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본격적인 몰락은 세도정치의 등장과 궤를 같이 합니다. 안동 김씨, 풍양 조씨 같은 왕의 외척 가문이 전권을 장악하고 멋대로 정치를 휘두르는 시대지요. 당파싸움을 벌이던 붕당정치의 폐해가 심했다고는 하나 세도정치에 비하면 애교입니다.
물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세도가문이든 붕당이든 어차피 다 사대부, 그놈이 그놈 아니냐. 어차피 다 정치싸움이고 민생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 아니냐. 이런 식으로요. 확실히 숙종 대에 환국이라는 정치적 대혼란이 있었으나 정작 경제적으로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요.
그런데 세도정치는 좀 많이 다릅니다. 이전의 붕당정치만 하더라도 상대세력을 견제해야 하기에 조금이라도 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러나 세도정치기에는 견제세력 자체가 전무하기에 별 삽질을 다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 정치적인 타락이 민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대표적인 것이 ‘삼정의 문란’이지요. 여기서 말하는 삼정은 전정, 군정, 환곡을 지칭합니다. 탐관오리들이 조세제도를 악용하는 문제가 심화되는 것이지요.
물론 조세제도를 악용하는 부패한 관료는 조선 전기에도 존재했고, 현대에도, 그리고 아마 수백 년 뒤의 미래에도 존재할 겁니다. 그런데 왜 하필 세도정치기에 삼정의 문란이란 용어까지 붙여가면서 특별한 취급을 하는 걸까요.
세도정치기에는 기존의 관료 임용 제도인 과거시험이 유명무실화 됩니다. 대신 줄을 잘 서야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지요. 여기서 줄을 잘 선다는 건 세도가문에게 뇌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붕당정치 시절에 이런 매관매직 행위를 대놓고 한다는 건 상대편에게 ‘날 탄핵해주십쇼’라고 광고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세도정치기에는 뭐라 할 상대방이 없으니 그냥 대놓고 합니다. 마구 합니다. 아주 문 앞에 줄을 서서 바칩니다. 너도나도 하니까 뇌물의 액수 자체도 올라갑니다.
여하튼 모양새가 병맛이긴 하지만 이 뇌물도 그들 입장에서는 나름의 투자입니다. 투자를 해서 관직을 얻었으면 이제 지위를 이용해 더 큰 이익을 얻어야 하지요. 근데 세도가문에게 다시 토해내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니 만만한 아랫사람들을 수탈해야 합니다.
이런 예가 한 둘이 아니니 세도정치 시대에 조세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전정, 군정, 환곡의 폐단이 이전부터 존재했음에도 세도정치와 결부하여 삼정의 문란을 배우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여하튼 오늘은 삼정의 문란 중 일단 전정에 대해서 다뤄보지요.
‘전정(田政)’이라 하면 농지에 매기는 토지세를 의미합니다. 나라는 기본적으로 땅 주인, 그러니까 지주에게 토지세를 매기지요. 지주는 일반 농민들에게 일을 시키고 그들에게 소작료를 받아서 세금을 냅니다.
문제는 직접 세금을 징수하러 다니는 탐관오리들이 이득을 취하기 위해 나라에서 시키지도 않은 추가세금을 징수한다는 겁니다. 토지대장에 등록되어 있지도 않은 황무지에다가도 세금을 매기는 거지요. 물론 중앙정부는 이 사실을 모르니 추가세금은 모두 그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고요.
그럼 지주는 이걸 그냥 고분고분하게 내느냐. 당연히 그들도 손해를 볼 수 없으니 일반 농민들을 지지고 볶습니다. 예를 들면 쌀 운송비나 보관 수수료, 혹은 쥐가 파먹거나 해서 생기는 손실분 비용, 이것들은 원래 지주가 부담해야 하는 것이지만 이 책임을 농민에게 대신 물게 합니다. 오늘날 정부가 주택보유세를 올리면 건물주가 관리비를 올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게다가 조선 후기에는 이앙법(모내기) 등의 발달로 인해 생산력 자체가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게다가 이앙법을 통한 부산물인 보리 등은 징수 대상도 아니지요. 즉 땅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이 오묘한 이치를 깨달은 지주들은 농민을 시켜 농사를 짓는 것보다는 자신들이 직접 농사를 짓는 게 훨씬 더 이득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소작료를 받는 것으로 모자라 생산량 전부를 먹어버리겠다는 거지요.
그래서 소작농들을 쫓아내고 노비나 머슴을 시켜 직접 농사를 짓는 방식을 선호하게 됩니다. 이게 더 싸게 먹히니까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주변 영세농민들의 얼마 안 되는 땅까지 빼앗으려는 시도도 하지요.
때문에 이 시기에는 토지소송도 빈번해지는데 재판을 주관하는 것은 지방수령입니다. 지방수령들은 위에서 언급한 세도정치의 문제와 결부되어 대부분 탐관오리입니다. 탐관오리들은 지주들에게 뒷돈을 받고 편파적인 판결을 내립니다. 영세농민들은 억울하게 땅을 빼앗기고 몰락.
그럼 이 농민들은 굶어 죽을 수 없으니 임노동자인 머슴이 됩니다. 머슴으로 전락한 농민들이 넘쳐나니 지주들은 시장논리에 따라 이 머슴들을 쥐꼬리만한 임금을 주면서 부려먹습니다. 기존 머슴이 나가떨어지면 또 다른 머슴을 고용하면 되니까요. 당연히 이득은 점점 늘어나고 천석꾼, 만석꾼으로 불리는 대지주들이 늘어납니다.
그러니까 총체적인 난국입니다. 있는 사람은 더욱 부유해지고 없는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는 양극화의 심화지요.
ps. 참고로 머슴은 천민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묘사한 것처럼 일반 농민, 그러니까 평민이 자발적으로 부유한 집에 들어가 임금을 받고 일하는 것이지요. 보통 동지에 1년 임금을 한꺼번에 받았는데 이를 ‘새경’이라 부릅니다. 물론 세도정치기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고 최소한 중종 대부터는 그 존재가 확인됩니다.
출처 : 5분 한국사이야기 (카카오스토리)
첫댓글 현재나 과거나 똑같네요. 어차피 역사는 반복되고 피박쓰는건 당연히 국민 백성입니다. 씁쓸하네요.
빌어먹을 외척들, 국가를 좀 먹는 바퀴벌레 같은 것들
국민이 너무 착해서...
영국이나 프랑스가 강대국인 이유는
왕 머리를 댕강 자른 아름다운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듯 합니다
전정
태종이 아들 세종을 위해 외척들을 쳐낸게, 세종대왕의 태평성대에 주효역할
역시 다 쳐내야한다니께
3정의 문란
현재 정규직이 비정규직이 되고 고위층들의 상부상조 노동자들에게는 저 임금으로 생산수단을 '사용'하게 해주는 지금과 비슷한데요
항상 좋은 자료 고맙습니다. 주말인데 데이트는 안 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