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동아 마라톤을 다녀온 후, 계획했던 것보다 잘 뛰긴 했지만 마지막 2km에서의 아쉬움이 없진 않았다.
빨리 뛰는 것(그래 봤자 4시간 20분대 ^^;;)보다는 42.195km를 걷지 않고 끝까지 뛰는 걸 목표로 했는데, 그게 아쉬웠다. 아니,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해서, 올 봄이 가기 전에 다시 한번 뛰어보기로 맘 먹고 있었는데, 단체 대회로 결정된 5월 3일 백마강 대회까지는 준비 기간이 조금 부족했다. 동마 이후 한 달은 쉴 생각이었고, 그 후 또 다시 풀 준비 하는 데는 최소 4주가 필요. 4월 5일 나주 하프를 뛸 때까지만 해도 상반기 풀 재도전은 포기 상태.
근데 마침 단체 일정이 바꿨단다. 게다가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보성.
그럼 남은 4주 동안 32k, 21k, 10k 하고도 일주일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4.19 광주대회에서 32k주부터 시작. 6분 페이스를 목표하고 뛰었는데, 27k 지점부터 고전, 결국 목표 시간보다 8분이나 늦게 들어왔다. 풀 한번 뚸 봤다고 32k를 너무 우습게 봤나? 대회 전 일주일 내내 음주에 체중 관리도 꽝. 다음 주엔 관리 좀 잘 해서 21k는 잘 뚸 보자 했는데….
웬 대상포진?? ^^;; 주말 내내 끙끙 앓아 누웠다. 그 한 주가 다 지나도록 어깨랑 가슴 통증이 남아있어서, 연습은 물 건너 갔다. 대회 날은 다가오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어서 하루에 7~10k 걷기. 덕분에 체중은 조금 줄었다.
그리고 대회 일주일 전 토요일.
아무래도 21k는 뛰어야겠기에, 동네 아는 형(?) 꼬셔서 나불도 코스 21K LSD. 조금 늦춰 잡은 6분15초 페이스로 뛰어서인지, 아님 2주 잘 쉬어서 인지, 완주 후에도 힘이 남았다. 그리고 몇 일 후 런닝 머신에서 5k 주를 마지막으로 연습을 마무리.
그리고 보성 대회 당일.
대회 전날부터 목감기 기운이 있어, 약 먹고 푹 잤더니 아침에 눈이 일찍 떠졌다. 아침으로 미리 주문해둔 와퍼 세트에 커피 한잔. 새벽 6시에 햄버거라니… ㅋㅋ. 덕분에 속은 든든해졌다. 그리고 해수부로…
오늘 날씨 땜에 고생 좀 하겠네.
안개 자욱한 남해 고속도로를 지나며 누군가 버스 안에서 푸념을 한다. 일기 예보상으로는 14~22도. 구름도 없는 맑은 날씨란다. 바람도 1~2m/s로 잔잔하다. 실력과 경험이 없는 주자이기에 날씨와 코스에 민감하다. 더운 날은 쥐약인데…;; 옆 친구가 챙겨주는 에너지 음료(?)-작년 가을 강진 대회가 정말 더웠는데, 그때 이 음료 효과를 많이 봤다-를 한 모금 하는데, 버스는 벌써 보성 도착이다.
생각보다 참가자가 많다. 주최측은 풀코스 250명을 포함, 약 3000여명이라고 하는데 지방 대회 치고는 많은 편이다. 그래서 화장실 줄도 길었다. ㅡ.ㅡ** 화장실 다녀와서 허둥지둥 배번 붙이고, 파워젤도 준비를 못해서 간이판매대에서 만원 주고 6개를 구입, 그 중 4개를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선크림과 맨솔레담을 잔뜩 바르고, 막 스트레칭을 하려는데 사회자가 풀 카운팅을 시작한다. 일단 뛰면서 몸을 풀자 하고 대열에 합류한다. 자, 출발!
9시 출발이라 아침 해는 진작에 중천인데, 다행히 아침 안개가 햇볕을 잘 막아준다. 운동장을 빠져나오면 바로 5~600 미터 오르막(고수에게는 평지 같겠지만 하수에게는 분명 오르막), 그리고는 4km 지점까지는 완만한 내리막이다. 보성 대회 홈페이지에서 봤던 고저도와 약간 차이가 나는 부분이 바로 여기였구나. 2년 전 하프 돌아올 때 이 오르막에서 고생한 기억이 났다. 그건 그렇고, 뭔가 잊고 온 듯한 느낌이 계속…??
바세린? 맨솔레담!
아, 바세린 바르는 걸 깜빡 했다. 땀도 많이 나는데, 이렇게 더운 날엔 땀이 말라 생기는 하얀 염분과 상하 운동복 솔기들에게 살갗이 쓸리기 딱인데…^^;; 대회장 초입에 있던 앰뷸란스에 물어보니 다른 건 다 있는데, 바세린은 없단다. ㅡ.ㅡ* 조금 더 가서 첫번째 급수대에서 봉사중인 여학생에게 다시 물었다.
바세린 있어요?
네?? 예..
급한 마음에 그 학생이 건넨 준 그 “바세린”을 그냥 발랐더라면… 바로 이송차 탈 뻔했다. 약병이 이상해서 보니 바세린이 아니라 “맨솔레담”. ^^;;
그 후, 그렇게 쓰라린 바지 가랑이를 붙잡고 42키로를 달렸다.
안개가 걷혀 햇볕이 따가워질 무렵, 늘씬한 메타세콰이어들이 그늘을 만들어 준다. 5k 지점부터 시작되는 가로수 길이 15k까지 근사하게 이어진다. 더욱이, 왼쪽의 산기슭과, 오른쪽 모내기 물을 대어둔 논과 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달리기를 더없이 즐겁게 한다. 조금 빨라지려는 발걸음을 다잡고 6분 15초 페이스로 천천히 간다. 8km~9.5km 구간까지 이번 코스에서 가장 긴, 완만한 오르막, 그 오르막을 넘고 나면 15km까지는 평지 같은 내리막이 계속 된다. 15k를 지나 복내면에 들어가면 신명 나는 풍악대가 반긴다. 지금껏 최고의 응원이다.
파워젤 주나요?
복내중/고등학교를 돌아 16k지점부터 풀 반환점까지는 “V” 형태의 완만한 내리막과 오르막. 17k 지점부터 벌써 반환점을 돌고 오는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그런데,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고 나무그늘이 줄어 들어든 탓인지 다들 힘든 표정이다. 준비해간 4개의 파워젤을 15, 25, 30, 35k에 먹을 예정이었는데, 하프 반환점(2:09:38) 주최측이 파워젤 하나를 쥐어준다. 이렇게 고마울 때가…^^.
작전(?)을 바꿔 22, 27, 32, 37k에 하나씩 먹기로 한다. 32.5k 오르막을 넘어가는데 아직 힘이 남아있다. 대신 왼쪽 허벅지에 쥐가 날 것 같아 속도를 더 줄였다. 그리고 38k 지점. 4k밖에 남지 않았는데, 뙤약볕에 그늘은 없고 은근한 오르막이다. 절대 걷지는 말자 하고 최대한 천천히… 이젠 페이스가 7분을 넘어간다.
40k를 지나면, 조금 경사가 있는 오르막이 나온다.
최대 고비.
원래 계획으론 이 구간은 “동료 찬스” 구간이다. 단체 대회 경험상 풀 코스 마지막 1~2k 지점엔 동료들이 마중 나온다. 시원한 막걸리나 맥주 등을 가지고… ㅎㅎ. 그 동료와 생명수의 버프(buff: 온라인 게임 용어로 동료나 물약의 도움으로 일시적인 체력 상승 효과)를 받아 이 고개를 넘을 계획 이였다.
이런 계획적인 놈. ㅋㅋ
근데…..아무도 없다....;;
둘 중 하나다.
내가 그들의 예상 외로 빨리(?) 왔거나, 그들이 날 잊었거나…ㅠㅜ
온갖 생각(절대 욕은 안했음)이 교차한 가운데, 머릴 처박고 한발한발 힘겹게 올라가는데…
“수현아!!!, 수현이 형!!!”
많이 듣던 목소리다.
고개를 들어 오르막 위를 보니, 낯익은 얼굴 둘이 반긴다.
“왜 인제 와?!”
나도 모르게 소릴 버럭 질렀다. 사람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을까?
군대 이병 시절, 토요일 오후 면회 온 여친을 보면 이렇게 반가웠을까? ㅎㅎ
친구가 준비해온 시원한 캔맥 한 모금을 하고 마지막 골인(4:27:12)까지 내달렸다.
이 마지막 1km가 이번 대회 구간별 페이스 중 가장 빠른 페이스였지 않나 싶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6791E465552B1322E)
(마지막 1km - 친구랑 동반주)
![](https://t1.daumcdn.net/cfile/cafe/252E27455552B15438)
이렇게 3번째 풀코스 완주를 무사히 마쳤다.
진짜 “완주”를…
올 가을에는 10초만 더 빠르게….
p.s.) 쓰다 보니 정말 길어졌네요…^^;; sub-4 했으면 논문 한 편 나왔을 듯…ㅎㅎ
멋진 경험 할 수 있게 도와주신 모든 클럽 식구들께 감사 드립니다. ^^
마지막으로 담에 또 이 코스를 처음 달리게 될 분들을 위해서 제가 느꼈던(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체감 고저도를 올립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275C43455518E8411)
첫댓글 모오리가 좋아서 역쉬 계획적이군.....ㅎㅎ
수혀니 참 잘했고 수고 많았어...
나중에는 동네 아는 사람들 꼬셔서 30~32키로주 가끔 연습해불자..ㅎㅎ.
네!ㅎㅎ
그 아는 동네 형님한테 덕분에 훈련 잘 했다고, 고맙다고 꼭 좀 전해 주십쇼 ^^
형님, 우린 프로가 아니잖아요.... 기록 성적이 아니라,
아마추어에겐, 이 운동을 진정으로 즐길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형님의 열정, 이 운동에 애정, 진정으로 즐길줄 아는 자세!
저에게 있어 형님은, 목마클럽 최고의 히어로 입니다.
최고!
덕인이 형 ㅋ, 절대고수보다 형님이 멋져요!!!!!!
고맙습니다.
올 가을엔 같이 풀 가죠!! ^^
뛰면 이야기도 생기고 기록도 좋아지고, 있군요. 3번째 완주를 축하합니다. 바세린 용도를 잘 모르는 약사도 있답니다. 대용품으로 바나나를 발랐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바나나가 그렇게도 쓰일 수 있겠군요...담에 꼭 참고하겠습니다. ^^
뜨거운 햇볕 아래, 끝까지 결승점에서 기다려주신거,
"큰 일 했네요"라고 말씀해주신거,
오래토록 기억하겠습니다.
아주아주 잘 읽고 감동감동.. 수현아.. 마라톤애정이 깊어지는것 같아..완주 축하해
앗, 경남이 형!
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쪼금, 아주 쪼금, 달리는 재미를 맛본 것 같습니다.
올 가을엔 형님이랑 풀 스타트 라인에 함께 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채수현(11) 그럼 얼마나 좋을까.. 노력해봄새..
'모오리'가 뭐지 한참 생각했더니 아하, 머리. ^^
승희씬 가끔 외계어를 사용하는 통에(아닌가 내가 둔한건...)
수현씨 글은 언제봐도 좋아요. 달빛 강에 유유히 흐르는 물결의 찰랑임도 들리고, 함박눈꽃처럼 시원하고 소담스럽고, 무엇보다 읽고나면 답글정도는 꼭 써야한다는 힘찬 소명감도 갖게 ㅎ.
사랑하면 뭐든 주고싶어지는 연인관계처럼 수현씨 글은 조건없이 사랑스러워요. 그래서 덩달아 행복한 경험. 후기 읽게해줘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