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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그녀, 傷花(상화)를 그리다
전미야
밖은 불볕더위인데 방안은 한기가 느껴진다. 팔뚝에는 솜털이 오소소 일어서고 소름까지 돋는다. 침대 위에 누운 여인. 눈썹에는 마취제를 발랐는지 랩이 씌워졌고, 다른 한쪽은 진갈색으로 그려진 눈썹이 초승달처럼 방그레 웃는다.
휴대전화가 울린다. 손에 든 니들을 유리 탁자 위에 놓인 흰 케이스에 조심스럽게 얹으며 못마땅한 듯 필연은 구시렁거린다. 바쁜데 전화까지……. 그러나 전화를 받는 필연의 목소리는 어느새 나긋나긋해져 있다. 네에, 아, 언니! 그녀는 수첩을 꺼내 이리저리 뒤적이며 상대방과 스케줄을 잡는다. 그러고 나서 수첩을 서랍 속에 넣어두고는 밀쳐둔 검정 보조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아 다시 여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언니, 눈 떠봐요.”
필연은 두 눈을 한데 모으고는 양미간에 굵은 주름을 만든다. 오른쪽 검지와 장지를 나란히 붙여 누워있는 여인의 눈 꼬리 이쪽저쪽에 대어보며 길이와 높이를 가늠한다. 그리고는 쓰던 색소가 모자랐는지 작은 튜브로 된 세 개의 병을 열어 조금씩 덜어낸다. 뭔가 부족한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오렌지 계열 색을 조금 더 넣는다. 그렇게 해야만 색 퍼짐을 방지하기 때문이다. 색소를 잘 혼합해 놓고 칫솔만 한 니들에 바늘을 끼워 그 뾰쪽한 끝으로 물감을 콕콕 찍어가는 것이 꼭 재봉틀 바늘 놀듯 한다.
한참 그러다가 손을 멈추고는 여인에게 손거울을 건네며 말한다.
“날 보세요. 아, 예술이네! 눈썹이 이렇게 잘 빠지면 내가 기분이 좋아요. 자, 보세요.”
“글쎄, 진하고 부어선지…….”
“아니에요. 딱지 떨어지면 아주 자연스러워져요.”
필연은 4개월 되면 수정하고 그다음부턴 1년에 한 번씩만 하면 예쁘게 그대로 유지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여인은 마뜩찮은 얼굴이다.
초인종이 울리고, 필연은 비디오폰 화면으로 방문객을 확인한 후 버튼을 누른다. 오랜 단골인 운지가 헐레벌떡 들어선다. 필연은 잠깐 일별하고는 계속 니들만 움직인다.
“왜? 무슨 일 있어요?"
“말도 마. 내 지금 숨넘어가기 일보 직전인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운지는 숨이 차 씩씩거리며 따발총 쏘듯 말을 뱉는다. 수영장에서 강사가, 사모님 세수해야죠? 해서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입술 지우라는 말에 아차 했단다.
필연은 운지를 힐끔 쳐다보곤 대답 대신 방구석에 있는 주황색 동그란 플라스틱 의자를 끌어다 에어컨 앞으로 밀친다.
운지는 땀에 옷이 흠뻑 젖었고 얼굴도 땀으로 번들거린다. 동그란 의자에 앉더니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땀을 닦아낸다.
“요즘 멋을 좀 낸다 하는 웬만한 여자들은 입술 문신 다 하는데, 그래서 뭐라 했어요?”
“엉겁결에 문신인디요, 했지. 그랬더니 그 많은 여편네들이 다글다글 웃잖아.”
그건 그렇다. 수영장에서는 수질관리와 심장마비 예방차원에서 샤워하고 물에 들어가는데 진달래색 입술에 눈썹, 아이라인까지 완벽하게 하고 물에 들어갔으니 금방 눈에 띄었을 것이다.
“미운털 박혔어요? 그걸 모를 리가.”
“모르지. 쥐구멍이라도 있었으면 숨었을 긴데.”
“그런디 글쎄, 더 미치게 하는 건 한 여편네가 우리 반에 연예인 있네, 하잖아. 아무도 없었으면 모가지를 확…….”
“신경 쓰지 마요. 샘 나 그러는 거니까.”
눈썹 시술받는 여인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히죽이 웃더니 입을 뗀다.
“나, 이야기 하나 할게요. 친구가 자식들 몰래 문신을 했는데 하필이면 그날 며느리가 왔더래요. 시어미 체면에 민망하고 창피해서 고개를 돌려 안 한 것처럼 했대요. 그런데 며느리가 많이 따갑지요? 사흘만 지나면 외출해도 표 안나요, 하더래요.”
“그럼 그 며느리도 했네, 뭐.”
“그렇지요? 평소 늘 깔끔하고 단정해서 여자 중의 여자라고 좋아했는데 그게 문신발이더래요.”
“요즘은 문신 안 한 사람 없어요. 남자들도 많이 하는데!”
“그건 그래. 직장 나가려면 밥은 안 먹어도 얼굴은 만져야 하잖아. 문신하면 메이크업만 살짝 덧씌우면 되니 그래서들 하는 거지.”
운지도 여인의 말을 거들더니 화가 풀린 듯 했다. 그녀는 커피를 마시자며 주방으로 가더니 석 잔의 커피를 끓여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다시 문신에 관한 이야기기가 이어졌다.
“돌아누울 힘도 없고 정신마저 오락가락한 할매들이 눈썹 문신에 아이라인까지 하고 립라인을 한 사람도 있는데 그런 할매를 보면 웃음이 나오다가도 서글프더라고.”
“그런 것 보면 요즘 반영구화장 잘 참 나온 거지요. 자연스럽고 이내 빠지니 관속에 새까맣게 눈썹 그리고 들어갈 일 없잖아요.”
“죽음에 순서 있다냐?”
“아니지.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예쁘게 화장하고 저승 가면 영감귀신들 미인 왔다고 좋아들 할 건데.”
그들은 또 한바탕 깔깔거린다.
“늙어도 예쁜 건 아나 봐.”
“젊었다고 그런 소리 하면 안 돼. 늙어도 마음은 끝없는 청춘인 기라.”
“우리 친구 어머니는 치맨데 명절이라 병원에서 모시고 왔대요. 그런데 사위를 남자로 보고 앞에서 다소곳이 앉고, 화장대 앞에 붙어 서서 자글자글한 얼굴 주름을 손으로 이리저리 당겨보고 그러더래요.”
“쯧쯧. 사위도 못 알아보면서.”
“여자의 본능인 거죠.”
한참 깔깔거리던 그들은 이내 한숨을 내 쉰다. 나면 늙고 죽는 건 피해갈 수는 없다. 그렇지만, 자기 몸 하나 건사도 못하면서 마음만 젊어도 흉하지 않겠는가. 몸이랑 마음이 같이 늙어야 하는데 수명이 길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지 싶은 것이다.
“언니, 일어나 거울 봐요. 마음에 드는지?”
여인은 일어나 앉아 손거울을 들어 눈썹을 비춰본다. 눈썹 결 따라 한 올 한 올 심은 듯 하고 색의 농담을 적절히 살려 마치 화장용 연필로 그려놓은 듯했다.
“맘엔 들죠? 커피 마시고 해요.”
단아하고 말수가 적은 여인은 탁자 위의 커피잔을 가져다 마시며 대답 대신 싱긋이 웃어준다.
“커피 마셨으면 누우세요. 마무리하게.”
여인은 다시 침대에 누워 베개를 벤다.
운지는 곁에 앉아 니들 바늘 끝이 오가면서 눈썹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만들어지는 걸 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듯하더니 입을 연다.
“문신 잘되면 관상도 바뀌겄재?”
“어느 개그맨이 요즘 성형을 많이 해서 관상이 안 나온대요.”
그 말에 공감이 간다는 듯 운지는 고개를 끄떡인다. 그녀 역시 성형을 많이 했다. 깊게 팬 쌍꺼풀, 날름하게 솟은 코, 튀어나온 입, 진달래색 입술. 분명 손을 많이 대었지만 부조화다. 고치고 문신을 새겨 팔자를 바꿀 수 있다면 누가 애태우고 한숨 쉬며 살겠는가. 사람들은 관상, 팔자 하지만 누구나 주어지는 기쁨과 슬픔 중 어느 것을 마음에 품고 사느냐에 따라 행, 불행도 바뀌고 인생이 달라지니 자기 팔자는 자기가 만들어가는 게 아니던가.
“얼굴 고쳐 관상이 달라지면 남편들 바람도 안 피우겠쟤?”
“언닌 어느 시대 사람이요? 요즘 혼전동거, 초혼, 재혼 정도는 거쳐야 현대여성이라는데.”
“쯧쯧쯧. 세상 말세지. 이대로 가면 어찌 될는지.”
여인은 얄궂은 세상을 한탄한다.
관상, 팔자……. 필연은 관상이란 말에 지난 기억들이 일제히 일어선다.
그녀는 전라도 작은 어촌에서 7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어려운 집안사정으로 간신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진학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아버지는 입 하나 덜 요량으로 딸 취직을 시키려 여기저기 줄을 놓았다. 그러다가 친척의 주선으로 공장에 취직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열심히 일을 했다. 어린 나이인데도 암팡져 야간작업도 억척스럽게 해내었다. 다부진 그녀는 힘들어도 집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당시 공장에 야학이 있었다. 필연은 반장한테 야학에 말 좀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반장은 어린 필연이가 고생하는 게 안쓰러워 친동생같이 늘 살갑게 챙겼다. 그녀는 공부 생각에만 앞섰다. 집에다 이야기하면 못하게 할 것이 뻔했으므로 알리지 않았다. 반장의 주선으로 야학에 들어가 낮엔 일하고 밤엔 잠을 쫓아가며 중학교 과정을 배웠다. 중등 반에서 그녀는 1등을 했고 무엇보다 공부가 재미있었다.
선생님은 나중에 성공할 거라며 검정고시 따서 대학을 가라고 했다. 그녀에겐 꿈이 생겼다. 열심히 공부해 선생님 같은 선생이 되고 싶은 꿈. 그녀는 잠이 부족해 눈에 늘 핏발이 서 있었지만 피곤한 줄 몰랐다. 그렇게 공부에 푹 빠져 지내던 어느 날 아버지한테서 연락이 왔다. 월급이 적은 걸 이야기하다가 그녀가 야학에 나간다는 걸 알고 불호령이 떨어졌다. 여자는 한글만 알면 되고, 남편 잘 만나면 팔자 편다고 당장 때려치우라는 것이었다. 그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토록 하고 싶었는데, 공부하는 동안 연보라빛 꿈도 꾸곤 했는데 그만 접어야 했고, 아버지 앞에 불평도 못했다.
그 일로 잔뜩 풀죽어 있을 때 반장이 다가와 헤살헤살 웃으며 말했다.
“오늘 내 따라 가보자. 거기 가면 회사 월급 배나 준단다.”
“참말로 그런 데가 있어요? 어디에요? 나 좀 소개해줘요.”
필연의 사정을 잘 아는 반장의 말에 그녀는 고마워 따라나섰다. 반장이 데려간 곳은 공장 아니었다. 예쁜 언니들이 손에 담배를 꼬나들고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언니 여기는……?!”
얼굴도 예쁘고 한참 피어나는 꽃다운 나이라 그곳에서 필연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걱정 말아요. 여기서 심부름만 해주면 됩니다.”
세상 물정도 모르는 순진한 필연은 그게 함정인 줄도 모르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돈 급하면 땡겨줄까?”
“월급……. 선불이라니요?”
“필요하면 말해. 들어줄 테니.”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공장에선 가불을 하려면 자금 사정을 들먹이며 안 된다고 번번이 거절했는데 아직 일도 시켜보지 않고 돈부터 준다지 않는가. 필연은 아버지 엄마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그려본다. 선불로 준 월급은 집에 고스란히 부치고는 가슴이 벅찼다. 나도 이제 아버지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이 될 수 있어. 그런 생각이었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일할게요.”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필연은 그날 밤, 손님방으로 내몰렸다.
“심부를 하라더니.”
“그게 네가 해야 할 심부름이야. 말 잘 듣겠다고 돈도 미리 받았잖아.”
그랬다. 월급은 받았고, 그 돈은 이미 집으로 부쳤다. 그녀는 울부짖으며 애원한다.
“살려, 주세요.”
“내가 뭐 땜시 그냥 돈 준다냐. 난 장사꾼이야.”
“다른 일 할게요. 제발,”
“너 죽을래? 내 말 안 들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너 같은 건 없앨 수 있어. 죽고 싶어?”
울며 사정을 해도 헛일이었다. 그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길은 없었다. 필연은 그렇게 그들의 꼭두각시로 살아야만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음의 유혹을 받지만 파내고 뜯어내도 끈질기게 살아나는 되살이 풀처럼 필연은 더 강하게 버텨냈다.
방이라야 겨우 침대 하나 들어앉은 작은 공간 필연은 침대에 걸터앉아 도끼눈을 뜨고 벽을 꼬나본다. 가슴에서 치미는 불덩이가 목구멍을 훑고 목젖을 태우는지 앙다문 입 사이로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신음이 새어나온다. 벽에다 머리를 쿵쿵 찧는다.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투두둑 떨어진다. 한참을 그렇게 앉았다가 두 손으로 목을 감싸 쥐고 지그시 누른다. 손끝에 힘을 주어 더 세게 누른다. 목이 뻣뻣해지고 머릿속이 몽롱해진다. 순간 한 마리 새가 허공을 맴돌다 가파른 나락으로 곤두박질하며 사정없이 땅바닥에 내리꽂힌다. 눈에 별이 보이고 몸이 터지고 살점이 찢겨 붉은 피가 점점이 흐르는 것 같아지고 짜릿한 쾌감이 느껴진다. 그러다가 끝내는 온몸에 힘이 빠지고 손에 힘이 스르르 풀리더니 무너지듯 방바닥에 쓰러진다.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미동도 않고 누워 있다. 한참을 그렇게 누웠던 필연은 그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 눈가에 물기가 번진다. 이렇게 자학한다고 풋풋하고 숫기 있던 처녀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 가끔 이러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이곳을 나간다 해도 사회로부터 받을 수모와 냉대 때문에 살아갈 자신이 없다. 누가 사람 취급을 하겠는가. 가족도 그럴 테고…….
필연은 한동안 그렇게 죽은 듯 누웠다가 비장한 결심이라도 한 듯 일어나 앉는다. 그러고는 입을 앙다문다. 늘 휑하니 바람만 불던 그녀 가슴에 이젠 살아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심지 하나를 꽂아두었다. 그래 돈을 벌자. 이왕 더럽힌 몸, 돈을 벌 테다. 저 심지에 언젠가는 환한 불을 붙일 거야. 그 날 밤 필연은 억척스럽고 강한 여자로 다시 태어났고 그렇게 돈의 예가 되어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단속에 걸려 잡혀가게 되었다. 그녀는 재활교육센터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미용사 자격증을 들고 나왔다. 되돌아갈까 하는 생각에 갈등을 느꼈지만 그녀는 이를 물었다. 그러고는 변두리 작은 미용실에 취직을 하여 허드렛일을 하며 좀 더 기술을 익혔다.
그녀는 한 미용실에 오래 잊지 않았다. 옮겨야 또 다른 기술을 배울 수 있고 월급도 올라가기에 6개월에서 1년이면 철칙처럼 옮겼다. 그러다가 이번에 들어간 미용실은 원장이 머리와 문신을 같이했다. 헌데 원장은 뭔가 좀 서툴렀다. 시술한 문신이 얼굴형에 맞지 않고 찍어낸 듯이 모두가 똑같은 것이다. 그녀는 원장이 시술한 문신을 보고 속으론 쾌재를 불렀다. 그녀도 재활센터에서 미용기술과 문신을 같이 배워 문신 시술을 할 줄 안다.
원장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원장보다 잘한다는 걸 어떻게 알게 할까. 그녀는 고민한다. 그러다 좋은 수가 생각난 듯 손뼉을 친다. 목적을 달성하려면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녀는 밤을 새워 자신의 눈썹에 문신했다.
일찍 미용실 청소를 끝내놓고 원장이 출근하기를 기다렸다. 그녀의 조바심에도 불구하고 원장은 평소보다도 늦게야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어서 오십시오. 원장님!”
원장은 백작부인처럼 고개는 깁스했는지 까딱 도 않고 왼손만 살짝 들었다 내린다. 필연은 얼른 커피를 내려 쟁반에 받쳐 들고 원장 앞으로 간다. 커피잔을 받던 원장 눈이 필연의 눈썹에 꽂힌다. 얼굴빛이 싹 바뀌면서 벌려진 입술이 허연 뻐드렁니를 물고는 빤히 쳐다본다. 그토록 출근을 기다렸는데 원장이 왜 그러는지 영문도 모른 채 주눅이 들어 고개를 푹 숙였다.
“어디서 한 거니?”
“뭐, 뭘요?”
그제야 몸담은 미용실을 두고 다른 데서 문신하고 온 게 괘씸해 그런다는 걸 알고 필연은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했어요. 밤에, 거울보고.”
원장은 입을 딱 벌린다.
“너 참 독한 애구나. 내 진작 그런 줄 알았지만, 어찌 네가, 널……!”
원장한테 인정을 받고 싶었는데 그녀에게 돌아온 건 독하고 무서운 여자라는 딱지였다.
필연은 미장원을 옮겼고 또 옮겨갔다. 새로 들어간 미용실은 부부가 운영했다. 여자는 머리를 했고, 남자는 문신을 했다. 그 남자도 시술이 서툴러 미용실에는 종종 언쟁이 일곤 했다. 기회야. 말을 해보자. 필연은 용감했다.
“원장님, 저도 문신 배웠어요.”
“뭐! 할 수 있어? 잘해?”
“이 눈썹 제가 한 거예요?”
필연은 자신의 눈썹을 만지작거리며 그들 눈치를 살핀다. 주인 부부는 눈썹을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미소를 머금는다.
“낼 예약 손님, 네가 해봐.”
“네? 제, 제가요?”
그녀는 말을 더듬으며 걷잡을 수 없는 흥분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왜 울어?”
“인정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그토록 간절히 바랐는데, 이 기회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다음날 그녀는 문신 시술을 했다. 그땐 반영구화장이 아닌 영구화장이라 한번 새기면 평생 가는 그야말로 문신이었다.
필연은 여자이기에 섬세했고 감각 또한 남달라 시술한 문신은 선이 아름답게 잘 빠졌다. 주인도 손님도 흡족해했다. 필연은 그때부터 문신 시술을 했다.
그런 하루 그녀가 모질게 끊어내었던 아버지가 찾아왔다. 그동안 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모른 채 돈을 보내지 않아 수소문해서 딸을 찾아왔던 게다.
“미용사 팔자 좋은 사람 못 봤다. 얌전히 공장 다니다 시집이나 가도록 해. 그 짓 하다 화류계 빠지기 십상이고 놈팽이 만나 뒷바라지하는 게 미용사 팔잔기다.”
“간섭 마세요. 내 하고 싶은 대로 살 겁니다.”
차갑디 차가운 얼굴로 쏘아보는 딸의 눈빛에는 시리다 못해 살기마저 돌아 섬뜩했다.
“부모도 가족도 모르는, 네가 하늘에서 떨어졌냐? 못된 것. 인간 말종들 모인 곳에서 못된 것만 배워서……. 저런 걸 자식이라고, 쯧쯧쯧.”
그런 아버지를 그녀는 매몰차게 돌려보냈다. 그녀는 가족을 버렸고 결혼 또한 포기했다. 그녀에겐 오직 부자가 되는 꿈뿐이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거듭하여도 그녀는 미용실에만 박혀 도를 닦듯이 일만 했다.
필연에게도 남자가 나타났다. 지훈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 그는 허우대만 멀쩡했지 백수였는데, 끈질기게 쫓아다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백수라는 게 싫어 단호하게 직업 없는 사람은 싫다고 말했다. 그 말에 자극이 되었던 것일까? 한 동안 잘 보이지 않는다 싶더니 그는 그녀를 얻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전화국 시험에 합격하여 당당하게 그녀 앞에 나타났다.
남자를 싫어했고 일찌감치 결혼도 포기했었지만 그런 지훈의 모습에 그녀는 어느새 푹 빠져버렸다. 지훈과 함께라면 행복할 것 같았고 무엇보다 지훈의 가슴에 안기면 바람 부는 대로 흘러갈 돛단배 같은 자신이 정착하여 편하고 포근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혼하자는 그 한 마디. 그토록 듣고 싶고 기다렸던 말인데도 지훈의 청을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배운 것도 그렇거니와 자신의 과거 때문이었다. 내 과거를 알게 되면……? 그래도 나와 결혼하잘까? 그녀는 모든 걸 털어놓으려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지훈이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는데 어리석게 왜 말을 해. 비밀은 신께나 하는 거라 않던가. 이건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야. 지훈의 손을 붙들 거야. 그녀는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고는 곧 결혼하여 지훈의 아내가 되었다.
그렇게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 지훈은 경주로 발령이 났다. 필연은 난감했다. 이제 문신이며 미용기술을 조금 인정받았는데 어떻게 하나. 그렇지만 남편과 떨어져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이사를 했다.
“이제 당신 쉬어, 내가 벌잖아.”
지훈은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꿈을 버릴 수가 없었다. 부동산을 쫓아다니던 끝에 장사가 안 되어 내놓은 작은 미용실을 인수했다. 이젠 그 고된 미용사 시집살이도 끝났고 그토록 소망하던 내 미용실이 생기게 되었다. 만류하던 지훈도 당신 대단하다고 추켜세웠다.
그녀는 머리와 문신을 함께 했는데도 문신이 더 알려졌고 장사도 잘되었다. 열심히 일해도 쥐꼬리만큼 받다가 주인이 되고 보니 가게 세를 지불하고도 수입이 짭짤했다.
“이대로 가면 곧 집도 사겠다. 그지?”
그들은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다. 미용실도 자리가 잡히고 그녀 특유의 화술로 단골도 늘어났고 아들 호영이도 태어났다. 그녀는 더 억척스럽게 일을 했고 계획대로 통장 잔액도 늘어났다. 호영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해 남편은 다시 울산으로 발령이 났다. 잘 되는 가게를 접는다는 게 아쉬웠지만 그녀 가족은 울산으로 옮겨갔다.
울산으로 가서는 미용실을 내지 않고 출장 문신을 했다. 말 그대로 연락이 오면 찾아가서 해주는 문신이었다. 고민 끝에 생각해낸 것이었다. 사람을 사귀어 소문을 내고, 소문이 퍼지면서 시술한 사람이 소개하고, 그렇게 하다 보니 그녀의 출장은 잦아졌다. 한 번 가면 스무 명, 서른 명씩 모아놓기도 하고, 어느 곳에서는 사람이 몰려들어 사오 일씩 머물기도 한다. 저들은 돈을 조금 주고 한 번 문신하면 평생 지워지지 않으니 유행병처럼 너도나도 한다.
필연은 치욕스런 지난날을 보상받고자 아이도 집도 팽개쳐두고 돈이 부르는 곳이면 가방 하나 치켜들고 산골도 섬도 두려움 없이 나섰다. 그렇게 버는 돈은 남편월급 서너 배가 되기도 한다. 필연은 자신과 남편이 번 돈은 모두 계를 넣고 계를 찾으면 이자를 놓았다. 돈이 새끼를 쳤고 그다음부터는 순풍에 돛단 듯 돈이 날개를 달아 꿈에 그리던 5층짜리 상가를 샀다. 그녀 가슴에 심어둔 꿈의 심지에 비로소 불을 붙인 게다. 난 해냈어. 꿈 이뤘다고. 그녀는 독백처럼 혼자 중얼거린다. 자신의 상가 1층에 숍을 열었다. 원래는 식당이었는데 수리해서 아늑한 쉼터처럼 꾸몄다. TV도 넣고 손님이 편하게 누워 시술받을 수 있는 침대, 기다리며 담소를 나누고 차도 마실 수 있게 카페 같은 분위기로 연출했다. 필연은 숍 소파에 앉아 전화번호부를 펴놓고 첫 페이지부터 표시해가며 전화를 돌린다. 언니, 이제 숍으로 오세요? 그녀는 거드름을 피워가며 단골을 불러들였다. 오랜 경력으로 자연스럽고 예쁘게 문신을 잘하니 숍에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그러다 보니 그녀의 삶은 참기름을 바른 듯 기름기가 자르르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등기 우편이 날아왔는데 지훈이 먼저 읽다가 얼굴이 일그러진다.
“뭔데, 왜?”
“당신 불법시술 했다고……. 출석요구서.”
“말도 안 돼. 허가도 냈고 자격증도 있는데. 그게 불안해 숍을 열었다고.”
그녀는 어디서 그런 배포가 생겼는지 당당 해져 되레 남편을 안심시킨다.
소환 날 검찰청으로 갔다.
“아주머니! 왜, 불법시술을 했어요?”
“아니, 숍을 열어놓고 하는데 왜 불법입니까?”
사사로 한 것도 아니고 반영구화장 자격증도 있고 숍도 열었다. 거기다 반영구화장은 문신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색이 빠지는 일종 화장술이라고 또박또박 따졌다.
“그건 의료행위입니다. 현행법상 비의료인의 시술은 모두 불법이고 적발 시 5년 이하의 징역에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필연은 놀란다. 요즘은 반영구화장이 성행하여 너도나도 숍을 열고 병원, 미용실, 피부관리실, 심지어는 찜질방에서도 시술하지 않는가. 그런 사람들은 다 두고 자신만 왜 이러냐고 따져보지만, 그 말이 통할 리 없다. 겁 없이 자기 발로 찾아가 구속이 된 꼴이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벌금형을 받고 풀려났다.
교도소까지 갔다 왔는데도 그녀는 마약중독처럼 문신을 놓지를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손만 꼼지락거리면 하루에 1, 2백만 원은 거뜬히 벌이는데 어찌 그 달콤한 유혹을 뿌리칠 수 있겠는가. 필연은 가게를 정리하고 이번엔 집으로 손님을 끌어들여 시술했다. 대신 예약 받아 치밀한 수법을 써서 법망을 비켜갔다. 필연은 억척스럽게 돈을 불렸고 이미 부자 소리를 듣는다. 삶이 여유로워지니 가슴 안에 부스럼딱지처럼 붙어 자신을 괴롭히는 과거를 오려내고 싶었다. 헌데 그 자국은 오려낼 수도 지우개로 지울 수도 없어 차라리 덧칠하려 들었다. 그래, 공부. 공부를 하면……. 수소문하여 야학을 찾아가 중등반에 들어가고, 일과 공부를 같이 하면서도 기어코 중학교,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학이 또 있었다.
“이제 그만해.”
지훈은 생활력이 강해 열심히 사는 아내가 고마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돈보다 따뜻한 가정이 더 우선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필연은 가족은 뒷전이고 오직 자신의 얼룩을 지우려 동분서주하지 않는가. 그런 아내한테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갔고 정나미가 떨어졌다. 그는 출장을 핑계로 집을 비우는 날이 부쩍 많아졌다. 필연은 알지 못할 불안을 떨어내지 못했다.
그녀의 직감은 적중했다. 남편한테 여자가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윤락가에 있었던 그 죄 때문에 애간장을 태우면서도 왜 바람피웠느냐고 닦달할 수가 없다. 이런 날이면 자신이 불쌍해 통곡했다. 입안엔 백태가 끼고 물도 삼킬 수 없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길 바라며 모르는 척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래야만 남편을 붙들고 가정을 지키는 걸로만 생각했다.
그날도 지훈은 어김없이 술을 먹고 곤드레만드레 되어 들어온다.
“미안해.”
“뭔 술을 이렇게 많이 마셔. 미안해라는 말을 다하고.”
“술 취해서가 아냐. 내가…….”
필연은 남편이 말하려다 끊어진 다음 말이 뭔지 알고 있다. 하여 그 말을 듣지 않으려고 얼른 일어나는데 지훈은 잔인하게 다음 말을 와락 쏟아버린다.
“우리 이혼해. 나 좋아하는 여자 있어.”
“뭐! 이혼?”
철썩! 그녀는 남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알고 있었기에 피하려 했는데 남편 입으로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남편 뺨을 후려쳤다.
갑자기 뺨을 얻어맞은 지훈은 술이 확 깨는지 필연을 꼬나본다.
“이 여자가 눈에 뵈는 게 없네.”
필연도 그동안 참고 참았던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이제 겨우 살 만하니 가정을 버리겠다고? 남편한테 달려들어 치고, 뜯고 방바닥에 TV가 나뒹군다. 지훈의 두 눈은 분노로 이글거리더니 필연의 멱살을 잡아 불끈 치켜든다.
“뭔 이런, 뻔뻔한 게…….”
“바람난 건 당신이잖아.”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넌? 날 속였잖아. 과거.”
과거라는 그 한 마디에 필연은 이내 바람 빠진 풍선처럼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는다. 그러고는 겨우 묻는다.
“언제야? 안 게?”
“울산 와서.”
“그랬구나. 알았어. 이젠, 당신이 아니라 내가 안 살아.”
“내가 헤어지자고 한 건 당신 과거 때문이 아니야.”
지훈은 이야기했다. 필연의 과거는 그에게 너무도 큰 충격이었단다. 감쪽같이 속이고 살아온 아내를 용서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불결해서 살을 맞대기도 싫었다. 그렇지만, 결혼하기 위해 공부했고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필연이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그런 아픔 때문에 더 열심히 사는 필연이가 측은했다. 참을 수 없었지만, 아들과 가정만 생각하자고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그렇게 마음을 다독이며 덮었단다.
그리고 수은 같은 침묵의 시간이 흐른다. 그 시간 속에 화장대 위에는 지훈이가 가져다놓은 이혼서류가 일주일째 그 자리를 지킨다. 그것을 바라보며 필연은 자책한다. 돈에 노예가 되어 살았던 지난 시간들. 그것은 어쩌면 지울 수 없는 과거보다도 더 지훈과 아이를 힘들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동시에 날마다 자신을 죽이며 살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깨달음이란 항상 뒤늦게 온다. 행복이란 돈이 아닌 하나 된 가족 사랑이라는 걸. 태산처럼 믿고 의지하는 남편이 아니라면 모든 게 무용지물이라는 걸……. 필연은 마지막 힘을 다해 서재로 들어가 남편 앞에 무릎을 꿇는다.
“당신을 사랑해서, 잃고 싶지 않아서……. 용서해주.”
굳었던 지훈의 얼굴이 조금씩 풀어진다. 필연의 눈에선 굵은 눈물방울이 쉬지 않고 흐른다. 그런 필연을 보며 지훈이도 가슴이 메어졌다. 그도 여전히 아내 필연을 사랑했다. 둘의 눈에서는 참으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뜨거운 눈물이 흘러 서로의 볼을, 가슴을 흥건히 적셨다.
“니 김치 다 묵었냐?”
“…….”
“야! 혼 빠진 사람처럼. 내가 보여?”
“네? 뭐라 했는데?”
“참 내. 숨겨둔 애인 생각했어?”
“나 그런 것 안 키우는데.”
필연은 문신으로 관상이 바뀌겠다는 말에 자신의 아픈 추억을 떠올렸던 게다.
“어머, 내 좀 봐. 언니 김치 참 맛있더라.”
그녀는 그랬다. 솎음 무김치만 밥상에 올라오면 신랑이랑 게 눈 감추듯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 되어버렸지만 어릴 적 여름이면 절구통에 밥, 고추, 마늘, 제피를 넣고 몽돌로 으득으득 갈아 그 양념으로 엄마가 담아준 김치. 그 맛이 바로 운지언니가 가져다준 맛이었다.
“그 말 들으니 나도 침이 꿀컥 넘어가네요.”
여인은 누워 입맛을 다신다.
“그깟 무김치를 가지고 그러냐. 맛있다니 더 담아다 줄게.
어른들이 ‘물질투자 말고 인간 투자하라.’ 하라고 했는데 필연은 좋은 이웃들이 많다. 운지도 십 년이 넘게 내 집 드나들듯 드나들며 아프다면 한달음에 달려와 살뜰히 챙겨준다.
“니는 돈 잘 버니 신랑이 맨날 업어주제?”
“나,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데. 행복해 보여요?”
“참 내. 길 막고 물어봐라. 자기 행복하단 사람 있는가. 니는 남편 돈 잘 벌고, 아들 잘 컸고, 니도 잘 벌고, 부자잖아.”
“말도 말아요. 내 살아온 걸 글로 쓰면 책 두세 권도 넘을 거네요.”
“우리 나이, 책 두세 권 분량의 사연 없는 사람 있을까요?”
문신을 받던 여인은 그렇게 불쑥 말해놓고 한숨을 길게 내쉰다. 여인의 얼굴에 잠시 서늘한 그림자가 일렁인다. 그건 그렇다. 어릴 때는 모두가 하얀 도화지 같은 가슴이었지만 살아가면서 각기 다른 채색을 하여 칙칙한 색도 빨간색도 검은색도 칠한다. 거기다 자글자글하게 잡힌 눈가의 주름만큼이나 많은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게 아니던가.
“나, 이다음 자서전 내 볼까 싶어.”
필연은 늘 기구한 자신의 삶을 글로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캬아! 그리 되면 성공한 기다. 그 책 뭐라 카노. 그거 되면 벼락부자 되는 기재?”
“베스트셀러?”
“그래, 그거.”
“언제쯤 낼 거예요? 손재주만 있는 줄 알았더니 글도 잘 쓰는가 봐요.”
“글은 무슨, 아는 작가한테 부탁하면 써주겠지요.”
“꼭 그렇게 해봐.”
“글쎄, 우리 호영이가 나더러 인간승리라고…….”
“자식한테 그런 말 들었다면 축복받은 삶이다. 부럽다 부러워.”
“기분이다. 오늘 술 한 잔 사라!”
“책도 안 내었는데? 까짓 거, 한잔 아니라 두 잔이라도 사지 뭐.”
“언니, 다됐어요. 일어나요.”
여인은 일어나 동그란 손거울을 들어 비춰보곤 가방에서 지갑을 꺼낸다.
“아이라인은 않고요?”
“내 나이에 아이라인은 무슨.”
“할 때 같이 해버리지. 세안만 해도 화장한 것처럼 편해요.”
그럴까……. 여인은 망설이다가 예쁘게 해달라며 다시 침대에 누워 베개를 고쳐 벤다. 필연은 마취제를 면봉에 묻혀 여인의 속눈썹 주위를 발라놓고 랩을 떼서 그 위에 덮는다. 그리고 다시 필연의 손이 기계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술이 끝나고 여인이 침대에서 일어난다. 곁에 있는 거울을 들더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니, 이게……! 나, 이러고는 못 다녀요. 자연스럽게 해준다더니 눈 아래위가 새까맣게……. 술집 여자 같잖아요.”
“술집 여자는 눈이 까맣던가요?”
다른 때 같으면 어떻게든 손님을 이해시키려 다독였을 텐데 술집 여자 같다는 그 말에 자신도 모르게 발끈한 것이다.
“신경 써서 해주었더니 이 무슨 억지를…….”
“억지요? 내가 억지를 쓸 사람같이 보였어요?”
“예쁜데요. 처음이라 어색해서 그렇지 멋쟁이 되려면 좀 대담해야 하는데.”
운지는 험악해진 두 사람을 중재하려 애쓴다.
“난 이렇게 하고 못 나가요. 빼주세요.”
“더러워서 내 이 짓 못하겠네.”
“이 짓 못하게 해줄까요?”
어깃장을 놓는 여인도 보통은 아니다. 반영구화장은 자격증이 있는 의사나 간호사가 병원에서 하는 게 아니면 모두 불법이라는 걸 여인도 알기 때문이다.
“아아니. 뭔 이런 여자가 있어? 하고 싶은 대로 해.”
필연은 얼굴에 독기가 서린다. 안 되면 벌금 내지. 별것도 아닌 게 술집 여자 같다니. 술집 여잔 종자가 틀린 줄 아나 봐. 구시렁거린다.
“잘된 걸 아줌마가 이러니까 속상해서 그러네요.”
필연은 그제야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신고하면 복잡해지는 게 아닌가.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처음은 어색해도 일주일 지나면 그땐 잘했다 싶을 겁니다.”
그녀 특유의 화술로 지울 수는 없지만 절대 후회 안 한할 거라고 여인의 마음을 만져준다.
“일주일 지나고 그때 아니다 싶으면 오세요. 멋지게 잘되었는데 다시 빼주라고 하니 화나서 한 말이니 이해하세요.”
필연의 말에 여인도 마음이 가라앉힌 듯 했다.
“진짜 일주일 지나면 자연스러워져요?”
“그럼요. 두고 보세요. 내 말이 맞나. 아이라인은 내 그냥 해 드릴게. 일주일 지나고 예쁘면 그때 와서 밥 사 주세요.”
여인은 그 말에 못이기는 척하고 일어선다.
“언니, 미안해요. 화 푸세요.”
저녁때가 되어 그들은 돌아가고 필연은 혼자가 된다.
봄날의 춘곤증처럼 온몸이 나른해진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힘이 없다. 힘들게 속눈썹 피부 점막 사이사이를 메우듯 결 따라 새겼는데 돈도 못 받고 악담만 들었다. 벽에 걸린 시계는 벌써 6시다. 밖은 어느새 어둠이 깔리고 필연의 가슴도 오늘은 곧 어두워질 밤하늘처럼 암회색으로 드리워진다. 긴 한숨을 뱉고는 곁에 있는 오디오 버튼을 꾹 누른다. 좋아하는 곡 ‘쎄라비’가 잔잔히 흐른다.
― 오~ 이것이 인생이겠지.
― 오~ 이것이 인생일 거야.
두 눈에 눈물이 괸다. 손등으로 눈물을 쓱 훔친다. 그래, 이게 인생인 거야. 이 모든 건 신의 영역인 게야. 그녀는 일어나 서랍을 열어 수첩을 꺼낸다. 손님 이름을 묻지 않기에 자신만 알아보는 이름을 만들어 수첩에 적는다. 오늘 그 여인은 ‘억지아줌마’라 적어 그 위에 가위표시를 하고는 날짜와 받은 금액을 적는다. 그 여인도 오늘부터 필연의 관리 대상에 또 다른 언니가 되어 오랜 단골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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