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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동네역사탐방 스크랩 백제건도 2030년, 위례백제문화제(천안시,직산위례문화제)-1
吾心竹(윤종일) 추천 0 조회 44 12.10.22 15:1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백제건도 2030년, 위례백제문화제(천안시, 직산위례문화제)-1 >>>

 

 

 

백제초도 직산 위례성 시모음...2012.10.22.hwp

 

 

2012 백제시조 온조대왕 향사 계획서 2012.8.5.hwp

 

 

 

* 백제의 첫도읍지 위례성의 고장...위례성>사산현>직산현...직산초등학교 운동장 // 

 

 

 

 

? 온조(溫祚)가 백제건국을 위해 부아산에 올라 지형을 살펴보니

북대한수(北帶漢水)...북으로 한수를 띠고

동거고악(東據高嶽)...동으로 높은 산 의지하며

남망옥택(南望玉澤)...남으로 옥택을 바라보고

서조대해(西阻大海)...서로는 큰 바다에 막혔으니

천험지리(天險地利)...땅이 험준하고 이로움 많으니

난득지세(難得之勢)...가히 얻기 어려운 형세라

<삼국사기 백제본기>

 

 

 

 

 

 

 

 

 

 

 

 

 

 

 

 

 

 

 

 

 

 

 

 

 

 

 

 

 

 

 

 

 

 

제원루...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 1420~1488) 詩

 

백제의 유적 남은 언덕엔 잡초만 스스로 자라나고

내 이곳에 와 보니 감개무량한데 한켠엔 마음 상하는구나

천안부에는 오룡이 싸움을 끝내었고

위례성에는 두 봉황새의 울음소리만 쇠잔하구나

백제시조 온조왕의 사당엔 단풍나무만 짝하여 붉기만한데

위례고성 성거산엔 푸른 구름 가로 비껴 가리였구나

제원루에 오르니 가을바람은 이런 일 저런 일을 생각케 하는데

어느 곳에서 불어대는 태평소 소리는 그저 쓸쓸하기만 하구나

 

 

濟源樓  

백제유허초자평 (百濟遺墟草自平)

아래감개일상정 (我來憾慨一傷情)

오룡쟁파천안부 (五龍爭罷天安府)

쌍봉명잔위례성 (雙鳳鳴殘慰禮城)

시조사심홍수합 (始祖祠深紅樹合)

성거산옹벽운횡 (聖居山擁碧雲橫)

등루다소추풍사 (登樓多少秋風思)

하처취잔철적성 (何處吹殘鐵笛聲)

 

-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 1420~1488) -

 

 

 

 

 

 

위례성...상촌 신흠(象村 申欽, 1566~1628) 詩

 

오래전 백제국 느낌도 하많은데

동풍은 위례성 옛터로 스치네

흥망성쇠 모두 과거사 되었고

누벽은 이미 모두 허물어졌구료

가느다란 관교로 길은 이어지고

주막은 쓸쓸히 연기 속 희미하네

청산은 한가닥 연이어 있는데

남쪽을 바라보니 사비성 부여로구나

 

 

慰禮城  

구국다자감 (舊國自多感)

동풍위례성 (東風慰禮墟)

흥망종고사 (興亡從古事)

첩루이전허 (壘壁已全虛)

노입관교세 (路入官橋細)

연희야점소 (烟稀野店疎)

청산련일발 (靑山連一髮)

남망시부여 (南望是扶餘)

 

- 상촌 신흠(象村 申欽, 1566~1628) 詩 -

 

 

 

 

 

위례성 바라보며...용주(龍洲) 조경(趙絅, 1586~1669) 詩

 

섣달그믐 호서관아 밖

직산위례성은 추워서 쌀쌀하네

흥망성쇠는 꿈결같이 혼미한데

사소한 싸움은 무었을 이루었던고

교목에 까마귀만 어지럽게 울어대고

무너진 온조왕사당엔 도깨비불만 밝구료

유유히 흘러가는 물길을 보노라니

서생의 긴 한숨 소리만 더 보태는구료

 

 

望 慰禮城  

세모호관외 (歲暮湖關外)

천한위례성 (天寒慰禮城)

흥망혼사몽 (興亡渾似夢)

만촉경하성 (蠻觸竟何成)

교목아제란 (喬木鴉啼亂)

황당귀린명 (荒堂鬼燐明)

유유임서수 (悠悠臨逝水)

장소일서생 (長嘯一書生)

 

- 용주(龍洲) 조경(趙絅, 1586~1669) 詩 -

 

 

 

 

 

직산 위례성 회고

 

어느 세월 백제는 이곳을 경영했던고

황량한 유허엔 초목만 무성할 뿐

천고흥망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요

삼국의 형세는 빈 하늘 밝은 달빛일세

강물은 흘러 사산군(직산)을 안고 굽이치는데

위례성 들판을 휘감아 굽이 치는구나

영령들께 조문코져 해도 물어 볼 이 없고

목메어 우는 검가소리에 홀로 맘 상하네

 

 

稷山 慰禮城 懷古  

하년백제차경영 (何年百濟此經營)

유견구허초목평 (惟見丘墟草木平)

천고흥망천이로 (千古興亡天已老)

삼분형세월공명 (三分形勢月空明)

하류곡포사산군 (河流曲抱蛇山郡)

야색횡반위례성 (野色橫蟠慰禮城)

욕조영령무가문 (欲弔英靈無可問)

검거오열독상정 (劍歌嗚咽獨傷情)

 

-학주(鶴洲) 김홍욱(金弘郁, 1602~1654) 詩-

 

 

 

 

 

 

 

 

 

 

 

 

 

 

 

 

 

 

 

 

 

 

 

 

 

 

 

 

 

 

 

 

 

 

 

 

 

 

 

 

 

 

 

 

 

 

 

 

 

 

 

 

 

 

 

 

 

 

? 부소산(扶蘇山, 459.1m)

 

위치 : 충남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도림리~북면 운용리

 

* 부소산은 백제건국초도(百濟建國初都) 소서노와 온조왕 일행의 직산 하남위례성 진산(鎭山)이다. 부소(扶蘇)는 부여어로 <솔-松>의 뜻이다.

 

고구려 비류수(沸流水)를 떠난 온조왕 일행이 마한(馬韓) 목지국(目支國) 진왕(辰王)으로부터 동북 100리 땅을 봉토(封土) 받아 건국한 초기 백제국 십제(十濟)의 진산이다.

 

부소산 위례성(慰禮城)을 중심으로 우성산(右城山, 성거산)과 좌성산(左城山, 서운산)이 익성(翼城)으로 있고, 남으로 북면 납안리(納安里)와 작성(鵲城-잣성, 까치성), 북으로 직산 성산(城山) 용안치(龍鞍峙) 능선의 사산성(蛇山城), 금강 상류 진목탄(眞木灘) 작천(鵲川),

삼한시대 농성(農城)인 청주의 정북토성(井北土城)과도 연결된다.

 

부소산은 백두대간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 칠장산(七長山)에서

분기(分岐)하여 안성 진천의 배티고개(梨峙,大門嶺)~서운산(瑞雲山,좌성산성)~협탄령(脇呑嶺,엽전재)에서 남서 1.3km지점에 위치하며 위례산성과 3.7km 지점에 위치하며 백제초도 하남위례성의 상징적인

산으로 서해바다에서도 잘 조망된다.

 

고려말 대학자인 직산군(稷山君) 백문보(白文寶)의 출생지인 입장면

양대리 신례산(新禮山)~한림봉(翰林峯) 능선과 부수문이고개(扶蘇嶺, 扶蘇峙), 위례산성과 이어진다. 또한 진천 김유신장군의 출생지인 만뢰지맥(萬賴支脈)이 부소산에서 분기하며, 천안시 북면 대평리 탑골 보협인탑(寶?印塔-국보209호)이 발견된 구룡사지(九龍寺趾)의 배산(背山)이며, 병천의 작성산, 은석산, 백제 온조와 비류가 올랐던 경기도 용인시의 한남정맥 부아산(負兒山)과도 연결된다.

 

부소산은 동서(東西)로 소사벌 안성천과 공주 부여의 곰강(熊川, 熊津-고마나루), 금강(錦江)의 분수령이 되며, 서해바다와 중부내륙을 잇는

마한, 삼국시대(三國時代) 교통의 요충지이며, 대당(對唐) 코리아 실크로드 신라(新羅) 당항성로(黨項城路)의 중심축에 자리하여 삼국사기의 기록대로 서조대해(西阻大海), 동거고악(東據高嶽), 천험지리(天險地利) 난득지세(難得之勢) 명산(名山)이다.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인 충남 부여 낙화암의 부소산성(扶蘇山城)과 똑같은 이름이며, 천안 직산 위례성 부소산은 백제 왕실 역사의 고향이며 금강수계의 <전북 장수 뜬봉샘>이 금강의 발원지라면 <천안 부소산 깊은골 샘>은 백제역사의 발원지인셈이다.

 

천안시 입장면~북면의 부소산 정상 바로 남쪽 아래엔 깊은골(深谷)이 있는데 백제 온조왕이 처음 위례성에 도읍했을 때 이곳에 머물며 정사(政事)를 살폈다는 마을의 유래가 전하고 있고, 금강발원지(錦江發源地)라는 샘물도 아직까지 남아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수량

역시 매우 풍부하다. 최근까지 10여호 남짓 살던 마을이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고, 조그만 사찰이 자리 잡고 있다.

 

 

 

? 위례성(慰禮城, 523m...일명-위례산성)

 

○ 위치 : 충남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호당리~동남구 북면 운용리

○ 위례성 : 직산의 옛 이름

위례성(백제, BC18)~사산현(고구려, 475년)~직산현(고려초, 940년)

위례 의미 : 왕성, 큰성(大城), 울타리(울짱,울)+담장,담(다물)=위례

○ 시대 : 백제~신라~고려시대

○ 유물 : 삼족토기, 타날문토기(두드림토기), 파수호편, 기와 등

○ 역사기록 :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직산현지(1899년)

 

위례성 지금은 없고, 옛 터가 성거산 북쪽 5리에 있다.

<여지지>에 소위 <성거산에 있다>라고 쓴 것은 두렵건대

잘못된 것이다. 둘레는 2,690척이요, 높이 8척이며,

그 안에 우물 1개가 있고 또 비석 받침이 있다 - 직산현지 //

 

(慰禮城今無 舊址在聖居山北五里 輿地誌 所謂在聖居山者恐誤 周二千六百九十尺 高八尺 內有一井 又有碑趺) - 稷山縣誌 //

 

? 직산현 관아 동쪽 20리에 있으며, 백제건국 첫도읍지 하남위례성

(河南慰禮城)이라고 전해진다.

 

백두대간 금북정맥 서운산(좌성산)~엽전재~부소산~부소령~위례성~우물목~성거산(우성산)으로 이어지는 중간지점에 위치하며, 위례성을 중심으로 좌우로 좌성산(서운산)~우성산(성거산)이 익성(翼城)으로 있다.

 

직산 백제시대(BC18~BC5,13년) 하남위례성을 상징하는 진산(鎭山)이며, 숭산(崇山)으로 바로옆 천안 부소산(459.1m) 부소령(부수문이)이 접하며

<부소산 위례성>이 옳은 표현이며, 최근에는 산의 명칭이 세분화되어 <위례산>이라 불린다.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인 부여(사비)의 낙화암, 고란사의 부소산과 같은 이름이며, 백제의 첫도읍지 직산 부소산 위례성이다.

위례산성 정상에 올라서 사방을 살펴보면,

 

북쪽으로 고구려 졸본을 떠난 소서노, 비류, 온조왕 일행이 도읍을 정하기 위해서 올랐던 한산(용인)의 부아산(負兒山), 수원의 광교산, 안양의 수리산, 과천 관악산, 청계산, 서울의 삼각산(북한산) 백운대, 도봉산 자운봉, 신선대 능선이 쾌청한 날에는 손에 잡힐 듯 잘 보인다.

동쪽으로 안성의 칠장산, 진천의 만뢰산 태령산, 목천의 작성산,

남쪽으로 오창, 청주의 상당산성 그리고

서쪽으로 천안, 직산, 성환, 평택, 안성의 소사벌판과 안성천유역, 서해 아산만, 삽교천과 예산 당진의 가야산 능선이 한 눈에 조망된다.

 

서해 삽교천, 아산만~당진~평택~양성~진위~오산~안성일대에서도

위례성은 서운산과 성거산의 중심에 좌청룡~우백호인양 버티고 있다.

 

서해의 어염과 내륙의 물류을 잇던 천험, 천혜의 요충지에 위치한

위례성은 고대 백가제해 해양강국, 22개 담로국을 지배했던

약 700년 백제(BC18~660년)의 첫도읍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산이며,

직산백제 위례성의 등대와 같은 이정표적 랜드마크였다.

 

조선후기 다산 정약용이 <아방강역고 위례고>에서 직산 백제위례성이 백제초도가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현재 주류사학계에서는 이를 따르는 추세이다.

 

1989년~1995년까지 3차례 서울대학교 임효재교수팀이 발굴한 유물중에서 삼족토기, 타날문 토기, 불에 탄 숯의 방사성동위원소 연대 측정으로 백제시대 축성한 산성으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2009~2010년 천안시와 충남역사문화원이 2차에 걸쳐 발굴한 유적, 유물에 따르면 통일신라가 처음으로 돌로 축조(석축)하고,

고려때 흙으로(토축) 개축하여 시대를 바꿔가며 계속적으로 사용되었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출토 유물중에는 백제토기와 기와편 등이 다수 발견됨으로써 백제초기 시대의 유물발굴에는 실패하여 많은 의문점을 남겨두고 있다.

 

위례성 가까운 곳에 충북 진천의 삼용리 초기백제 타날문토기(기원전후를 대표하던 토기) 굽던 가마터와 진천 석장리 초기철기 유적, 청주의 신봉동 고분군의 타날문토기 등이 남아 있어 <직산 위례성>의 유물, 유적의 비교연구와 백제초도사 수수께끼를 푸는 단서를 제공한다.

 

위례산성 내부에 용샘(용정-龍井)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곳엔 백제의 전설이 전해지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 백제의 임금은 용왕의 아들이라 서해바다와 한강, 금강을 이 용샘을 통하여 용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자유롭게 들락거렸다고 한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장수왕의 한성공격으로 치열하게 싸울 때에도 용샘을 통하여 서해바다~한강으로 들락거렸고, 도읍을 공주 금강유역으로 옮긴 후에도 고구려, 신라의 잦은 침입으로 위례성 일대가 삼국의 각축장으로 변하면서 백제왕은 금강~용샘으로 들락거리며 전투를 지휘하고, 군사들을 독려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백제 왕실에서 용(龍)으로 변장하여 아침에 사라지고, 지쳐서 해질녘에 지쳐 돌아오는 백제의 왕을 의심하여 왕의 처남은 용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인 제비를 미끼 삼아서 백제왕이 용으로 변하여 출입하는 곳에 낚시를 던져 놓았는데 용으로 변장하고 전장에서 싸우다 지쳐 돌아오는 왕은 배고픔에 이를 먹고 낚시에 걸려 죽었는데 왕이 낚시에 걸려 죽은 곳에서 ?은 냄새가 진동하였는데 그곳의 이름을 구린내가 많이 난다고하여 구린내(동천-銅川...공주시 유구면 동천리> 라고 한다. >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위례성 동쪽으로 흐르는 500리 물길은 천안 북면~병천(아우내)~청주~공주의 금강(곰강-웅천-고마나루)~부여의 백마강과 연결되고, 서쪽으로 흐르는 100리 물길은 입장~안성천 유역 <일명, 인천(仁川)=아산 인주천(仁州川)>으로 분기하며 흐르며 서해바다에서 합류한다.

온조의 형 비류가 세운 미추홀(아산 인주) 밀두리와도 연결된다.

위례산성 서쪽으로 금성사(錦城寺)란 절이 있고,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호당리에서는 매년 위례산에 산신제를 지내고 있는데 백제 온조왕을 추모하는 제문의 기록이 전하고 있다.

 

입장 시장리엔 구시랑골(백제시대 9명의 시랑이 살았다함), 범우례 등의 백제시대 지명이 전하고, 동쪽에는 장생이(위례성 아랫마을)엔 백제온조왕시대 장터가 이곳에 섰다하며, 북면 군단이엔 백제시대 군대가 주둔하였고, 부소산 아래 깊은골(深谷)엔 백제 온조대왕이 맨처음 이곳에서 머물며 정사를 살폈다하고, 곡간리(曲干)는 백제의 군량미를 이곳에 곳간처럼 저장하였다 한다.

 

또한 목천 유왕골엔 백제 온조대왕이 머물며 농업과 잠업을 장려하였고, 이곳에 왕이 머물렀다하여 유왕골(留王谷)이란 지명이 남아 있다. 또한 위례성 남쪽 산능선엔 수 백여개의 적석(돌무덤) 유적이 남아 있어 관방유적 혹은 위례성 전투에서 죽은 병사들의 무덤이라고 추정하고 있는데 좀 더 세밀한 조사연구가 필요하다.

 

목천관아(목천초교 터) 용회당에서 동사강목을 완성한 순암 안정복선생은 대록지에 목천은 온조왕의 남전(南甸-왕성의 남쪽 터)이라 하였다.

 

2010년 9월17일 공주~부여 일대에서 개막된 1,400년전 대백제의 부활이란 주제로 <2010 세계대백제전>의 혼불 채화가 백제 개국공신 하남백 조성(직산조씨), 환성군 전섭(천안전씨), 마려(목천마씨)의 문중(門中)과 천안시장, 일반 시민들이 참석하여 천안 직산 위례성 정상에서 그 혼불 채화가 되었다.

 

천안시 위례성~서울시 풍납토성~부여 천등산에서 채화된 백제 혼불은 세계 대백제전의 개막을 알리었으며 이것은,

백제의 첫 도읍지~백제의 2번째 도읍지~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에서

혼불을 채화하였다는데 그 역사성과 상징성이 있다.

 

 

 

 

 

 

<<< 오심죽...백제건도 2030년, 위례백제문화제(천안시, 직산위례문화제)-1...2012.10.20(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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