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문 받은 이 제목에 대해 나는 지금
무엇을 그대들에게 이야기하여 줄 수
있을까?
나의 그 "지랄같던", 그래서 "화려했던"
젊은 날의 초상에 대하여?
이제는 지도로는 갈 수 없는 그 어느 여름과
겨울날의 여행길에 대하여?
아프나 아름다웠던 사랑들에 대하여?
시대의 추움과 어두움 때문에 더욱 눈부시게
다가오는 우리들의 대학시대에 대하여?
아니면 근엄한 충고 한마디?
* * *
70년대 후반을 대학에서 보낸 우리들은
자신을 낭만시대 최후 주자라고 가끔씩
"자칭"하며 동시에 "자부"하여 왔다.
하여 투쟁을 위해 낭만을 장사지내 버린
80년대 학번들의 그 치열했던 "영웅적 삶"에
대한 외경에도 불구하고,
쪼끔은 동정 어린 말투로 그들을
비아냥거리곤 했었다. 동시에
그들도 우리들에 대해 거의 술독에 빠져
세월을 파먹은 낭만주의자들이라고 뒤에서 혀
끌끌거리며 불쌍해했었을 거다.
33개월만에 군대에서 학교로 돌아온 날의
학교 앞 과부집 귀환파티에서,
한잔의 건배 뒤에 80년대 학번 후배들이
술잔 거꾸로 엎으면서 한 말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이 시대는 술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래, 그들 말대로 우리시대의 낭만은
술에서 시작해 술로 끝났다.
칫솔 하나 안주머니에 꽂고 "술여행" 떠나면
돈은 없어도 일주일동안 술은 끊이질
않았고,
그 즐거운 일정을 같이 하는 술동무들도
두세 명은 반드시 있었다.
밤새도록 먹어도 그 다음날 어슴푸레해질
때면 다시 술병으로 손이 가는 체력과,
한번 떠난 술여행은 마치고 돌아가야지
중도에 포기할 수 없다는 오기도 있었다.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알코홀만 남아 온몸을
돌기 시작하는 느낌이
꼭 무슨 약먹은 것 같던 술집 변소에서의
깨달음과,
알코홀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그 나른한
아침나절의 신체의 오묘함도 그 때에 안
즐거움의 하나다.
지옥 같은 서울이 싫어 무작정 탈출여행
떠나면,
무임승차했다고 야단은 묵사발로 해도
슬며시 눈감아 주는 기차 차장이 있었고,
"지나가는 과객인데 하룻밤……"하면
잠자리도 주고 밥도 주던 시골 아주머니도
있었다.
우리의 대학시절은 그 술과 낭만 덕분에
절망스럽게 어둡고 추운 겨울을 조금은
따뜻하게 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 * *
우리 시대에도 멋은 있었다.
세월을 한바퀴 돌아 지금 서서히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내고 있는 듯한 장발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그것은 저항이었고
목숨을 건 것이었다.
우리들은 그 번뜩거리는 가윗날을 피하기
위해 광화문 네거리 이순신 장군 동상 앞을
횡단질주 하기도 하고,
서울역 지하도를 대여섯 계단씩 뛰어
내리기도 했다.
뛰면 말갈퀴같던 머리카락은 시대의 권력을
향해 죽을 듯이 그리고 발악하듯이 내보이던
"멋"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자신 때문에 아내마저 잃은
노인네가 심복의 총에 맞아 쓰러지던 날,
우리의 가슴을 친 것은 기쁨이 아니라
어쩌면 허망함이었던 것 같다.
그 숱한 나날들을 살피고, 눈치보고, 살
떨면서 고난을 피해온 우리들이었지만,
우리는 조용히 애도하였다.
한 시대와 함께 그렇게 우리를 절망 속에
있게 했던 그의 마지막 길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는 다음날 미련 없이 머리를
깎았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무릅팍 타진 청바지의 멋진
시절은 있다.
그것은 요새처럼 일부러 짼 그런 것이 물론
아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한 벌밖에 없어서
였다.
어려운 시절에 감히 입밖에 꺼내지도
못하다가 간신히 타낸 용돈으로 어렵게 사
입게 된 그 청바지 색깔은 얼마나
눈부셨던가.
한껏 멋부려 봐야 여름이면 면티 하나에 그
청바지, 겨울에는 털 빠지는 닭털파카에 역시
그 청바지였다.
하여 가슴설레이던 미팅에도, 호기부리고
싶던 엠티에도
항상 내 하반신에 붙어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 청바지는 좋으나 싫으나 얼마나
정이 들었던 존재였던가.
때문에 무릅팍이 타지지 않는 것이
이상했고,
그러면 몇백원 주고 세탁소에서 드르륵
드르륵 박아 다시 입곤 하였는데,
그 촘촘히 박힌 재봉실이 또한 멋이었던
것이다. 하기야
우리 시대에도 유행은 있어, 끝자락 올들올
풀어 헤쳐 바짓단이 너덜너덜하게 한
카우보이 청바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 * *
그래 우리는 술도 정말 "열심히" 아니 "죽을
듯이" 먹었다.
멋도 "목숨걸고" 그리고 조금은 "서글프게"
부린 셈이다.
그런데 낭만의 필요불가결적 장식품 같던
술도 담배도 이젠 다
최고 죽일 놈이 되어 버렸고, 멋도 구차하게
부리지 않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어둡고 습기찬 방에서 뿌연 담배연기 속에
싸여 충혈된 눈으로 무언가를 긁적거리고
있는
그런 이상 소설의 주인공 같은 인물이 왠지
폼나던 그런 시대가 아니다.
한말의 막걸리와 열한 병의 소주를 비워가며
인간과 사회와 자유를 논하고
200곡의 유행가를 외우던 시인이 멋있던
그런 시대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도라지 위스키가 아니라 밀러 맥주를,
보세품이 아니라 캘빈클라인을 그것도
위아래로 째고 막 폼을 내는 그런 시대가
도래하고도 한참 지났다.
"열심히" 나 "죽을 듯이" 도 빛이
바랬다.
"멋있게" 가 새로운 개념으로, "우아하게"
가 빛을 발하는 시대이다.
술도 과하지 않고 우아하게.
말도 과격하지 않고 폼나게.
행동도 거칠지 않고 멋있게.
옷은 더더욱이 우아하게, 폼나고,
멋있게.
70년대의 낭만주의자와 80년대의
현실주의자들이 차지했던 대학.
90년대 후반의 대학 캠퍼스는 어떤
주의자들로 채워지게 될까?
* * *
진정 내가 그대들에게 줄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나와 어언 20년의 차이가 나버린 그대들이
귀 기울일만한 그야말로 섹시한 말은
무엇일까?
아무리 굴려 봐도 나의 선생이, 그리고 나의
선배들이 일찍이 나에게 주었던 그
진부하지만 그래서 아름다운 말들을 다시 줄
수밖에 없을 것같다.
그 말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새삼스럽게
다가오기 때문에.
"멋"이 아니라 "맛"이 있게 할 것.
멋은 세월과 함께 퇴색하지만, 맛은 세월과
함께 더해지는 법이기 때문에.
"낭만"과 "현실"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할
것.
궂은 비 내리는 날 들어간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의 나름대로 멋을 부린 아가씨들은
낭만이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에.
그래서 왠지 한곳이 비어있을 그대 가슴에
이제까지 잃어버리고 온 것들을 돌아보고,
그리고 당분간 조금씩 조금씩 다시 채워 나갈
것.
그대들은 찬란하게 눈부신 젊음과 희망과
미래가 있기 때문에.
그래도 우리는 그대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김양주의 '대학생활의 멋과 낭만에 대하여?'(1996.12.18.)
에서.
용봉님의 글보고 불현 듯 떠올라 돌덩어리님의 카페에 올렸던 글을 가져와 덧붙여
편집해봤습니다.
찬찬히 읽어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첫댓글 개발도상국 이라며,힘들지만 그래도 인정과 도리가살아있던 70년대.새마을공장에서 잔업수당도없는 심야근무에 라면으로 허기를때우며 월급날은 그래도 시내 대영루짱게집에서 볶음밥먹고 OB베어에선 생맥주500CC, 거북선담배1보루, 보세청바지, 하남석 레코드판, 길모퉁이 몽실다방마담과 위티한잔, 아~옛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