봄을 배우고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이 가능했던 것은 돌봄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돌봄이라는 중요한 방법을 통해 실제 목회 임상을 하며 목회자의 정체성, 신학적 성찰, 영성, 리더쉽, 관계력을 향상되고 돌봄 능력도 익혀 나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임상목회교육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보이슨은 목회자의 돌봄의 측면에 많은 관심이 있었고 그의 영향력은 임상목회 교육 역사에 중요한 갈등과 발전의 요소를 남겼다. 하지만 전반적인 임상목회 교육 운동은 목회자의 실제 임상 교육에 목표가 있고 중요한 방법으로 돌봄이 사용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