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고백 믿음의 표현
로마서 10:9-15 / 권오진 목사
기독교는 예배를 강조합니다. 목회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예배는 참석하라고 가르칩니다. 성도들도 주일예배만큼은 꼭 지키기를 원합니다. 만약 예배에 빠지면 기독교인으로서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핵심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만큼 기독교가 예배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방증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예배를 강조하면서 목회자는 정작 예배의 의미, 예배순서의 의미를 가르치지 않았고, 성도들은 가르침을 받지 못한 채 습관적으로 예배하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에서 예배에 대한 말씀을 계속 전하고 있습니다. 횟수로 오늘이 5번째 설교입니다. 먼저, 우리가 예배에 대해 사용하는 표현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목회자나 성도들을 대하다 보면 예배에 대해 대체로 세 가지로 표현합니다. <① 예배드린다. ② 예배본다. ③ 예배한다.> 어떤 말이 가장 바른 표현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은 세 가지 중 어느 것을 사용해도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① 예배드린다. =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표현은 <예배드린다>라는 말일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예배학을 배울 때 예배의 정의를 이렇게 배웠습니다. “예배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그리고 거기에 꿇어 엎드리고 그에게 최상의 가치를 드리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우리의 최상의 가치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예배드린다는 표현을 많이 썼습니다. 예배드리고 회의하자, 예배드리고 식사하자는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예배순서를 생각해보면 찬송과 기도, 헌금은 드리지만, 기록된 말씀(성경봉독)과 선포되는 말씀(설교)는 일방적으로 선포되기에 우리는 받게 됩니다.
그러니 예배에 드리는 요소, 받는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예배드린다’ 라는 표현은 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② 예배본다. 믿음의 선배들이 주로 ‘예배본다, 에배보자’라는 말을 했습니다. 어르신들이 이렇게 표현하자 나름 똑똑하다는 젊은 층에서 그 표현은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배학에서는 그 말을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말에서 ‘본다’라는 말은 단순히 눈으로 본다는 의미하나만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본다는 말은 ‘경험’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장 본다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하지요. 경험이 들어있지요) 맛본다. 들어본다. - 여기에도 경험이 들어있어요. 그러니 예배본다는 말은 눈으로만 본다는 말이 아니라,
예배를 경험한다, 참여한다는 말이기에 “예배보자”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③ 예배한다. 예배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은 “예배한다”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경에 그렇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구절 세 구절을 인용해보겠습니다. ▥ 시편 132:7 “우리가 그의 계신 곳으로 들어가서 그의 발등상 앞에서 엎드려 예배하리로다” ▥ 요한복음 4:23-24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 시편 96:9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이렇게 성경에는 “예배한다”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예배 한다” 라는 말속에 예배의 모든 행위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예배에 대해서 말할 때 <예배드린다. 예배본다.>라는 말을 사용해도 되지만 이왕이면 “예배한다. / 예배하자”라고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부터 예배에는 다섯 가지 중요한 요소가 들어있었습니다. <예배에 중요한 다섯 부분> ① 말씀선포 ② 성찬 ③ 신앙고백과 기도 ④ 찬양 ⑤ 성도의 교제 다섯 요소가 예배에 들어있는 이유는 이 요소들이 성경적 의미를 지닐 뿐 아니라, 이들을 통하여 하나님과 만남이 가장 잘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요소 중에 <말씀선포, 기도, 찬양>에 대해서는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신앙고백>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신앙고백에 대해 설교를 준비하는데 머릿속에 드라마 대사가 하나가 맴돌았습니다.
2004년 방영된 <파리의 연인>이란 드라마에서 나오는 대사입니다. 드라마 내용은 ‘까칠한 재벌 2세인 한기주 역을 박신양 씨가 하고, 평범한 여자인 김태영 역을 김정은 씨가 하는 사랑 이야기’ 이 드라마 절정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사진에도 나오지요. 1. 파리의 연인 (2).jpg <그림 1. 박신양, 김정은 사진과 대사> 박신양 : 저 남자가 내 사람이다! 저 남자가 내 애인이다. 왜 말을 못하냐구!!! 김정은 : 어떻게 그래요!!! 내가 어떻게 그래요!! 그러자 박신양 씨가 말을 못 하고 키스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박신양 씨가 사랑하는 김정은에게 바라는 것은, 아무리 평범한 여자라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떳떳하게 “저 남자가 내 사람이다! 저 남자가 내 애인이다.”라고 당당하게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신앙고백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믿고 있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나에게, 우리에게 이런 분이야!’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서, 성도 앞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밝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확실하게 신앙 고백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흐뭇하게 여겨주실 것이고, 우리도 그 고백 할수록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 깊어질 것입니다. 오늘 로마서의 본문을 보세요. 성도가 입술로 고백하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합니다. 먼저 9-10절을 보세요.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예수를 마음에 믿고, 그 믿음을 입으로 고백하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 동전에 양면처럼 믿음과 신앙고백은 하나입니다.
제가 로마서를 강해하면서 이 말씀을 본문으로 잡고 설교할 때 불교계의 큰 스님으로 일컬어지는 <성철 스님>의 삶과 유언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성철 스님은 장좌불와(長坐不臥; 결코 눕지 않고 꼿꼿이 앉은 채로만 수행하는 방법) 8년, 동구불출(洞口不出: 수행하는 선방이나 토굴, 절 밖으로 나가지 않는 수행방법) 10년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신 분입니다. 그 정도 수행했다면 임종할 때에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정토(아미타불이 살고 있다는 아주 깨끗한 세상) 보이고, <나는 지금 극락으로 가노라> 하면서 멋지게 임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성철스님은 엉뚱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남긴 유언을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 죄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어찌 감당하랴. 내가 80년 동안 포교한 것은 헛것이로다. 우리는 구원이 없다. 죗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딸 필히(세속의 딸 이름 : 불필(필요 없다))와 54년을 단절하고 살았는데 죽을 임종 시에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필히야, 내가 잘못했다. 내 인생을 잘못 선택했다. 나는 지옥에 간다.】 성철스님의 유언을 보면 비록 지옥에 가면서도 정확하게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불교에는 구원이 없다. 이유는? 죗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보세요. 우리 기독교인에게는 누가 있습니까?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히 살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이 사실을 고백하는 자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철 스님이 이 진리를 아셨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이어지는 11-12절에는 믿음에는 차별이 없고, 누구든지 믿으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13절에서 15절까지는 그 유명한 <복음 전파의 5단계 / 구원의 5단계>를 말씀합니다.
【복음 전파의 5단계 / 구원의 5단계】 1단계 - 보내심 (파송) :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15절) 2단계 - 전파함 (전도 및 설교) :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4절) 3단계 - 들음 (복음을 경청함) :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14절) 4단계 - 믿음 (예수에 대한 신앙) :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14절) 5단계 - 부름 (신앙고백)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3절) 이 본문을 바울이 기록할 때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복음(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을 예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은 누군가가 복음을 전해주셨기 때문이듯,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도 핍박으로 힘든 상황이지만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라고 강조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 전파의 5단계> 중에 마지막 단계에 초점을 맞춰보겠습니다.
5단계는 = 부름 (신앙고백)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3절) 여기서 ‘주의 이름을 부른다’ 라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간략하게 설명하면 <예수를 자신의 주로 삼고 예수님의 뜻에 따라 살아겠다는 신앙 고백이기도 하며, 특히 공적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는 증거였습니다.> 당시는 로마의 황제를 ‘주라’ 칭했을 때인데, 기독교인들은 아니다. 우리에게 “주님”은 예수님이라고 공개적으로 고백하기는 쉽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런 시대에 바울은 믿음이란 <마음과 입술에서 동시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있다고 신앙고백을 해야 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고백은 중요합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신앙고백문의 하나가 <사도신경>입니다. 사도라는 말은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고, 신경(信經, Creed)이란 말은 보충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신경(信經, Creed)이란 말은 영어로 ‘크리드(creed)’는 라틴어 ‘크레도(credo)’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크레도는 ‘내가 믿는다(I believe)‘라는 뜻입니다. 신경이란 일차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 신앙의 고백 문이지만, 전(全) 교회가 역사적으로 인정하는 신앙고백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 교회가 예배하며 공동으로 신앙고백 하는 것은, 이런 공동체적 의미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사도신경으로 초점을 맞춰봅시다. <사도신경>하면 성도들은 생각 없이 열두 사도들이 만들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도신경에 관한 대표적인 오해입니다. 오해하는 내용을 설명하면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신 후, 열두 사도가 부활의 주를 전파하기 위해 전 세계로 흩어지기 전에 사도신경의 한 항목씩 발언했다고 봅니다.
즉, 베드로가 첫 항목인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라고 말하자, 나머지 사도들이 한 항목씩 덧붙였고, 맨 마지막에 죽은 가룟 유다 대신 보선된 맛디아 “영생을 믿습니다.”라고 마쳤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렇게 믿는 이는 없습니다. 심지어 가톨릭 신학자들조차도 이렇게 믿지 않습니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았고, 역적인 발전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습니다. 사도신경의 기본내용에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사용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아시지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틀로 잡고, 거기에다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의 사역에 관한 내용을 보충해 나갔습니다. 그 결과 주후 390년경에 <사도신경>이 만들어졌고, 주후 404년 공적으로 채택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현장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도신경이 교회에 필요한 이유는 크게 네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사도신경의 필요성 4가지> 첫째, 교회가 설교나 전도를 위해 기독 신앙에 관해 표준적 내용이 필요했기에 둘째, 공적 예배에 합당한 의식을 위해 필요했기에 셋째, 기독교에 입문하는 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체계적인 내용이 필요했기에 넷째, 이단의 가르침을 맞서서 올바른 기독 신앙을 수호할 필요가 있었기에 이런 필요에 따라 사도신경도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오늘도 고백했지만, 다시 큰 소리로 읽으며 고백합시다. 【 사도신경 】 1.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2.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3.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사도신경에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사실 모든 문구는 소중하고 뜻이 깊습니다. 내용을 하나씩 구체적으로 설교한다면 열 번 이상 설교해야 합니다. 오늘은 사도신경의 의미에만 초점을 맞출 뿐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모든 내용으로 설교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주일 낮 예배와 새벽기도회에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는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 하는 이유 3가지> 첫째,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되돌아볼 자기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주기 위하여 둘째, 신앙고백 하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 거룩한 공교회의 구성원이라는 영적 유대 의식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셋째, 교회가 자리한 주위의 세상에 대해 그리스도인이 믿는 바가 무엇인지 알리기 위하여 신앙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제부터는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할 때, 자신의 신앙으로 온전히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신앙고백 하는 자에게 주시는 영적 축복을 누리고 살아가는 우리가 모두 되시기를 우리 주 에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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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님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一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