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에는 실용음악과가 없다. 그럼에도 현재 대중음악씬을 이끄는 중심에는 모교 작곡과 출신이 많다. 작곡가 김형석(85.작곡). 자신의 활동 외에도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는 그가 본지와의 첫만남을 가졌다.
음악교사인 아버지, 집에서 피아노학원을 겸하던 어머니아래서 자연스레 음악과 함께 성장한 김형석. 클래식 전공으로 어떻게 대중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냐는 물음에 “재하형(故유재하(81.작곡)동문)이 꼬셨죠”라며 웃는다. 그와 함께 합창수업을 들은 것이 인연이자 계기가 되었다. 1989년, 故김광석의 ‘사랑이라는 이유로’를 작곡하며 가요계에 입문했다. 2002년 KBS 가요대상 작곡상, 작곡가 김형석의 이름을 떠올리면 단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LP판, 테이프, CD, 이제는 MP3파일로 음악을 듣는 시대다. 음악을 전달하는 매체의 변화를 직접 겪어온 그. 위기감을 느끼진 않았을까. “매체가 변한다고 감성이 변하지는 않으니까요. 환경이 많이 바뀌어서 음악이 쓰고 버리는 악세서리처럼 변한 것이 아쉽지만 그 안에 녹은 감성은 그대로라고 생각해요. 기술적인 면은 흐름을 따라 맞춰나가야죠.” 처음 ‘사랑이라는 이유로’를 발표하고 아무도 그를 모르던 시절, 신촌 어느 주점에서 수십 명의 대학생이 자신의 노래를 입을 모아 부르던 그 때의 감성을 간직한 김형석. 매체가 수도 없이 바뀐 지금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다.
호원대학교 실용음악과 학과장인 그, 2008년 8월, 그는 논현동에 ‘케이노트(K-note)뮤직아카데미’를 열었다. 시작한 지 1년 반. 430여 명의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 그에게 학원은 단순한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다. 대중은 순환하고, 뮤지션은 세월을 따른다. 그렇기에 어린 친구들을 가르치면서 대화하는 것은 그에게 가능성을 넓혀주는 일이다. 학생들에게서 에너지와 새로운 시각을 얻기 때문. 음악을 하는 매일이 ‘슬럼프’ 라고 표현하면서도 매일 젊은 힘을 얻기에 ‘김형석’ 이라는 라벨이 붙은 창작물이 건재한다.
그는 요즘 중국영화음악 작업에 한창이다. 클래식을 전공하고 대중음악을 시작한 지라 크로스오버(crossover) 음악에 강하다. 영화와 뮤지컬 음악 작업이 좋단다. 작곡을 하는 이 답게 좋은 가수들과 많은 작업을 하는 것이 꿈이라는 그. 뮤지션으로의 최종목표는 아카데미를 음악학교로 만드는 것이다. 온라인강의서비스를 준비하며 목표에 한 걸음 다가가고 있다.
“음악이요? 버릇이죠.” 생각하지 않아도 자신도 모르게 하고 있기에 음악을 버릇이라고 말하는 김형석.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할 줄 아는 게 이것 뿐’이라는 생각에 그만둘 수가 없단다. 음악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떤 인생이었을 지 상상만으로도 막막하다는 그. 많은 대중들은 그의 음악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 추억의 순간에 어떤 음악을 들었어야 할 지 또 얼마나 막막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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