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성의 진면목 발견
1. 승작골 인심
이번 안성 포럼 웤샵은 여러가지 의미로 새롭게 다가옵니다.
승작골은 양팔로 옹위하 듯 야트마한 산으로 둘러싸인 별천지
시내가 끝나고 곳, 커다란 바위 아래로 가재가 자라는
맑은 물이 샘솟는 원천이 나오더군요
샘터에는 널찍한 터전이 있고,
거긴 정자를 세우려고 쌓아둔 목재인지
오래전부터 부스러져 방치되고 있더군요
"집짓기에 바빠 정자공사는 손도 못대었지요...
내년 여름에는 이곳에 정자를 세울테니 놀러들 오시우"
넉넉한 인심이 드러나는 주인의 제안에
이웃 건지리 사는 일가가 선뜻 공작새 한마리를 선물하더군요
깊은 산골 샘터에 공작새가 부채살을 펼치고 나타나면 어떤 느낌일까요?
내년에는 정자에 올라 앉아 공작새가 펼치는 화려한 춤사위를 볼수 있을런지...
무엇보다 놀라운건
여주인이 정성스레 내놓은 한 상,
찹쌀처럼 찰진 안성미로 지은 밥,
제 입엔 아끼바리쌀보다 맛이 나은 듯했습니다
주변 산에서 주워와 손수 빗은 도토리묵,
텃밭에서 길러낸 풍성한 채소,
후식으로 내놓은 인절미,
농익은 포도, 배...
천여평의 넓은 밭에는
한아름이나 됨직한 배추가 서너이랑 자라고 있더군요
"이곳 배추가 맛이 좋다며
누님들은 해마다 우리집에 몰려와서 합동 김장을 해가요"
수년전 년 골짜기에 처음으로 터전을 잡아서
집을 짓느라 바빴던 손길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승작골은 그사이 이웃집들이 많이 늘어나 조그만 촌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집집마다 길가에 국화며 황화를 소담스럽게 키워내어
온동네가 환하게 밝게 빛나더군요
2. 성은리 문예공간
등단 시조시인 권재 족제를 뒤따라가
성은리 문예공간 <심상(心象)>을 찾았던 것도 남다른 의미가 있었습니다
옛집 행랑채 자리에 모던한 구조로 개조하여 아들은 카페를 열고
문인들 열린공간으로 꾸며놓은 한옥 본채는 옛 정취가 그득하였습니다
조부로부터 물려받은 한옥,
제일 동측방 서재에는 앉은뱅이 책상이 놓여있고
서가에는 선친께 물려받은 고서적이 빽빽하였지요
저서 『뫼비우스 띠를 걷다』 시집에 싸인을 하며 나눠주고있는데
난데없는 집시의 바이올린 잔잔히 음률이 깔리고
시를 낭송하는 낭낭한 목소리가 서재안에 울려퍼면서
순식간에 방안이 가을 정취로 가득하였습니다
포럼회장의 낭독은 능숙하고,
권재 작가의 목소리는 진솔하였으며,
건지리 회장의 목소리는 삶의 체취가 묻어나고 있을 즈음
뜨락에는 모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더군요
주저리 주저리 소개하며 흥이 난 권재씨
본래 문인들이 모여들어 낭송회가 열리던 곳이라고
예전에 퓨전 국악을 하는 팀이 마당에 콘서트를 열었던 적이 있었다고
"형님, 이곳 심상카테 마당에 무대를 차려서
조촐한 공연을 한 적이 있었어요,
포럼에서도 한번 해봐유.
장소는 얼마든지 제공할께유 "
라고 대뜸 제안을 하자
"그럼 오는 겨울에 날잡아서
포럼 북콘서트를 한바탕 벌여봅시다"
포럼회장 소강선생이 얼른 맞장구치고,
안성 성은리에 이런 문화공간이 있었는지 몰랐군요
새로이 발견한 안성의 진면목입니다
3. '각금(覺今)'이라는 당호
”어제까지는 그른걸 지금 깨달았으니 붉게 물든 단풍에 눈내리는 고향에 나 돌아가리라 각금작비覺今昨非.“
유재욱, [ 돌아가야지 : 귀거래향鄕 ] 중에서- |
절충장군 묘소에 오르면서 재욱씨에게 말한 내용입니다
"고삼 목사공 묘갈을 살펴보면, 목사공은 만년에 벼슬을 떠나 부여에 터잡고 '각금'이라는 정자를 지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각금(覺今)'이라는 뜻을 직역하면 "지금 현재를 깨닫는다"라는 과거나 미래를 떨치고 현재에 집중하는 심오한 불교적 철학이 담긴 듯도합니다
재욱씨가 요즘 연속으로 포럼에 올리고 있는 '지금 현재 삼각산00시00분'이라는 표제와 유사한 느낌이 드는군요. 이러한 의도가 만약 각금이라는 뜻에 서로 부합 된다면 '각금'을 당호로 사용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군요 더욱이 선조 목사공이 작호한 것이니만큼 그 의미가 남다르겠지요"
오랜직장을 떠나 새로운 프로젝트로 바쁜 듯하여 조금이나마 격려와 위로의 말을 전하자.
"깊은 철학적 의미가 마음에 와 닿네요"
라며 재욱씨가 공감을 하는가 싶었는데 오늘아침 아주 제대로 시로 자신의 의사를 표출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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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도연명의 귀거래사
「다시 옛집에서」
“지난길 자취없이 서산 넘는 달을 보며 그동안 어질러진 내삶의 잔해를 걷고 이제는 도잠이 된 듯 귀거래를 노래하네"
유권재, 『뫼비우스 띠를 걷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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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시간에 일행에 합류한 성은리 권재족제는 2000년 계간 `시조문학`지로 등단한 (사)한국시조문학진흥회 상임이사 역임했는데, 그의 시조집 ` `뫼비우스 띠 위를 걷다` 에서 한 편을 골랐습니다.
인용한 시쉬절은 도잠(도연명)의 귀거래사에 나오는 "覺今是而昨非(각금시이작비)"를 풀어쓰고 있습니다. 재욱씨의 위 시귀와 유사한 의미를 취하고 있지요. 이는 목사공이 만년에 부여 은산에 "각금정( 覺今亭)" 을 지었던 그 의취와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모두가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출전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렇지요 도연명의 귀거래사의 일부를 살펴보면,
歸去來兮(귀거래혜)/자, 돌아가자!
田園將蕪, 胡不歸(전원장무, 호불귀)/전원이 장차 황폐해지려하니,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旣自以心爲刑役 奚惆悵而獨悲(기자이심위형역 해추창이독비)/이제껏 스스로 마음이 육체가 시킨대로 사역 당했으니, 어찌 탄식하여 홀로 슬프기만 하리오
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오이왕지불간 지래자지가추)/이미 지나간 것은 따질 수 없음을 깨달았고, 아직 오지 않은 장래는 좇아갈 수 있음을 알았네.
實迷途其未遠 覺今是而昨非(실미도기미원 각금시이작비)/진실로 길을 잃어버린지 아직은 오래 지나지 않았다. 지금 (이러한 판단이) 옳고 지난날이 그릇되었음을 깨닫게 되누나.
여기서 " 覺今是而昨非(각금시이작비) 지금 (이러한 판단이) 옳고 지난날 그릇되었음을 깨달았네"라는 것은, 지난날의 잘못을 돌이켜서 오늘의 삶을 가다듬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지요 이것이 '각금(覺今)' 이라는 단어가 함축한 '각금작비(覺今昨非)'라는 의미입니다
나아가 선조 목사공이 보였던 삶의 지혜를 배우는 자세가 아닐까하는 생각입니다 이제는 선조들의 유적을 답습하는데 그치지 않고 선현들의 진실한 삶의 지향을 따라가 심오하고 내밀한 체취를 맡으려는 문화체험의 장이 될수 있도록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합니다
그점에서 금번 안성 포럼 워크샵은 특별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안성지방에 살다간 선조들의 삶의 족적을 살펴보면 유난히 현저하게 두드러진 분들이 많았음을 느낍니다 안성의 진면목은 여기 찾아야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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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삼저수지에 서린 풍격
계사년(1714) 한산군수로 옮긴지 얼마지 않아, 사소한 혐의로 사직하고 부여( 夫餘 )의 은산에 자리잡아 시냇가 정자를 짓고 '각금(覺今)'이라고 편액을 하였다. 장차 벼슬을 그만 두고 만년을 보낼 생각이었다
癸巳, 移韓山郡守, 尋因微嫌卽辭遞. 卜居于夫餘之隱山, 搆溪亭扁之以覺今, 擬爲休官經老計 -목사공(휘 명건)묘갈 중에서 |
고삼저수지 수변가를 둘러싼 수십만평의 산 아직도 문중소유라지만 아직 일반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곳 하산 유동준 전회장의 유택
울창한 숲길을 가다가 가파른 계단길을 올라 성묘를 하고나서 무심코 눈을 들어 건너편 산을 바라보다가 아!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경치 눈앞에 펼쳐진 드넓은 유리세계
그 투명한 물속에 잠겨있는 산 뭉덩뭉덩 섬처럼 늘여선 산들... 마치 목마른 거북이 목을 늘여 엉금엉금 기어가는 형상 하산선생이 아곳을 점지한 뜻을 알수 있을 듯 ...
"지난날 저수지 주변을 맴돌다가 몇번이나 자빠지고 넘어지며 우연히 이 묘소를 찾아 냈지요"
회고담을 들려주는 포럼회장 . 그만한 노고가 아깝지 않은 명당이더군요 새로이 발견한 안성의 진면목일 듯합니다
고삼저수지의 풍광은 여기서 정점을 찍은 듯
6. 에필로그
승작골은 기온부터 다르더군요 아침에 일어나보니 차유리에 내려앉은 서리가 두텁고 밭이랑에 남아있는 배추도 서리를 하얗게 덮어쓰고 있더군요
7:00시에 각금하노라니, 불현듯 겨울이 목전에 다가왔다는 강한 메세지
돌아오는길에
원곡 천덕산로 길가에 자리한 손두부맛집에 들러보니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시골맛,
막걸리에 곁들인 점심상은
가을 미각을 맛보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그보다 더한 친족의 푸근한 온정을 느끼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또다른 안성의 진면목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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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0. 22 |
첫댓글 좋아요 ^^
큰애 입시만 아니었어도 작은 녀석 데리고 가면 너무 좋았을탠데 다음엔 꼭 가야겠습니다^^
일가님들 수고하셨습니다.~
"안성맞춤" 이란 말을 이런 때 쓰는거군요.
역시 포럼 문화행사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가 없습니다.
행복한 1박2일이었습니다.
벌써 시즌 2가 기다려지네요~
감사합니다.
이번 포럼행사에서 받았던 감동과 마음을 유동재 포럼지기께서 글로서 잘 표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도 이글을 본다는 다시금 기억이 떠오를것 같습니다.
행사를 위한 행사가 아닌
행복한 행사 즐거운 행사 였고
일가분들 한분 한분 알아가고 친해진다는 것이 백세일실 그 자체인듯 합니다.
뜻깊은 우리 일가님들에 만남의 자리를 하셨군요~!
숭조돈목 의 실천 행사가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울 기계유씨 일가님들이시여 항상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