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하게 무서운 사나이 [25 회]
신황과 초풍영은 후원에서 오래도록 술을 마셨다.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그 당사자밖에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밤새도록 술을 마셨음에도 신황은 새벽 일찍 일어났다. 새벽에 할일이 있기 때문이다. 신황이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무이가 일어나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백부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무이가 꾸벅 인사를 해왔다. 동시에 무이의 손이 아직도 골골거리고 있는 설아의 등을 쳤다. 크르르! 곤히 자다 무이에게 끌려나온 설아가 귀찮다는 듯이 으르렁 거렸다. 하지만 무이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자신이 이렇게 열심히 무공을 배우는데 가장 친한 친구인 설아가 그냥 논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구나 설아는 이미 신황에게 매 끼니마다 신선한 물고기 두 마리씩 꼬박 챙기고 있지 않은가! 받는 것이 있으면 당연히 하는 일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 무이의 생각이었다. 덕분에 설아는 요즘 아침뿐만 아니라 수시로 무이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불평하지 마! 친군데 이것도 못 도와줘?” 크르릉! 설아의 입에서 체념 비슷한 한숨이 토해져 나왔다. 무이의 초롱초롱한 두 눈빛이 너무나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무이는 싱긋 웃음을 지며 신황에게 말했다. “백부님! 오늘도 자령도를 수련할까요?” “일단 자령도는 구결과 자세를 잡았으니 급하지 않단다. 그러니 오늘은 보법을 배우자꾸나.” 신황의 말에 무이가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미 초관염에 의해 구지영초의 뭉쳐진 약력을 풀어 내공을 가지게 된 무이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무이는 자신의 몸에 엄청난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더구나 지속적으로 초관염이 청령환을 복용시키고 계속해 관심을 가져주고 있었기에 무이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화를 겪고 있었다. 때문에 무이는 신황이 가르쳐 주는 무공을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덕분에 신황은 물론이고 애꿎은 설아마저 무이의 수련상대로 전락한지 오래였다. 그래도 아직 설아를 따라잡으려면 한참 멀었지만 말이다.무이의 눈이 자신의 얼굴에만 집중이 되 있자 신황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 “지금부터 가르쳐 주는 것은 자령보법(紫靈步法)이다. 네가 익히는 자령도법을 위해 따로 만든 것이다. 평상시 따로 펼쳐도 상관없는 보법이지만 자령도를 펼칠 때 같이 펼친다면 더욱 위력적인 보법이란다.” “그럼 다른 사람이 익히는 것보다 제가 익힐 때 더욱 위력적이겠네요?” “그렇단다. 그리고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내가 가르쳐 주는 것은 오직 혼자만 알고 있어라. 이것은 오직 너만 익히는 무공이란다.” 신황의 말에 무이가 잠시 고민을 하다 물었다. “이모가 가르쳐달라고 하면요?” “무이가 곤란하겠지만 가르쳐주지 말거라. 이것은 오직 무이 혼자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만약 무이가 커서 혼인을 해서 자식을 낳는다면 자식에게는 가르쳐줘도 좋다.” “에......혼인요?” 신황의 말에 무이의 얼굴이 발개졌다. 무이의 나이 이제 일곱 살, 아직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크르르! 얼굴이 빨개지는 무이를 보며 설아가 이상하단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황은 무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아주 먼 훗날의 일이니까. 마음 편하게 생각해라.” “넷!” “이곳에 양천에 오는 동안 무이가 설아와 뛰어다니느라 근력이 많이 붙었으니 아마 자령보법을 익히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뜀박질은 자신 있어요. 그래도 아직 설아는 못 잡지만요.” 무이가 설아의 눈치를 보며 이야기했다. 실제로 아직까지 설아의 몸에 도를 한 번도 맞혀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 설아의 입에서 그것보라는 듯한 울음소리가 나왔다. 캬우웅~! “쳇! 언젠간 꼭 잡고 말거야. 그때 가서 아프다고 울지나 마.” 크르릉~! “쳇!”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설아를 보며 무이는 콧방귀를 꼈다. 아직까지 설아를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이는 무이였다. 신황은 그런 무이를 달래면서 이야기 했다. “싸우는 것은 나중에 하거라. 우선 자령보법의 원리를 말해주마. 자령보법은 자령도법의 움직임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자령도법에 맞게 변화를 최대한 줄이고 속력을 살린 보법이다.” 무이는 막상 설아와 다투는 듯 하다가도 보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 집중을 했다. 신황은 설명을 하면서 후원 중앙으로 걸어갔다. 몸으로 보이려는 것이다. 스윽! 그의 발이 마치 바닥을 스치듯 낮게 깔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동시에 신황이 맨손으로 자령도법을 펼쳤다. 쉬쉬쉭! 그의 팔이 어지럽게 움직였다. 자색의 선을 만들어내며 어지럽게 펼쳐지는 그의 손, 동시에 신황의 발이 바닥에 푹푹 소리를 내며 깊숙이 찍혔다. “도법과 보법이 동시에 펼쳐진다면 이런 형태가 된다. 자령보법은 이렇게 항상 도법과의 조화를 생각하면서 펼쳐야 한다.” 신황은 어지러이 움직이면서도 자세한 설명을 멈추지 않았다. 무이 역시 신황의 움직임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그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마치 폭풍처럼 움직이던 신황이 모든 동작을 마쳤을 때는 바닥에 그의 족적이 선명이 남아 있었다. 신황은 숨소리 하나 거칠어지지 않은 채 무이에게 말했다. “너도 보아서 알겠지만 자령도법과 보법은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니 보법을 펼치면서 심법을 같이 운용하거라. 그리고 나중에 익숙해지면 자령도법도 같이 펼치거라. 처음엔 몸에 익지 않아서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다른 무공들보다 오히려 편안해질 것이다.” “넷! 백부님.” 무이는 힘차게 대답을 하고 신황이 남긴 족적에 자신의 발을 맞췄다. 그리고 어설프지만 신황이 움직인 것처럼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로 기억하고 있다 하더라도 몸을 움직이는 것은 그와는 다르다. 때문에 무이는 몇 번이고 발이 꼬여 넘어져야 했다. 그러나 무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음! 생각보다 잘 안되네.” 넘어지면 그 즉시 무릎을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자신이 어디가 틀렸는지 생각하는 무이, 그러다 무언가 깨닫는 게 있으면 다시 보법을 펼친다. 하지만 아무리 무이가 똑똑하다 하더라도 아직은 머리와 몸의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에 자꾸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이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른 채 왜 자신이 자꾸 실패하는지 연구하고 있었다. 크르릉~! 어느새 설아가 신황의 어깨에 올라타고 나직하게 울음을 터트렸다. 설아는 혼자서 고분군투하는 무이를 보며 안타까운 눈을 하고 있었다. 신황은 설아의 턱을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대견하지! 어떻게든 혼자 연구하고 풀려고 하는 태도가. 다른 아이들이라면 징징대며 가르쳐 달라고 조를 텐데 말이야.” 신황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어쩌면 무이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이든 깊게 파고들려하는 저런 집중력과 자세일 것이다. 무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은 어떡하든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고집이 있었다. 신황은 무이의 그점을 제일 높게 샀다. 크르르~! 설아가 뺨을 몇 번 비비더니 신황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이제 더 이상 방해자도 없겠다 졸린 잠을 보충하려는 것이다. “훗!” 신황은 오랜만에 품속에서 느껴지는 설아의 감촉에 그저 미소를 지었다. “다리를 이렇게 해서 그 다음에 이렇게 움직이면..............” 무이는 혼자서도 열심히 중얼거리며 잘 움직이고 있었다. 일행들이 모두 식당에 모였다. 팽만익과 팽유연 숙질, 초관염과 초풍영 숙질, 그리고 신황과 무이, 마지 막으로 설아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식사를 했다. “후~암! 형님은 힘도 좋네요. 나랑 같이 술을 마셔놓고 새벽부터 일어나 무이를 가르치고.” 초풍영은 연신 하품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신황과 늦게까지 술을 마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이 술을 마신 신황이 너무나 쌩쌩한 모습으로 아침을 들고 있기에 그는 초관염의 잔소리를 들어야했다. “어려서 그렇게 숱하게 영약을 처먹여 놓았는데도 그놈의 술기운 하나 버티지 못하고 해롱해롱 하다니 약이 아깝다. 이놈아!” “쳇! 또 왜 그러세요. 심심하면 영약 얘기 꺼낸다니까.” “이놈아! 네놈한테 들어간 약이 아까워서 그런다. 그거면 우리 귀여운 무이 약 한 첩이라도 더 달여 줬을 텐데 말이다.” 초관염이 무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무이를 바라보는 초관염의 눈에는 따뜻함이 가득했다. 그러자 초풍영이 투덜거렸다. “쳇! 그래서 나도 몇 알 못 먹은 청령환을 그렇게 복용시키는 겁니까? 사람 그렇게 차별하는 거 아닙니다.” “넌 그래도 영약을 많이 복용했잖아. 그 덕에 무당에서도 출세했고. 그거면 됐지. 더 이상 뭘 바래?” “네.............네! 알겠습니다. 제가 더 이상 뭘 말할까요.” 무당 이야기만 나오면 할 말이 없는 초풍영이었다. 사실 어려서부터 먹은 영약 덕에 지금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험한 말을 주고받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것은 따뜻한 기운이었기에 무이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숙부님은 무이가 싫으세요?” “숙부? 누구.........나?” 초풍영이 주위를 둘러보다 자신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무이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네!” “내가 왜 네 숙부가 되지?” “음~! 숙부님은 저희 백부님을 형님으로 모시기로 했잖아요. 그러니 무이의 숙부님이 맞죠.” “그...........그런가?” “네~!” 뒤통수를 긁으며 얼떨떨해 하는 초풍영을 향해 무이가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모습에 초풍영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자......잘 부탁하마! 무이야.” “네! 숙부님.” “고.....고맙구나!” 말을 해놓고도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초풍영은 그저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초관염은 그 광경을 미소를 지으며 보다 신황에게 말했다. “이제 하북까지는 불과 이틀도 안 남았네. 하북에 들어서서 북경까지는 며칠이면 도착할 것이야. 이제 경로를 어떻게 잡으려는가? 이 일행의 실질적인 우두머리가 자네이니 자네가 결정하게나.” 그의 말에 팽만익과 팽유연이 관심을 기울였다. 이제 집이 가까워진 만큼 조금이라도 빠른 경로를 택해 움직이고 싶기 때문이다. “북경으로 가는 제일 빠른 길이 어떻게 됩니까?” 그의 말에 대답한 사람은 팽만익이었다. “제일 빠른 길은 관도를 통해서 가는 길이네. 이곳에서 곧장 관도를 타고 부평(阜平)을 거쳐 가는것이 제일 빠르지. 관도기 때문에 길도 잘 닦여 있어 비교적 편하다네.” “좋군요! 그럼 관도를 이용하는 것으로 하지요.” “알겠네. 그럼 내 그렇게 움직이는 것으로 알고 있겠네.” 신황의 말에 팽만익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며칠이면 성수신의를 모시고 팽가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힘이 솟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형인 팽만우의 상태가 어찌되었을지 걱정이 되는 그였다. 그리고 그것은 팽유연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기색을 알아차렸는지 초관염이 웃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자네들한테 들은 말로 종합해볼 때 팽가주의 상태가 그리 급하게 악화되리라고 생각되지는 않네. 아마 시간적 여유는 충분할거야.” “하여간 형님만 믿습니다.” “인명은 재천이라 하였으니 내 장담은 하지 못하네. 하지만 최선을 다할 것은 약속하지.” “고맙습니다! 형님.” 팽만익이 다시 한 번 초관염에게 고개를 넙죽 숙였다. 그 모습에 초관염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어~허! 이 사람 또 왜 이러나? 이러면 내가 불편하니 그만하게.” “알겠습니다. 형님!” “허허허~! 자네도 사람 참 난감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 결국 초관염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이는 웃음을 지었다. 무이는 지금 같이 가는 사람들이 모두 마음에 들었다. 자신을 지극히 아껴주는 할아버지들과 이모, 그리고 새로 생긴 숙부까지도. 그래서 무이는 지금 이순간이 매우 즐거웠다. 크르릉~! 그때 설아가 나직하게 울었다. 신황의 눈이 설아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했다. 그러자 이제 새로 객잔에 들어오는 인물들이 보였다. 한명의 여자와 한명의 남자. 여자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었고 남자는 탄탄한 체격과 허리에 찬 검이 그가 무공을 익힌 무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은 신황 일행이 식사를 하고 있는 탁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점소이가 다가오자 그들은 무언가 음식을 주문했다. 그리고는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일행 중 그들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신황은 그들의 모습이 왠지 낯이 익다는 것을 느꼈다. 신황이 은밀한 눈으로 그들을 보는 것을 느꼈는지 무이가 물었다. “백부님!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니다.” 다시 음식에 손을 대며 신황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무이는 다시 묻지 않고 식사에 열중했다. 신황 역시 더 이상 새로운 인물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저쪽 일행들 역시 곧 주문한 음식이 나와서 식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식사가 모두 끝난 후 신황 일행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든든하게 식사를 끝냈으니 다시 먼 길을 떠나야 할 순간인 것이다. “배도 든든하게 채웠으니 이제 출발해볼까!” 초풍영이 기지개를 키며 일어났다. 그의 얼굴에는 만족스런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한편 설아는 신황의 어깨에 올라타 있었다. 평소 무이의 품속이나 어깨에서만 생활하던 것을 보면 그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때문에 무이의 볼은 잔뜩 부어 있었다. “왜 그러는 거야? 아까 일 때문에 아직도 삐진 거야?” 무이는 설아가 아까 새벽의 수련 때문에 아직도 설아가 삐져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크르르~! 그러나 설아는 요지부동, 신황의 어깨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때문에 무이의 미간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하지만 신황이 말없이 걷고 있으니 무이 역시 조용히 뒤를 따를 뿐이었다. 신황은 설아를 어깨위에 올려 놓은 채 조금 전에 들어온 남녀의 탁자를 지났다. 그러자 그의 코끝 을 간질이는 지독한 향수 냄새. 크르르! 신황과 설아의 미간이 동시에 찌푸려졌다. 그리고 신황은 그제서야 알았다. 왜 설아가 자신의 어깨에 올라탔는지 말이다. 휙~! 설아는 그제서야 자신의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다시 무이의 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제야 무이의 표정이 풀리며 웃음을 띠었다. 신황의 입가가 말려 올라갔다. ‘이제 접근하는 건가? 재밌군!’ 초관염을 필두로 밖으로 나가는 일행들, 그런데 갑자기 탁자위에 앉아있던 여자가 일어섰다. “혹시 벽력도 팽대협이 아니십니까?” 팽만익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녀를 봤다. “내가 벽력도가 맞소이다만 소저는 누구신지?” 자신을 부르는 이제 이십대 초반의 여인, 화사하게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미인이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살짝 치켜 올라간 눈 꼬리와 살짝 말려 올라간 입 꼬리가 그녀를 꽤나 도도하면서도 오만하게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아름답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여인을 한번이라도 본적이 있다면 분명 기억이 남아 있을 텐데 그의 기억 속에는 이런 여인이 없었다. 때문에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팽만익이 자신을 몰라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인은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맞으시군요. 예전에 무림맹에 오신 것을 먼발치에서 뵌 적이 있어 긴가민가했는데 말입니다. 저는 제갈우희라고 합니다. 무림맹의 문사이신 백면서생께서 저의 아버님이십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오~! 제갈대협의 따님이시구만. 이거 미안하네. 내 미처 알아보지 못했네.” “아닙니다. 저 역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여쭤본 것입니다. 실례는 제가 저질렀습니다.” 미안해하는 팽만익을 향해 제갈우희는 화사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곤 자신의 옆에 있는 남자를 소개했다. “이쪽은 무림맹 소속의 무룡대 대주이신 철장우 대협이십니다. 이번에 저와 같이 강호를 나왔지요.” “벽력도로 이름이 높으신 팽가의 팽대협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무룡대의 대주인 철장우입니다.” 제갈우희의 소개에 철장우가 일어나 포권을 취하며 자신의 소개를 했다. 그러자 팽만익이 반색을 하며 포권을 했다. “오~! 무림맹의 대들보라는 철대협이시구려. 내 미처 몰라봤소이다. 만나서 반갑소.” “저도 그렇습니다. 팽대협.” 팽만익도 무룡대의 무력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룡대의 대주인 철장우의 소문도 말이다. 유명무실했던 무림맹이란 존재를 순식간에 부각시킨 무룡대의 대주인 철장우. 팽만익이 아무리 무림맹의 존재를 신경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철장우의 존재마저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럼 이분들께서는 팽대협의 일행들이시겠군요.” “그렇소! 모두 같은 일행이라오.” 제갈우희의 말에 팽만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일행들이 한명씩 자신의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나선 것은 초관염이었다. “성수신의 초관염이라 하네. 반갑구먼.” “아~! 강호에 명성이 드높으신 성수신의셨군요. 만나 뵙게 되서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말학후배 철장우라고 합니다.” 다음에 나선 것은 팽유연과 초풍영이었다. 모두가 젊은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자신들의 소개를 하는 그들의 분위기는 무척 화기애애했다. “무당의 제자인 삼절검 초풍영이라 합니다.” “팽가의 팽유연이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소!”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신황과 무이였다. 신황은 이제까지 무심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다 앞으로 나섰다. “신황이오. 그리고 이 아이는 내 조카인 백무이오.” “안녕하세요.” 신황이 나서자 제갈우희의 눈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빨리 나타났다 사라져 아무도 그녀의 눈에 일어났던 조그만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다. 제갈우희는 얼굴 가득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신황에게 인사를 했다. “아~! 그렇다면 명왕 신황 대협이 본인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제갈우희라고 합니다.” 이제까지 초풍영이나 팽유연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래서 사람은 이름이라고 하는가 보다. 확실히 그녀의 태도는 팽유연이나 초풍영을 대할 때와는 달랐다. 이번엔 철장우가 포권을 했다. “철장우라고 하오.” “신황이오.” 포권을 하는 두사람 사이에는 묵직한 기운이 감돌았다. 단지 그 이름만으로도 강호를 진동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무이는 신황의 검지를 잡고 그들을 번갈아 봤다. 무이의 눈에는 새로 나타난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다. 철장우의 눈은 신황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매우 실례되는 행위였지만 신황이나 철장우 모두 개의치 않았다. 철장우는 매우 뜨거운 눈으로 신황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에 비해 신황은 여전히 무심한 눈으로 그의 눈빛을 받았다. “대주님!” 한동안 그들의 눈싸움이 계속되자 옆에서 제갈우희가 보다 못해 철장우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제야 두 사람의 시선은 떨어졌다. 그 순간 어색해진 분위기를 만회하기 위해 팽만익이 나섰다. “그런데 무림맹에 있어야 할 두 사람이 어인 일로 이곳까지 온 것인가?” “실은 저희도 팽가로 가는 길이었는데 이리 만나다니 정말 대단한 우연 같습니다.” “팽가로? 아니 무슨 일 때문에 팽가에 가는 것인가?” 제갈우희의 말에 팽만익이 의문을 드러냈다. 이제까지 팽가와 무림맹은 별 교류 없이 지내왔기 때문에 특별히 오고갈 일이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몇년에 한번 가끔 들리니 무슨 특별한 관계도 아닌 것이다. “사실 이번에 저희 아버님의 명으로 팽가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팽가의 가주님께서 편찮으시다는 말을 듣고서 많은 걱정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예전에 소림사에서 무림맹에 기부하셨던 소환단 두 알을 팽가주님께 갖다드리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팽가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런.............!” “마침 잘 되었네요. 이리 만났으니 따로 움직일 것 없이 같이 북경으로 가면 되겠군요.” 제갈우희의 말에 신황과 무이를 제외한 사람들의 얼굴에 놀란 빛이 떠올랐다. 그녀가 말한 소환단 때문이다. 소림사에 대환단과 소환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미 강호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대환단은 단지 한 알을 복용함으로써 일 갑자의 공력을 증진시켜준다는 소문이 있었다. 또한 아무리 생명이 경각에 달했어도 대환단 한 알이면 기사회생을 시킬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워낙 만드는 법이 까다로워 소림사에서도 몇 알밖에 없다고 했다. 그에 비해 소환단은 비록 대환단에 비해 약효가 떨어지지만 역시 내공증진의 효과와 함께 구명효과가 그 무엇보다 탁월하다 했다. 소림사에서는 예전 무림맹이 세워졌을 때 수십 알의 소환단을 기부했다. 하지만 수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소환단이 사용되었고 남은 것은 이제 불과 열 알 정도에 불과했다. 그렇게 귀한 것을 팽가주를 위해 내준다고 하니 당연히 사람들이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말 제갈대협이 소환단을 내준 것인가요?” 팽유연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물론이에요! 아버님은 예전에 팽가주님을 뵌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분의 풍모에 크게 감탄하셨다고 했어요. 그래서 다시 꼭 한번 뵈었으면 하던 차에 안 좋은 소식을 들으시고 소환단을 쾌히 내놓으신 거예요.” “어~허! 이런 고마운 일이 있나. 정말 고마운 일이야. 정말...........!” 팽만익은 연신 감탄사를 터트렸다. 이미 팽만익은 제갈우희한테 넘어간 듯 보였다. 무림맹에서 자신들을 위해서 영약을 내놓았다는 소리에 꿈뻑 넘어간 팽만익, 그에 비해 팽유연은 무언가 미심쩍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비록 우연을 가장했으나 하필 자신들이 가는 길목에서 만난 것도 그랬고 팽가주가 쓰러졌다는 소식에도 이제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던 그들이 갑자기 영약을 준다는 이야기도 무언가 이상한 것이다. 그러나 면전에 대고 그런 소리를 할 수 없기에 그녀는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 ‘형님! 정말 잘되었네요. 소환단에 숙부의 의술이라면 팽가주께서 일어나시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 문제일 것입니다.’ “..............”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초풍영이 신황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그러나 신황은 여전히 묵묵부답에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초풍영은 즐거운 얼굴이었다. 자신이 합류한지 얼마 안 되어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이 꼭 자신의 덕분인 것 같기 때문이다. 제갈우희의 입가에는 은밀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의심을 받지 않고 신황의 일행에 합류할까 고심했는데 소환단 두 알로 아무런 의심 없이 무사히 합류한 것이다. 비록 소환단 두 알이 아깝긴 했지만 신황이란 남자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녀는 어떻게 하든 신황을 자신들 편으로 끌어들이려 마음먹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미인계를 펼칠 각오도 되 있었다. 그런 제갈우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황은 무심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볼뿐이었다. 올 때는 여섯이었는데 갈 때는 둘이 더 늘었다. 팽만익이 제갈우희 일행이 합류하는데 동의했기 때문이다. 초관염, 팽만익, 팽유연, 제갈우희가 마차에 탔고 나머지 사람들은 말을 타고 길을 떠났다. 무이는 이제까지 타고 가던 마차에 타지 않고 신황의 앞에 앉았다. 이유를 묻는 신황에게 무이가 조용히 속삭였다. “저 언니의 몸에서 나는 지분냄새가 좀 독해서요.” 슥슥! 그에 신황은 두말하지 않고 무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신의 앞에 앉혔다. 무이의 마음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거참! 그렇게 나란히 앉아 있으니까 정말 친 부녀지간이라 해도 믿겠습니다. 형님, 혹시 무이가 형님의 숨겨 놓은 자식 아니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초풍영이 질투 섞인 한마디를 했으나 누구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농을 거는 초풍영 앞에 무이는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철장우는 그런 광경을 보다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내가 긴장했던가? 나 철장우가...............’ 어느새 그의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새 너무 주먹을 꽉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신황이 강하다고 하지만 자신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혹 무슨 일이 있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황의 무심한 눈을 보는 순간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눈으로도 도저히 그 속을 알수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는 신황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무의식중에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간 것이다. ‘저 자, 생각보다 위험한 자일지도 모른다.’ 신황을 바라보는 철장우의 눈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신황이 철장우를 바라봤다. 동시에 철장우의 시선도 원래의 냉정을 회복하고 있었다. 신황은 말을 철장우 쪽으로 몰아오며 물었다. “혹시 두 사람 이외에 일행이 있소?” “우리 두사람 뿐이오. 왜 그러시오?” “분명 두사람 뿐이오?” “그렇소이다. 분명 우리 둘뿐이오.” 집요하게 묻는 신황의 말에 철장우는 딱 잡아 땠다. 사실 그들의 주위에는 그의 부하들인 무룡대가 은밀히 따라붙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500장 이상의 거리를 두고 따라오고 있기에 신황이 눈치 챌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철장우의 확답에 신황은 묘한 미소를 지며 다시 멀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철장우는 문득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애써 고개를 흔들어 불길한 느낌을 떨쳐버리려 노력했다. ‘500장 이상의 거리를 두고 따라오고 있다. 더군다나 절정의 은신술을 익혀 지척에 있어도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한번 떠보는 것인가?’ 그는 신황이 자신을 떠본 것이라고 스스로 납득했다. 철장우에게서 멀어진 신황은 다시 마차의 옆으로 나란히 말을 몰면서 무이에게 말을 건넸다. “무이야, 혹시 늑대 사냥하는 법을 알고 있느냐?” “사냥요? 아니요. 아직 본적도 없는걸요.” 무이는 신황이 왜 그런 말을 꺼내는지 영문도 모르면서 넙죽 대답했다. 그러자 신황이 무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천산에 사는 늑대는 매우 사납단다. 워낙 험한 곳에서 살기 때문에 먹이가 모자라서 그런 것이지. 아마 전에 무이가 봤던 흑혈랑(黑血狼)보다 강하지는 않겠지만 사납기로 따지면 오히려 더할 것이다. 정말 독하기 이를 데 없는 놈들이지. 그런데 그놈들은 보통 수십 마리씩 사냥을 다닌단다.” 무이는 신황의 말에 정신없이 빠져 들었다. 신황이 이리 긴 이야기를 해준 적도 처음이지만 또한 이야기가 워낙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신황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천산의 늑대들은 오직 단한마리의 사냥감만을 노린단다. 자신보다 약한 상대라도 때로 몰려들어 난도질을 하고, 혹 자신들보다 강한 상대라면 은밀히 뒤를 따르면서 기회를 노리지. 수십 마리나 되는 녀석이 오직 한 녀석을 잡기위해 먹잇감의 뒤를 따르면서 이빨을 드러낼 틈만 호시탐탐 노리는 것이다.” 어느새 사람들은 신황의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신황이 무슨 의도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몰랐기때문이다. 하지만 신황은 사람들의 시선에는 상관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런 늑대들의 공격법은 매우 효과적이어서 먹잇감의 정신을 분산시키거나 겁을 집어먹게 해서 쉽게 먹이를 얻는단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 설아가 녀석들의 표적이 된 적이 있었단다. 설아의 영역과 녀석들의 영역이 겹쳐서 일어난 일이지.” 그 당시 설아는 신황의 거처를 중심으로 자신의 영역을 삼았다. 그런데 어느 날 외부에서 늑대무리가 들어와 근처를 자신들의 영역으로 삼으면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신황의 집에 머물면서도 자주 밖으로 외출을 나갔던 설아는 산속에서 늑대의 무리와 조우하게 된다. 비록 조그만 하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설아의 숨겨진 힘을 알아본 늑대들은 설아의 뒤를 따르면서 특유의 사냥술을 펼쳤다. 그리고 마침 신황이 그 모습을 본 것이다. 무이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자신의 품에서 자는 설아의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제 이야기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 당시 설아는 귀찮은 마음에 녀석들을 떼어놓으려 했지. 하지만 늑대들은 매우 집요하게 설아의 뒤를 따랐단다. 녀석들은 자신들의 영역에 결코 같은 포식자가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결국 설아의 성질이 폭발했지. 설아가 어떻게 했을 것 같니?” 신황의 말에 무이는 한참을 고민했지만 답을 얻지는 못했다. 그래서 귀엽게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백부님.” “은밀히 자신의 뒤를 따르는 상대에는 더 은밀하게 대하는 것이 효과적이란다. 때문에 설아는 자신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운 채 오히려 늑대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단다. 설아는 제일 뒤에 처져 따라오는 놈부터 한 놈씩 사냥하기 시작했지. 아무리 경계를 철저히 해도 은밀한 안개처럼 한 놈씩 해치는 설아의 공격을 녀석들이 당해낼 재간이 없었지. 비록 늑대들도 자신의 모습을 숨기는데 뛰어났지만 설아는 더욱 뛰어났단다. 그렇게 완벽한 설아의 은신술과 집요한 공격에 얼마 안가 늑대들은 곧 이성을 잃고 우왕좌왕했단다. 그리고 결과는 설아의 완벽한 승리였지. 수십 마리의 늑대들이 제대로 힘을 못 써본 채 모두 눈에 몸이 묻힌 것이다.” “정말, 정말 설아가 그랬어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무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직도 무이는 설아가 그렇게 강하다는게 믿기지 않는 것이다. 신황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 “이것은 한 예를 든 것이지만 이렇게 나는 혼자인데 적은 수십일 경우가 있단다. 오히려 모습을 드러내놓고 정정당당히 공격해오면 좋은데 은밀하게 뒤를 따르면서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부류들이 꼭 있지. 지금 내가 말한 이야기는 그런 부류들을 상대할 때 무척이나 효율적인 방법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 놈씩 죽어나가면 공포는 극이 되고 곧 무리의 명령체계에 혼선을 가져오지.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공포는 눈덩이처럼 커져 무서운 환상을 만들어낸다. 때문에 종극에는 별달리 손을 쓰지 않더라도 스스로 지리멸멸하게 되지. 오히려 사냥 당한다는 공포 속에서 말이다.” “우~움! 결론은 은밀하게 다가오는 적에게는 더 은밀하게. 이 말씀이시죠?” “그렇단다. 무이가 매우 똑똑하구나.” “헤헤!” 신황의 칭찬에 무이가 기분 좋은 듯 웃음을 터트렸다. 신황은 그런 무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한편 신황의 이야기를 듣던 제갈우희와 철장우의 안색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꼭 자신들의 뒤를 따르는 무룡대를 두고 하는 이야기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신황이 무룡대의 존재를 알 리 없다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앞으로 무이가 커서 강호를 홀로 다니게 된다면 그런 경우를 당할지도 모른다. 그때는 단호하게 손을 써야한다. 그래야 그들이 무이를 두 번 다시 우습게 보지 못한단다.” “단호하게요? 노력은 해보겠지만.............헤헤!” 신황이 말하는 단호하단 뜻이 무엇인지 잘아는 무이는 그저 혀를 내밀며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냥 들으면 백부와 조카의 정겨운 이야기다. 하지만 그의 말속에는 매우 날카로운 가시가 숨어 있었다. 때문에 철장우와 제갈우희의 심기는 매우 불편했다. 찔리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황은 그런 그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직 무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말을 몰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이제까지 조용히 마차를 몰던 팽만익이 일행에게 소리치듯 말했다. “여기서 잠시 쉬어 가자구. 말이 지쳐 더 이상 모는 것은 무리야.” 그의 말처럼 마차를 모는 말은 매우 지쳐있는 듯 콧김을 거칠게 내뿜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커다란 바위가 있는 나무그늘에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모두들 말에서 내려 큰 바위로 모였다. 그러나 신황은 숲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백부님! 어디 가세요?” “일 좀 보고 오마. 쉬고 있거라.” “네~!” 신황의 말에 무이는 아무런 의심 없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숲속으로 들어가는 신황의 눈빛은 스산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