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야 미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현관을 벗어나서 4호선 전철 과천역의 2번 출입구까지의 거리는 좁은 내 보폭으로도 160보 정도의 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내는 우리 집 마당 밖에 전철역이 있다고 농담 삼아 친지들에게 자랑을 한다. 35도 이상의 혹독한 더위가 한반도 전체를 가마솥으로 만들고 있던 금년 여름 어느 날이었다. 아파트의 모든 문을 다 열어 놓고 선풍기를 세게 틀어 놓고도 더위를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서 곧바로 아내와 함께 우리가 개발한 돈이 안 드는 피서여행을 하려고 지하철역으로 갔다. 과천역으로 내려가니 마치 냉방시설이 잘 된 공간처럼 무척이나 시원하게 느껴졌다. 비록 미세먼지로 오염된 공기가 약간 마음에 걸리지만 너무 더워 도저히 신책을 할 수 없는 바깥을 피해 다른 날과 다름없이 지하철역 안에서 30분 정도 걷기운동을 한 후 오이도행 열차에 올랐다. 날씨가 너무도 더운데다 오후의 한가한 시간대라 그런지 평소보다 차 안에는 손님이 많지 않아 몇 정거장을 지나 좌석에 편안히 앉기도 했지만, 에어컨을 최고 수준으로 가동한 지하철 내부는 너무나 시원해서 그야말로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 전에도 자주 진철을 이용해서 공짜 피서여행을 해 보았기 때문에 과천역을 출발해서 오이도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거쳐 가는 역 이름을 거의 다 외우고 있었는데, 그 날은 어느 역을 지나가는데 그 역 이름이 너무도 색다르다는 사실이 뇌리 속을 계속 맴돌았다. 지하철 1호선과 교차하는 금정역을 지나면 산본역이 나오고, 그 다음이 피겨스케이팅의 요정 김연아의 모교가 있는 수리산역, 그 다음에 나타나는 역이 ‘대야미’란 이름이 붙은 역이다. 일반적으로 역 이름은 열차가 정차하는 곳의 지명이나 그 주변의 관광명소나 국가기관의 이름을 붙이는데 그 동네는 어떤 연유로 저런 이름을 가졌고 또 그 뜻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으로 한참 동안 혼자서 궁리하다가 재미있는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그렇지만 내 속내를 감춘 채 아내한테 대야미역의 ‘대야미’가 한자로 무슨 글자일까를 물어 보았다. “큰 대(大), 밤 야(夜), 아름다울 미(美)가 아닐까?” “그래? 난 미가 아름다울 미 자가 아니고 맛 미(味) 같은데...” 라고 대꾸하면서 웃었다. “큰 밤의 맛, 뜻이 참 재미있잖아? 큰 밤이라면 신혼 첫날밤이 아닐까? 첫날밤의 맛이란 게 얼마나 좋은지 알잖아? 킬킬킬...” “그건 말도 안 되지, 동네 이름이 그런 요상한 뜻을 가질 리가 없을 거야.” 우리가 집으로 돌아올 때 역 이름의 한자를 찾아보기로 하고 그 이야기는 거기서 끝을 냈다. 얼마 후 소가 뒷걸음을 치다가 쥐를 잡았다는 식으로 우연히 내 머리 속에 떠오른 대야미의 한문 표기가 맞다는 것을 알았다. 즉 ‘대야미’는 大夜味란 표기가 옳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그러나 그 뜻은 너무도 황당하게 ‘큰 밤의 맛’과는 전혀 상관 없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대야미는 ‘큰 논배미’를 뜻하는 것이었다. 언터넷으로 검색해서 찾아낸 사실은 지금의 군포시 대야미동이 있는 수리산 골짜기에 면적이 1정보나 되는 아주 큰 논배미가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그 마을을 ‘큰 배미’ 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큰 (논)배미를 大夜味라 표기하게 되었는지는 알아내지 못하고 말았다. 혹시 중국에서는 배미를 夜味라고 쓰는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어떤 연유이던 대야미란 이름이 너무도 기상천외하다고 생각되고, 지금도 그 역 이름을 접할 때 마다 황당했던 내 상상력 때문에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끝] |
첫댓글 대야미에 대한 궁금증을 확실히 풀어주신것 감사합니다. 건강하시지요. 선배님 사모님 늘 건강하신 나날이시길 기도합니다.
오라버니, 아직도 정신력이 청춘이십니다. 첫날밤의 맛을 잊지않으시다니..ㅎㅎㅎ 그리고 아직 장난꾸러기 기질이 다분하신걸보니 건강해보여서 보기좋습니다.
청송 후배, 그리고 정희 동생,
두 분 늘 우리 부부의 건강을 염려해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부부는 이런 식으로 날마다 웃으면서 살고 있지요,ㅎㅎㅎ.
ㅋㅋㅋ...상상력이 기가 막히게 멋지십니다. 아름다움이 큰 밤이거나 맛이 큰 밤이거나 대동소이 합니다. ㅎㅎㅎ
어쨋든 그런 멋진 밤이 다시는 없을지라도 기억속에 깊이 자리한 추억이 남아 있는한 인생은 맛나고도 아름다운것 일테니 말입니다. 홧팅 !!!
대원님, 재치 넘치는 댓글 고맙습니다.ㅎㅎㅎ
두 분 뵈온지 한참이나 오래 된것같네요. 눈 앞에 펼쳐진 황금들녘도 차츰 자취를 감춰갑니다.
10.25일날에 교수님 만촌농원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
어서 오십시요!!
만촌, 공주님,
25일 오후에 그곳에서 만나도록 합시다. 반갑게 만날 그 순간이 몹시 기다려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