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장수라면
요즘 신조어 가운데 ‘집밥’이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검색해보니 나오질 않았다. 인터넷 백과사전에는 “집 + 밥. 일반 가정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을 뜻하는 신조어. 반대말은 외식.”이라고 나왔다. 외식 비중이 높아지고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과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집밥이 새삼스럽게 주목받고 있다. 근래 방송에서도 집밥은 방송 소재로 종종 등장하는 추세란다.
우리 집은 고집스레 집밥주의자다. 외식은 아주 특별한 경우다. 지난해 연말 부산에 사는 작은형님이 남해 펜션에서 하룻밤 묶게 되면서 아우를 동행하고 싶어 했으나 내가 방학에 들지 않아 응할 수 없었다. 작은형님 내외가 부산으로 복귀하면서 창원에 들려 아우를 불러내어 용지호수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들었다. 집사람과 바깥에서 한 식사자리에 함께 앉아 본 최근 기억이다.
새해도 어느덧 일월 하순에 접어들었다. 넷째 토요일 아침 교지 교정을 마무리 지으니 점심나절이었다. 산책을 나서면서 집사람과 바깥에서 점심을 해결해보려고 마음먹었다. 외식이 드물었는지라 어디를 찾아가야 할지 머뭇거렸다. 언젠가 학교에서 정기고사 기간 중 동료들과 점심을 나눈 적 있는 사림동 어느 식당이 떠올랐다. 집에서부터 걸어가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 곳이었다.
아파트단지와 붙은 중학교와 교회를 지났다. 메타스퀘어 가로수엔 겨울 햇살이 등 뒤에 내리쬐었다.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는 집사람을 구슬려 바깥으로 나왔음이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 안에서만 머물면 마음이 자꾸 처지게 마련이다. 퇴촌교를 지나면서 창원천변 산책로를 거니는 사람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렇게 비타민D를 쪼이면 골다공증과 우울증이 예방된다고 일렀다.
주택가에 그럴듯한 인테리어가 된 한정식 집을 찾아갔다. 점심시간이 늦은 때여서인지 식당은 한산했다. 종업원 우리가 등산이라도 다녀온 걸음으로 착각했다. 주인장이 추천하는 점심 특선을 시켰다. 집밥과 마찬가지였지만 집사람과 오랜만에 바깥 밥상 앞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일월 초순 집사람 진료를 받느라 서울 오르내릴 때 바깥에서 끼니를 때운 적 있었지만 그것은 예외로 해야겠다.
우리 집에서는 김치에 된장국이나 고등어조림 정도인데 반찬 가지 수가 훨씬 많았다. 구운 쇠고기에 상추와 깻잎쌈이 나왔다. 푸성귀 겉절이와 새송이버섯 볶음과 감자 범벅에도 젓가락이 갔다. 우리 집 식탁에선 고작 서너 가지 찬이었는데 무려 열 가지에 이르는 황제 밥상이었다. 아침나절 제대로 한 일도 없었는데도 밥값이나 하는지 미안할 정도였다. 생탁을 한 병 시켜 반주로 삼았다.
점심 식후 집사람을 구슬려 사격장 근처 산책을 가고 싶었다면 여건이 허락하질 않았다. 집사람은 한 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나는 가까운 ‘창원의 집’을 둘러보자고 했다만 집사람은 힘들어했다. 퇴촌교에서 볕바를 창원천변을 걸어보자고 해도 마음을 얻지 못했다. 엊그제 대한이 지나 아직 추위가 한창이어야 할 때인데도 겨울답지 않게 날씨가 포근해 산책하기 알맞았다.
나는 집사람을 부축하다시피 해서 귀가를 서둘렀다. 집사람은 식사를 하긴 해도 으스스 한기가 들면서 속이 메스껍다했다. 점심을 먹은 사림동 식당과 우리 집 사이는 그리 멀지 않아 걸어서 십분 남짓 거리였다. 화창한 날씨에 창원천변을 거닐어도 좋고 반송공원을 올라도 좋은데 아쉬워할 처지가 아니었다. 제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해야 할 일이지 그렇지 않다면 아무 소용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베란다 창밖 바라보았다. 우리 집은 아파트 꼭대기 층이라 앞 베란다에 나서면 저 멀리 장복산 능선과 어제 걸었던 안민고개가 보였다. 뒤 베란다 창밖으로는 창원대학 캠퍼스 일대와 정병산 산등선이 비음산에서 대암산으로 이어졌다. 훠이 훠이 산자락을 오르고 싶었다만 마음뿐이었다. 마음은 장수라면 몸은 졸이라고 했다. 언젠가 마음 가는데 몸이 따라 갈 날 있으리라. 15.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